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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처럼 의젓한 말투로, 호젓한 밤 문답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사슴벌레식 문답>에 등장하는 네 친구는 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매사에 회피하는 편이던 나(는 필연적으로 알코올 의존증을 얻었다.)와 시원시원한 리더 부영, 상냥하고 고지식한 정원과 인내심이 강하고 자신의 벽이 있던 경애. 이 서로 다른 친구들은 꼭 한번 강촌으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난 일이 있다. 긴 시간이 흘렀고 이들은 필연적으로 '어떻게든 이렇게' 됐다. "정원의 이십 주기 추모 모임 단체 대화방에 나는 부영과 경애를 초청했다"가 이 소설의 첫 문장. 정원은 죽었고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권여선의 소설을 읽노라면 알 수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더듬더듬 삶의 다른 계절로 나아가봤자 그곳은 '모르는 영역'(2020년 출간된 그의 전작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의 수록작 제목이기도 하다.)이다.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40쪽)는 매서운 문장을 앞에 두고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77쪽) 앙앙거려도 삶은 내게 다른 것을 주지 않는다. 왜 그가 이 세상을 버렸는지, 선한 그 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왜 우리 부모는 이혼했는지, 내 친구가 무슨 이유로 나를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각각의 계절에 걸맞은 각각의 새로운 힘을 더듬더듬 손에 쥐고, 모르면서 그저 산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가 않구나 우리는......" (114쪽) 삶의 말미에 이 정도라도 알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탄식하며.
사슴벌레 문답을 나누던, 한때 친구일 수 있었던 네 여성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36쪽) 끄덕이며 각각의 그 계절을 또 견딜 것이다.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지독한 문장들.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고(241쪽) 이 삶에 가장 알맞은 소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권여선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