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여름, 식민지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에서 태어났다. 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만 두 살 때 태평양전쟁(1941)이 터졌으며, 여섯 살 때 해방을 맞이했고, 열한 살 때 6·25 전란에 휘말리는 등 그야말로 격동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국립수산대학 졸업 후 농림부 소속의 중앙수산검사소 공무원을 거쳐 고려원양 판매과장, 동원산업 부산 지사장을 지낸 다음 부산에 정착했으며, 멀미 나도록 변화하고 눈부시도록 발전한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피난민의 자식으로 먹고살기 위해 눈치를 익혔고, 텃세와 구박을 무찌를 깡도 있지만, 남을 짓밟으며 내 몫을 챙기겠다는 두꺼움은 모자랐으며, 누군가를 박정하게 대하면 오래도록 마음이 쓰이는 ‘새가슴’을 지녔다.
그의 가장 특출한 ‘달란트’는 일제강점기 만주와 해방이후 북한에서의 생활, 흥남부두 탈출기와 피난살이 등 평생의 파노라마를 유장하게 읊을 수 있는 기억력이다. 팔순의 어느 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 워드프로세서를 익히고 독수리 타법으로 2년 넘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고향 없이 타향살이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온 곳 모두가 이미 자신의 고향임을 깨달았으며, 스스로 ‘복 많은 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