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
족쇄 같은 일상을 탈출해 낯선 세계로 뛰어든 사람들이 있다. "미친 듯 돌아가는" 뉴욕의 직장을 그만두고 숲으로 둘러싸인 소도시에서 아침을 맞는 남자, 폭력적인 남편을 떠나 유년이 고스란히 잠든 고향으로 도망친 여자, 수녀원에서 여자로 키워지다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소년, 처음으로 직장을 결근해버린 중년 여성과, 대도시로 이사 와서 학교에 갈 걱정에 시달리는 아이, 그리고 고향을 탈출한 거미까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다리를 불살라 버렸기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해방되어 새로 맛본 자유는 너무나 달콤하지만, 타인이 제멋대로 내리는 판단과 적대적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으로 치닫기도 한다.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 같은 순간의 우울, 그럼에도 새로운 자극에 다시 환희로 빛나는 감정의 격변을 작가는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그 모든 곤경과 아픔에도, 하이스미스의 인물들에게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나온 이들이기에. 소설 속 '프림로즈색'이 노란색이어야만 한다고 믿는 플레밍씨처럼 그래야만 하는 것에 매달리는 자들, 오해와 편견의 감옥에 갇혀 상대방의 본모습을 전혀 보지 못하는 자들과 다른 운명을 지닌 이들이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문체가 빛나는 소설집.
- 소설 MD 권벼리 (20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