1999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였는데,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로서는 그 목록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만큼 그는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강 산업의 대부호 집안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항공 공학을 전공했는데, 러셀의 『수학 원리』를 읽고 논리학과 철학을 하기로 결심한다.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그동안 불후의 명저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하였다. 그 후 그는 10년 가까이 철학을 떠나 초등학교 교사 등 다른 일을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음을 인정하고 1929년에 철학에 복귀한다. 이후 그의 치열한 철학적 노력은 『철학적 탐구』로 집약되는데, 이 저작은 그가 사망한 1951년 이후에 출판되었다.
『논리–철학 논고』의 궁극적인 철학적 과제는 삶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와 같은 실존적 문제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곧바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 세계의 의미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의미 그 자체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 물음은 결국 언어, 논리, 의미, 진리 등의 본성을 묻는 것이다. 또는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사고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림 이론, 진리 함수 이론, 유아론을 제시한다. 1929년 10년의 방황을 접고 철학에 복귀한 후, 그는 『논리–철학 논고』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언어와 논리, 의미의 문제를 계속해서 탐구하였다. 그림 이론과 진리 함수 이론은 『철학적 탐구』에서 ‘사용 의미 이론’으로 대체된다. 또한 유아론이라는 철학적 함정은 인간의 실천이라는 거친 대지로 바뀐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을 크게 수학 철학과 심리 철학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아 천착하였다. 수학 철학에서 칸토어의 집합론,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주의, 힐베르트의 프로그램,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심리 철학에서는 심신 동일론, 심신 이원론, 행동주의, 내성 심리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매우 독특해서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으로 비트겐슈타인이 문제 삼는 것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심리학자의 문제들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저작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충분한 배경 지식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비트겐슈타인은 결코 독자들이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 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고하기를 북돋으려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그리 단순한 작업이 아님을 먼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만일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면 먼저 『로지코믹스』를 읽기를 권한다.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책에는 논리학(logic)과 만화책(comics)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심에는 20세기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리 논리학자인 러셀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인간의 비합리성과 광기를 넘어 절대적 합리성의 토대를 찾으려는 러셀의 열정과 삶의 여정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전개된다. 이와 함께 러셀과 함께 교류했던 칸토어, 프레게, 괴델 등 20세기 최고의 지성을 만날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격정적인 지적 상황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어떻게 철학을 했는지, 또 그의 철학을 둘러싼 철학적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저작은 분량이 100쪽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만에도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머리에 쥐가 나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책이며, 어느 누구도 단 한 번 읽고는 이해할 수 없는 저작이다. 러셀도 이 책의 출판 전 일주일간 비트겐슈타인과 한 줄 한 줄 함께 읽으면서 질문하고 토론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이 저작을 한 번 읽고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생각의 한계, 또는 언어의 한계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려 한다. 특히 그는 한 명제의 뜻이 무엇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유의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결론으로서, 이 저작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준엄한 선언으로 끝난다. 비록 100쪽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이 저작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논리?철학 논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쉽게 해명한 해설서를 보는 것도 좋다(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에 대한 어떤 해설서든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관련 해설서로, 레이 몽크의 『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과 박병철의 『비트겐슈타인』, K. T. 판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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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과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의 정수인 『철학적 탐구』가 궁금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철학적 탐구』에 직접 도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서문에서 자신이 “본질적인 점에서 (철학적)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하지만 다시 철학에 복귀하면서는 그림 이론, 진리 함수 이론, 유아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철학적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오류가 무엇이었는지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비판한다. 아울러 그는 ‘언어 놀이’와 ‘가족 유사성’이라는 자신의 독자적인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철학적 탐구』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물음은 언어의 본성과 의미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단어나 문장과 같은 언어적 표현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 언어적 표현의 의미란 무엇인가? 『논리?철학 논고』에서 이 물음에 대해 그림 이론과 진리 함수 이론으로 대답했던 반면, 『철학적 탐구』에서는 사용 의미 이론으로 대답한다. 한 언어적 표현은 언어 놀이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를 지니며, 언어 놀이에서 사용이 배제되면 의미가 없다. 또한 한 언어적 표현의 의미나 개념은 가족 유사성을 따른다. 한편 『철학적 탐구』에서는 『논리?철학 논고』와는 달리 인간의 감각, 감정, 고통 등과 같은 심리적 용어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그 의미를 문제 삼는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알 수 있는가? 가령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커피 맛을 과연 저 사람도 느낄까? 이것을 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적 감각, 사적 언어, 유아론과 얽힌 이러한 문제가 『철학적 탐구』를 관통하는 물음이다. 이와 함께 비트겐슈타인은 ‘실천’이라는 화두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체험과 실천의 기초는 기술의 숙달이다. 우리는 이러한 실천에서, 그리고 언어에서 일치한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이는 의견들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의 일치이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청색 책?갈색 책』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저작이다. 「청색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 1933/1934년 강의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몇몇 학생들에게 구술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낱말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유아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 끝맺고 있다. 「갈색 책」은 1934/1935년 강의에서 두 명의 학생에게 자신의 생각을 구술하고 기록한 것이다. 「갈색 책」에서는 언어 놀이의 개념을 제시한 다음, 단순한 언어 놀이로부터 일련의 복잡한 언어 놀이들을 구성해 나가면서 구체적인 언어 사용의 문제에 주목한다. 『청색 책?갈색 책』은 그 내용과 형식 및 스타일에 있어서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철학적 탐구』를 위한 예비적인 연구이며, 독자에게는 그 저작을 위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저작은 비트겐슈타인이 1939년 ‘수학의 기초’에 관해 강의한 것을 네 명의 수강생이 기록한 노트를 토대로 펴낸 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저작에서 수학의 본성이 무엇이며, 수학적 명제와 경험적 명제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문제 삼는다. 이와 함께 수학적 실재론, 논리주의, 형식주의, 직관주의, 모순에 대한 수학자들의 생각 등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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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크게 수학 철학과 심리 철학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아 수행된다. 『철학적 탐구』는 이러한 연구의 결정체이다. 그런데 『철학적 탐구』에서 심리 철학에 대한 논의는 2부까지 상세하게 이어지고 있는 반면, 수학 철학에 대해서는 극도로 제한적으로만 논의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 철학에 대해서 더 심도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을 권한다. 이 저작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칸토어의 집합론,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주의, 힐베르트의 프로그램,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물론 그 내용은 쉽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의 심리 철학에 대해서 더 심도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심리 철학적 소견들 1?2』를 권한다. 이 두 권의 주된 내용은 『쪽지』에 간추린 형태로 편집되어 있다. 이 저작들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심신 동일론, 심신 이원론, 행동주의,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 철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작들을 읽으면서 그러한 비판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해설서를 읽고자 한다면, 로날드 수터의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 후기 철학의 전반적인 내용과 그 깊이를 이해하는 데 손색이 없는 입문서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문제가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프로이트, 러셀 등 여러 철학자들의 견해와 얽혀 있다는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논의하고 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이 심신 동일론, 심신 이원론, 행동주의, 유아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해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 권을 추천한다. 먼저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을 보다 더 심도 있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은 필독서이다. 레이 몽크는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정리한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즉 비트겐슈타인의 어린 시절부터 『논리?철학 논고』가 출판된 시기, 그 이후 10년간의 방황 시기, 다시 철학을 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으로 복귀한 해부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전까지의 시기, 그리고 사망 전 10년의 기간이 그것이다. 『논리?철학 논고』가 집필되고 출판되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와 함께 비트겐슈타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볼 수 있어 많은 감명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확실성에 관하여』는 비트겐슈타인이 1949년 11월 암 판정을 받은 후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 쓴 철학 일기 형식의 글을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앎’, ‘믿음’, ‘정당화’, ‘의심’, ‘확실성’과 같은 인식론적 개념들을 문제 삼고 있는데, 그의 마지막 철학적 투혼과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철학적 탐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검증받는 시험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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