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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탄생의 빠질 수 없는 조건으로 역경이 있다. 저자 D는 그 자신이 당한 피해로부터 생존자가 된 이후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함께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현실의 영웅에게 사이다 서사는 거의 없다. 그가 연대한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정 싸움은 대부분 굽이굽이 숨 막히는 고난이다.
피해자로서, 연대자로서 깊숙이 들여다본 법정의 풍경은 상식과 거리가 먼 지점이 많다. 피해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재판 과정, 국민감정과 달리 움직이는 감형 기준, 피해자의 보호와 회복에는 관심이 없는 시스템과 무신경한 검사, 경찰, 변호사 들. 그리고 팩트보다 자극을 좇는 언론까지 합쳐지면 피해자는 기존의 피해에 더해 이 모든 추가적 부담을 오롯이 짊어지고 울며 나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D가 연대한 사례들에 얽힌 모순적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법정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우리가 함께 어느 지점을 비판하여 바꾸어나가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이 피 튀기는 기록의 출간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이 치열하고 치밀한 기록으로부터 거대한 변화가 끌려 나와야 한다.
한 명의 개인이 해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힘든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걱정했고 동시에 감탄했다. 그러나 D를 비롯한 누구도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영웅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영웅의 대동 없이도, 평범한 개인이 혼자 상식적인 사법 체계에 의지하여 회복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