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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영어 공부가 늘 지루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은 꽤나 즐거웠다. 그렇지만 학생 때의 영어 공부는 총체적인 세계를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다음 단계가 깜깜한 채로 눈앞의 과업만을 달성해가면서 정체 모를 어떤 것을 완성해나가는 기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의아한 마음을 뒤로 미루고 맥락 없는 단어들과 1형식부터 5형식까지의 수학 공식 같은 문장들을 무작정 외웠던 기억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내가 배운 영어는 뭐랄까, 비유하자면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를 따로따로 만든 다음 한데 모아 엮은 어색한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의 꼴은 애매했고 현실의 대화에서 대체로 삐거덕댔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이 책에서 인지언어학에 대해 설명한다. 무작정 언어를 외워서 익히는 학습이 아닌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사고 구조와 언어가 엮인 방식을 파악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학습이다. 접근해 본 적 없는 방식이라 학생의 입장으로 비교해 볼 순 없지만, 영어권 사회가 사고하는 방식을 먼저 파악하고 단어와 문법을 매칭하는 학습이라면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사람의 꼴을 먼저 익힌 후에 그에 맞는 팔다리와 머리, 몸통을 만들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형상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김성우는 이를 두고 언어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어의 마음이라니. 영어에 상처받은 마음밖에 모르던 우리에겐 조금 낯선 개념이고, 그래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진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와 언어가 맺는 관계를 파악한다는 관점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다. 각 장이 설명하는 개념들은 내가 공부해온 것들을 톺아보며 생긴 의문으로 건설적인 학습법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영어의 세계를 조금 더 총체적으로 인지하고 싶은 독자, 영어 교육의 더 발전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교육자에게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