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돌
신의 아이돌
신의 아이돌
지은이 : 박굘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19-05-30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이젠북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163-2 서경빌딩 3층
전화번호 : 032-656-4452
홈페이지 : www.chungeoram.com
www.ezenbook.co.kr
이 책은 도서출판 청어람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된 것이므로 불법복제 및 유포, 공유를 금합니다.
신의 아이돌
1화. 내 길은 언제나 멀기만 했다(1)
어렸을 적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까닭에는 그곳에는 매일매일 강우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한참을 걷던 강우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멈추어 섰다.
“…….”
전봇대에 기대어 강우는 말없이 한곳을 응시했다.
늦은 밤, 낡은 삼겹살 가게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번화가가 되어버린 이 부근에서는 유일하게 낡고 낡은 작은 삼겹살 가게.
그 초라한 모습이 꼭 강우 스스로를 보는 거 같았다. 한참 동안 작은 삼겹살 가게를 응시하던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 끝이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건물이 늦은 밤,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대형 전광판으로는 당대의 스타들이 담겨 그들만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아래서 강우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어렸을 적, 강우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존재들이 이제는 숨이 막힐 정도로 거대한 벽으로만 느껴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강우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오늘에서야 마주했던 차가운 현실이 다시 폐부를 찔러왔다.
‘강우야, 이번에도 데뷔는 힘들 것 같다.’
강우의 오랜 꿈이 물거품이 되는 건,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이돌이라는 꿈. 그 꿈이 한순간에 덧없이 무너져 버렸다.
20살. 이 바닥에서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강우는 7인조 보이 그룹 ‘세븐 마린’의 데뷔 조에서 최종 탈락했다.
그런 강우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기약 없이 데뷔를 기다리거나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것.
소속사 관계자는 후자를 권유했다. 진심 어린 충고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았다.
‘너도 잘 알다시피 아직 데뷔를 하기에는 부족한 게 많아. 그렇다고 우리 회사가 잘나가는 대형 기획사도 아니잖아? 이번에 세븐 마린이 힘들어지면 정말 우리 회사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뭐하지만… 강우야, 넌 여기까지 하자, 응? 회사에서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처럼 데뷔를 준비하는 애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어. 한 달에 데뷔를 하는 팀만 해도 100팀이 넘고.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음악 방송 무대에 서는 팀은 고작 10팀이 될까말까라고. 그렇게 음악 방송에 나갔다고 치자? 과연 그게 끝일까? 그때부터 시작이야. 강우야,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다른 길을 찾자.’
냉철한 한 마디, 한 마디가 강우로 하여금 현실을 엿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우는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강우야? 강우야! 잘생긴 우리 아들!”
문득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
강우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들?”
뒷걸음질을 치는 강우의 모습에 앞치마 차림의 중년 여성도 멈칫했다. 그러다 중년 여성의 표정이 따듯함으로 물들었다.
“우리 아들,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왔구나?”
그 따듯한 표정에 강우는 안도감과 함께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껏 아이돌이라는 꿈을 좇던 아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해 주던 홀어머니였다.
아이돌이라는 꿈을 이루기만 하면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을 갚아주겠노라고,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해왔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눈앞의 여자는 늙고 작아져 있었다. 왜소해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강우는 이제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지금껏 굳어 있던 강우의 표정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다리에 힘도 빠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엄마.”
갈라진 입술 사이로 메마른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지금 당장 그 작은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죄스러움에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강우에게 도순이 먼저 다가왔다.
“들어가자. 저녁 안 먹었지? 밥 먹자, 우리 아들.”
와락, 강우가 엄마 도순을 끌어안았다. 도순이 깜짝 놀랐다.
“강우야? 엄마 장사하는 중이잖아. 우리 잘난 아들 옷에 기름 냄새 다 밸 거야. 깔끔하기로 소문난 우리 아들이 오늘따라 왜 이럴까?”
“…괜찮아요.”
도순을 끌어안은 채로 강우가 속삭였다. 잠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도순의 두 손이 강우의 등을 토닥였다.
“어리광까지 부리고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그렇지?”
강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엄마가 미안해, 아들.”
“……!”
그 한마디에 강우의 눈동자가 붉어지고 가슴이 미어졌다.
“다 나 때문인데,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미안해요, 엄마. 앞으로 진짜 효도할게요.”
강우의 말에 도순의 입가에 미소와 함께 주름이 잡혔다.
“말만 들어도 행복하다. 근데 우리 아들이 오늘 왜 이럴까? 갑자기 철이 확 들었네?”
“…….”
도순이 강우를 떼어냈다. 그러고는 이내 강우를 올려다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니?”
강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아이돌이라는 허무맹랑한 꿈을 좇으며 충분히 시간을 허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강우가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다녀왔어요, 엄마.”
* * *
작은 다락방 창틈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햇살이 집요하게 강우의 눈동자를 괴롭혔다.
“으음.”
강우의 눈동자가 스르르 떠졌다.
오래된 형광등이 달린 천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자 천장에서 수많은 상념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강우가 팔을 들어 도망치듯 두 눈을 가렸다.
“다 끝났었지.”
강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제 현실을 봤다. 홀가분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강우가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찾았다. 시간은 오전 11시 31분.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연습생일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혼자 실실 웃고 있던 강우가 자리를 정리하고는 다락방을 나섰다.
가게는 이미 장사가 한창이었다. 나름 번화가에 위치한 도순의 가게는 낮에는 백반 정식을 팔고 저녁에는 삼겹살 장사를 했다.
오래되고 허름한 까닭에 단골손님밖에 찾지 않는 가게였지만 강우에게는 가장 소중한 곳이기도 했다.
벌써 두 테이블이나 손님들이 앉아 이른 점심 식사를 뜨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슬쩍 눈인사를 한 다음 강우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앞치마 차림을 한 도순의 뒷모습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도순도 강우를 발견하곤 국자를 내려놓았다.
“아들? 벌써 일어났어?”
“네. 충분히 잤어요.”
“그러니?”
망설이던 도순은 끝내 뒷말을 삼켰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 소속사로 출근을 하는 아들이 오늘은 늦잠을 잤다.
걱정이 되었지만 도순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우가 애써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보글보글. 뚝배기에서 김치찌개가 끓어오르는 소리만이 어색하게 흘렀다.
“오호? 계란말이도 반찬으로 나가요? 요즘 계란 값 비싸다고 하던데? 도순 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하긴 김치찌개에는 계란말이가 필수긴 하지.”
강우는 강우 나름대로 도순을 걱정시키기 싫었다. 그래서 쟁반에 반찬들을 담으며 일부러 요란을 떨었다.
아들의 요란에 도순도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때마침 주방 밖으로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왔는데요? 제가 나가볼게요, 도순 씨.”
반찬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곤 강우가 서둘러 주방을 벗어났다.
* * *
“…….”
반찬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는 강우가 말없이 가게 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햇빛을 등지고 익숙한 얼굴이, 불청객이 서 있었다.
“강우야.”
“…식사하러 오셨어요?”
무뚝뚝한 강우의 대꾸에 푸근한 인상의 남자도 어색한 표정을 했다.
“식사? 아직 점심 식사 전이긴 한데.”
“식사하실 거예요?”
“오랜만에 이 집, 맛 좀 볼까?”
“엄마! 간장 제육이요!”
“그래! 아들!”
주방에서 도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가 쟁반에 담긴 반찬 그릇을 다른 손님이 앉은 테이블 위로 가지런히 놓았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자리로 푸근한 인상의 남자를 이끌었다.
“여기 앉으세요.”
“제육볶음이 먹고 싶었는데… 녀석 참.”
메뉴 선택권을 박탈당한 남자가 뒤늦게 너털웃음을 머금었다.
“실장님, 매운 건 잘 못 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 집 제육 생각보다 맵거든요.”
퉁명한 대답이었지만 사실이긴 했다. 백동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강우가 서빙을 위해 주방으로 사라졌다.
“녀석, 까끌까끌하기는. 하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백동원이 가게를 둘러보았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르면서 외진 곳이었던 이 일대는 유명 번화가가 되었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신축 건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 가게만큼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백동원도 이곳에 적지 않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탁! 탁! 반찬 그릇들이 거칠게 놓이며 감상을 깨뜨려 버렸다. 백동원이 강우를 슬쩍 쳐다보며 또 너털웃음을 머금었다.
“강우, 너. 감정이 담겨 있는데?”
“그럴 리가요, 실장님.”
“아니야. 분명히 감정이 담겨 있어. 이번에 데뷔 조 떨어졌다고 나한테 시위하는 거지?”
“…….”
강우와 백동원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퉁명스럽던 강우가 더없이 진지해졌다.
“저 회사로 안 돌아갑니다.”
강우의 한마디에 시종일관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백동원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런 백동원을 쳐다보며 강우가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포기했어요.”
“…….”
백동원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강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포기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그 말. 함부로 한 거 아닙니다, 실장님.”
강우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단호함에 백동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이것밖에 안 되는 녀석이었냐? 데뷔 조에서 떨어졌다고 네 꿈을 포기하겠다고? 그것도 천하의 독종 서강우가?”
“…….”
강우가 물끄러미 백동원을 쳐다보았다. 소형 기획사였던 코인 엔터테인먼트를 지금의 위치까지 끌고 올라온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강우 역시 백동원을 믿고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동원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전 이제 너무 커버렸어요.”
자조 섞인 강우의 말에 백동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너에겐 충분히 기회가 있어, 강우야.”
“아뇨. 막연한 꿈을 좇기에는 제 머리가 너무 커버렸다는 말입니다, 실장님.”
“강우야.”
“왜요?!”
강우가 소리쳤다.
“……!”
백동원이 눈을 크게 떴다. 본래 퉁명스러운 성격이긴 했지만, 누구보다 예의 바른 녀석이 바로 강우였다.
“보세요! 보시라고요! 이게 제 현실이에요!”
강우가 손을 들어 낡고 낡은 가게를 가리켰다.
“저도 알아요. 나 같이 평범한 애들은 도처에 깔렸다는 거! 차라리 그만두라고, 재능이 없으니까 그만두고 네 삶을 찾으라고 말을 해달란 말이에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책임을 지라고요! 희망고문 그만하고!”
“…….”
백동원의 고개가 내려갔다.
수많은 기획사가 존재했고,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아무 기약도 없는 꿈을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 어떤 어른도 그 아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실패로 인해 겪는 모든 것들은 오롯이 어린 아이들과 그 가족의 몫이었다.
“그 꿈 따위 개나 줘버릴 겁니다! 더 이상 우리 엄마 고생하는 꼴 나는 못 봅니다! 못 본다고요!”
쨍그랑! 접시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주방에서 도순이 달려 나왔다.
“가, 강우야!”
“엄마?”
도순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우의 두 주먹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회, 회사 그만뒀니? 응?”
도순이 강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애처로운 도순의 표정에 강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비록 연습생이었지만 홀어머니인 도순과 동생에겐 강우가 유일한 희망이었고, 자랑거리였다. 그랬기에 강우는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이모님.”
백동원이 씁쓸한 얼굴로 도순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순이 황급히 백동원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백 실장님! 우리 아들이, 강우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네?”
“아닙니다. 강우는 그럴 녀석이 아니에요.”
“그, 그럼 왜? 우리 아들이?”
도순이 강우와 백동원을 번갈아 보며 눈물을 뿌렸다.
“…….”
백동원은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강우를 쳐다보았다.
차마 도순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아들이 부족해서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요, 엄마.”
“가, 강우야!”
털썩, 도순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
강우가 질끈 두 눈을 감아버렸다.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끝이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결국 강우가 가게를 박차고 나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미친 듯이 강우는 달리기만 했다.
* * *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공간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번 그 녀석은 너무 재미가 없었어. 안 그래?”
“그 녀석?”
“그래. 그 녀석. 그놈의 오지랖 때문에 재미가 없었다니까?”
“하긴. 그렇긴 했지. 근데 그 녀석은 요즘 뭐 하고 있는 거야?”
“유유자적, 놀고만 있던데?”
“괘씸한 놈. 하는 꼴이 가여워서 과거로 돌려보내 줬더니 신선놀음을 해? 잠깐? 저기 저 자식, 재밌는 녀석인데?”
“누구?”
“저기 저놈 말이야. 지금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지만 태생이 건방짐으로 똘똘 뭉친 자식이야.”
알 수 없는 존재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강우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