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S급 연예인 001화

내 S급 연예인
cover
내 S급 연예인

내 S급 연예인

 

 

지은이 : 고고33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19-12-11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이젠북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163-2 서경빌딩 3층

전화번호 : 032-656-4452

홈페이지 : www.chungeoram.com

                  www.ezenbook.co.kr

 

이 책은 도서출판 청어람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된 것이므로 불법복제 및 유포, 공유를 금합니다.

내 S급 연예인

1. 프롤로그

 

 

“신연희다! 신연희!”

“좀 비켜봐요!”

“같이 좀 찍읍시다!”

 

종합병원 장례식장 입구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플래시 세례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바삐 차에서 내린 스타들은 장례복마저도 옷맵시를 뽐내며 슬픈 얼굴을 숙인 채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쓰러져 있었다네요. 심근경색이랍니다.”

“심근경색? 복상사 아니야?”

 

드라마와 예능을 오가며 활약 중인 스타급 여배우는 기자들을 지나치기 무섭게 비꼬는 말을 쏟아냈다.

 

“누님, 보는 눈 많아요.”

 

아연실색한 매니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말렸다.

 

“이것도 간신히 참고 있는 거야. 맘 같아서는 여기 확 뒤집고 싶거든?”

“누님!”

“야, 솔직히 여기서 최고남한테 이 안 가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어?”

 

투덜거리며 영정 앞에 선 그녀는 고운 얼굴에 인상을 썼다.

나쁜 년. 은혜도 모르는 것 같으니라고.

죽은 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내 장례식장을 떠돌고 있다.

흔히 말하는 영혼 상태로.

아까는 혹시나 싶어 연매협 관계자들 앞에서 엉덩이춤도 춰봤는데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여배우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보고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나’라는 드라마의 엔딩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해피 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운 정도는 남는 인생일 줄 알았다. 그러나 여태 지켜본 바, 이건 비극이고 최악의 새드 엔딩이었다.

여기에 서서 나를 보는 스타들은 하나같이 불만투성이였다.

혹 그게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마음이 똑같겠어, 동고동락을 했어도 누구는 고마워하고 누구는 싫어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내가 지들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스타 만들어줬잖아? 돈 많이 벌게 해줬잖아?

저기 앉아 육개장이나 처먹고 있는 놈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이미 여기 한 바퀴 돌면서 상을 뒤집어엎었다. 결국 나만 지쳤지만 말이다.

젠장. 영혼도 체력이란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정말 모르겠나?]

 

여태 만나왔던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목소리의 파동이 범상치 않았다.

 

“너 누구야?”

[저승사자다.]

 

내가 생각한 저승사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슨 놈의 저승사자가 정장을 쫙 빼입었질 않나, 얼굴은 스물도 채 안 돼 보일 만큼 앳되어 보였다.

내 시선이 께름칙했는지 청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설마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는 뭐 그런 거 생각한 건가? 트렌드에 빠져 사셨으면서 보기보다는 고지식하네.]

 

얼굴 창백한 것 하며 목소리 서늘한 거 보니 맞네, 저승사자.

결국 올 게 온 모양이다.

나는 체념하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혼잣말하듯 물었다.

 

“이제 가야 하는 건가?”

[더 있다 가고 싶나? 어차피 망자를 위해서 눈물 흘려줄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누굴 기다리는 건가?]

 

은근히 빈정대는 말투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속마음을 들키는 것은 사양하고 싶어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아까 그 말은 뭐야. 정말 모르겠냐는 말.”

[잠깐. 저도 급하게 연락받고 온 거라서.]

 

저승사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뭐 찾는 거냐?”

[망자한테 해줄 말.]

“참네. 요즘은 저승사자도 대본 들고 다니네.”

 

저승사자 꼴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실소했더니 저승사자는 빈정 상했는지 이맛살을 접고 구시렁거렸다.

 

[망자의 생이 그 시작부터 명부에 미리 적히듯, 이 순간 망자에게 해야 하는 말도 적혀 있다. 단어 하나 틀리면 죽음이 무효가 될 수도 있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정말 반가운 소리일까? 죽음이 무효가 되면 몸뚱어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떠돌이 귀신 되는 거야. 재수 없으면 지박령이고. 천지개벽하면 강시 되는 거지.]

“너 근데 몇 살이냐? 내가 그래도 액면가는 너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데.”

[저승사자는 생의 기억이 없다. 아, 찾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독백을 읊던 저승사자는 금세 표정이 바뀌더니 손바닥만 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왜 당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얘기해 줄게.]

“뻔한 거지. 나한테 서운한 게 있었겠지. 근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다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잖아? 백번 천번 고마워해야지. 내 덕에 스타 되고 내 덕에 건물 올렸으면 말이야.”

[누구나 저마다의 변명은 있다.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게 어떻게 변명일까.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명부에 내 죽음이 적혀 있다면 내가 살아온 과정도 적혀 있을 것 아닌가. 그걸 보라고.

 

[당신은 저들 중 누구도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어. 왜냐하면 당신은 한 번도 저들을 인간으로 대한 적이 없으니까. 그저 상품일 뿐이었지.]

“그게 뭐? 연예인은 상품이야. 그것도 엄격하게 등급이 나뉘어 있는. 저기에 최고 등급으로 태어난 놈이 있어? 다 B급, A급인데 내가 데려다 키워서 최고 등급 받은 애들이라고!”

[이기적이네, 당신.]

 

이기적의 반대말은 호구다.

나는 착한 척 위선을 떨며 이용만 당할 바에야 개쌍마이웨이로 사는 걸 택했다.

 

[저기 있는 남자애 보여?]

 

저승사자가 삐딱하게 앉아서 손을 쭉 뻗었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잿빛 머리의 가수가 보였다.

내 덕분에 오디션프로그램에 나가서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고 데뷔해서 성공했다. 안 그랬으면 데뷔도 못 했을 거다.

 

[그 오디션프로그램, 조작이었지. 아마?]

“원래 다 그렇게 해. 그리고 내가 했어? 피디가 했지.”

[동조했지. 조작 오디션프로그램으로 데뷔하지 않았으면 저 친구는 유명한 배우가 될 운명이었어. B급, A급? 당신 아니었으면 S급 생을 살 운명이었어. ‘조작 아이돌’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지금보다는 백배 더 행복했을 테고.]

 

운명이란 고지서가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고 설계를 하나.

정말 그런 날이 온다 해도 그건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딕션도 엉망인 놈이 무슨 배우를 하겠어.

 

[저 작가는 어떤 것 같아?]

 

안경 쓴 여자가 보인다. 스타 작가인 그녀는 떠들썩한 자리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분명 또 원고를 고치고 있을 테지.

 

“저 작가는 악덕 매니저의 비판으로 트라우마에 결벽증까지 걸렸지. 아니면 이번에도 그때의 비판 때문에 스타 작가가 된 거라고 항변할 건가?”

 

이번에는 나도 침묵했다. 그녀에게 과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오래전 내 직언이 없었어도 그녀는 넘치는 재능으로 언젠가는 성공했겠지.

그런데 나와 만난 이후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게 됐다.

고치고 또 고친다.

주변 사람들이 말려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원고를 뜯어고쳐서 결국에는 좋은 작품을 완성했지만 과도한 집착은 그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 자리에 없는 친구들도 얘기해 볼까?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어느 꼬맹이의 얘기는 어때?]

“그만해.”

[당신이 신인 애들 끼워 넣기 한 탓에 기회를 잃은 사람들의 얘기는?]

“그만하라니까.”

[당신 욕심 때문에 스캔들만 얻고 연예계를 떠난 친구는?]

“그만하라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저승사자를 노려봤다. 이를 악무는데,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왔네,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

 

저승사자는 천천히 옆으로 비켰고,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본 순간, 나는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쳐 버렸다.

오래전, 데뷔와 동시에 스캔들이 터져서 연예계를 은퇴한 신인배우가 있다.

나는 그때 그녀가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악플과 기레기들의 조롱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연예계를 떠나 버렸다.

빛나는 재능이 내 욕심 때문에 꺾였다.

 

“사장님.”

 

오래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나를 불렀다.

여전히 고운 그녀의 얼굴에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처음이군. 오늘 당신을 위해서 울어준 사람.]

“이제 가자. 저승이든 지옥이든.”

 

나는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면서 속삭였다.

널 봤으니까, 더 이상 미련 따위는 없다.

남은 사람들이 복상사라고 지껄이든 악덕 매니저라고 지껄이든 이젠 상관없다.

그런데 저승사자는 꿈쩍 않고 내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

“무슨 개소리야? 내 몸뚱이 여기 영안실에 있는 거 몰라?”

[내 말은, 당신을 얘기하는 거다.]

 

저승사자의 손가락이 가리킨 나.

육체는 사라지고 영혼만 남은 나.

 

“영혼?”

 

저승사자의 미소에서 비릿한 냄새가 확 풍긴 순간, 내내 거만해 보였던 저승사자가 태도를 싹 바꾸었다.

 

[팬입니다! 최고남 망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