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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1862년 쾨니히스베르크(K?nigsberg)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판사였다. 김나지움까지는 수학 이외의 과목에 흥미가 없어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좀 더 개방적인 학교로 옮긴 후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수학에서 최우수 성적을 획득한다. 최초로 수학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6세 때인 1888년에 ‘고르단(Paul Gordan)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부터다. 1895년부터 괴팅겐에 자리를 잡은 힐베르트는 대수적 정수론의 순수 수학에서 업적을 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는 1900년 8월 8일 국제수학자대회에서 다가올 20세기에 수학계에서 해결해야 할 23개의 수학 문제들을 제시했는데, 힐베르트가 낸 이 문제들은 20세기 수학의 진행 방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02년에는 『기하학의 기초Die Grundlagen der Geometrie』를 출판해 기하학의 공리적 기초를 마련했다. 혹자는 이런 의미에서 힐베르트를 ‘제2의 유클리드’라 부르기도 했다. 출간 이후 힐베르트에게는 곧 베를린 대학에서 임용 제안이 들어왔는데, 힐베르트는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노르트하임(Lothar Nordheim) 등과 함께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리화를 시도했으며, 1924년에는 그의 수제자인 쿠랑과 함께 『수리물리학의 방법Die Methoden der mathematischen Physik』이라는 20세기 수리물리학 분야의 고전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 나오기 직전에 출판되어 과학자들이 파동역학에 나오는 난해한 수학적 방법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어 현대물리학의 보급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12년 적분 방정식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책을 발간하였고 이후 물리학을 수학과 같이 공리적 체계 위에 세우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거의 같은 시기에 ‘물리학의 기초’라는 논문으로 같은 결론을 얻어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브로베르(Brouwer)등이 주창한 직관주의에 대항하여 형식주의를 주장했다. 1930년 봄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 이 해 가을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는다. 80세에 길에서 넘어져 다친 후 쇠약해져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2월 14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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