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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는 강중식의 아들 강민서를 보고 있다. 소아림프종 진단을 받았던 강민서는 암이 재발해 보살핌이 필요해 잠시 강윤희의 집에 왔다. 강윤희의 삼촌인 강중식의 아들인 강민서와 강윤희의 딸 백아영의 촌수는 오촌. 백아영은 강민서와 살갑게 지내며 정을 쌓는다. 강윤희가 강민서를 위해 차린 음식에 대한 묘사는 두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서술된다. 손질한 무, 겨울 미역, 피꼬막, 알배기 배추, 꽈리고추, 불린 귀리. 강민서는 강윤희가 요리한 것들을 "꽈리고추를 꼭지까지 말끔히 비틀어 먹고, 배추굴전을 한입씩 아삭아삭 씹어 먹고, 피꼬막을 껍데기에 고인 양념 한 방울까지 알뜰히 훑어"(99쪽) 먹는다. 강윤희와 강민서의 입맛은 놀랍도록 같다. 그것은 그들이 친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같음'은 곧 끔찍한 진실과 함께 충격이 되어 다가온다. 강윤희는 자신의 삼촌, 강중식이 가해자인 친족 성폭력의 생존자였던 것. 표제작 <눈으로 만든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조숙증을 앓는 딸 백아영의 신체에 왜 강윤희가 '과민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최은미는 신경증 같은 고통을 그저 세밀하게 '보여줄' 뿐이다.
관계 속에 놓인 여성들이 있다. 팬데믹 이후 사회에서 고립된 유자녀 기혼 여성들. 과거의 폭력 이후 생존자로 세상에 놓인 여성들. "강윤희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한가운데서 혼자서만 노를 젓고 혼자서만 책임지며 혼자서만 비난받는 것 같았다." (115쪽) (<눈으로 만든 사람>), "유정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259쪽) (<내게 내가 나일 그때>) 내가 나와 유리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최은미의 이 감각적인 문장들이 묘사하는 고통의 세계를 아는 독자라면, 그의 소설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은미가 묘사하는 소설 <보내는 이>의 태풍의 밤처럼, 어떤 소설은 우리를 뒤흔들고, 그 소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 소설가 황정은은 최은미가 묘사하는 이 여자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를 만나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고 말하는 독자 황정은의 떨림을, 최은미의 애독자인 나는 안다. 당신을 알고 있다고, 그 '찢어지는 여자들의 얼굴'을 안다고, 최은미라는 소설가의 눈부신 분기점을 보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