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001화

사자(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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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추락




“단주… 가십시오.”

담백의 입가에 핏기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입은 웃고 있으나, 그의 눈은 울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남기고 가야 할 짐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함께 잔을 나누자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 약조는 지킬 수 없을 듯합니다.”

사자단(使者團)의 단주, 광무는 거대한 쇠붙이에 몸이 반쯤 으깨진 담백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죄송합니다. 단주.”

담백의 사과와 함께 그의 정수리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튀어나와 광무의 손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곧이어 담백이 숨을 헐떡거리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빌어먹을 놈들… 하여간 힘든 일은 내가 다 한다니깐.”

광무는 담백에게서 손을 거둔 채 몸을 일으켰다.

숱한 싸움으로 만들어진 상처는 이미 깨끗하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혈련교의 불사군대에 맞서 조직된 십인(十人)의 사자단 중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사자단주(使者團主) 광무(洸武).

그의 시선이 가죽이 뼈에 붙은 것처럼 메마른 노인과 그를 지키고 서 있는 다섯 명의 남자를 응시했다.

검붉은 가죽 같은 옷을 장포처럼 휘둘러 입은 자들.

그들이 검을 고쳐 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노인이 소리쳤다.

“당장 저놈의 목을 가져와라!”

“어, 왔어?”

그의 명령에 맞춰 다섯 명의 검수들이 몸을 날렸다.

“에라이, 비겁한 새끼들아! 이쪽이 한 명이면 네놈들도 한 명만 와야지!”

날렵하게 달려온 오인의 검수가 광무에게로 검을 날렸다.

그 순간, 광무는 양 허리에 꽂아둔 두 개의 검을 뽑아 들었다.

장검이라기엔 모자라고, 단검이라기엔 지나치게 긴 검신을 가진 특이한 형태를 가진 일신반검(一身半劍).

칼날부터 손잡이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만듦새의 검을 들고서 광무가 몸을 날렸다.

두 개의 검이 먼저 광무의 허벅지와 어깨를 베었다.

피와 살점이 튀었지만, 광무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서 검수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휘익―! 퍽!

광무의 첫 번째 검이 검수의 아래턱에 박아 넣은 뒤 들어 올려 목을 드러낸 후 나머지 검을 휘둘러 검수의 목을 완전히 잘라 냈다.

그사이 두 명의 검수가 광무의 허벅지와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푹― 푹―!

“끄악! 뒤지게 아프네 이거!”

첫 번째 검수의 목을 베어 버린 광무는 자신의 검을 등과 허벅지에 박아 넣어 검수들의 검을 뽑아냈다.

피슉!!

피가 튀며 살점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광무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 깃든 열 마리의 불사충은 숙주인 광무를 죽게 할 생각이 없는 듯 맹렬한 속도로 상처를 수복했다.

움푹 팬 살점들이 순식간에 차올랐고, 이를 지켜보던 노인의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저 모습은 진정한 불사인(不死人)이로다!”

지금껏 세 마리 이상의 불사충을 몸에 집어넣고도 살아남은 불사인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이는 광무의 회복력은 불사충 세 마리의 회복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놀랍구나! 놀라워!”

노인이 감탄하는 사이 뒤이어 도착한 혈련교의 불사대가 광무를 향해 두려움 없이 달려들었다.

세 명의 검수는 광무의 온몸을 난자하듯 무자비하게 베었다.

그러나 광무의 몸에 새겨진 검상은 베이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혈련교(血聯敎)가 만들어 낸 불사대의 치유력을 뛰어넘은, 그야말로 초(超) 재생이라 불릴 만한 회복력이었다.

광무는 만족스러운 듯 제 몸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불사충이 좋긴 좋아. 그치?”

“당장 저놈을 포박해라! 죽이면 안 돼!”

노인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열다섯 명의 불사대 검수들이 뒤이어 몸을 날렸다.

그들 모두가 혈련교가 만들어 낸 불사대의 일원이었다.

총 열여덟 명의 불사대가 광무를 생포하려 달려들었고, 검수들이 광무의 몸을 베어 그를 저지하는 동안 몇몇 검수가 쇠사슬을 가져와 광무를 포박하려 했다.

“크아악!”

그때 광무가 짐승같이 포효하며 들고 있던 두 개의 일신반검을 날렸다.

직선으로 날아간 두 개의 칼날이 정면에 서 있던 검수의 양쪽 쇄골에 박혔다.

뒤이어 광무는 등에 메고 있던 기형적으로 기다란 장검을 넓게 휘둘렀다.

부우우웅―! 쾅!!

호선을 그리며 날아든 기다란 장검이 검수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뒤이어 광무는 장검을 집어 던져 그 뒤에 서 있던 검수의 몸에 박아 넣은 뒤 두 동강 난 채 쓰러지고 있는 검수에게서 일신반검을 뽑아내며 몸을 날렸다.

그는 마치 성난 이리와도 같았다.

“덤벼, 새끼들아!!”

거칠게 포효하며 상처를 돌보지 않고서 싸웠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쇠사슬이 그를 포박하려 했다.

하지만 쇠사슬이 팔에 감겨 들어가면 팔을 잘라 버리고, 다리를 감으면 다리를 자르는 광무의 과감함에 쇠사슬은 그를 포박할 수 없었다.

잘라 낸 팔을 다시 이어 붙이며 짐승 같은 싸움을 하는 광무를 보며 노인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괴물 같은 놈……!”

제아무리 불사의 몸을 갖고 있다 해도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광무는 고통을 잊은 듯 달려드는 불사대를 아무렇지 않게 도륙했다.

콰득―!

콰직!

서걱―!!

스르릉!

푹!

불사대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열여덟 명의 불사대가 광무의 발아래에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보, 본교의 불사대를!?”

혈련교에서 불사대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귀학(鬼鶴)은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천무맹(天武盟)에서 만들어 낸 괴물을 바라봤다.

불사(不死)를 죽이는 사자(使者)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뚝― 뚝―!

선홍빛의 피를 흘리며 반쯤 잘린 목을 이어 붙인 광무가 귀학에게로 다가왔다.

“크크큭! 천무맹! 천륜을 운운하며 우릴 비난하더니… 결국 너희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구나……!”

큭큭 대며 웃는 귀학의 앞으로 광무가 섰다.

양손에 붉은 피를 머금은 일신반검을 들고서.

“시끄러우니 닥쳐.”


*  *  *


푸른 소나무가 군세를 이루고 있는 청송봉(靑松峰).

그곳에 마련된 오래된 정자 위에 짙은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 복잡한 시선으로 봉우리 아래의 세상을 돌아보고 있었다.

점을 찍어 놓은 듯한 세상을 바라보던 남자는 긴 심호흡을 마친 후 뒤를 돌아보았다.

툭―!

그의 발아래에 머리 하나가 뒹굴었다.

입을 떡 벌린 채 죽는 순간까지도 눈을 감지 못한 노인의 머리.

이를 내려다보던 중년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학의 머리로구나.”

“약속은 지켰다.”

중년인의 시선이 피 칠갑을 한 상태로 나타난 광무를 바라봤다.

총 십인의 사자단 중 중년인의 앞에 돌아온 자는 한 명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었느냐.”

“다 뒤졌지. 남김없이 깔끔하게 말이야.”

광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우습지 않으냐. 불사인(不死人)이라 불리던 자들이 결국엔 모두 죽어 이젠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이리로 오거라.”

중년인의 부름에 광무는 그가 서 있는 정자 위로 올라섰다.

“자, 받거라.”

중년인이 내민 것은 귀한 홍로주가 담긴 잔이었다.

광무는 그가 내민 잔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독한 홍로주가 식도를 따라 흘러내렸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천무맹의 귀문단(鬼刎團)은 해체될 것이고, 이에 소속된 자들은 자유의 몸이 될 거야… 이건 전부 너와 사자단이 해낸 놀라운 성과 덕분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천무맹의 암영조직(暗影組織), 귀문단의 단주인 기우설(奇遇舌)은 딱딱하게 주름진 손을 광무에 어깨에 올렸다.

“고생했다.”

“이걸로 끝이냐?”

“그래. 끝이다.”

기우설은 광무의 잔에 홍로주를 가득히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잔을 받은 광무는 무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안 가냐? 여기 있다간 너도 개죽음당할 텐데.”

“하하하. 내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사자단의 나의 몫이다. 창단(創團)부터 함께했으니 마지막도 함께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누군가는 너희를 책임져야 해.”

기우설이 자신의 가슴에 주먹을 얹은 후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의 진심 어린 감사와 사과에 광무는 가볍게 콧방귀를 뀐 후 홍로주로 가득 담긴 잔을 비워 냈다.

그의 생에 마지막 잔일 터였다.

“빌어먹을 천무맹 새끼들… 내 다음 생이 있으면, 천무맹부터 조져 놓을 테니깐 그런 줄 알아.”

광무의 중얼거림에 기우설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네 마음대로 하거라.”

기우설의 웃음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그들이 서 있던 정자의 밑바닥으로부터 지면이 용솟음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맹렬한 기운에 광무는 인상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 같은 인생.”

십수 개의 뇌탄이 동시에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푸른 소나무가 군세를 이룬 청송봉이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열 명의 중년인들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폭발이라면 제아무리 불사인이라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이 모든 걸 계획한 제갈학(諸葛鶴)의 설명에 천무맹주(天武盟主) 남궁열후(南宮烈吼)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장로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헌데… 굳이 사자단주를 죽여야만 했는지…….”

그의 중얼거림에 제갈학이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그자는 존재해선 안 되는 존재요! 제아무리 혈련교의 불사대를 괴멸시키는 데 주요한 공적을 세웠다 해도! 사자단주 광무는 백도무림의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였으며, 불사충을 받아들인 괴물이었소. 게다가 사자단의 존재가 밝혀지는 날엔 천무맹도 비난을 피하지 못할 거요.”

제갈학이 눈을 부라리며 장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광무가 누구인지 벌써 잊어버렸단 말이오?”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단지…….”

맹의 장로와 제갈학의 설전이 길어지기 전에 천무맹주 남궁열후가 손을 들어 그들의 대화를 중지시켰다.

“둘 다 그만하시오. 어차피 혈련교의 불사대와 그들을 만들어 낸 귀학은 죽었고, 사자단은 사라졌소. 이제 우리는 원래 하던 대로 백도무림을 수호하면 되는 것이오.”

남궁열후의 시선이 무너져 내리는 청송봉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불어오는 바람에 맡겨 흘려보내면 될 것이오.”


*  *  *


쿠구구궁―!!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광무는 한 마리의 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지면을 떠난 몸은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듯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 과정에서 폭발에 휘말려 산화(散花)하는 기우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천무맹에서 가장 지독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귀문단의 단주이면서도 늘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다녔다.

물론 그 웃음은 나를 패면서도 계속됐지만.

그런 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미련한 양반이야.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열 뻗치네. 천무맹 새끼들…….’

슬픔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불사인에겐 목숨이라 할 수 있는 불사충을 거둠으로써 단원들의 생(生)을 직접 취했다.

함께 피 흘린 전우들은 이름 모를 땅에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귀문단의 단주인 기우설은 산화하여 중년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젠… 나의 차례였다.

몸이 가볍다.

뇌탄의 폭발로 인해 몸의 대부분이 날아가며 사지가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어차피 죽을 이에겐 팔과 다리가 필요치 않으니깐.

한순간이지만 자유로운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봤으니, 그걸로 족하다.

“아.”

하늘로 치솟던 광무는 솟아나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다.

죽었다고도 그렇다고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의 처지와 닮아 있는 무중력의 순간.

그의 몸이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바람을 가르며.

무너지는 봉우리의 조각들과 폭포처럼 쏟아지는 흙더미를 옆에 끼고서.

광무는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퍽―! 퍽―!

바닥에 추락한 광무는 몇 차례나 정신을 잃었다.

머리가 깨지고, 척추가 부러졌다.

하지만 정신은 금방 돌아왔다.

이리저리 구르며 정신없이 흔들리던 광무의 육신은 충격으로 인해 드러난 청송봉의 속살로 들어갔다.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으로 내던져진 광무는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 쿵― 쿵!!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굉음이 몇 차례나 들려오고 사지를 잃고서 몸뚱어리만 남은 광무의 몸이 비탈길을 따라 빠르게 굴러떨어졌다.

휘익―!

쿵!

끝이라는 게 없을 것만 같던 추락도 끝이 났다.

마침내 어두운 바닥에 널브러진 광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의 한쪽은 완전히 박살 난 듯 으깨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사지는 존재하질 않았다.

충격이 워낙 커서인지 불사충마저도 광무의 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중이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이것이 죽음인가. 나름 편할지도 모르겠어. 천무맹주와 제갈 놈의 대가리를 깨놓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끔찍한 고통 끝에 죽음이 찾아온 걸까.

‘아아… 내가 이렇게 뒤지는구나.’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광무는 정신을 잃었다.


광무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몸에 깃든 불사충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숙주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뇌탄의 폭발로 인해 살아남은 불사충의 수는 총 다섯 마리.

다섯의 불사충들은 숙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때, 청롱한 빛을 내뿜는 것이 보였다.

접시처럼 움푹 패어 있는 돌 위로 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그 작은 물방울에서 느껴지는 현묘한 기운을 느낀 불사충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너덜거리는 광무의 오른손을 회복시켰다.

회복은 더뎠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들어 낸 광무의 오른손이 그의 몸을 이끌고 천천히 나아갔다.

청롱한 빛을 내뿜는 현묘한 물방울을 향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