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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새들은..장바구니 담기 자기 앞의 생 장바구니 담기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세계에서 온 초대장,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 물가로 말려온 고래의 잔해, 사람의 발자국, 조분석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하늘과 흰빛을 다투고 있는 먼바다에 고깃배 같은 것들이 이따금 새롭게 눈에 띌 뿐, 모래언덕, 바다, 모래 위에 죽어 있는 수많은 새들, 배 한 척, 녹슨 그물은 언제나 똑같았다. 카페는 모래언덕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세워져 있었다. 도로는 그곳으로부터 백 미터 남짓 떨어져 있었으므로, 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도입부다. 로맹 가리는 마치 저 장소에서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소설들 속의 세계는 공허하고 때로 잔혹하다. 로맹 가리는 몇몇 단편의 말미에서 반전을 시도하는데, 이는 오 헨리나 로알드 달처럼 스토리텔링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기보다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세계가 갑자기 인간의 등을 떠미는 것 같다. 로맹 가리가 준비한 반전들은 카타르시스보다는 두려움에 가깝게 느껴진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위력을 발휘하는 운명의 힘은 좋고 옳고 선한 것들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시험한다. 텅 빈 채로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이 사람들을 쥐었다 놓는 세계. 신이 없고 신을 만들어야만 하는 세계.

"두 번째 공쿠르상을 수상하다, <자기 앞의 생>"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 아우슈비츠의 기억에 시달리는 로자 아줌마와 맹랑한 아랍인 꼬마 모모가 함께 사는 곳이다. 늙고 병들어 치매끼까지 있는 로자 아줌마는 창녀의 자식들을 키우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모모는 그 아이들 중 하나이다.

부모의 그늘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모모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위악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슬퍼도 눈물흘리지 않는다. 소년은 거짓말쟁이다. 천연덕스럽게 어른들을 속여넘기고 가끔씩 도둑질도 한다.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꽤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리한 아이인데, 그래서인지 시니컬한 대사도 종종 지껄인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열몇 살 짜리 꼬마가 이런 말을 내뱉다니, 정말 슬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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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그토록 유명한 책이지만 이제야 읽었다. 아무래도 단편에는 길게 몰입하지 못하는 성정 탓이다. 이야기에 좀 얽혀들라치면 금세 끝인가 싶은 허무함, 그리고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종이 한 장만 넘기면 새로 이어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이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갔다 오고나니까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는 갑자기 낯선 이- 이런 느낌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단편을 잘 집어들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답답한 이야기지만, 좋은 장편이 선사하는 몰입의 맛에 길들여진 탓이다.

그런데도, 깜짝 놀랄만큼 이 단편집은 멋졌다. 작가는 종횡무진 이야기의 세상을 넘나든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의 여러 꼬락서니, 때론 처절하게 때론 알싸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편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는 것처럼,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군데의 이야기를 탁 잡아채서 풀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들. (정말, 작품집 안에 하나둘은 끼어있음직한 허투른 이야기가 어째 하나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점도 자유로이 넘나든다.

<자기 앞의 생>은 인간에 대한 냉소적이고 싸늘한 상황과 따스한 시선이 교차하는 하나의 퀼트같은 작품입니다.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뭐랄까. '호밀밭의 파수꾼' 보다는 더 참담하고, '올리버 트위스트'보다 더 안타깝지요.쓸쓸한 유머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지만 흡인력이 강하고 수려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연꽃이 썩은 물에서만 피는 것처럼 말이예요.

...누구의 생이든, 자기 앞의 생은 슬플 때가 있다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어리지만 어리지않은 아랍인 소년, 모모는 말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슬프고 끔찍하지만 로자아줌마를 비롯해 모모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모모를 일깨우는 스승들이죠. 소년은 이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삶을 껴안고 그 안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비법을 체득합니다. 자기 앞의 생, 우리 앞의 생, 남은 여생은 무엇으로 살아야하냐구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로 버거운 삶에 대한 해답일 수 있겠죠.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이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의 한계를 초월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사랑을 '하기' 때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