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파스칼 키냐르를 사로잡은 193점의 매혹,
공포스러우면서도 황홀한 밤의 그림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2007년 ‘성적인 밤’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내놓는다. 가로가 긴, 양장본의 두꺼운 책을 채운 검은 빛깔의 종이 위로는 마치 어둠 속 유령처럼 수많은 그림들이 나타난다. 거의 200개에 달하는 도판은 미켈란젤로, 코레조, 루벤스, 렘브란트, 마그리트, 피카소, 호퍼 등 위대한 서양화가들의 작품부터 신윤복, 우타마로, 석도 등 동양 대가들의 작품까지 동서를 가로지르고 고금을 관통한다. 화법도, 시대도 다른 이 그림들을 묶어주는 것은 에로티시즘이라는 테마. 키냐르는 하나의 장마다 유사한 모티프로 묶이는 그림을 배치하고 다섯 쪽이 넘지 않는 짧은 단상들을 때로는 그림 곁에서, 때로는 그림으로부터 벗어나며 이어간다.
“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파스칼 키냐르를 사로잡은 193점의 매혹,
공포스러우면서도 황홀한 밤의 그림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2007년 ‘성적인 밤’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내놓는다. 가로가 긴, 양장본의 두꺼운 책을 채운 검은 빛깔의 종이 위로는 마치 어둠 속 유령처럼 수많은 그림들이 나타난다. 거의 200개에 달하는 도판은 미켈란젤로, 코레조, 루벤스, 렘브란트, 마그리트, 피카소, 호퍼 등 위대한 서양화가들의 작품부터 신윤복, 우타마로, 석도 등 동양 대가들의 작품까지 동서를 가로지르고 고금을 관통한다. 화법도, 시대도 다른 이 그림들을 묶어주는 것은 에로티시즘이라는 테마. 키냐르는 하나의 장마다 유사한 모티프로 묶이는 그림을 배치하고 다섯 쪽이 넘지 않는 짧은 단상들을 때로는 그림 곁에서, 때로는 그림으로부터 벗어나며 이어간다.
소설 <로마의 테라스>를 통해 회화 장르를, 산문 <섹스와 공포>를 통해 로마의 성(姓) 문화를 탐구한 바 있는 키냐르는 이 책에서 평생 수집한 이 그림들을 섬세히 묶고 또 배치하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1장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그림은 디도와 아이네이아스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 아이네이아스 앞에 횃불을 밝히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 어린아이의 언어적 불능을 상기한다. 이 어린아이는 차츰차츰 그리스신화 속 신과 영웅들(‘악테온과 다이아나’ ‘마르스와 비너스’ ‘에로스와 프시케’ 등), 성서의 인물들(‘롯과 그의 딸들’ ‘노아와 그의 딸들’ ‘마리아 막달레나’ 등)으로 형상화되며 다양한 성적 욕망을 비추고는 후반부 장 ‘최후의 상’ ‘제4의 밤’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그리며 사라진다.
이들 그림과 동행하는 키냐르의 글은 단순히 그림의 시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 그림이 촉발하는 또다른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예컨대 연인이 각자 얼굴에 베일을 쓰고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마그리트의 <연인들> 도판과 이웃한 키냐르의 글은 이 그림에 대해 별다른 언급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성차(性差)가 유발하는 절대적인 이해 불가능성에 대해 탐구할 뿐이다(“우리 각자는 다른 성기를 소유함으로써만 유발되는 성적 체위, 육체적 생활, 심리적 태도 등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키냐르의 관심은 에로티시즘 그 너머로 확장된다. 이에 대해서는 ‘잠과 꿈’ ‘골고다’ ‘지옥들’ ‘세계의 기원’ ‘회화의 기원’ 등과 같은 장 제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키냐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론을 전개한다. 키냐르는 프리드리히 그림에서 나타나는 절대적 고독을 호퍼의 그림 속 ‘오브제 없음’과 연관 지으며 이들이 형상화하는 ‘비가시적 세계’의 정체를 탐구한다.
키냐르는 가시적인 것을 만드는 회화 예술의 근원에 비가시적인 것이 있으며, 이 비가시적인 것이 화가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추동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키냐르는 (그 자체로는 볼 수 없는 것인) 어떤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현대의 화가와 환각을 그대로 동굴에 그리려고 했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을 동일시한다.
가시적인 것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 회화 장르에 접목하는 이 구도를 키냐르는 그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적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로티시즘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만든 것은 우리 부모의 성교 행위인데 우리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 장면을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적인 밤>은 이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가에게 그랬듯 이 불능이 모든 인간에게 꺼지지 않는 허기와 욕망을 자아낸다.
키냐르에게 회화라는 예술 장르와 에로티시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성적인 밤> 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머리말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비가시적 장면
롯과 그의 딸들
노아와 그의 아들들
놀리 메 탄게레
마리 마들렌
닉스와 녹스
잠과 꿈
라스코
골고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지데리오
지옥들
야수들
사투르누스
머리말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비가시적 장면
롯과 그의 딸들
노아와 그의 아들들
놀리 메 탄게레
마리 마들렌
닉스와 녹스
잠과 꿈
라스코
골고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지데리오
지옥들
야수들
사투르누스
관음증
악테온과 다이아나
마르스와 비너스
바우보와 데메테르
프랑스적 장면
중국의 원초적 장면
세계의 기원
회화의 기원
에로스와 프시케
레안드로스와 헤로
최후의 상
제4의 밤
에스토 에스 로 케 하이
도판 목록
역자 후기
저자 | 파스칼 키냐르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외르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아버지와 언어학자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포함한 다양한 악기와 5개 국어를 익혔다. 이 시절 두 차례 실어증을 동반한 자폐증을 앓았는데 이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68년 낭테르대학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지도 아래 철학을 공부했다. 1990년까지 갈리마르 출판사의 기획 위원과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 등을 쓰는 등 작가 활동을 병행했으나 1994년, “구속에서 벗어나 고독할 때 더 행복하다”며 모든 사회적 직책을 내려놓고 집필 활동에 집중한다. 1997년 심장 발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후 단상과 이야기, 논증, 설화 등이 뒤섞인 마지막 왕국 시리즈의 첫 작품 <은밀한 생>을 발표한다. 2002년에는 동 시리즈의 <떠도는 그림자들>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탈장르적인 글쓰기를 구사하는 키냐르는 자신의 문학 안에 회화, 음악, 춤 등 다른 예술 장르를 끌어들인다. 특히 회화에 대한 키냐르의 관심은 그에게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일 “사유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관련하여 17세기 판화가의 삶을 그린 소설 <로마의 테라스>, 조르주 드 라투르의 회화를 다룬 산문 <조르주 드 라투르> 등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화가, 판화가와 협업하여 다수의 책을 출간하였다.
역자 | 류재화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누벨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프랑스문학 및 프랑스 역사와 문화, 번역학을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의 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 <오늘날의 토테미즘>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보다 듣다 읽다>, 발자크의 <공무원 생리학> <기자 생리학>, 모리스 블랑쇼의 <우정> 등이 있다. 최근 <르 코르뷔지에, 콘크리트 배를 만나다> <꿀벌은 인간보다 강하다>를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의 원서는 도서관의 맨 밑 서가 한 귀퉁이에 있었습니다. 청구 기호는 704.9428 Q4n. 주로 800번대의 책들을 뒤적이는 제가 그날 왜 700번대 서가를, 그것도 쭈그리고 앉아야지만 볼 수 있는 서가를 뒤적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 사이에 익숙한 작가가 보였고 자동적으로, 별생각 없이 책을 들어 펼쳤습니다. 놀랐고, 잠시 ‘굳었다가’, 이내 빨려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이 책에 ‘매혹’당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책인지 알지 못했고 궁금증은 출간을 결정하고 편집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완벽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끌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합니다. 이 끌림을 유발한 것들에는 독특한 판형의 장정, 마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환영처럼 검은 배경의 종이 위를 수놓는 도판, 거침없이 전개되는 이미지들, 그와 함께 유영하는 작가의 글 등 점차 짚을 수 있게 된 요인들과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매혹이 기호에 따른 능동적 판단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이라는 키냐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는 이 책에서 매혹당하는 존재를 포식 동물에, 매혹하는 존재를 먹이에 비유합니다. 먹이는 포식 동물을 매혹합니다. 포식 동물이 먹이에 시선을 빼앗겨 ‘굳자’ 먹이는 스스로 매혹된 포식 동물에게 뛰어들어가 먹힙니다. 그렇게 매혹된 자와 매혹하는 대상 사이의 ‘자동 포식’이 완성됩니다.
키냐르는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을 수집하며 “결코 지치지 않는 기쁨”을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발견하고 편집한 지난 1년 동안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밤의 이미지를 간직한 이 검은 페이지들을 넘기시며 여러분들도 같은 기쁨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권현승
밤의 침묵 속 그 심중 바닥을 헤아릴 때면 희열 속에 우릴 만들어냈을 그 초라한 상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머리말
천체에 낮과 밤의 대립이 있기 전, 현저히, 그리고 완전히 감각적인 밤이 있었다. 분만의 출구에서 태양이 우리 눈에 나타나기도 전에 밤이 있었다. 우리는 이 음영 주머니에서 생겨난 것이다. 인류는 인류와 함께 이 음영 주머니도 전달했다. 바로 이 주머니에서 인류가 생산되었고, 꿈을 꾸었으며, 그림을 그렸다. 인류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하얀 방해석 벽면 쪽으로 돌렸다. 이 벽면 위에 의도하지 않았던 상들이 솟구쳤고, 횃불 너울이 벽면에 투사되었다. - 머리말
밤의 침묵 속 그 심중 바닥을 헤아릴 때면 희열 속에 우릴 만들어냈을 그 초라한 상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내가 수태되었던 밤, 나는 거기 없었다.
당신보다 앞서 있는 날을 목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머리말
천체에 낮과 밤의 대립이 있기 전, 현저히, 그리고 완전히 감각적인 밤이 있었다. 분만의 출구에서 태양이 우리 눈에 나타나기도 전에 밤이 있었다. 우리는 이 음영 주머니에서 생겨난 것이다. 인류는 인류와 함께 이 음영 주머니도 전달했다. 바로 이 주머니에서 인류가 생산되었고, 꿈을 꾸었으며, 그림을 그렸다. 인류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하얀 방해석 벽면 쪽으로 돌렸다. 이 벽면 위에 의도하지 않았던 상들이 솟구쳤고, 횃불 너울이 벽면에 투사되었다. - 머리말
만일 기원 장면이 그 열매는 전혀 볼 수 없는 파종을 그리는 거라면, 관찰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상을 도발해 마음에 심어놓는다. 끝없이 장면화, 그러니까 무대화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 기원의 점(點)은 곧 심연의 점이다. 그래서 그 광경을 기어코 용출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 광경은 인간 누구에게나 고유하게 있는, 어린애 같은, 자동적이고 즉흥적인, 분명 기만적인 환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부모의 나체를 제기하는 것이어서, 마음에 이런 장면을 교차시킨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기도 한다. - 5장 놀리 메 탄게레
자궁의 밤은 우리 각자에게 있는 이것, 즉 항성 간의 어둠이 하늘 저 안쪽까지 연장해놓은 것이다.
선사 때부터 임신한 여성은 세계를 망라하고 재생하는 어두운 궁륭처럼 표현되었다. 최초의 여신은 어머니이다.
낮들의 불연속에 밤의 연속이 대응한다. 눈을 감고, 밤에 자신을 맡기며, 꿈을 꾸는 자는, 유효기간 없는 세계와 합류한다. 밤으로 인해, 몽상이 진행되며, 죽은 자, 가망 없는 자, 귀환이 불가능한 자들은 우리를 향해, 우리 안으로 되돌아온다. - 7장 닉스와 녹스
자크 라캉은 지옥이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것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환각들이 지옥을 오게 한다. 지옥을 구현할 방도를 찾는다. 욕망의 저 맨 밑바닥에는 피학 취미(마조히즘)가 있다. 관능 저 맨 밑바닥에서는 능동적이지 않으려는, 자지러지고, 흐물흐물 녹고, 완전히 소멸되고 싶은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이 인다. 피학 취미는 욕망을 더 강화한다. 욕망으로 고통받는 자처럼 살아가는 주체를 “마조히스트”, 그러니까 피학대 음란증 환자라 부른다. 이들에게는 천국보다 욕망이다. 차분한 가라앉음보다 살아 있다는 감정이다. 무성 혹은 중성 상태의 복된 행복 속에 잠이 들고, 잠이 들자마자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행복보다 실존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명언집』에 이렇게 썼다. 천국에 발을 들인 행복한 자들은 영벌받는 자들의 고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강렬해지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 13장 야수들
기묘한 프랑스적 장면이 존재한다. 우선 멜랑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이어 프라고나르에서 증식되고, 쿠르베에서 더욱 첨예해진다. 그런데 클로드 멜랑이 이를 고안했다고는 하지만, 계속 추구하지는 않았고 완성하지도 않았다.
멜랑의 그림을 일명 〈쥐덫〉이라 부른다. 어머니의 음문에서 막 나온 갓난아기가 네발로 기며 몸을 돌리고 자기가 나온 그 음문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에게 탄생이란, “영원히 닫힌 문”이다. - 19장 프랑스적 장면
프리드리히는 1809년 2월, 드레스덴에서 〈해변가의 수도사〉를 완성했다. 이 그림은 1810년 10월 베를린에서 전시되었다. 클라이스트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계 속에 이런 위상보다 더 슬픈 건 없다. 고독 한가운데에서 고독하므로. 이보다 더 힘든 건 없다. 거대한 죽음의 왕국 속에서 유일무이한 생명의 불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처럼 신비로 가득찬 두 개 또는 세 개의 오브제만 보인다. 에드워드 영의 『밤의 상념』이 그림으로 되살아난 듯도 하다. 그 통일성 속에 그림 테두리 외에 어떤 다른 전경도 없다. 마치 누군가 당신의 눈꺼풀을 잘라낸 것 같지 않은가. - 21장 세계의 기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사진의 음화가 보여줄 때, 만일 그 음화에 담긴 것이 이미 오래전 사라진 것이라면, 그 사진 음화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초 양주에서 글을 쓴 스님 화가 석도의 불안과도 연관된다. 사진 위에서는 얼굴들이 진정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옛 몸짓들은 끝도 없이 힘을 소진하는 듯하다. - 25장 최후의 상
별들 상류에 있는 밤, 펼쳐진 공간 상류에 있는 밤, 이 절대적 밤, 아오리스트(aoriste) 같은 상상할 수도 없는 밤이 어둠과 결합한다. 이 어둠은 언어와 시간의 기원을 앞지른다.
우리는 어떤 것을 조금은 알고 있지만, 그 어떤 것은 이렇다 할 준거 사항이 일절 없다.
우리 삶 이전에, 내부의 밤 이전에, 별들의 밤 이전에, 우주 이전에, 공간을 발현시킨 일시적 폭발 이전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1402 a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 왜냐하면 알려지지 않은 것에서 그것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26장 제4의 밤
사람들은 이것을 ‘검은 그림’(Las pinturas negras)이라 불렀다. 고야가 벽면을 어두운 그림으로 덮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드리드 조금 위, 만자나레스 연안에 있던 그의 시골집 벽에 고야가 1819년 73세에 그렸던 그림이 있다. 고야는 거기에 간단히 이렇게 썼다. ‘에스토 에스 로 케 하이(esto es lo que hay).’
프랑스어로는 Ceci est ce qu’il y a (이것이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어로 고야가 쓴 문장은 문인에게는, 프랑스어 “jadis”(옛날)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 프랑스어로 “jadis”는 이렇게 분해된다. “ja y a dies.” 이미 하루가 거기 있었다. - 27장 에스토 에스 로 케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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