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니들이 환생맛을 알아?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 고달평, 향년 38세. 지병으로 사망.]
[2001년을 죽음과 함께 세상을 빛낸 작가 고달평. 수많은 소설인의 애도를 받아… 뒤늦게 마지막 작품 <지평(地平)>으로 부커상의 최연소 수상자 후보로 뽑혀…….]
[귀필(鬼筆)이라 불리던 고달평의 안타까운 사망. 작가들 사이에서 애도의 물결이…….]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던 소설계의 젊은 거장이 오랜 병환 끝에 죽었다.
짧았던 인생 대부분을 책상 앞에서만 보내던 커다란 별이 저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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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제발 천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하늘을 향해 외쳐왔다.
그런 이들 중에 몇이나 천국에 갔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곳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곳인지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존나 지루해…….”
외모는 이제 곧 40대 들어설 정도이지만, 이미 그 나이는 수십 년 전에 지나 보냈다.
진심으로 표정에서부터 지루함이 가득한 사내는 하품과 함께 유리로 된 창문 너머를 봤다.
광활하게 펼쳐진 주택가와 도시의 빌딩이 한껏 어우러져 있었고, 그 끝으로 바다가 보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급주택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곳을 왜 와보고 싶다 했는지…….”
사내의 이름은 고달평.
사망 당시의 나이는 38세. 천국에 온 지는… 올해로 112년째였다.
그리고 살아 있을 적 세상을 소설로 평정하다시피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고달평이 있는 곳은 로스앤젤레스의 200평대 저택 안이다.
하느님(?)이 친히 만들어준 천국이었다.
“젠자아아아앙―!”
한 사람을 위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준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천국의 창조자가 평화주의자여서 그런 걸까. 로스앤젤레스의 생활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모든 존재가 다 착하고 행복했다. 그 덕분에 고달평은 죽을 만큼 지루했다.
“누가 사고라도 좀 쳐보라고!”
고달평은 죽기 전에 <이기>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총 13종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나름 유명한 글쟁이였다.
글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싸우게 하고 죽이거나, 극한에 놓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세상보다 스릴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고달평에게 지금의 천국은 지옥보다 싫었다.
물론 지옥을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에 수영장이 딸린 테라스 끝으로 달려가 난간을 붙잡고서 외쳤다.
“차라리 환생이라도 좀 시켜 주든가!!!”
하느님도 감동하게 만든 명작들을 쓴 보답이란다.
천국에 처음 왔을 때 ‘맨 인 블랙’처럼 차려입은 사내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 존재가 일단 천사(?)라고는 생각했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낸 지가 112년째…….
물론 고달평도 나름 천국 안에서 사랑도 해보고, 배신도 해봤다.
그런데 모든 걸 용서한단다. 무엇을 해도 마음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나 뭐라나…….
게다가 천국에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무의미했다. 이내 고달평은 혼자서 뒹굴거나 술로 지새우는 경우가 많았다.
100년 가까이 술만 마셨음에도 알코올 중독으로 손이 떨리거나 치매가 오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똑똑—
“뭐지? 또 옆집의 에반 부부인가?”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셀럽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고달평도 처음에는 몇 번 놀러 갔다가 질려서 안 간 것이 100년도 전이었다.
안 열어주면 더 세게 두드려댈 것이 뻔했다.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달평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앞에는 낯익은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응? 너는……!”
“오랜만입니다. 고달평 님.”
“프, 프라이…팬?”
“프라이시디움입니다. 여전히 못 외우시는군요.”
지금의 천국으로 고달평을 데려왔던 존재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당연히 고달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너무 복잡하잖아.”
“그러신 분께서 작품을 집필하실 때는 복잡한 이름을 잘도 지으셨군요. <영원하던 침묵>에서 쓰셨던 켈리즈다리움처럼 말이죠.”
“그걸 봤어?”
“진정한 명작 중 하나죠. 뮤지컬로 나왔을 때도 정말 잘 봤습니다. 아, 그 극본도 직접 작업하셨죠?”
귀필(鬼筆) 고달평.
소설, 극본, 대본 등등 장르까지 가리지 않고 귀신처럼 작품을 써낸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직접 찾아가서 볼 정도라니…….
고달평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작가님이 더 대단하시죠.”
“그런데 처음에 나를 데려다주고서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웬일인가? 혹시 아까 내가 한 말을 들었나?”
테라스 난간 앞에서 욕이란 욕은 전부 내뱉었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며칠에 수십 년을 쏟아부었다.
솔직히 듣지 못하면 더 이상할 정도이다.
“아… 못 들었다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죠?”
“큼큼……!”
“사실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프라이시디움은 품속에서 355mm 크기의 붉은색, 푸른색 병을 각각 하나씩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놨다.
“설마… 빨간 병은 여기에 남는 거고, 파란 병은 날 깨어나게 해주는 건가? 혹시 나 혼수상태였던 거야?”
농담이었지만, 프라이시디움은 진지한 표정으로 받아쳤다.
“정확히 2001년 6월 26일 13시 42분 34초에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같이 먹는 겁니다.”
“…아, 내가 착각했군. 근데 이걸 먹으면 어찌 되는 건가?”
“환생하게 되십니다.”
그 말과 함께 고달평의 표정은 환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 환생이라고?! 정말이야?”
“맞습니다. 원래는 업(業)을 많이 쌓으셨기에 언제까지 이곳에서 쭉 계셔도 되긴 하지만… 민원이 조금 들어와서요.”
“민원?”
“위에 계신 분께서 누가 욕을 종일 해대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셔서요.”
“아…….”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에 고달평은 조금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었다.
“아무튼 처음에는 파란색 병, 다음에 빨간색 병을 드시면 됩니다.”
“각각 효능이 다른 건가?”
“파란색 병은 망명수(亡名水), 빨간색 병은 환생수(幻生水)입니다.”
프라이시디움은 그런 두 개의 병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그리고 뭔지 이해한 고달평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망명(亡名)… 이름을 잊는 의미라면 기억을 지운다는 거군.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레테의 강물 같은 건가?”
“맞습니다. 물론 그건 메이드 인 카오스라서 여기서는 구할 수 없고, 대신 메이드 인 코리아인 망명수입니다.”
굉장히 자세한 설명에 고달평은 살짝 얼떨떨해졌다.
“그, 그런 것도 있구나. 근데 강물이면… 식음이 불가능하지 않나?”
프라이시디움은 가늘게 뜬 눈과 진지한 표정으로 고달평을 봤다.
“큼, 큼. 농담이야. 농담.”
“아까 말씀드린 순서로 드시면 됩니다.”
“그러지.”
이내 고달평은 환생이라는 기대감에 젖어 망각을 위해 파란색 병의 뚜껑을 따고서 입으로 가져갔다.
“음… 음? 읍―! 욱!”
지독한 냄새였다.
사후 전 자료 조사를 위해 경찰들을 따라다니다가 맡았던 시체 썩은 냄새와 맞먹었다.
“이거 왜 이래? 상한 거 아니야?”
“원래 그렇습니다.”
“뭐? 잠깐! 혹시 다른 것도……?”
고달평은 빨간색 병도 뚜껑을 땄다.
바로 냄새를 맡아보니 향긋한 꽃내음이 올라왔다.
“이건 괜찮네?”
“망명은 이름 그대로 한 인간이 살아온 인생을 지우는 것이죠. 그렇게나 무거운 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럼 환생수는 왜 냄새가 좋은데?”
“환생은 시작이니까요. 육체도 없이 영혼뿐인 존재는 한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납득이 될 수밖에 없는 설명 탓에 고달평은 고민이 되었다.
“섞어 먹으면?”
“폭탄주 아닙니다.”
“냄새가 너무 심한데…….”
“잘못된 영혼은 없었습니다.”
“혹시 다른 맛은…? 딸기나 포도나… 버디언 같아도 좋은데.”
“…….”
마지막 맛은 프라이시디움도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안. 양파맛 음료인데… 뭐 모르면 넘어가자고. 아무튼 다른 맛은 없어?”
프라이시디움의 시선은 애꿎게 천장으로 향한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더라도 알 수가 있었다.
이에 고달평은 진심으로 애원하듯이 말했다.
“조금만 마시면 안 돼?”
“안 됩니다. 전부 끝까지 드셔야지 제대로 된 망각과 환생이 이루어집니다.”
“안 마시겠다고 하면?”
그 순간 프라이시디움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그의 양쪽 뒤로, 같은 복장인 건장한 체구의 사내 둘이 빛줄기처럼 나타났다.
분위기만 봐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편히 드실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은 드릴 수 있습니다.”
“도움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네. 아, 만약 환생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앞에서 지내셨던 것만큼 지내셔야 할 겁니다.”
고달평은 한숨을 깊게 내뱉고서 준비했다.
112년간 지옥과도 같았던 천국에서 살면서 수만 번을 외쳤던 환생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망명수의 맛까지 지옥 같으니…….
“크읍—!”
이내 고달평은 망명수를 억지로라도 마시다가 냄새보다 역한 맛 때문에 뿜을 뻔했다.
그러다 끝까지 마시지 못하고 테이블로 내려놓으며 옆에 있던 꽃병을 쓰러뜨렸다.
탁―! 쏴아!
이내 꽃병에 든 물이 쏟아지며 프라이시디움의 정장 바지를 잔뜩 적셨다.
“아! 천국에 온 이태리 디자이너, 지라로한테 겨우 맞춰서 오늘 처음 입은 건데! 휴지! 아니, 물티슈! 뭐라도 좀 가져와 봐!”
뒤쪽에 서 있던 사내들은 그의 외침에 급히 주방 쪽으로 향했다. 프라이시디움도 바지에 묻은 물을 털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바빠졌다.
이때 고달평은 삼 분의 이 정도 남은 망명수를 소파 뒤쪽으로 옮겨 카펫 위로 부었다.
병에서 밖으로 쏟아져 나온 망명수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기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고달평은 앞 상황을 신경 쓰느라 그걸 볼 수 없었다.
‘더 먹었다간 환생도 하기 전에 죽을 것 같아.’
지금도 혀와 입안 가득히 망명수의 맛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침을 삼켜보았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나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사이 프라이시디움은 사내들이 찾아온 물티슈와 휴지로 조심스럽게 물을 닦아냈다.
사태가 조금 수습되자 프라이시디움의 표정이 그제야 침착해졌다.
“큼, 큼! 제가 좀 흥분해서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고달평은 단정하려 노력 중인 그의 모습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아까 지라로라고 하던데. 이탈리아 명품 수제 양복점 장인 지라로를 말하는 건가?”
“아십니까? 하긴, 명장은 명장을 알아보시겠죠. 원래 천국에 계신 분께 그런 부탁을 하면 안 되지만… 너무 탐이 나서 그만…….”
이에 고달평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사람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죽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선물이라면서 하나 맞춰줬었지. 내 결혼식 날 입으라던 턱시도라… 결국 만들 때 입은 후로는 쭉 걸어놓기만 했지만…….”
“아…….”
갑자기 엄숙해지는 분위기에 고달평은 주제를 넘겼다.
“큼―! 아우, 죽겠네. 망명수는 다 마셨으니 이제 환생수를 마시면 되나?”
살짝 연기를 보태며 말하자 프라이시디움은 잠시 생각하고서 대답했다.
“힘들어하셨으면서 잘 드셨군요. 그러시면 됩니다.”
“이걸 다 마시면 다음 생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보겠군.”
“제게 다시 배정되신다면 말이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생하십시오.”
고달평은 그의 인사 아닌 인사를 들으면서 미리 따둔 환생수를 들이켰다.
꽃내음과 함께 새콤달콤한 맛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러나 굵직했던 맛의 두께가 점점 얇아지면서 고달평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이렇게 환생하는 건가…….’
끝내 고달평은 비어버린 빨간색 병을 떨어뜨리면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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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평은 천천히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떠보니 새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지? 그러고 보니 프라이뭐시기가 환생시켜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입이 제대로 열리지 않던 고달평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보는데 링거를 꽂는 막대와 간호사들이 보인다. 병원인 것 같았다.
‘이제 태어난 건가? 근데… 망명수를 마셨는데… 왜 기억이 다 나는 거지? 설마… 조금(?) 버려서 그런가?’
고달평은 자신이 겪었던 전생의 일들이 전부 생각났다.
아무리 망명수를 버렸다고 한들 그렇게까지 기억나는 건 이상했다.
‘환생이 잘못된 건가? 설마 하느님이 망명수 버린 걸 눈치채고서 벌이라도 준 거야?’
순간 고달평은 겁이 났다.
지루한 천국을 벗어나려다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한 남자 의사가 고달평이 눈 뜬 것을 발견하고서 옆으로 다가왔다.
“아, 정신이 드셨나 보네요. 설리원 님. 괜찮으세요?”
‘설리원? 그게 내 새로운 이름인가? 무슨 이름이 이래? 근데 왜 아기한테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여긴 중환자실이고, 설리원 님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턱뼈가 부서져서 수술 후 고정해놨고요. 한동안은 말씀하시기 어려울 거예요.”
‘교통사고? 턱뼈? 그게 무슨 말이지? 나, 아기가 아닌 거야?’
“이제 곧 전신 마취도 풀릴 겁니다. 통증이 생기면 간호사를 불러주세요. 일단 정신을 차리셨으니 빠르면, 오늘 오후 중에 일반 병동으로 옮기실 겁니다.”
환생으로 설리원이 된 고달평은 그 말을 듣고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