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신안은 만능입니다 001화

용사의 신안은 만능입니다(650)

 






용사의 신안은 만능입니다

— 츄니오빠 —

1화. 성녀의 계시




2000년 전.

가이아 대륙 전역을 피로 물들였던 성마대전.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과 용사가 격돌했다.


“어둠은 빛을 삼킬 수 없나니……!”

처억.


용사가 하늘 높이 성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찬란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내렸다.


촤아아―


어둠을 헤치고 지상에 강림하는 빛.

창조신 엘로드로부터 임하는 성스러운 힘.

온 세상을 구원할 희망이 성검 엑스칼리버에 깃들었다.

세계를 파괴하려는 마족과 몬스터.

삶을 지켜내려는 가이아 대륙의 모든 종족들.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가이아 대륙을…… 이 세상을 지켜주시게!”


지금 이 순간.

성검에는 가이아 대륙 모든 이들의 힘이 담겨있었다.

드워프의 제련으로 만들어진 성검에.

엘프의 정령이 깃들고.

수인의 오러가 휘감겼다.

마지막으로 드래곤의 마법까지도!


“가거라, 용사여! 세상을 구하라!”


용사가 성검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찬란히 빛나는 광휘의 검에는 가이아 대륙에 사는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빛이여! 흑암을 멸하라!”

후우우웅―


하늘까지 닿은 빛의 검이 세상을 반으로 갈랐다.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황금빛은 어둠을 살랐다.

칠흑 같은 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어두운 밤.

그 끝에서 여명의 빛이 비춰 오고 있었다.


파아아아앗―


“크윽…… 젠자아아앙!”


마왕은 남아있는 모든 흑마력을 쥐어 짜냈다. 그러자 그가 쥐고 있는 검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츠츠츠츳―


하지만 검신에는 이미 여기저기 실금이 가고 있었고, 마왕이 품고 있는 어둠은 찬란하게 빛나는 용사의 검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미했다.


번쩍!


마침내, 찬란하고 거대한 빛의 검이 마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끄아아아악!”


찬란한 황금의 빛은 어둠을 사르고, 마왕의 육체는 어둠과 함께 힘없이 스러졌다.


“아아, 마왕이시여…….”


동이 트는 것을 본 순간, 살아남은 어둠의 파편은 도망쳐야 했다.


“크윽……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온다! 반드시……!”


마족들은 이를 갈며, 암흑의 땅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가이아 대륙 북부에 위치한 죽음의 땅이었으며, 창조신 엘로드에게 반역한 악신 루시프를 섬기는 이들이 거주하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용사는 암흑의 땅과의 접경지대에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거대한 성벽을 세웠다. 그리고 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제국을 건설했다.

신성제국 카를로스를.


*  *  *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는다.

이것은 진리.

창조신 엘로드가 정한 자연의 섭리.

죽음의 순간은 용사에게도 찾아왔다.

임종 직전, 그는 예언을 남겼다.


“마왕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폐,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하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설명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너희는…… 용사를 기다려라.”

“캄캄한 밤, 마왕이 나타날 때…….”

“용사 또한…… 다시 오리라.”


이 말을 끝으로, 용사는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 이후, 후손들은 예언대로 용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용사는 오지 않았고, 유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예언은 서서히 잊혀갔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용사재림의 예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엘로드 교단의 성녀 세실리아.

그녀에게 신의 계시가 임했다.


『곧 거대한 악의 때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불꽃같이 너희를 살피고 있나니.

예언의 용사가 나타나 어둠을 멸하고,

진정한 왕이 되어 이상세계를 이루리라.』


“아아, 이제 곧 용사님이…….”


성녀는 이 사실을 대륙의 핵심 인물들에게 알렸다. 그들은 제국의 황제와 교황, 마법왕국의 대현자, 삼왕국의 왕들이었다.

가이아 대륙은 발칵 뒤집혔고, 그들은 성녀의 얘기를 듣기 위해 회담을 가지기로 했다.


*  *  *


오래된 낡은 벽돌로 만들어진 캄캄한 지하통로.

이곳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뚜벅뚜벅……


인기척의 주인은 불룩 튀어나온 똥배와 푸근해 보이는 볼살과 턱살이 특징적인 사내였다.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교황이었다.


그가 한참 동안 지하통로를 걷자, 한가운데에 방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누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쯧쯧, 늦으셨소.”


놀랍게도, 그는 카를로스 제국의 황제였다. 그가 윤기 넘치는 백금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핏빛처럼 섬뜩하게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황제는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교황께서는 성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폐하,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요?”


교황은 화들짝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입에서 폭탄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성녀가 거슬리지 않느냐는 말일세.”

“폐하?!”


교황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쿵쾅쿵쾅.


심장이 놀란 망아지마냥 미친 듯이 뛰었다. 흔들리는 눈빛은 마치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황제는 그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웃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후후후, 우리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세.”

“무, 무엇을 말입니까?”


교황은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듣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귓가에 들려오는 유려한 음성은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했다.


“자네는 교황일세. 엘로드 교단의 황제라는 말이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운을 뗀 황제. 그가 교황이 심적 대비를 할 틈도 없이 훅 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성씨도 없는 평민 계집한테 휘둘려야 하는가?”

“폐하!”


이는 탐욕스러운 교황의 역린과도 같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대륙 전역에 성세를 이루고 있는 엘로드 교단의 교황이라면?


부들부들……


분노한 교황의 볼살이 파르르 떨려왔다.


“지금 본인을 조롱하시는 것입니까?!”


후덕해 보였던 인상이 불쾌감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황제의 한 마디가 쓰나미처럼 이 모든 감정들을 덮어버렸다.


“그게 아닐세. 성녀를 죽이자는 얘기지.”

“……?!”


이 말을 듣고 교황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가 충격과 혼란이 뒤섞인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봤다. 그 눈빛은 ‘이 새끼가 지금 돌았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발언이 진짜라면, 수년간 자신이 그토록 염원했던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이 작자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교황은 할 수만 있다면 황제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훤히 읽기라도 하듯, 황제가 먼저 속내를 털어놨다.


“짐은 그 계집이 매우 거슬리네.”

“……왜 그렇습니까?”

“이 나라의 최고 존엄은 짐인데, 한낱 평민에 불과한 계집의 목소리가 짐보다 더 크지 않은가.”

“그건…….”

“뿐만이 아닐세. 계시에 의하면, 용사가 나타나서 왕이 된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황제의 질문에 교황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물음에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황제가 ‘진심’이라는 것.

교황은 혼란스러웠다.


“하, 하지만…… 성녀가 아무리 평민이라고 해도, 엘로드께서 성녀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어허, 답답한지고. 신의 능력과 은총은 교황께서도 받을 수 있지 않나? 다른 사제들도 있고.”

“물론 맞는 말씀이시긴 합니다만…….”


교황이 계속해서 간을 보자, 황제는 조금 더 세게 흔들어보기로 했다.

재료는 충분했다. 탐욕스러운 자들은 뒤가 구리기 마련이고, 자신은 충분한 뒷조사를 했으니까.


“짐은 그동안 교황께서 음지에서 하신 일들을 알고 있네.”

“그, 그게 무슨……?”


교황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발 아니기를 바랐으나, 황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역시나 자신이 우려하던 얘기들이었다.


“공금횡령은 너무 많아서 말할 것도 없고, 인사 비리에 권위를 앞세워 수녀들과 재미를 보기도 했고?”

“히, 히이익?!”


교황의 낯빛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폐하?! 어찌 본 교황한테 그런 무례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기보다, 발끈하며 화를 냈다.

황제는 중간에 그 말을 뚝 잘랐다.


“내 교황을 탓하고자 함이 아닐세.”

“예……?”

“문제는 성녀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

“……?!”


황제는 교황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성녀가…… 다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네. 지금 교황을 치려고 물밑에서 한창 준비 중이지.”

“그, 그럴 수가…….”


충격과 실의에 빠진 교황을 보면서 황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으음? 설마 몰랐는가?”

“…….”


교황이 알았을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나고 있지 않았으니까.


“성녀…… 그 빌어먹을 계집년이!!”


교황의 후덕하고 인자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황제는 조용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황제는 원하던 뜻을 이루었고―


사흘 뒤.

성녀가 죽었다.


*  *  *


가이아 대륙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제국과 각 왕국의 정상들이 즉시 한자리에 모였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먼저 마법 왕국에서 물었다. 그러자 삼 왕국의 시선이 황제와 교황에게로 쏠렸다.

두 사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성녀께서는…… 한밤중에 잠깐 밖에 나와 계셨다가 변을 당하신 것 같소.”

“흉수는 누구요?”

“악신숭배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악신숭배자.

인간을 배신하고 마족들의 주구가 된 자들이었다.


“아무래도 계시 때문에 움직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본 제국은 교단과 협조하여 철저히 진상을 밝힐 것이오.”

“허허…….”

“크흠…….”


황제가 진지하고 심각한 어조로 선언했다. 그러나 능구렁이 같은 황제를 어찌 순순히 믿을까.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누군가 거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하!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뒤에서는 뭉개려는 수작이 아니고?”


덥수룩한 수염이 나 있는 거구의 사내.

용병왕이었다.

나머지 세 왕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표현은 좀 거칠었지만, 속은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 못 믿겠거든, 각 왕국에서는 본국과 함께 조사할 사람들을 보내주시오.”

“뭐라고……?!”


뜻밖의 제안.

왕국들은 당황했다.


‘무슨 속셈이지?’


그들은 황제의 속을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왕국들에게 너무 유리한 조건.


“……황제의 배려에 감사드리오.”

“후후후, 천만의 말씀을.”


결국 왕국들은 황제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렇게 주요 안건 하나는 일단락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계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이 부분은 교황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갔다.


“용사를 찾아야지요.”


교황은 다 계획이 있었다.

황제와 함께 세워놓은 계획.


“용사는 성흔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 교단에는 초대 용사가 사용했던 성검이 꽂혀있지요.”

“그러면 성흔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검을 뽑으면 용사인 것이오?”

“맞습니다.”


그가 더욱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각국에서는 용사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모두 대신전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교황이 검증하겠다고 했다.

용사인지, 아닌지.


제국과 왕국들은 모두 동의했고, 회담은 이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