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삐삐'와 '개구장이 에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독한 말썽꾸러기 녀석들을 탄생시킨 이 스웨덴의 여류 작가에게 어린 시절을 빚지고 있는 셈이다.
'삐삐'의 이야기가 출판되고 나서도 어린이들을 개구장이로 만들지 않을까 하고 꽤나 걱정하던 학자들의 노파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린드그렌은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봐주고 '그 시기가 아니면 해보지 못하는 상상과 모험의 세계'를 긍정적인 눈으로 봐주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걱정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린 개구장이 시절로 돌아 갈 수도, 똑같은 말썽을 피울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린드그렌의 어린이관처럼 그것은 어린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에.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린드그렌의 이야기가 가치가 있는 것은 아이들의 흥미진진한 삶을 어떻게 긍정해주고 어떠한 눈높이로 봐주어야 하는지를 어른들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 클레어 님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마이리뷰 중에서 [전문 보기]이 세상이 지켜 주지 못한 아이들은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될까. 험한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그 아이들이 되살아난다면 어떨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작고 빛나는 아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전쟁도 아닌데 어린이와 죽음을 함께 떠올려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새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있으며 그들의 미래가 절망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에게는 어떤 강력한 희망이 필요하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그 희망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어리지만, 사자왕처럼 용감한 요나탄과 칼 형제의 분투는 인간이 왜 끝까지 타인의 존재를 믿어야 하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세계를 구해야 하는지 해답을 보여 준다.
이 한 권의 동화책은 지금까지 나의 삶을 중요한 순간마다 바꾸어 놓았다. 희망은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의 것이다. 무시무시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 생명이고 삶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눈앞에서 어린 손을 놓은 어른으로서 지금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어린이에게 책을 권한다는 것조차 잔인하게 느껴지는 사회다. 그러나 어디선가 칼의 몸으로 요나탄의 꿈을 꾸며 웅크리고 울먹이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 작은 손에, 그 손을 잡아야 할 또 다른 손에 건네주어야 할 것으로서 이만큼 정확한 선물은 없을 것이다. [작품해설 전문 보기]
누군가 내게 가장 사랑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곤란해진다.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랑한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책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혹시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고.
가난한 사람이 돈을 생각하는 것처럼 겁쟁이는 용기를 생각한다. 내가 (날마다) 돈과 (때때로) 스코르판을 생각하는 건 내가 가난한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처음 읽은 건 초판과 개정판 사이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 나는 스코르판만큼이나 작고 겁 많은 아이였다. 이제는 아니다. 시간과 함께 스코르판은 용감한 사자왕이 되었고, 나는 작고 겁 많은 어른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한동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는 홀어머니와 혼자 감당해야 했던 스코르판의 병과 모두의 기대를 받던 요나탄 형의 죽음과 그 뒤로 이어진 침묵의 밤 같은 것들을 자꾸만 곱씹어야 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생각하기 싫어서 흘려보낸 시간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려 노력하면서.
모험의 끝에서 스코르판은 말한다.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나는 정말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하잘것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못난 쓰레기 이상의 그 무엇도 영영 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은 어린 내가 어른이 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추천글 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