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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17
  • 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신이 지구에 오다"

    소설은 강변 둔치에서 여성의 오른팔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사체 훼손 사건으로 수사가 진행되는데, 그 무렵 근처의 빵집에서 팔 모양의 바게트를 만들어 소란이 일어난다. 이 빵집의 단골손님인 유이노 미대 교수가 팔 바게트에 흥미를 보이고, 기묘한 언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을 '신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예언 비슷한 발언을 반복하고 그 발언이 줄줄이 적중하게 되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가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될 거라고 말한 작품, <모나드의 영역>은 작가가 그간 천착해 온 주제들을 집결시킨 듯하다. 신체를 절단시킨 살인 사건이 있고, 미대 교수는 어느 날부터 이상한 얘기를 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괴이한 진행은 언론과의 대형 인터뷰 형식으로 발전하고, 여기서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세계론이 펼쳐진다. 유머라고 하기에는 좀 기묘한 구석이 있는 게 쓰쓰이 야스타카의 매력이긴 하지만, <모나드의 영역>은 스케일이 더 거대해졌다. 이 지구 또는 우주 전체가 농담으로 치환되려고 한다. 이것은 위기일까? 아니면 인류가 존재론적으로 드디어 정답을 찾은 것일까? 정답이 황망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인가? 쓰쓰이 야스타카는 이 모든 물음을 짧은 '엔터테인먼트 소설' 속에 집어넣었다. 이 소설이 자신의 최고작이라는 그의 자평은 어쩌면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노동 없는 미래
    팀 던럽 (지은이), 엄성수 (옮긴이) | 비즈니스맵 | 2016년 12월 "먹고사는 문제로부터의 해방"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점점 빠르게, 노동 없는 미래가 밝아 오고 있다. 어둠도 밝아 올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는 어둡지 않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가 그렇다. 로봇에게 노동을 넘겨주는 상황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무척이나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본래 개인적 생존의 문제였던 노동은 산업화를 거치며 인간 가치를 규정하는 일로 변화했다. 때문에 로봇이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할 일 없음'에서 비롯되는 인간성 상실의 측면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일은 부의 재분배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평생을 먹고살 만큼의 급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이제 로봇은 그 생계 수단마저 위협한다. 절망하긴 이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은 중요한 선결 과제다. 저자는 기술 혁명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일하지 않는 미래에 적응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급격한 변화에 걸맞게 생각을 크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탈노동'의 미래 모습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책은 그 희망을 역설한다.

  • 용서에 대하여
    강남순 (지은이) | 동녘 | 2017년 1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용서에 이르는 길"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고 이해하며 용서를 건네는 과정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용서가 그만큼 익숙한 일인가 싶어 의아하다.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향하며 문제와 화해하는 과정보다 책임을 묻고 보상을 하며 문제를 정리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과연 용서는 여전히 가능하며, 본래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걸까.

    철학과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강남순 교수는 “죄는 미워하되 죄를 지은 사람은 사랑하라.”로 대변되는 용서의 상투성을 넘어,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반성을 통해 다른 나로 변화하는 가해자, 내부의 분노를 제거하고 가해자 속에서 선한 품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여지를 찾는 피해자를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이렇듯 용서란 불완전한 인간을 드러내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를 "잘못의 감옥"에서 구해내 새로운 세계를 향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이제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용서에 이르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물론 당신도 이미 초대받았다.

  • 친절한 금자씨 각본
    박찬욱, 정서경 (지은이) | 그책 | 2016년 12월 "이금자라는 하나의 선언"

    봉준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세 편을 '정서경 3부작'이라고 칭했다 한다. 의미있는 호칭이다. 이 세 편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더 큰 역할과 다채로운 인격을 부여받았고, 결과적으로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장점은 파괴적일 만큼 앙상했던(그래서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영화 [올드보이]와 비교해 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작품에 여러 겹의 결을 형성한 (주로 여성) 캐릭터들은 박찬욱의 영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탄생시켰고, 이러한 성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 흐름에서 탄생한 최초의 캐릭터, 금자씨 또는 이금자가 갖는 의미는 막대하다. 이금자의 캐릭터는 어떤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금자는 세상이 여성을 속박하기 위해 이용하는 성녀와 악녀의 이미지를 집어삼켜 역이용하고, 종내에는 그 모든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구원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현실이라는 림보-회색지대에 남는 인물이다. 관객이 기대하는 복수의 성녀(또는 악녀)라는 임무를 완수한 뒤에 당도한 곳이 상실로 가득한 현재라는 점에서, '-녀'였던 이금자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야 세상이 여성에게 기대한 도그마를 벗어던지고 지상에 발을 내려놓는 것 같다. [베를린 천사의 시]처럼. 후반부의 파티 장면에서 천사가 지나갔다는 대사가 나올 때, 정말로 임무를 다한 타-천사는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낙하의 충격이 박찬욱이라는 세계의 균형을 휘저어버릴 것이다.

    이 각본집은 이러한 '이금자라는 선언'을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영화의 최종 편집본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 영화에 비해 거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연상케 하는 건조한 텍스트로 이금자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각본집 속의 이금자는 더 조용하고 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날 것이다. 책을 읽어가는 독자의 마음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이야기들이.

1.62017
  •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세트 - 전2권
    신영복 (지은이) | 돌베개 | 2017년 1월 "가장 다채롭게,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한 스승"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분야나 계파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한 분류를 넘어선 사유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신영복의 위치는 독특하다. 일상에서 쉽지 마주치는 곳에 자리한 글씨와 그림, 다른 말과 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아포리즘,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에세이, 방향 잃은 오늘의 삶과 세계를 구출할 방도를 전하는 고전 읽기. 이만큼 다채로운 빛깔로 기억되는 시대의 스승이 있었을까 싶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년이다. 그가 남긴 배움과 공감을 돌아보고 정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 사람의 흔적을 온전히 품기에는 지나치게 어지러운 1년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가 남긴 글은 여전하고 그가 전한 말은 한결같으니, 1주기를 맞아 그와 나눌 수 있는 최선은 역시 그의 말과 글을 다듬어 읽는 일이 아닐까 싶다. 미발표 유고를 포함한 선집과 생전에 여러 사람과 나눈 대담 열 편을 묶은 1주기 기념작을 만나니, 지난 1년이 바람 같고 그 없이 지낼 앞날이 쓸쓸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지은이), 박제이 (옮긴이)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6년 12월 "마음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이야기"

    시골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는, 어느 날 자신이 남자가 되는 꿈을 꾼다. 낯선 방, 처음 보는 친구들, 눈앞에 펼쳐지는 대도시 도쿄의 거리. 한편, 도쿄에서 생활하는 남고생 타키도, 어느 깡촌에서 자신이 여고생이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드디어 두 사람은 꿈속에서 서로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두 사람의 몸은 뒤바뀌지 않게 되고 타키는 꿈속 기억에 의지해 미츠하를 찾아 나서는데….

    2016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너의 이름은.]. 일본 영화 흥행순위 역대 7위, 1300만 관객 동원 (2016.11월 기준), 이 작품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차세대 거장으로 우뚝 섰다. 줄곧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각색해왔으며 이번에도 그의 섬세한 문체로 완성되어 일본 소설 판매 100만부를 돌파하였다(2016.11월 기준). 한국에서도 극장판 개봉 이후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장을 훌쩍 넘어서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너의 이름은.]은 처음에는 소설을 집필할 생각이 없었지만, 애니메이션과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위해 영화 완성 3개월 전에 썼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남녀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소설에서는 이 사랑이라는 테마 위에 또 하나의 메시지를 얹었다고 볼 수 있다.

  • 빅뱅 퓨처
    LG경제연구원 (지은이)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WOW FANTASTIC BABY"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만나게 되는 전망서와 미래 예측서 목록에 다시 한 권이 추가되었다. 2016년 말부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것은 비단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고, 서둘러 대응해야 할 시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미래의 키워드들은 대동소이하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언급해 버렸지만), 우리는 예측 가능한 것들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책마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은 제각각이며, 화자의 역량에 따라 새롭지 않은 테마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되묻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LG경제연구원의 이 미래 보고서를, <2010 대한민국 트렌드>(2005) 이후 많게는 12년을 기다린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싱크탱크에서는 어떤 생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문학과 사회 116호 - 2016.겨울 (본책 + 하이픈)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엮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2월 "때로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해시태그와 함께 비명이 비로소 들려왔다. 혁신호로 출간되는 문학과 사회 116호의 기획은 "#문단_내 _성폭력"으로 책은탁, 송섬별, 이미라, 윤이형, 박민정, 백은선의 글을 수록하였다. 고양예술고등학교를 거쳐간 이들은 가해자의 언어가 아닌 스스로의 '탈선'을 위해 모였고 어떤 이는 "직장인이 되자. 이제 난 시인 아니야."라고 생각해야 했던 시간을 고백한다. 그들이 내는 정직한 소음이 비명이 되어 들린다.

    "견디라고 말하는 쪽으로 침을 뱉으면 / 아프다고 말하는 쪽이 젖는다"라고 말하는 서윤후의 시도 함께 읽힌다. 김상혁, 성기완, 안미옥, 이영광, 이영주, 장석남, 장승리의 시와 백수린, 민병훈, 윤성희, 이장욱, 조해진의 소설이 함께 실렸다. 문학과사회 하이픈을 통해서는 "페미니즘적-비평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서평사전으로 혐오를 읽고, 이론과 개입을 통해 뜨거운 이야기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1.102017
  • 당신의 완벽한 1년
    샤를로테 루카스 (지은이), 서유리 (옮긴이) | 북펌 | 2017년 1월 "유럽을 녹인 사랑 이야기"

    아내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았고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다. 그러나 대저택과 유명 출판사를 소유한 남자 요나단 그리프는 번거로운 일들을 돈으로 해결하며 오직 평온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데 만족한다. 1월 1일도 언제나처럼 새벽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그는 30년 전 자신을 떠났던 어머니의 서체를 닮은 글씨들이 가득 적힌 새해의 다이어리를 우연히 손에 넣는데…. "당신에게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나단은 그간 피해 왔던 질문을 마주하면서 이 다이어리의 주인을 찾아주고자 한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말해봐요. 죽은 내 남자친구의 다이어리를 왜 당신이 갖고 있는지.”

    이렇게 시작된 만남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는 또한 극단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채 살아온 두 명이 서로의 아픔을 딛고 이해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맨스를 다룬 작품의 전형 같은 구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전의 히트작 <미 비포 유>가 그랬던 것처럼, 보편적인 소재들이 조금씩 위치와 각도를 바꾸면 또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는지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 늘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읽는 이유다. <당신의 완벽한 1년>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소설이다.

  • 만화 로마사 1
    이익선 (지은이),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아직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지금 살아있는 이들이 겪은 제국은 미국, 독일, 일본 등이겠지만, 여전히 제국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로마다. 1000년 제국이라 불리는 로마가 오늘날 문명에 끼친 영향이 워낙 크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위기 앞에서 고민하고 결단하며 겪은 실패와 성공의 역사가 여전히 비슷하게 반복되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오늘에도 여전히 많은 이야기와 시선은 로마로 향하고, 새로운 로마 이야기가 여전히 탄생한다.

    이 책은 로마사 전체를 만화로 그리려는 시도로, 10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대작이다. 총 열 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며, 이번에 나온 1권에서는 로마가 지중해의 강자로 떠오르는 과정을 담았고, 함께 나온 2권에서는 귀족과 평민의 300년 계급 전쟁이 펼쳐진다. 작가 역시 로마의 역사를 하나씩 공부하며 그려나간 작품이라, 로마사를 처음 읽는 이들, 개별 사건은 알고 있으나 전체 흐름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적절하다. 로마사를 읽는 또 하나의 창이 생긴 만큼, 로마사가 더 다양한 빛깔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케빈 켈리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청림출판 | 2017년 1월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30년 후, 지금 우리가 최신 기술이라며 추켜세우는 것들은 십중팔구 종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은커녕 무선전화기도 없었던 30년 전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그 답은 뻔하다. 더욱이 기술의 발전 속도는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가 30년 후의 어떤 '물건'을 예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지금의 관점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고민한다는 것, 이를테면 자율주행차나 드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어떤 흐름에 탑승해야 하는 것일까.

    '와이어드'의 창간자로 유명한 IT 사상가 케빈 켈리는 우리가 미래의 '발명품'을 고민하기에 앞서 숙지해야 할 핵심 내용들을 12가지 동사로 분류하여 소개한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기술 발전이 일으키는 관성, 그리고 그 산물인 디지털 세계에서의 불가피성 때문이다. 제목 인에비터블(inevitable)은 바로 그런 의미다. 우리는 이 강력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피하려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켈리는 거침없이 쇄도하는 기술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이용할 것을 주문한다. 눈을 크게 뜨고 경계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극단적 변화에 대한 우리의 포용력을 한층 끌어올려 줄 것이다.

  •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진중권 (지은이) | 천년의상상 | 2017년 1월 "인간 중심 세상에서 고양이 중심 세상으로"

    고양이는 대단하다. 싸움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 어지간하면 물러서지 않는 진중권도 고양이 루비 앞에서는 일개 집사에 불과하다. 집사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어느새 루비가 전하는 이야기를 인간의 말로 옮겨 적는 경지/지경에 이르렀고, 그렇게 받아 쓴 내용이 바로 이 책이다. 인간의 오해와 과욕으로 괜한 피해와 과도한 관심에 시달리던 고양이가 드디어 제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니, 비로소 인간 중심 세상이 고양이 중심 세상으로 바로잡히는 듯하다.

    물론 인간이 고양이를 선택한 게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을 이끌어왔다는 걸 증명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부족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더욱. 그럼에도 고양이는 부족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고양이와 인간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그림과 문학 작품에 남겨진 흔적을 하나씩 짚어가며 인간을 깨우침의 길로 이끈다. 이제 고양이의 인간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고양이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뭔가 이상하다고? 아니다. 지금까지가 잘못된 것이었다.

1.132017
  • 부자 아빠의 세컨드 찬스
    로버트 기요사키 (지은이), 안진환 (옮긴이) | 민음인 | 2017년 1월 "집은 부채고 저축은 패배다. 왜 그럴까?"

    대출을 끼고 집을 샀는데 집값이 1억이나 올랐다며 좋아하는 사람. 기요사키는 이런 사람을 외면적 부자라 부른다. <크래시 코스>로 유명한 경제학자 크리스 마틴슨이 정의한 부의 3단계 중 3차적 부를 소유한 사람이다. 3차적 부는 종이 재산이다. 시장 가격으로 평가되는 재산을 말한다. 집문서, 주식, 채권 등, 3차적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말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휴지조각이 있다. 바로 돈이다. 우리는 돈 역시 3차적 부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100만분의 1초 당 한 장씩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시대, 화폐가치의 하락은 가진 자들이 현금을 강탈해가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부동산, 주식 등을 통한 재테크도, 저축을 통한 현금 보유도 답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부를 늘릴 수 있을까? 필요하다면 우리는 1, 2차적 부, 즉 자원과 생산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투자보다 중요한 것은 부를 지켜내는 것이다. 기요사키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아, 혹시 로버트 기요사키의 소개가 필요할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던 1997년, 그가 자비로 펴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3년의 입소문 숙성을 거쳐 베스트에 올라 이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언제 적 '부자 아빠'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새 책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아마도 '부자 아빠'가 처음인 독자들에게 책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을 것이다.

  •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미나시타 기류, 우에노 지즈코 (지은이), 조승미 (옮긴이) | 동녘 | 2017년 1월 "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의 행복한 선택으로"

    결혼이 필수이던 시대가 저물고 결혼이 선택인 시대가 왔다. 결혼을 해야만 정상 범주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하루 빨리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의 압력이 더는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남성의 20%, 여성의 10%가 생애 미혼자라 하니 이상하거나 특수한 경우라 보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특수한 시선이라 하겠다. 바야흐로 비혼의 시대가 열린 지금, 아직도 기존의 결혼관으로 하나의 정답만 강요하는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 갈까.

    이 책은 일본의 두 사회학자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혼이 사라져가는 사회의 원인과 구조를 분석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결혼을 두고 벌어지는 개인의 선택’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는지 살펴본다. 재미난 건 비혼이 자리잡으면서 기존의 결혼이 애써 감춰왔던 부조리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인데, 그래서 결혼이 불행하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가 알아서 하도록 신경쓰지 말자는 결론에 이른다.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었으니, 어떤 선택을 하든 신경쓰지 말고 모두의 행복을 바라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애는 누가 낳고 사회는 누가 유지하느냐고? 세상이 바뀌었다는데 왜 아직 귀를 닫고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 토니와 수잔
    오스틴 라이트 (지은이), 박산호 (옮긴이)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소설이 너의 악몽을 읽기 전에"

    대학 시간강사이자 주부인 수잔은 오래 전 이혼한 전남편 에드워드가 보낸 소포를 받았다. 소포에는 소설 원고와 함께 이 소설을 읽고 자신에게 감상을 말해 달라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그들이 부부였던 시절 수잔은 작가 지망생이었던 에드워드에게 가장 냉혹한 비평가였기 때문이다. 어쩐지 내키지 않아 소설 읽기를 미루던 수잔은 결국 작품을 읽기 시작한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을 가진 이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을 향해 굴러 떨어지는 스릴러였다. <토니와 수잔>은 이제 두 개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스와 그 소설을 읽는 수잔의 삶. <토니와 수잔>에서 토니는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이다.

    휴양지로 떠나던 평범한 가족이 범죄와 살인에 얽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설 속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야말로 냉혹한 작품이다. 건조한 서술과 가차없는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압박하는 능력은 (짧게 쓰느라 유머와 낭만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스티븐 킹의 몇몇 단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오스틴 라이트는 스티븐 킹이 주인공을 사랑하듯 토니를 사랑하지 않는다. 토니는 주인공으로서 작가에게서 받게 마련인 일종의 신뢰 또는 애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플래너리 오코너가 그랬듯 비참한 인간을 창조하고 그를 계속 시험에 빠뜨린 채 멀리서 관찰하고만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킹과 오코너의 살벌한 부분들만을 따 와 만든 듯한 무시무시한 소설이다.

    그리고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는 수잔의 삶 역시 숨겨두었던 어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녹터널 애니멀스'가 정신이상자 살인마의 예고장이라거나 수잔이 잠들었던 범죄자의 본성을 발견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 지망생인 전남편이 자신에게 소설을 보낸 이유를 작품 속에서 찾으려던 수잔은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생긴 균열들(대부분 평온한 삶을 위해 덮어두었던 것들)을 다시금 의식하게 된다. 자신의 삶 역시 무언가 잘못되었고 자신은 그것을 믿고 싶지 않다는 사실. '녹터널 애니멀스'의 평범하고도 비열한 주인공과 닮아 있는 자신의 모습. 오스틴 라이트는 '녹터널 애니멀스'에 적용했던 건조하고도 가차없는 시선을 수잔의 평범한 삶에 조금씩 이식하기 시작한다. 악몽의 기운이 전이된다. 그러면 아무런 치명적인 사건 없이도 삶은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 밤이 영원이 될 지 아니면 새벽이 찾아올 지는 모르는 채로.

    소설 읽기에 대한 소설. 소설과 삶의 관계에 대한 소설. 스릴러이면서 창작과 독서에 대한 메타포를 담은 풍부한 이야기. <토니와 수잔>은 정말 멋진 작품이다.

  • 내일을 위한 책 세트 - 전4권
    플란텔 팀 (지은이), 미켈 카살, 호안 네그레스콜로르, 마르타 피나, 루시 구티에레스 (그림), 김정하 (옮긴이), 배성호 (추천) | 풀빛 | 2017년 1월 "모든 사람의 참여와 노력으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어야 한다. 독재자가 국민을 지치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하고 가난하게 만드는 오늘,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은 점차 심해지고 여자와 남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오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오늘이지만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변화는 모든 사람의 참여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쳐 나갈 세상을 완성해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초대장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와 세계에 존재하는 정치, 사회 문제를 가감없이 알리며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냉철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사망 이후인 1977년과 1978년 처음 출간되었던 이 책이 40여 년 만에 복간된 까닭은,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데 동참하도록 하는 이 강력한 글의 힘이 바로 지금,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1.172017
  •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
    설민석, 스토리박스 (지은이), 정현희 (그림), 태건 역사 연구소 (감수) | 아이휴먼 | 2017년 1월 "초등 한국사도 설민석"

    '설민석'이라는 이름 석자만 믿고 읽어도 후회 없는 선택이다. 유머러스하고 열정적인 한국사 강의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설민석 선생님이 처음 펴낸 어린이 역사책. 그간 다양한 방송과 강연을 통해 호응을 얻었던 저자의 개성을 그대로 살렸다. 평강공주와 온달이, 그리고 설쌤이 시간 여행을 떠나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는 인물 중심의 학습만화다. 1권에서는 단군,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를 차례로 만나본다.

    많은 역사책들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지나쳤던, 초등학생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과 용어들을 꼼꼼하게 찾아내 차근차근 풀이해준다. 만화 보는 재미와 역사 공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마지막 장까지 독자를 몰입시키는 탁월한 입담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소력, 자타공인 '국민 역사 강사' 설민석 선생님의 매력에 아이들도 흠뻑 빠지게 될 것 같다.

  • 세계미래보고서 2055
    박영숙, 제롬 글렌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월 "글로벌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술의 최첨단"

    새로운 출판사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되는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의 최신판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유엔 사무총장이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래 전망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방대하고 전문적인 자료를 토대로 선보이는 이 시리즈에 매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전 세계 64개 지부, 3,500여 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워싱턴 소재 글로벌 미래연구 싱크탱크다.

    그나저나 2055년이라니. 점점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해마다 5년씩 늘어나는 시리즈의 설정 때문이다. 2055년의 주요 키워드들을 보고 있자니 그때까지 과연 살아 있기나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유엔이든 세계든 상관 없는 것처럼 이 역시 중요하지 않다. 먼 미래를 향한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시리즈의 기존 독자라면 지난 1년 간 추가된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 다윈의 정원
    장대익 (지은이) | 바다출판사 | 2017년 1월 "다윈 진화론, 비로소 새로운 인간을 만나다"

    인간이 얼마나 변화하는지는 짧은 생에서 감각하기 어렵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시선이 변화한다는 건 수시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그리고 접하는 세계가 빠르게 바뀌며 인간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알파고가 그러하였고, 조금 멀게는 인터넷의 보편화가 그러하였다. 조금 더 길게 그리고 훨씬 더 깊게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아마도 다윈의 진화론에서 혁명적인 변화의 시작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학자 장대익은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다윈의 학문과 그로부터 생겨난 여러 갈래의 생각들, 그로 인해 벌어진 오해와 갈등, 이해와 변혁의 흐름을 좇았고, 그 한쪽 끝에서 ‘진화 인간학’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다윈의 식탁>에서 시작해 <다윈의 서재>, <다윈의 정원>에 이르는 다윈 3부작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새롭게 떠나려는 그리고 떠나야만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스스로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 인간이 어느 만큼 변화했는지, 이를 바탕으로 세계와 자신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가늠해볼 기회, 인간 '나'는 놓칠 수가 없겠다.

  •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지은이), 황진희 (옮긴이) | 거북이북스 | 2016년 12월 "사노 요코, 진짜 살아간다는 것"

    <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사노 요코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를 담은 그림책.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사자가 나타나도 무섭지 않고, 모기가 물어도 가렵지 않다. 빵 냄새가 풍겨도 먹고 싶지 않고, 강아지가 물어도 아프지 않다. 태어나지 않아서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여자아이의 다친 무릎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를 보고는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이는 엉엉 울고, 깔깔깔 웃고, 맛있게 빵을 먹는다.

    <태어난 아이>는 세계가 아름답거나 삶은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배가 고프고, 사자가 나타나면 놀라고, 모기가 물면 가렵고, 개한테 물리면 아파서 엉엉 울고, 엄마가 안아 주면 안심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살아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진짜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삶에서 지켜야 할 태도라고 사노 요코가 이야기한다.

1.202017
  • 풍경소리
    구효서, 이기호, 김중혁, 윤고은, 조해진, 한지수 (지은이) | 문학사상사 | 2017년 1월 "2017 이상문학상, 구효서 대상! "

    달라지고 싶으면 성불사에 가서 풍경소리를 들으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성불사로 향한 미와.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는 그녀에게 죽음을 전하지 않은 채 급작스럽게 떠났다. '왜'를 찾을 수 없어 '왜'가 없는 곳으로 향한 그는 노트와 연필만으로 담백한 기록을 잇는다. 늘 같되 같지 않은 된장국의 맛 같은, 무미건조하고 깊은 하루가 지나고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이 그녀를 맞는다. 물음 없는 물음에 정갈한 연필 글씨로 더듬더듬 답하는 사이, 풍경소리 같은 깨달음이 이미 와 있다.

    '쓰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즉각 존재를 환수당하는', '쓰되, 다른 것이 아는 소설을 써야 하는 것'을 되뇌는 등단 30년차 소설가 구효서가 201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실린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을 읽다보면 오전 아홉 시에 출근, 오후 여섯 시에 퇴근.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삼천리호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을 오가는 소설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깊고 섬세한 소설의 세계가 새삼 반갑다. 김중혁, 이기호, 윤고은, 조해진, 한지수의 소설이 우수상을 수상해 함께 실렸다.

  •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선대인 (지은이), 오종철 (기획) | 다산북스 | 2017년 1월 "알아도 몰라도, 다시 한번!"

    역사 공부 열풍을 경제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제인데 말이다. 너무 우리 생활과 밀접해서 다 아는 얘기라고 치부해 버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각종 그래프와 전문용어가 어려워서일까. 가만 보니 역사에는 설민석이 있는데 경제에는 딱히 없다. 그게 결정적 이유 같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쉬운 경제 안내서를 내세운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누가 그걸 이야기해 주는가를 말하고 있다. 선대인이라면? 이런 책을 쓰기에 그만한 인물도 없다.

    이 책은 현실경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를 표방한다. 최대한 쉽고 친절한 언어로 쓰였고, 선대인 소장의 강의를 가까이서 듣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경제 호구 제로 프로젝트, 경호를 부탁해!'라는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대인 특유의 어법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그저 착하기만 한 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선대인의 '훅'은 살아 있다. 다른 종류의 통쾌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각 장의 워밍업 테스트부터 해보자.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은이)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철학의 적극적 쓸모를 제안하다"

    철학의 쓸모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때도 있었지만, 쓸모없는 일은 존재 이유도 없는 것으로 이해되는 오늘날에는 그런 논쟁조차 벌어지지 않는다. 철학 또한 쓸모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지금, 철학의 적극적 쓸모를 제안하며 철학의 힘을 제대로 써보자고 독려하는 목소리가 들리니, 귀를 기울여 들어봄 직하지 않겠는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철학자 최진석 교수다.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에 천착하여, 개인의 고민과 사회의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꾸준히 전하던 그는, 한국의 현실과 사유가 놓인 역사의 맥락을 짚으며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철학이 시도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철학을 전략적인 높이에서 하는 사고로 이해하면, 시대의 흐름을 힘겹게 좇는 게 아니라 선도력을 갖고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철학의 쓸모가 이르는 결론은 각기 다르더라도, 철학의 적극적 쓸모를 과감하게 제안하는 일은 시도해봄직한 일이라 하겠다.

  •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지은이), 김병화 (옮긴이) | 어크로스 | 2017년 1월 "고독은 아주 특별한 장소"

    고독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고독을 알고자 하는 이는 드물다. 고독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지 머무르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독을 탐구하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그 과정과 결과는 고독이 아름다운 일로, 때로는 필요한 일로 보일 정도로 매혹적이기도 하다. 올리비아 랭이 귀를 기울인 에드워드 호퍼와 앤디 워홀이 그러했고, 고독에 저항하는 그들로부터, 마침내 고독이란 장소에서 펼쳐지는 예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올 외로운 길을 찾아낸 올리비아 랭 자신이 그러하였다.

    고독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장소이지만, 올리비아 랭이 걸었던 것처럼 도시 안에서 더욱 극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주위를 마구 빨아들이면서도 끝없이 위계를 나누며 위로부터 아래를 배제하여 고립시키는 도시의 논리는, 누구도 도시에 충분히 소속시키지 않겠다는, 그리하여 쉽사리 고독 아닌 장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모습이다.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 확인받기보다 고독을 품고 나누려 애쓴다. 고독의 고통을 다른 이와 나누려는 게 아니라 고독의 가능성을 나누며 각자의 조각난 삶을 연결할 새로운 장소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그들에게 그것이 예술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제 각자의 탐사가 필요한 시간이다. 다행히 꼭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방법이 우선일 테니까.

1.242017
  •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지은이), 박래선, 김태훈 (옮긴이), 김상욱 (감수) | 동아시아 | 2017년 1월 "우주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모습, 정보"

    모든 것이 정보로 이루어지고 정보로 여겨지는 오늘날, 정보의 역사를, 정확하게 말하면 정보로 역사 전체를 돌아보는 시도란 얼마나 무모한가. 게다가 정보처럼 흔하게 쓰이면서 막상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도 드문 터라, 이런 시도는 정보의 개념을 정의하는 데서 시작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고 이를 줄기로 역사 전체를 꿰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걱정이 앞서지만, 다행히 이번 시도의 주인공은 <카오스>로 널리 알려진 저술가 제임스 글릭이다. 그는 질서와 혼돈을 오가며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명쾌하게 전한 솜씨를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상대로 이야기는 정보의 정의에서 시작한다. 인지할 수는 있지만 감각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가 비트라는 측정 단위 위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의미의 축은 한둘이 아니다. 에너지량와 물리량뿐 아니라 생명의 조합까지 정보 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나아가 우주까지 아니 결국에는 우주 자체도 정보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데 이른다. 물론 인류가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기 위해 만들거나 사용한 각종 도구와 기술도 빠지지 않는다. 인간과 역사, 기술과 과학을 시공 위에 입체적으로 그려낸 빼어난 저작이자, 인간과 정보가 만들어갈 미래를 무척 기대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책이다.

  • 블록체인 혁명
    돈 탭스콧, 알렉스 탭스콧 (지은이), 박지훈 (옮긴이), 박성준 (감수) | 을유문화사 | 2017년 1월 "인터넷의 미래를 책임질 신뢰의 사슬"

    블록체인이란 온라인 금융 거래 정보를 블록으로 연결하여 중앙 관리 서버가 아닌 참여자들의 개인 디지털 장비에 분산 저장시켜 공동으로 관리하는 수학적 기술을 말한다. 관리 비용이 절감될 뿐만 아니라 해킹이 어렵다는 큰 장점을 지닌다. 클라우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으로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떠올려 보자. 익명성을 노린 암흑 세력들의 접근으로 유명세를 치른 비트코인은 사실 블록체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이제 중앙 서버라는 '판정자' 없이도 개인 간 신뢰만으로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다. 대규모 협업으로 거래의 진실성이 보장된다. 블록체인이 신뢰 프로토콜(Trust Protocol)로 불리는 이유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극도로 높은 수준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혁신 기술은 제도와 산업을 더욱 탈중심화할 것이다." IT 사상가 케빈 켈리는 최근작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탈중심화(Decentralization)라는 하나의 추세로 설명한다. 켈리의 말을 잇는다. "많은 신생 기업과 벤처투자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화폐만이 아니라 범용 신뢰 확보 수단으로 쓸 방법을 꿈꾸고 있다." 이처럼 돈의 탈중심화로부터 시작된 블록체인 혁명은 빠른 속도로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특히 중개인에게 의존하는 많은 산업에 변화가 예상된다. 블록체인에 관한 최신의 담론들을 집대성한 이 책은 블록체인이 금융계와 IT 비즈니스를 넘어 정치와 문화산업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기술임을 증명해 보인다.

  • 안목
    유홍준 (지은이) | 눌와 | 2017년 1월 "안목이 없으면 작품도 시대도 없다"

    안목,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아마도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이윤과 효율로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에 밀려 그 의미가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안목은 시대와 비껴나갈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물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작품이 세월에 묻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아차린 안목이란 얼마나 한탄스러운가 말이다. 더욱이 이러한 안목이란 하나의 작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때로는 시대를 이끌고 때로는 시대를 바꾸며 진면목을 드러내니, 과거를 깊게 들여다보고 당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며 미래를 길게 내다보는 안목이 더욱 귀한 오늘이다.

    유홍준이 ‘답사기’에 이어 쓴 ‘미를 보는 눈’ 시리즈의 종착지도 ‘안목’이다. 답사기가 두 발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그곳’을 둘러싼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주었다면, 미를 보는 눈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언제고 우리를 기다리는 ‘작품’과 깊게 사귀는 방법을 알려준다. <국보순례>와 <명작순례>에서 각각의 작품에 머물던 시선은 이제 그 작품을 알아본 당대의 안목으로 옮겨가는데, 작품론뿐 아니라 애호가, 회고전, 평론 등 작품을 모으고 나누고 생각하는 다양한 안목을 맛볼 수 있다. 당대의 안목을 기르고 퍼뜨리는 데에 함께하자는 '오늘의 안목' 유홍준의 초대가 솔깃하다.

  • 드래곤플라이
    가와이 간지 (지은이), 권일영 (옮긴이)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일본 미스터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잠자리의 낙원으로 불리우는 작은 시골 마을. 그러나 이 마을에는 끝내 미결로 남은 살인 사건이 있다. 피살당한 부부의 딸 이즈미는 선천적인 장님으로, 동네의 단짝친구 유스케, 겐과 함께 끔찍한 사건을 뒤로 하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강변에서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된다. 피살자는 유스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즈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죽은 유스케였다.

    전작 <데드맨>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호평받은 가와이 간지의 신작 <드래곤플라이>는 이번에도 '죽은 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가와이 간지는 오컬트 호러 작가는 아니다.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이 기묘한 범죄 트릭에 도전하는 가부라기 형사 팀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조금씩 진상에 접근한다. 각기 전문 분야가 다른 이들은 캐릭터도 서로 달라서 이들의 토론과 추론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범죄를 중심으로 얽힌 인간 군상들의 사연들도 적절히 잘 배치돼 있다.

    대단히 특별한 개성이나 극한까지 밀어붙인 설정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 탄생할 수 있다. 트릭이 존재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일종의 경찰 소설이기도 한 <드래곤플라이>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이 아직도 일본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다.

1.312017
  • 기린의 날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재인 | 2017년 2월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적인 추리소설"

    칼에 가슴을 찔려 사망한 중년 남자. 두 시간 뒤에 한 청년이 불심 검문을 피하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이 된다. 청년의 소지품에서 칼에 찔린 피해자의 소지품이 발견되고, 경찰은 청년이 피해자의 회사에서 계약직 현장 근로자로 일하다 사고로 다친 후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한 채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론은 산재 은폐 기업을 성토하고, 기업은 책임을 어디로든 떠넘기려 애쓴다. 그런데 금방 새로운 문제가 발견된다. 범행 흉기에서 정작 용의자의 지문을 찾지 못한 경찰은 이번에는 용의자의 범행 당시 알리바이를 찾아낸 것이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가가 교이치로 형사는 피해자가 생전에 특이한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아낸다. 지역의 신사를 돌아다니며 자기 손으로 직접 접은 종이학을 바치고 계속적으로 속죄의 기도를 올렸던 남자. 가가 형사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의 진상에 접근한다.

    특유의 인간미를 품은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기린의 날개>는 그 중에서도 사연의 분량이 더 높은 편이다. 범죄 트릭은 주역이라기보다는 보조적인 역할에 가깝다. 살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슬픈 이야기와 함께 부조리한 세상의 압력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성'의 힘 같은 드라마적 요소들이 전면에 나선다.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는 점점 스토리텔링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특별히 미스터리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마치 티비 드라마를 보듯이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 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임경선이 들려주는 일과 사랑, 삶의 태도"

    십이 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이제 십삼 년째 전업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임경선. 그동안 다수의 작품을 성실하게 펴내온 그가 한 권의 에세이로 다시 독자들 앞에 섰다. <태도에 관하여> 출간 후 2년 만이다. <엄마와 연애할 때> <태도에 관하여> <나라는 여자> 등 여러 에세이를 통해,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작가로, 여성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작가 생활에 조금 더 무게를 실은 이번 책에서는 일과 사랑,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에 관한 에세이를 만나볼 수 있다.

    2013년 가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첫 장편소설 <기억해줘>를 썼던 시간들, 독립출판물 <임경선의 도쿄>를 펴내는 과정들, 에세이 쓰는 법, 독자와의 만남 등 독자가 쉽게 알 수 없는 작가 고유의 영역 이야기, 그리고 줌파 라히리, 무라카미 하루키, 연애소설 쓰는 작가들에 관한 솔직한 생각들을 단정한 문체로 펼쳐 보인다.

  • 제4의 물결이 온다
    최윤식, 최현식 (지은이) | 지식노마드 | 2017년 2월 "2030 시리즈 완결판"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 미래학자 최윤식, 최현식의 신작이자 2030 미래 예측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지능혁명과 개인자본주의가 바꿔놓을 미래, 한국과 아시아의 금융위기 예측 시나리오 및 대응전략 제안, 트럼프노믹스와 2차 미중 패권전쟁, 위기를 기회로 바꿀 블랙 스완 투자 시나리오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트럼프의 당선이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앞당긴다는 예측은 의미심장하다. 2016년에 브렉시트로 인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6개월~1년 정도 늦춰지면서 번 황금 같은 시간마저 부채를 더욱 키우고 부동산을 부양하는 등 위기 요인을 더 키우면서 덧없이 흘려보낸 우리 경제다. 이제 ‘위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까’에 확실하게 집중해야 할 때이다.

  • 각방 예찬
    장클로드 카우프만 (지은이), 이정은 (옮긴이) | 행성B(행성비) | 2017년 1월 "관계와 사랑을 지키는 방법, 각방?"

    <각방 예찬>이란 제목을 보고 그간 답답하던 마음이 후련해지는 이도 있을 테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말이냐며 따지고 싶은 이도 있을 터, 예찬이라고는 했지만 불편함 없이 잘 지내는 부부의 침실을 무작정 갈라놓자는 제안은 아니니 우려는 잠시 접어두자. 불편함이 있어도 내밀한 이야기라 쉽게 꺼내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불편함이 당연함으로 바뀌어 이제는 바로잡고 싶어도 바로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이들에게, 이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유쾌한 제안을 전하는 책으로 가볍게 생각하면 되겠다.

    사랑이 시작되는 즈음에는 침대에서의 거리감은 무의미하다. 물리적 거리가 0에 가까울 정도로 서로 떨어지지 못해 안달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 이불 속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사랑에 가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어느덧 그 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진 건지, 그 사람이 싫어져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게 된 건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럴 때 각방을 써보면 원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같은 침대에서 살려고 함께 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래도 침대보다는 사랑이 중요할 테니까.(나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라 책임은 질 수 없다는 걸 미리, 아니 이제야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