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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말이 너무 무겁고 답답하여 교양이란 말 속에 들어간 지 오래인데, 오히려 <세상을 알라>며 철학의 역사를 새로 쓰는 시도가 꽤 용감해 보인다. 주인공은 독일의 철학 교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로, 독일에서만 철학 책을 수십 만부씩 팔아치우며, 공영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철학 방송까지 진행하는 독일 지성계의 슈퍼스타다. 그는 자신의 철학사를 ‘철학하는 철학사’라 표현하는데, 고대와 중세 철학, 르네상스부터 독일 관념론까지, 현대 철학으로 이어지는 세 권의 구성을 보면 기존의 철학사와 무엇이 다른지 눈에 띄지 않는다. <세상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이 되어라>는 각 권의 제목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사를 새롭게 그려냈을까.
그는 역사 속의 철학자들이 자신들이 후대에 어떤 학파나 사조로 분류될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세계 전체와 씨름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애초 그들의 관심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인 문제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는 말이다. 재미난 건 "그때그때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고 있지만 항상 동일한 거대 물음들"이 연속극처럼 펼쳐진다는 점인데, 그래서 그의 '철학하는 철학사'를 읽다 보면, 시대에 따라 같으면서 다른 장면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아마도 이 차이가 '철학하는'이고 이 반복이 '철학사'가 아닐까 싶다. 결론을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연속극처럼, 매번 같지만 매번 다른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철학사가 등장했으니, 부디 본방 사수하시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