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령사 001화

현대정령사(650)

현대정령사 1화.




Prologue


철컥!

군복을 입은 한 명의 군인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아, 돌아왔구나.”

그는 이제 막 전역을 했는지, 청년이 입고 있는 군복에는 예비군 마크가 있었다.

2년간의 고된 복무를 마쳤다면 그 해방감에 당연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에는 그를 반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싸늘한 기운만이 그를 반겼다.

그런 싸늘함을 느낀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어, 어머니, 아, 아버지… 저 시후에요, 저 오늘 전역했어요…….”

그의 구슬픈 목소리가 집을 더욱 적막하게 만들었다.

그의 부모님은 금슬이 좋기로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그런 그의 부모님께서는 그의 전역을 앞두고, 두 분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두 분 다 일가친척이 없으신 외로운 분들이라서, 청년은 이제 혈육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천애고아의 신세가 되었다.

“흑흑흑.”

그는 그렇게 행복해야 할 전역 당일을 눈물로 보냈다.




임상실험


“시후야, 여기다.”

중년인이 시후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시후 역시 그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간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내지. 지혁이랑 제수씨 장례식장에서 본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되었네. 밥은 챙겨먹고 다니는 거야?”

선친의 오랜 지기인 유영호의 말에 시후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요. 아저씨. 저도 성인인데, 잘하고 있어요.”

“안 되겠다. 일단 고기부터 시키자. 오늘 배 터지게 먹고 가자. 여기요! 갈비 3인분부터 주세요.”

“아저씨도 참.”

말은 그렇게 말했지만, 요리가 서툰 탓에 대충 인스턴트로 때우며 지내다 보니 살이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술 한잔해라.”

“감사합니다.”

시후는 삼촌과 같은 그의 술을 받으며, 선친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와도 이런 시간이 같이 보냈어야 했는데…….’

선친의 생전에는 친구들과 노느냐 부친과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시후는 자책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물올랐을 때였다.

“이제 어쩔 셈이냐?”

“대학교를 복학할 생각이에요.”

그는 말썽을 피워 부모의 속을 썩이는 말썽쟁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모님께 효도한 기억도 없었다. 지금은 그게 너무 후회가 되었다.

“부모님께서 제가 대학교 후배가 되었다고 그렇게 기뻐하셨는데, 꼭 졸업하고 싶습니다.”

환경학자이셨던 두 분은 시후가 입학한 한국대 환경학과의 졸업생이었다.

두 분 모두 같은 학과 출신으로 정부의 지원과 유명 대학들의 협력을 받고 있는 환경 연구소의 연구원이셨다.

그분들은 언젠가 시후와 함께 환경 연구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시후가 환경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 두 분의 영향으로 그 역시 한국대 환경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딱히 부모님과 같이 환경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는 그저 환경직 공무원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부모님께서 연구하셨던 연구를 이어서 완성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분들이 몸담으셨던 환경 연구소에서 그분들의 연구를 이어받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선친의 지기 영호는 반색했다.

“하하하. 그럼 우리 연구소에 들어올 생각이냐?”

그는 선친의 지기 이전에 환경학자로, 환경 연구소의 연구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저의 목표는 그렇습니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기특한지,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 아저씨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지원해줄까?”

그의 말에 시후는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저씨! 저에게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도 있고, 보험금도 있어요. 그리고 이제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생각이에요. 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의지할 생각부터 하겠어요?”

“후후후, 그러냐?”

“아저씨의 마음만 감사히 받을 게요.”

몸만이 아닌 정신까지 어른이 된 시후를 보며 그는 몹시 흡족했다.

“이런 이 아저씨가 실수했구나. 하지만 힘들고 부탁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줘라.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 아버지인 지혁이랑 더욱 막역한 사이였다. 그런 그의 하나뿐인 아들인 너에게 문제가 생기면 난 저승에서 지혁이와 제수씨를 볼 면목이 없다.”

“감사합니다.”

대답하는 시후의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셨구나.’

시후는 선친이 자신에게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나아가야 할 길과 이런 좋은 사람들을 주신 것에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온 시후는 우선 자신의 통장을 펼쳤다.

“이 돈을 절대 쓸 수 없어…….”

그의 통장에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거액의 생명보험금이 찍혀 있었다. 당분간 시후가 독립을 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선친의 지기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이 돈을 쓰는 것은 부모님의 목숨값을 사용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 때문에 도저히 사용할 수 없던 것이다.

당장 돈이 절실하게 급한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볼 생각이다.

“일단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겠어.”

더 이상 누군가에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후는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지금 당장 생활비는 충분했다.

부모님의 생명보험금뿐 아니라 그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사회 경험 삼아서 했던 아르바이트로 모아두었던 돈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생활비와 휴학했던 대학에 복학하기 위해서 비싼 대학 등록금이 필요했다.

모아두었던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후는 전역 이후 곧바로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죽도록 열심히 했다.

그의 부모님의 생전에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라서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사회 경험을 위해서 방학에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생계를 위해서 독하게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돈을 번다는 일이 너무도 힘들게 느껴졌다.

“하~ 남의 돈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하지만 세상의 무서움을 겪으면서 시후는 더욱 마음이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

아니, 이제는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천 원입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시후는 편의점을 시작으로 음식점 서빙, 주유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세상 속에서 시후는 더욱 부모님의 생각이 났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험난한 세상 속에서 날 키우셨구나.”

생계를 위해서 직접 뛰어보니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지난날 자신의 철부지였던 기억에 시후는 얼굴이 붉어졌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면서 시후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아침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편의점, 저녁에는 음식점 등 아르바이트를 2~3개씩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시후라고 이런 생활을 지속되다 보니 심신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제법 돈을 모았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복학을 할 수 있겠어.”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쳤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쌓여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시후는 왠지 가슴이 뿌듯했다.

그렇기에 통장을 보고 있을 때,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시후야, 잘 지내지?

오랜만에 걸려온 대학교 선배의 전화였다. 그동안 무리해서 아르바이트하느라 학교 친구나 선후배들은 거의 챙기질 못했다.

그런데 선배가 먼저 전화를 걸어준 것이다.

시후는 매우 반갑게 인사했다.

“그럼요. 선배는 어때요? 이번에 졸업이시잖아요. 취업은 하셨어요?”

―나야 뭐. 별일 없이 잘 지내지. 취업시험도 끝내서 연락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하자.

너무도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시후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죄송해요. 선배. 저는 곧 알바를 가야 해서요. 요즘은 알바 때문에 조금 바쁘거든요.”

무척이나 반가운 전화였지만, 거절해야 하는 시후는 아쉬우면서도 선배에게 미안해졌다.

이를 들은 선배는 깜짝 놀랐다.

그 선배 역시 시후네 집이 그리 가난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더욱이 이제 복학 시점이 머지않았는데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조금은 의외인 모양이었다.

―너 요즘 알바를 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이제 곧 복학도 해야 하는데, 슬슬 알바도 정리하고 복학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타까워하는 선배의 말에 시후는 조금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좀… 생활비와 등록금 모은 게 빠듯해서요. 방학 때면 몰라도 학교 다니는 동안은 공부만 열심히 하려고요. 그것이 하늘에서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길 같아서요. 그래서 복학 직전까지는 알바해야 할 거 같아요.”

단순히 대학에 복학하는 것이 아닌 기왕 복학하는 대학,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후의 사정을 이해한 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으~음, 그래? 그럼 내가 고액 알바 하나 소개해 줄까? 그거라면 아마 당분간 알바할 필요가 없을 거야, 뭐~ 힘든 일도 아니고.

그의 말에 시후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누가 일에 치여 살고 싶겠는가!

게다가 고액에 힘들지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마다하기가 힘들다.

선배의 말에 시후는 귀가 쫑긋하게 섰다.

“그런 게 있어요? 그 알바 저 좀 소개시켜 주세요, 선배!”

그의 부탁에 선배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너 명약제약이라고 알지? 거기서 이번에 신약을 만들어냈는데, 임상실험에 참가할 인원을 뽑더라고.

명약제약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임상실험이라는 말에 시후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는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임상실험이요? 그것은 좀…….”

그의 말투에서 꺼리는 것을 느낀 선배는 다급하게 설명했다.

―네가 임상실험이라고 해서 좀 걸리나 본데, 연구는 아무런 문제가 없대. 다만 의약법상 신약을 출시하기 전에 임상실험이 꼭 필요해서 하는 것이지…. 그리고 임상실험을 할 정도면 이미 연구상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잖아. 게다가 너도 명약제약이 얼마나 유명한 제약회사인지 알잖아?

그의 말처럼 명약제약은 대한민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유명한 제약회사였다.

그런 큰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것인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시후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몸이 힘드니 고액이라는 말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맞아, 설마 그런 유명한 회사의 약에 문제가 있겠어?’

“선배, 그 알바 고액인 것은 확실하죠? 혹시 못 받는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그런 대기업에서 돈을 삥땅치겠냐? 걱정하지 마라. 명약제약은 아니지만, 나도 그런 알바한 경험이 있다. 제법 짭짤하다. 그런 알바.

선배 역시 이미 경험자라고 하니 시후는 조금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의 말에 시후는 결심이 섰다.

“선배 제가 할게요. 알려주세요.”

―그래? 어떻게 하면 되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