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에게> 이후 5년 만에, 데뷔 30주년을 맞아 김소연이 시집을 펴냈다. 'i 몰래 i 없는 시를 쓰러 갔다'(<머리말> 부분) 감각한 지금은 밤이다. 이 밤은 어떤 밤인가. '나를 숨겨주는 밤 더 많은 나를 더 깊이 은닉해주는 밤...' (<푸른얼음> 부분)
징검다리처럼 놓인 이미지를 건넌다. 다음 이미지를 지나면 다가오는 다음 밤. '미쳐 날뛰는 바람이 커튼을 밀어내고 / 펼쳐둔 책을 휘뜩휘뜩 넘기고'(<촉진하는 밤> 부분) 이 막막하고, 위태로운 밤을 지나는 김소연의 시엔 이런 사람, 나, i가 있다. '언제나 잠이 오지 않던 사람'(<이 느린 물> 부분),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 내가 생각이 되어간다.'(<2층 관객 라운지> 부분)고 말하거나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는지를 더 이상 모르므로'(<2층 관객 라운지 같은 일인칭시점> 부분) 두리번대는 사람...
내가 이 세계의 버그인가? 한번쯤 고민해봤을, 도무지 이 세계가 익숙해지지 않는 i들과 김소연의 아름답고 강인한 시를 소리내어 읽고 싶다. 험난한 맵을 가로질러 푸른밤을 건너는 이들은 '시스템은 버그를 잡기 위해 사냥꾼을 투입할 것입니다.'(<디버깅> 부분) 라는, 도래할 밤의 경고음을 듣는다. 좀처럼 웃지 않는, 어깃장을 놓는, 부릅뜬, '나'와 '나'가 나누는 우정. 그 우정 같은 김소연의 시로 도래할 밤을 직면하고 싶다.
- 시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일괄 소등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것이 검정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밤 모서리로 밀려나는 밤 가속이 붙는 밤 귀한 것들을 벼랑 끝에 세워둔 것처럼 기묘하고 능청스러운 밤 벨벳 같은 부드러움을 한껏 가장하는 밤 단 한 순간도 고요가 없는 지독히도 와글대는 밤 무성해지는 밤 범람해지는 밤 꿈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기 푸른얼음처럼 지면서 버티기 열의를 다해 잘 버티기 어둠의 엄호를 굳게 믿기 온갖 주의 사항들이 범람하는 밤에게 굴하지 않기
매일 아침 맨해튼으로 향하는 6시 20분 기차에 헐레벌떡 올라타며 고단한 출근길에 나서는 트래비스 디바인. 월 스트리트의 말단 애널리스트로 투자회사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며 매일 종합격투기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르고 있다. 업계에서 경쟁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는 패배라는 운명이 예정되어 있음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삶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최악의 형벌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한때 미국 육군 특수부대의 유능한 장교이자 촉망받는 정예요원으로서 빛나는 미래만이 펼쳐져 있던 디바인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제대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된 것은 뜻밖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자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부류의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날아온 발신자 불명의 이메일 한 통이 그를 혼돈으로 몰고 간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메일에 이어 그에게 군 시절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는 이가 나타나며, 디바인은 세상에 숨기고 있던 압도적인 체력과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업계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와 진실을 추적해나가기로 한다. 스릴러 거장 데이비드 발다치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 이어 선보이는 강렬한 신작.
- 소설 MD 권벼리
이 책의 첫 문장
트래비스 디바인은 얕은 숨을 들이마셨다.
추천의 글
“독자로 하여금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복잡하고 강력한 스릴러. 그야말로 장인의 솜씨다.” - 커커스 리뷰
“흥미로운 서사, 계속되는 반전……. 읽는 내내 뒤 내용을 추측하게 한다.” - 북리스트 (미국도서관협회)
“기업의 음모, 부패, 살인 등 매혹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진정한 거장의 야심작. 이 장르에 대한 작가의 경험은 이야기를 꼬고 복잡한 층위를 쌓을 때 찬란히 빛을 발한다.” - 리더스 다이제스트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가 첫 에세이로 선보이는 이번 책은 진정한 애주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34편의 도수 높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스키, 소주, 사케, 막걸리 각종 술과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고, 구례, 몽골, 오사카, 키르기스스탄, 블라디보스토크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술이 있는 곳엔 반드시 사람이, 사람이 있는 곳엔 늘 술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사연이 있다.
실패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신 맥켈란 1926, 가난과 슬픔과 좌절로 점철된 지난 시간과 작별하며 마신 시바스리갈, 청춘의 어느 밤, 친구의 오두막에서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밤’연주를 들으며 마신 매실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은사님과 나눈 보드카, 어린 시절 큰아버지가 만들어준 소주를 넣은 계란밥. 작가는 술과 함께, 사람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술 이야기이자, 마음의 도수를 올리는 사람 이야기, 그리고, 정지아 작가의 내밀한 삶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술처럼, 서서히,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든다.
- 에세이 MD 송진경
이 책의 한 문장
나는 입안에 든 시바스리갈, 그러니까 위스키 한 모금을 오래도록 머금었다가 천천히 삼켰다. 그날 처음으로 30년간 나의 일부였던 식도와 위의 위치와 모양을 구체적으로 체감했다. 위스키가 훑고 간 자리마다 짜릿한 쾌감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것이 나와 시바스의 첫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날의 시바스리갈은 가난과 슬픔과 좌절로 점철된 나의 지난 시간과의, 작별이었다. 짜릿하고 달콤했던 건 위스키의 맛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던 지난날과의 작별의 맛이었을지 모른다. 그날로부터 나의 변절과 타락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날이지 아니한가!
의대 교수 부모, 화목한 가정, 성적에 대한 강한 압박도 없는 집안에서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둘째 딸이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 날이었다. 딸은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타인의 질병 진단은 마치 그 삶의 서사가 파악된 듯 착각하게 한다. 알게 된 것은 이름밖에 없음에도 우리는 그 병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딸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7년째 딸의 병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기록이다. 자해, 발작, 의지, 무기력, 회복, 악화... 짧은 병명이 결코 설명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구체성이 낱낱이 담겼다.
고통은 또한 엄마를 공부하게 했다. 내과 의사인 저자는 정신의학을 파고들었다. 정신질환에 관한 책, 예술가의 이야기, 뇌의 작동 방식, 자해의 이해, 약에 관한 정보, 정신 의학이 지나온 역사 등 딸의 병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딸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그 내용들을 썼다.
꺼내기 힘들었을 얘기를 숨김없이 담담하게 써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의학 전문가이자 환자의 가족으로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저자의 용기가 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그러나 원래 인생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는 패보다는 지는 패를 잡을 일이 훨씬 더 많다. 누군가가 항상 이기는 패만 잡는 것처럼 자랑을 일삼는 것을 보면 인생을 반도 모르는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웃어도 된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