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생.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형 데이빗과 함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소년 시절 스티븐 킹의 어머니는 킹이 소설 한 편을 완성시킬 때마다 25센트 동전을 주었는데, 이는 그가 미국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던 스티븐 킹은 HUGH LOFTING의 'DR.DOOLITTLE'을 읽은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RICHARD MATHESON의 'I AM LEGEND'는 그런 그에게 호러 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십대 초반에 썼던 첫 소설이 앨라배마 지방의 공포잡지에 실린 것에 고무되어 스티븐은 이후 꾸준히 여러 잡지사와 출판사에 소설을 투고했다. 출판사들로부터 날아오는 거절 쪽지들을 꽂아놓는 전용 못을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바꿔야 할만큼 숱한 거절을 당하고서도 그는 글쓰기를 버리지 못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스티븐 킹은 첫 장편 <캐리>의 성공과 함께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원래 쓰레기통에 처박혔던 원고를 아내인 태비사가 설득하여 고쳐 쓴 이 작품으로 킹은 작가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이후 30여 년간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킹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을 만큼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최근에는 그의 문학성을 새롭게 평가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2003년 킹은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 도서상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름 자체가 형용사가 된 작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도도 없는 인간 의식의 뒷면을 성실하게 탐구한 소설가가 있다. 사춘기 소녀의 좌절당한 정념이 일으킨 참사(『캐리』)에서 팬이 아이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방식의 사랑(『미저리』)까지,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골초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금연 성공담(「금연 주식회사」)에서 폐쇄된 마을에 갇힌 사람들이 문명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1600쪽짜리 대하 잔혹극(『언더 더 돔』)까지, 그 작가의 손끝은 때로는 현미경이 되고 때로는 망원경이 되어, 우리가 시야 저 멀리 흐릿하게 보고 지나가며 이름 붙이기를 주저한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름을 부여한다. 언론 기사에서는 ‘공포의 제왕(King)’으로, 애독자들한테서는 사랑이 담긴 별명인 ‘왕(King) 선생님’으로 불리는 그 작가의 이름은 바로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서운 소설만 쓰는 작가 같지만 ‘장편을 쓰고 남는 시간에 소일거리 삼아 쓴’ 잔잔하고 애틋한 여러 중편 및 단편이 영화로 만들어져 대히트하는 바람에, 제아무리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을 듣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성장 드라마(『스탠 바이 미』)에서 로맨스(『11/22/63』)까지, 휴먼 드라마(「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미스터리(『미스터 메르세데스』)까지, 장르라는 이름의 벽에 갇히는 대신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 벽을 부수고 넓혀가는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이다. 장르의 규칙은 그에게 단지 형식일 뿐, 평범한 인물과 특별한 상황에 살짝 비틀린 시선을 섞어서 일으키는 핵 연쇄 반응이야말로 그가 쓰는 이야기의 본질이다. 이를 테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두 남녀가 타이어를 보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사소한 광경조차도 일단 그의 눈에 포착되면 피가 서늘하게 식는 복수극(「빅 드라이버」)으로 다시 태어나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면,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기묘한 사건 소식을 접할 때 무심코 이렇게 중얼거린다.
“스티븐 킹 소설 같네.”
“독자이자 작가로서 나는 비범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인물들에게 훨씬 더 흥미를 느낀다. 나는 내 책을 읽는 이들한테서 감정적인, 아예 본능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싶다.”(『별도 없는 한밤에』 닫는 글에서)
스티븐 킹 소설의 특징 하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슈퍼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점이다. 가끔 『샤이닝』과 『닥터 슬립』의 대니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힘을 가진 덕분에 무슨 득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삶이 망가지기 일쑤다. 특히 가족과 여성, 아이를 지키려고 앞장서는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을 한 영웅은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언뜻 떠오르는 예가 없을 정도다.(『애완동물 공동묘지』와 『셀』의 아버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식을 ㅇㅇ으로 바꿔버린다는 점에서 논외일 것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의 주인공 롤랜드 역시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들이 될 수도 있었던 어린 동행인을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게 내버려 두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여기에는 킹이 두 살 때 ‘담배 사러 갔다온다며 집을 나간 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유혹하는 글쓰기』)’의 존재가 큰 몫을 했으리라 추정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에는 아이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 도시의 핏빛 역사를 다룬 대하 공포소설 『그것』의 주인공은 왕따에 시달리는 아이들이고, 영화로 더 잘 알려진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주인공은 가정 폭력에 고통받던 주부,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제목 그대로 야구를 사랑한 덕분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아홉 살 소녀가 주인공이다.
물론 여성과 아이들조차도 일단 킹의 소설에 이름을 올리면 그의 전매특허인 ‘끝나기 직전까지 주인공 죽도록 괴롭히기’를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아 결말을 맞는 방법은 단 하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스티븐 킹은 자기가 만든 소설 속 인물들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가?’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고결함이란 성공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깃드는 것이며…… 우리가 그 노력을 다하지 않을 때, 또는 그러한 도전으로부터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 바로 그때 우리 앞에 지옥문이 열린다.” (『별도 없는 한밤에』 닫는글에서)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에서 스티븐 킹은 이렇게 썼다. “젊은 시절, 내 머릿속은 누가 ‘불이야!’를 외쳐서 관객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달려가는 극장 같았다. 글을 쓸 아이디어는 너무나 많은데 손가락은 열 개, 타자기는 한 대뿐이라서 머릿속에 웅성대는 목소리들 때문에 정말로 미치는 줄 알았다.” 실제로 40편이 넘는 장편과 200편에 가까운 단편을 쓴 스티븐 킹은 지금도 왕성한 생산력으로 유명한 다작의 아이콘이다.(이는 그의 최신작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빨리 쓰고 많이 쓰면 읽을 책도 많이 생기므로 즐거워해야겠지만, 솔직히 이제 연세도 있으니 좀 쉬엄쉬엄 써줬으면 한다. 잔뜩 쌓인 책 더미 앞에서 뭐부터 읽을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조금 기다려도 좋으니 한 권 또 한 권 오래도록 읽어나가고 싶은 것이 애독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신작을 기다렸다가 읽는 즐거움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누리고 싶다.
어떤 어둠은 빛보다 더 찬란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북아메리카의 어떤 나라에서는 '롱 워크'라는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100명의 청소년을 뽑아 한 명의 최종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되는, 전국에 중계되는 서바이벌 애국 엔터테인먼트다. 룰은 간단하다.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도로 위를 계속 걷는 것이다. 먹을 때도, 용변을 볼 때도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잠도 (가능하다면) 걸으면서 자야 한다. 만약 무슨 사유로건 시속 6.5킬로미터로 정해진 최저 제한 속도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경고를 받으며, 경고가 3회 누적되면 뒤따르는 군인들로부터 즉시 총살당한다. 우승자는 남은 평생을 보장받을 부와 영광을 누릴 것이다. 확률은 1/100이다. 애써 서로를 죽이거나 감시할 필요도 없다. 잘 걷기만 하면 된다. 자기 할 일만 잘 하면 된다.
어딘가 익숙한 설정이다. <헝거 게임>처럼 최근 몇년 새 유행하는 '청소년들의 서바이벌 경쟁' 스토리다. 그러나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을 집필했던 시기는 1966년이며, 발표한 시기는 1979년이다. 시대를 한참 앞선 원조다. 그러나 <롱 워크>는 오래된 영광에 머물지 않는다. <롱 워크>는 자신을 뒤따른 작품들이 아직도 쫓아오지 못한 경지에 이미 올라 있다. 독자들은 단지 도로 위를 걸을 뿐인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묘사만으로도 작품이 서서히 광기에 물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롱 워크>는 반란과 혁명 같은 외부 요소의 개입이나 액션이나 로맨스 같은 장치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간단한 대화나 몸짓에 담긴 에너지만으로 서스펜스를 담아낸다. 오직 인물들의 심리에 기인한 심리 서스펜스. 이는 순도가 매우 높은 서스펜스를 정제해내는 기술로, 수준 높은 누아르나 스릴러들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하기는 애초에 그런 기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단지 100명의 소년들이 절망 속에서 걸어가는 것뿐인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완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런 소설을 만19세의 소설가 지망생이 썼다고 하면... 솔직히 믿기 힘들었을 것 같다. 또는 책을 파는 자들이 돈에 눈이 멀었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새파란 소설가 지망생의 이름은 스티븐 킹이(었)다. 그렇다. 정말로, 때로는 천재가 태어나고야 만다.
by 최원호 (알라딘 소설 MD)
'외롭고 쓸쓸하고 정말적이지만, 이겨낼 수 있어!' 영화 「마션」의 대사가 아니다. 아마존 정글에 버금가는 어마무시한 숲에서 길을 잃고 홀로 몇날 며칠 밤을 지새운 아홉 살 소녀에게 바치는 편집자의 응원이다. 스티븐 킹의 국내 번역 출간본 중 가장 얇은 두께인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 한 소녀의 처절한 생존기이다. '내일 아침에는 죽어 있을 거야. 죽지 않더라도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었으면 할 거야.' 라고 되뇌는 소설 속 아이에게 "힘내라, 힘내!" 육성으로 응원을 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선 「마션」의 결말을 뛰어넘는 감격에 눈물을 교정지에 뚝뚝 흘려버린,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 괴롭히기 성애자 스티븐 킹 옹의 본격 딸바보 편집자 애먹이기 소설이다.
이 작품엔 유령도 악마도 끔찍하고 고어한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절망에 빠진 외로운 한 소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 작가의 시선에서 『미저리』보다 섬뜩하고 『스탠드』보다 절망적이며 『롱 워크』보다 고통스럽지만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의 결말보다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by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장)
루이스 크리드 일가족이 새로 이사한 집 근처에는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있었다. 늙거나 어린 채로 죽은 애완동물들을 묻힌 소중한 기억의 장소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어린 딸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 처치가 기이한 죽음을 맞고, 루이스는 쓰레기봉투에 그 사체를 넣고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었다. 그리고……처치가 살아 돌아왔다. 콧등에 피가 말라붙고, 수염에 쓰레기봉투 비닐 조각을 붙인 채로.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진 고양이 처치를 보면서 루이스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을 때 간절히 시간을 돌리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것을 살려낼 수 있는 힘을 알았을 때, 신과 같은 그 능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어떤 일은, 특히 죽음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살아있으나 죽어 있는 존재는 우리의 사랑을 가장 끔찍한 이기심으로 바꿔버린다. 간절한 소망과 애도의 감정이 ‘차라리 죽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의 저주로 바뀌는 순간, 가족애의 허상이 “나 엄마 주려고 뭘 가지고 왔어요!”라는 외침과 함께 산산조각나는 순간, 당신은 차라리 축축한 흙 밑에서 영원토록 눈을 감고 누워있길 바라게 될 것이다. by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