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악인
— 정원교 —
1화. 서장(序章)
천마가 어떻게 생겼느냐면 바로 이렇게 생겼다.
일단 사대신장처럼 단단한 체격을 소유했다.
송충이처럼 생긴 눈썹에 가려진 독살스러운 눈초리, 꽉 다물린 입술에서 잘근잘근 씹히는 반백의 수염, 얼음장처럼 투명한 얼굴.
인상 자체가 험악해 외관상으로도 녹록하지 않게 생겼다.
한기가 서린 눈동자에선 비정함과 활력이 뒤섞인 상태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었다.
과연 풍운이 깃든 천마교를 다스리고도 남을 정도로 위엄이 저절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 천마가 무림연맹의 맹주인 운양진인(雲陽眞人)의 모가기를 일주일간의 싸움 끝에 효수했다.
천마는 그렇게 종전(終戰)의 서막을 세상에 알렸다.
이젠 천마교의 전통에 따라서 움직이면 되었다.
지옥이라 불리는 개미굴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곳만 통과하면 역대 천마교의 교주들이 그랬듯이 천마도 교주에 등극할 것이었다.
천마가 제단에 맹주의 목을 올려놓았다.
환호를 받았다.
원로원의 원주는 마사(魔師)였다.
백팔 장로의 주교는 금성(金星)이란 살수다.
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천마가 개미굴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돌연 원로원의 원주인 마사가 천마교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천마장(天魔掌)으로 배후(背後)를 급습함과 동시였다.
사방팔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이 이뤄졌다.
천마는 피하지 못했다.
금강불괴를 연성한 몸이었다.
도검이 침범하지 못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의 몸엔 신병이기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커―억!”
천마가 비명을 터뜨리며 놀란 만큼 뒤로 물러섰다.
허공으로 장막을 형성하는 무형살기.
마음을 독하게 먹었는지 진중했던 그의 모습이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치렁치렁 늘어졌던 머릿결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넉넉하면서도 부리부리했던 눈동자에서는 시퍼런 광채가 뿜어지고 있었다.
번개처럼 허공으로 한자쯤 떠오른 천마.
그의 손에는 어느새 시퍼렇게 칼날이 잔뜩 세워진 천마교의 병기인 부월(斧鉞)이라는 도끼가 들려져 있었다.
핏물이 튀었다.
천마를 공격했던 자들의 모가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천마의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가슴에서 핏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땅바닥이 바글바글 들끓었다.
황금빛으로 불타는 꽁지를 지닌 불개미들이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천마를 덮치기 시작했다
불개미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천수만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나와 들끓는데 남아나는 물체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천마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바윗돌마저 모래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이빨을 지닌 불개미들이다.
순식간에 천마의 몸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물고 늘어졌다.
“마사(魔師). 네놈이 배신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원로원의 원주는 강아지처럼 꽁지를 사리고 물러났다.
천마는 죽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용감했다.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리고 철로야. 나는 말이다. 금강불괴라서 화독은 전혀 무섭지 않단 말이다. 더군다나 무형살기를 대성했기에 간지러워서 네놈의 행위가 가소롭기만 하구나.”
천마가 큰소리를 쳤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고 있었다.
불개미들이 전신을 물고 깨무는데 견딜 재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간지럽고 몸서리쳐지도록 따끔거렸다.
나중에는 살결이 부패하는지 물집이 생기며 부어올랐다.
개미들은 잔인하도록 집요했다.
눈코입과 귓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지경으로 지독했다.
정말 사람으로서 인내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순간이었다.
철로가 불개미에 휩싸인 천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도 무형살기를 공개하는데 변함이 없으십니까?”
철로의 질문을 받은 천마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철로야, 무림 통일을 시키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교주, 당신은 바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속았단 말입니다.”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법은 무형살기다. 공개해서 두려움을 달래야만 나를 따르겠다고 약속했었다.”
“고육지계입니다. 그들은 천마교를 공격했단 말입니다.”
“무… 무슨 소리냐? 설마 그들이 배반이라도…….”
“흥? 그저 가만히 있었다면 제왕처럼 살았을 겁니다. 무형살기가 공개되면 천마교가 힘을 잃게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교주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데 어떤 부관이 가만히 있습니까. 그런 심정을 헤아려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무형살기는 나만이 연성했고 내가 완성한 절기다. 천마교와는 상관이 없는 일인데 어찌 공개할 수 없단 말이냐?”
“그래서 천마교는 들끓었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교주라고 해도 소관은 좌시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전쟁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천마교가 멸망할 정도로 싸웠다. 이젠 저들을 죽일 명분이 없어.”
“이유가 무엇이 됐든지 당신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고, 오늘로 천마교를 배반한 죗값으로 죽을 겁니다.”
천마가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하늘에 꽃을 피운 성운(星雲)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듯이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릿결 사이로 철로의 얼굴이 비쳤다.
그가 흠칫 몸을 떨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천마가 입안으로 새까맣게 몰려든 불개미를 토해내었다.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아직 할 일이 많다.”
“교주는… 그만하면 모든 꿈은 이미 이뤘습니다.”
“아니다. 아직도…. 하핫, 그래. 태산처럼 많은 일은 자네가 나중에 이뤄주시게나.”
천마는 허허롭게 웃었다.
저들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천생을 누렸으면 우화등선이라도 해야 마땅했다.
말년을 조용히 끝내는 모습들이 역대 교주들이 행하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망할 놈의 원로는 그런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제삼의 교주를 만들고자 천마에게 형벌을 내렸는데 하필이면 개미굴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껍질만 남은 천마는 고루(骷髏)로 변하게 될 터였다.
“원로원주, 네놈은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의주가 탐나서 나를 죽이려는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을 것이다.”
천마가 단전에 머무르는 여의주를 관조(觀照)했다.
물론 평생에 연마했던 무형살기로 살살 건드려 보았다.
역시 생각한 대로다.
단전이 얼얼했고 무형살기를 흡수하며 뼛골이 부서졌다.
‘여의주는 천지조화를 부린다고 했어. 원주에게 여의주를 빼앗기기 전에 내 것으로 만들어 놔야 한다.’
천마는 불개미를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려면 우선 불개미로 여의주를 조각내게 만들어서 흡수당한 무형살기를 되찾아야만…….’
천마는 마지막 남은 진기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육신이 조각났듯이 여의주를 조각내기 위해서다.
발바닥으로 이동시키려고 무진장 애를 쓰기 시작했다.
갑자기 뼛골에서 와두둑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기체가 기경팔맥을 꿰뚫었다.
여의주를 어렵게 발바닥으로 겨우 밀어낼 수가 있었다.
돌연 발바닥이 찢어지며 개미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그때부터다.
등덜미의 혹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기경팔맥에서 살기가 진동하며 전신으로 퍼졌다.
동시에 전신에 새까맣게 달라붙었던 불개미가 퉁겨지며 죽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천마였다.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이 완전히 개방되도록 용을 쓰면서 무형살기를 힘차게 뽑아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런 천마의 몸뚱이는 완전히 해골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살점과 근골은 불개미의 화독에 녹아서 사라지고 없었다.
미약하게 남겨진 진기로 인해서 신병이기로 꿰뚫린 오장육부가 투명하게 보였다.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붉은 핏물이 혈관을 따라서 힘차게 굽이치고 있었다.
‘이건 꿈이야.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아. 아무리 원로들이 강해도 이렇게 형편없이 당할 수 없단 말이다.’
천마는 이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천마의 인생은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모든 사건을 해결했었다.
능력을 서서히 인정받았다.
천년의 역사를 통해 천마교에서 유일하게 장로들의 만장일치로 교주로 추대된 천마였다.
그의 이름은 신화였고 행동은 역사였으며 방침은 전설이 되었다.
혹자는 그를 살성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그를 운명을 개척한 영웅이라 불렀다.
그의 출신은 미천하고 삶은 힘겨웠으나, 그는 끝끝내 모든 난관을 극복했다.
마침내 그는 누구나 꿈꾼다고 알려진 최고의 자리인 천마교란 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전지적인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오늘은 무림의 공적으로 내몰린 상태였다.
그리고…….
불개미에게 죽어가고 있었다.
“철로야, 초롱은… 그녀는 어찌 되었느냐?”
천마의 뜬금없는 질문에 철로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의 여자여서 일찌감치 저승으로 떠났습니다.”
“그랬겠지. 배신하기엔 가슴이 너무나 여린 여자였다.”
천마는 초롱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렸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섰던 여자였다.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초롱이란 창을 찌르고 죽었다면…….
그게 그녀의 사랑 표현이라면 가슴이 허허롭다.
“초롱이 있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지 않은가, 철로야.”
천마의 입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교주만을 사랑하는…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였습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서 환생해 교주를 찾아갈 겁니다.”
철로가 만신창이로 변한 천마교의 교주인 천마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고 있었다.
“철로야,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하면 너를 살려주고 싶다만, 저들을 동원한 이상에는 별수가 없다.”
철로가 악을 쓰듯이 말했다.
“곧바로 뒤따라갈 것이니 자리나 잡아 놓으시죠.”
철로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천마를 죽이기 위해서 모인 절정고수들…….
그것마저 불안해서 무형독자의 무형지독(無形之毒)까지 준비해 중독시킨 상태였다.
그런데도 결과가 겨우 이거였다.
“철로야, 다음 생에 태어나면 배반하지 말고 잘살아라.”
철로는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무림의 절정고수들이 합심해 펼쳤던 오행검진도 깨졌다.
이젠 살아서 기회를 엿보는 자는 겨우 열 명 남짓했다.
나머진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철로가 아니고 누가 보아도 천마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태였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불개미들이 살점을 파먹고 뼈다귀만 남은 상태라서 절명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거기다가 대라신선이라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독에 중독된 상태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봐도 천마의 명운은 이미 정해진 것과 진배없었다.
하지만 철로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살기에 뒤덮인 상태였다.
신경에 거슬린 듯 두려움에 젖어서 천마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놀라면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미… 따라간다고 말하지 않았소?”
“아니다. 너만큼은 남아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제기랄! 아무리 교주라도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입니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외롭지 않게 따라간단 말입니다.”
“죽을 준비가 끝났으니까 이젠 마지막으로 공격하겠다.”.
천마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장내가 술렁거렸다.
눈앞에 있는 천마는 이미 숨이 끊겨 가고 있는 사람이다.
아니,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덤벼들지 못했다.
죽어가는 천마가 무서워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천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가슴에 박힌 청사초롱을 손으로 매만지는가 싶었다.
갑자기 천마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사방에서 기회를 노리던 고수들의 목이 우수수 떨어졌다.
“커―억!”
“으―악!”
그런 장면을 목격한 철로의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그동안 주군을 모실 수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철로는 망설이지 않았다.
손에 들린 비수로 가슴의 사혈을 찔렀다.
피가 샘물처럼 뿜어졌다.
천마가 소리쳤다.
“안 돼! 자네만이라도 살아서 사람답게 살아야지…….”
천마가 비틀거리는 철로를 부축해 안으며 소리쳤다.
“난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란 말이다. 환혼대법으로 공간이동을 시도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그만이야.”
천마는 전력을 다해서 환혼대법을 펼쳤다.
그러자 몸에서 오색의 무지개가 뭉실뭉실 솟아 나왔다.
그렇게 천마는 광채 속으로 서서히 젖어 들며 마지막 숨결을 몰아쉬었다.
“재미라고는 정말 눈곱만치도 없는 인생살이였어…….”
천마는 죽음 직전에 공간이동을 시도하며 사라졌다.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희뿌연 광채만 남겨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