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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지구에서 가장 큰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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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이라는 지도 위에 찍힌 좌표"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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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소설에서 우리는 대체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발견한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고 말했던 <새의 선물> 속 진희처럼,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속 현주는 뉴욕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을 때 "질문을 던져 정면 돌파를 하기보다는 혼자의 짐작으로 그럭저럭 문제를 풀어나가는"(149쪽) 것을 택한다. 나를 들여다보는 나. 우리는 때론 은희경의 인물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을 '왜곡'하고, 상황을 냉소하며 나 자신을 투과하는 눈. 스스로가 '독선적 진지함'(작가의 말)이라고 말하는 은희경적인 사람들의 일면이 여행을 만난다면.

은희경의 뉴욕-여행자 4부작. 오랜 친구의 뉴욕 집에서 짧게 머물기로 한 '승아'에게 친구의 집은 상상보다 남루하고, 오랜 우정은 생각보다 얄팍하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에서 어학수업을 듣는 마흔여섯의 내겐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보다 인종도, 언어도, 성별도 다른 '마마두'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연극을 쓰기 위해 짧은 뉴욕 생활중인 현주는 영어에 적극적이지 않은 자신에게 점차 흥미를 잃는 '로언'의 무관심을 느끼고,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오십대의 소설가인 '나'는 뉴욕에서 열릴 문학 행사에 동행한 팔십대의 어머니에게서 그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아연해진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타인의 색다름을 발견하고, 실망스러운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의 경험. 하지만 기꺼이 이 왜곡을 받아들이는 이들, 그들에게 있어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135쪽) 매 여행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음을 기억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떠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은희경이라는 지도 위에, 가장 정확한 내가 좌표처럼 놓여있는 것을 알기에.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내 입에서 문득 어머니가 하듯이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춤춰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 나는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현재에 살아야지. 지금 나에게는 누군가 다시 와보고 싶은 장소가 생겼어.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계속해서 새 친구를 사귀겠지.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놀면서. 눈이 더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눈발을 뚫고 어머니 쪽으로 걸어갔다. 미친듯이 퍼붓는 눈의 율동 때문에 온 세상이 들썩거리는 것 같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흔들려 마치 정말로 춤을 추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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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
네이선 로빈슨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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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라는 단어에서 기회가 연상되던 시대는 슬쩍 저물어버렸다. 노동하는 빈자는 점점 가난해지고 돈이 대신 일하게 하는 자본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축적하는 시대. 사람이 소외된 자본주의의 구조가 구석구석 드러난 지금에, 자본주의와 위기를 연결시키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88년생 밀레니얼 세대 청년인 저자는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자본주의에서 하차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우리가 새롭게 올라타야 할 체제가 왜 사회주의인지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호소한다.

저자는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덮인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걷어내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이상적 세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인간의 목숨이 돈보다 가볍지 않은 세계, 상품의 실질적 가치를 훨씬 웃도는 이상한 가격표가 없는 세계, 탐욕과 편견, 불평등과 위계질서가 없는 세계. 저자는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톺아보고 가능한 현실적 변화를 짚어낸다. 더불어 사회주의에 냉소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며 그간 사회주의자들이 이루어낸 변화를 꼼꼼하게 제시한다.

"독자를 설득하고 독자가 계속 책을 읽고 싶게 할 만큼 재미있게 쓰는 것"이 자신의 일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 만큼 글은 논리와 더불어 재치와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희망을 품은 글 특유의 활기를 뿜는 책이다. 놈 촘스키가 "대단히 가치 있는 사회적 헌신"이라는 말로 추천했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밀레니얼 세대의 불만은 2007~2008년 금융 위기에 뿌리가 있다. 우리 주변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압류와 파산을 목격하며 자본주의를 자유 시장론자들이 역설하는 마술적이고 합리적인 번영 기계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자유 지상주의 잡지 《리즌Reason》조차 세계적 경제 붕괴가 정치적 급진주의의 원동력임을 인정했다. “오늘날 많은 청년이 자본주의라고 하면 진보가 아니라 위기를 떠올리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강력한 독단론자 중 일부가 지속적으로 경제에 해를 끼쳐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밀레니얼 세대는 생각했다. ‘이런 게 자본주의라면 나는 다른 걸 택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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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귀퉁이에서, 조해진 X SF X 짧은 소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조해진 지음, 곽지선 그림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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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최근 공개된 애덤 맥케이의 영화 <돈 룩 업>. 지구를 부수고 말 혜성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 영화에는 최초로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생과 교수, 여성 대통령과 초 거대 IT 기업의 경영자가 등장한다. 조해진의 소설에서 X가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면 어떨까. 어쩐지 조해진의 소설이라면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거대 기업가의 야심 따위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듯하다. 조해진의 짧은소설 속 이야기, 행성 X가 지구에 충돌할 확률은 (어정쩡하게도) 25%이다. 어떤 사람은 충돌에 대한 공포를 견디지 못해 삶을 버리고, 어떤 사람은 충돌하지 않을 시의 일상의 혼란을 감수할 자신이 없어 매일 출근을 한다. 7년 전 헤어진 연인 이경과 현석은 이 충돌을 앞두고 재회한다. 한 때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감독을 꿈꾸던 이들이 사무직 노동자가 되고 장례지도사가 되어 기다리고 있는 행성 X. 26일이 남았다.

사회의 중심부 바깥, 저 너머의 희미한 빛을 보던 조해진의 상상이 짧은 소설을 만나 SF의 옷을 입었다.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틀림없이 귀퉁이가 있을 터, 작가는 마지막 날을 상상하면서도 그 부스러기를 본다. 작가가 2008년 발표했던 소설을 보완하거나 (<CLOSED>), 2016년 발표한 짧은 소설에 작가의 다른 소설의 모티프를 더하는 등 (<상자>) 오랜 시간 작가 안에 머물렀을 이야기들이 무르익어 조심스러운 기척으로 말을 건넨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첫 문장
사원증을 꺼내 출퇴근 기록기에 체크를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공용 테이블에 쌓여 있는 초청장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의 한 문장
세상이 아직은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그들, 만난 적 없지만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그들이 노동으로 남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현실이 서글퍼졌다. 고작 이렇게 망할 세상이었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나 살아왔던가. 상처받고 상처 주며 일하고 사랑한 시간은 다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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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명의 인간이 1명의 거인이라면""
지구에서 가장 큰 발자국
롭 시어스 지음, 톰 시어스 그림, 박규리 옮김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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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행운이야'라는 노래를 부르던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구의 전체 인구는 80억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인구 과잉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책은 재치 넘치는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80억 명의 인간이 1명의 거인이라면 어떻게 될까? 키는 3킬로미터, 몸무게는 3억 9천만 톤에 이르는 거인은 3시간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고, 홍해에서 반신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4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야생 호랑이들을 뭉쳐 대왕 호랑이를 만들더라도 이 호랑이는 거인의 엄지손톱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맣다.

지구 상에 남은 기린, 코끼리, 호랑이, 코알라 같은 야생동물은 합쳐도 거인만큼 크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에서 제일 큰 존재인 것마냥 큰 발로 온갖 곳을 뛰어다니는 '거인'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지구에는 인간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어린이 MD 임이지
이 책의 한 문장
세상의 모든 나무와 새, 풀잎, 세균까지, 살아 있는 생명체를 몽땅 뭉쳐 기계에 넣으면 이 친구가 나온다네. 이 친구의 이름은 알로, 지구상 모든 생명체라는 뜻이지. 알로는 자네 대왕인간보다 1만 배 더 크네. 훨신 나이가 많고 훨씬 더 똑똑하지. 뭐랄까, 지구적 차원에서. 사실 대왕인간 자네도 알로의 아주 작은 일부라네. 고작 해야 뒷다리에 여드름 하나 정도지. 그런데도 자네는 어느 순간 충분히 크고 똑똑하다고 으스대면서 혼자 멋대로 하기 시작했네. 자네의 행동이 여기 다른 대왕생물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말일세. 글쎄,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보이는가. 알로랑 어떻게 조화롭게 살지 감을 못 잡는다면 앞으로 자네 미래는 어둡고 배고플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