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사후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콜레트, 프랑스 작가들에게 유례없는 사랑을 받는 작가 콜레트의 파격적인 삶과 작품을 관통하는 화살 같은 이야기 스무 편을 담고 있다. 노래, 몽상, 춤, 꽃, 불, 상처, 행복한 불면, 사랑, 변덕, 고양이와 개, 과거에 얽매인 깊은 우울, 노화, 죽음, 여리고도 강한 콜레트의 이야기. 두려움을 떨치고 삶의 경험에 형식을 부여하려는 깊은 열망에서 태어난 예술, 자연과 사물, 감정과 관계의 향과 맛을 온전하게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합니다.
포도 덩굴손
새해의 몽상
댄서의 노래
하얀 밤
흐린 날
마지막 불
사랑
꿈
암고양이 노노쉬
개가 말하다
동물들의 대화
화장
나팔꽃
어떻게 보일까?
치유
거울
노래하는 귀부인
솜므 만에서
낚시 소풍
뮤직홀
눈 귀 감고 읽어야 할 소설
식물과 동물과 사물과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의 그림자. 형체의 음영이자 감각과 사고의 음화들. 그렇게 조직되는 헐거운 듯 촘촘한 장면과 대화들. 그리하여 세세하나 반향이 넓고, 단조로우나 색색의 함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으로 무지개를 짜는 문장들.
어떤 정조情調들의 나른한 합주가 시연되는 백지 위의 실내악. 소리의 그림자가 소리의 원래 감도를 다른 빛깔로 반사하고, 절망 혹은 우울이나 슬픔 등이 그 자체의 관성적 본성을 탈색한 채 카펫 위의 털 오라기처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고요한 소요 속에서 콜레트의 문장들은 허공에 음각된다.
뭐랄까, 움직이는 그림이랄까, 멈춰있는 활동사진이랄까.
조근조근 나지막한 단어들이 날실 씨실로 꿰어 심장의 주름을 폈다 죄였다 하는 소소한 일상과 인상들이 그려내는,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의 잔영들.
고양이는 잠자면서 긴 꿈을 꾼다. 콜레트는 그 내밀한 꿈을 일상의 평범한 단어들로 점을 찍고 선을 그어 고양이의 진짜 모습을 그려내고, 자신은 그 뒤에 숨는다. 개가 사람의 말을 할 때, 그 말은 사람이 임의로 의역하거나 투사해 낸 단순 인유引喩가 아니다. 개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사람의 눈 귀에 귀속시켜 세계의 빛깔을 바꾼다. 빨간색은 노란색이고, 낮은 땅은 절벽과 같으며, 목을 긁어내는 소리는 갑자기 피아노 건반에서 튀어나온 음표들의 건배와도 같다.
콜레트는 그 모든 것을 거울 속에 담아 자신을 숨기고, 숨긴 채로 더 아름답거나 더 탐욕스러운 자신을 빚는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이름 뒤에서 “자기의 본래 모습보다는 남자가 원하는 모습으로, 남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상을 따르”며 글을 써온 한 여인의 기나긴 무언극의 본색.
그녀는 말한다. “나는 분명하고도 날카롭게 나 자신을 기억해요.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우수와 함께요.” 그래, 그의 말마따나 “이것은 책이나 사진에서 보던 흔한 모습”들의 무언극이다. 말은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해질 뿐, 말하는 자신을 기만하거나 분칠을 하거나 가발을 쓰거나 나이를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콜레트는 그렇게 말의 뒤에서 말의 진짜 속성을 들추고, 가짜로 구성되는 이야기들이 숨기고자 하는 진짜 ‘사물들의 이야기’ 혹은 ‘말 자체의 물질적 담화’를 그림 그리듯, 혹은 무심하게 스냅사진 찍듯 말의 표피에 얹는다. 그렇게 해서 보이고 들리는 건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말하지 못하는, 언어 스스로 행동하는 무언극이다.
남성들이 쌓아 올린 논리와 온전해 보이는 구성체로서의 언어가 부지불식 뿌리부터 앓는다. 소리 없이, 말의 무의미성을 스스로 내파 또는 고발하며 거대한 남근이 자신의 그림자에 먹힌다. 그림자라니? 정말 본체가 있었단 말인가? 다만 존재하고 무너질 뿐이다. 존재의 명확성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나아가는 문장들 속에서 진짜 무언극이 시작되려 한다. 이야기가 끝나고 조명과 커튼이 내려진 상태에서야 비로소 터져 나오는 언어와 이야기의 씨알들. 오랜 슬픔이 긍지가 되는 순간은 이토록 세밀한 빛과 어둠의 점묘와도 같다. 귀로 읽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움직여야 읽히는 소설이다.
강정(시인 ‧ 뮤지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 나를 매혹하고, 상처 주고,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 낭랑한 밤이 지나 새벽으로 접어들 때면 언제나 사려 깊고 서늘한 새벽의 손이 내 입술 위에 놓이고, 격렬했던 내 외침은 소심한 혼잣말이 되거나, 자신을 안심시키고 두려움을 떨치려 큰 소리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 아이의 수다로 변한다.
이제 한 해는, 계절에서 계절로 물결치며 리본처럼 풀어지는 길이 아니다. 1월부터 풀어져 봄으로 오르고 올라 고요한 들판 곳곳마다 푸른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타는 듯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초원 위로 눈부신 제라늄으로 물든 여름을 향하던 그 길도, 그리고 안개와 향기, 습지와 익은 과일, 사냥감을 만끽하는 가을로 내려갔다가 햇살 아래 흩날리는 장밋빛 눈과 꽁꽁 언 연못이 반짝이며 소리 내는 건조한 겨울로 깊어 가는 길도 아니다. 그 물결같은 리본은 서리꽃처럼 두 해 사이에 홀로 매달린 마법의 날 앞에서 불현듯 꺾일 때까지 현기증 나게 내달린다. 새해 첫날….
“늙어갈 수밖에, 울지 마. 손을 맞잡고 애원하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마. 늙어가는 거야, 이 말을, 절망적인 외침이 아니라 불가피한 출발을 알리는 신호로 계속 중얼거려봐. 너 자신을 봐, 너의 눈꺼풀, 너의 입술, 그리고 네 관자놀이 위로 머리칼을 쓸어 올려. 그러면 이제 너는 네 삶에서 이미 멀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그걸 잊지 마. 늙어갈 수밖에!”
“천천히, 눈물 없이, 천천히 멀어져. 아무것도 잊어선 안 돼! 너의 건강을, 너의 명랑함을, 너의 우아함을, 네 삶을 덜 씁쓸하게 해주었던 약간의 선의와 정의감을 잊지 마! 단단히 준비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가에서 헛되이 발을 멈추려 하지마. 늙어가는 건 피할 수 없으니 다 부질없지. 길을 따라 걸어, 그리고 오직 죽기 위해서만 거기에 누워. 어지러이 굽이쳤던 세월의 띠를 가로질러 그 끝에 이를 때, 너의 곱슬곱슬한 머리칼 한 가닥도, 이빨 하나도, 성한 팔다리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면, 네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 영원의 먼지가 네 눈에서 찬란한 빛을 가리지 않았다면—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이끄는 다정한 손을 네 손에 계속 쥐고 있었다면, 미소 지으며 누워, 행복한 잠을 자고, 너만의 특별한 휴식을 취해….”
나도 모르게 추는 춤, 매일 매일 느려지는 그 춤을 추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그 불빛을 맞을 거야.
최후의 비통한 춤으로 죽음과 맞서겠지만, 나는 초연히 고요한 죽음을 겸허하게 맞을 거야.
신이 내게 우아한 소멸, 이마 위로 두 팔을 가로 모으고, 한 다리를 굽히고 다른 다리는 뻗어, 어둠의 왕국의 검은 문턱을 넘을 가벼운 도약을 허락해주길.
넌 나를 춤추는 여자라 불렀지만…, 나는 춤추는 법을 몰라…
드레스 자락을 물들인 물오른 풀잎을 밟으며 마냥 웃고 떠들었어. 너의 고요한 쾌락은 내 광기를 바라보는 것이었지. 내가 찔레꽃으로 손을 뻗을 때, 너도 알지, 그 탐스러운 들장미 말이야, 내 눈앞에서 너의 손이 가지를 꺾어 발톱 같은 짧고 붉은 가시들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내…. 넌 내게 발톱 없는 꽃들을 주었지…. 넌 내게 발톱 없는 꽃들을 주었어…, 내가 가쁜 숨을 돌리고 쉴 수 있게 페르시안 라일락의 영근 수수 그늘로 나를 이끌었지…. 넌 내게 화단의 수레국화를 한 아름 따 주었어, 솜털 같은 꽃술에서 살구 향이 나는 매혹적인 꽃…. 넌 작은 병에 든 커스터드 크림을 주었고 허기진 내 손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 넌 내게 아주 잘 구워진 황금빛 빵을 주었어, 그리고 내 머리 위에 윙윙거리는 벌을 쫓으려 햇살 아래 너의 창백한 손이 또다시 들려지는 것이 보여…. 구름이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 한낮의 끝에서 내 어깨를 외투로 감쌀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취해 소름이 돋았어, 봄날 행복한 짐승들의 천진한 기쁨에 젖어…. 넌 말했지…. “이리 와, 그만 돌아가자”….
Sidonie-Gabrielle Colette(1873년–1954년),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콜레트는 일곱 살에 발자크를 비롯해 코르네이유 등 프랑스의 고전을 탐독한다. 전직 군인이자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부모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히 집 안뜰의 정원에서 관찰 기술을 터득한다. 부르고뉴의 숲과 정원, 그 향수는 평생 콜레트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남편 윌리(Willy)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그리고 출판 업자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파리의 문학계와 음악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부르고뉴의 거친 악센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젊은 아내의 글쓰기 능력에 놀란 Willy는 그녀를 쉐도우 대필작가로 이용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당시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클로딘의 단발 머리가 도처에서 튀어나와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1906년 자신의 글에 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 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후 콜레트는 뮤직홀에서 당대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가 된다. 그녀의 의상, 그리고 동료 여배우와의 키스 등으로 쇼는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06년 윌리와 헤어진 후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바로 출간을 앞둔 <슬픔의 긍지>이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정원과 숲의 기억, 그리고 당시의 파트너인 마틸드 드 모니(미시)와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콜레트는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성취도 이루기 시작한다.
1912년 콜레트는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Henry de Jouvenel을 만나 결혼한다. 외동딸 Colette Renée de Jouvenel을 두었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40세의 나이에도 당시 16세였던 남편의 아들 베르트랑 드 주브넬 (Bertrand de Jouvenel)과 5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낸다. 이때의 이야기가 1920년 소설 '셰리'로 출간된다. 소설은 베르트랑 드 주브넬과 관계를 맺기 몇 년 전인 1912년에 구상했다고 해서 환상이 현실이 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과는 1923년에 이혼)
1910년대 후반엔 신문의 평론 기고와 연극 각색에도 참여하고 Maurice Ravel과 음악 작업도 함께하면서 배우, 작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벨 에포크의 유명 인사가 된다.
1929년엔 대공황 속에서 생계를 위해서 파리의 rue de Miromesnil 에 '미용 연구소' 일종의 뷰티샵을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들의 피부관리를 직접 해주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 해 콜레트는 자신보다 16살 적은 나이의 세 번째 남편인 Maurice Goudeket을 만나 결혼한다. 전쟁 중에는 남편 모리스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자 비시 정부의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인물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수용소에서 구출해낸다.
고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녀는 주로 침대에서 수많은 신문에 글을 쓰고 소설을 출판한다. 그녀의 비정치적 성향과 재정적 필요로 인해 독일 점령기의 협력주의 신문, 페탱주의 신문에도 글을 썼고 지하 언론의 저항 세력으로부터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글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점령기의 일상, 전시의 여성들의 삶의 고단한 풍경을 써나갔을 뿐이다.
1945년엔 만장일치로 공쿠르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49년에는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다. 명성을 얻으려면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한 그녀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작가로 남는다. 1954년 8월 3일 사망 후 가톨릭교회의 장례식은 거부당했지만, 프랑스는 여성 사상 최초로 국가 장례로 콜레트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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