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는 전직 사기꾼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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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나는 사기꾼이다.

단순히 사기꾼이라고 하면 착한 사람들 등쳐먹고 사는 놈으로 알 테지만, 그렇게까지 쓰레기 인생은 아니다.

내가 타깃으로 삼은 놈들은 똑같은 사기꾼들이거나 범죄를 일삼는 놈들이니까.

그리고 나름…… 그들에게서 뜯어낸 돈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줬으니 스스로는 그렇게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이현수……. 이 개 같은 X끼가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나는 형사들에게 붙들려 가는 임태산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빵에 가서는 제발 착하게 좀 사십쇼. 워낙 걸린 게 많아서 빨리 나오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이 개X끼……!! 개가 감히 주인을 물어?”

“내 목줄을 언제부터 회장님이 쥐고 있었어요, 이 X끼야.”

“저, 저……!”

“그러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질라. 살펴 가십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회장실에서 끌려 나가는 임태산을 바라보았다.


‘오래도 걸렸다.’


사기꾼과 범죄자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임태산과 연결 고리를 만들고, 그 밑으로 들어가 임태산의 개 노릇을 한 지 벌써 10년이었다.


‘십X끼.’


그사이에 늘어난 것은 욕밖에 없는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죄다 저열한 비속어뿐이었다.

나는 임태산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회장실에 남아서 감정을 추슬렀다.

사기꾼이 되어 범죄 세력 중 최고라고 불리는 조직의 두목 임태산과 접촉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임태산 밑에서 놈을 확실하게 보내 버리기 위해 준비한 기간은 10년.

성인이 된 이후 꼬박 15년의 세월을 꼬라박고서야 나는 비로소 복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고아가 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똑같이 진흙탕에 구르는 것뿐이었으니.


“후련하냐?”

“아, 태일권 형사님.”


그리고 그 복수에 꽤 많은 도움을 줬던 이가 지금 뒤에서 말을 걸어온 태일권 형사였다.

뭐, 나도 임태산 같은 거물을 넘겨줬으니 빚을 지고 있다는 기분은 절대 아니었다.


“형사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하라니까 말은 드럽게 안 들어요.”


태일권은 피식 웃으며, 고급 가죽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그의 흙 묻은 신발이 갈색 소파를 더럽혔다.


“그거 비싼 건데, 막 밟지 마세요.”

“이게 네 거냐? 왜? 임태산 보낸 김에 회장 자리 차지하게?”

“그럴 리가요.”


나는 씁쓸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연예계랑 관련된 자료는 대부분 소실됐죠?”

“어. 몇 개 중요한 자료는 DB까지 싹 날렸더라.”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예계 쪽을 포함해 중요 자료 몇 건은 임태산이 압수수색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태워 버렸다.


“아쉽네요. 범죄자 X끼들 한 번에 처넣을 수 있었는데.”


내 말에 태일권은 낄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회포 풀었으면 이제 가 봐.”


그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부모님 복수는 끝났잖아. 어디 가서 술 한잔하고 있으면, 나도 일 끝나고 갈게.”

“그래 놓고, 수갑 들고 와서 나도 엮을 건 아니죠?”

“내가 그렇게 쓰레기로 보이냐. 기사에도 이모 씨의 협력 덕분이라고 써 달라고 부탁까지 할 생각인데, 짜식이.”


태일권은 피식 웃으며 다시금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임태산이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들, 그 피해자들까지 다 챙겨 줘요. 잊지 말고.”

“잔소리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길로 복수의 마지막 여정을 위해 차를 몰고 경기도로 향했다.

부모님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적막감을 달래기 위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임태산과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채, 사기, 불법 하우스 운영, 살인 교사 등등.


“많이도 저질렀다.”


임태산의 신임을 얻어 그의 오른팔이 된 나는 저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태일권에게 넘겨줬다.

막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임태산의 모든 비리 증거를 모아서 놈이 절대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임태산이 가진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사태를 크게 키우는 것.

일개 사기꾼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결국…… 나도 죄가 없는 건 아니지.”


피해자들의 눈에는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보일 거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내가 임태산의 악행을 이쯤에서 멈추게 했다는 정도면 됐다.

내가 아니었으면 임태산은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고, 놈의 자식들이 일을 이어받아 또 그렇게 피해자들을 양산했을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 앞으로는 속죄하며 살아가야지 뭐.


꾸욱―.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앙―!!


옆에서부터 들어온 강한 충격에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드레일을 우그러뜨리고 밀려난 차. 당연히 그 안에 타고 있던 내가 멀쩡할 리 없었다.


“……으……. 으으.”


나는 거의 축 늘어진 채 눈동자만 굴려서 왼쪽 창문을 바라보았다.

내 차를 들이박은 것은 검은색 밴이었는데, 곧 그 차의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흉기들을 확인하고 나는 올라가지도 않는 입꼬리로 웃었다.


“흐으……. 흐.”


배신자를 처리하겠다고 왔구나.

임태산이 잡혀 간 게 고작 몇 시간 전인데, 일 처리가 참 빠르기도 하지.

끈적끈적한 피가 이윽고 흐릿한 시야마저 뒤덮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하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는 씁쓸한 감정이 앞섰다.

그때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어머니가 우울증을 참으며 힘들게 일하시다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내가…… 복수를 하겠다고 사기꾼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조금은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삶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누구나 겪는 일들을 겪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인생 말이다.


“처리해.”


나는 귓가에 윙윙대며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푸욱―.


날붙이가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생경하게 느껴졌다.

…….

그렇게 숨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멀어지는 듯싶더니, 눈앞에 이상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 카르마(업) 수치 : 0 』

『 인간 이현수는 죽은 시점의 카르마 수치가 0이므로 별이 되어 어떠한 특정 성단에도 소속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 성좌 후보의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

『 칭호 : ‘성좌 후보’를 얻었습니다. 』


어두컴컴한 시야에 하나둘씩 작고 하얀 빛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밤하늘 위로 흩뿌려진 은하수 같았다.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또다시 이상한 것들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성좌 후보에 수많은 성단에서 흥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 ‘역대 최고의 극작가’가 이현수를 굽어봅니다. 연기자의 재능을 확인하고 펜을 듭니다.

― ‘하늘을 베어 낸 무신’이 손수건으로 칼을 닦아 냅니다. 검의 재능을 확인하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립니다.

― ‘악보의 창시자’가 벌떡 몸을 일으킵니다. 자신도 그렇게 성좌가 되었다며 반가워합니다.

― 정치의 재능을 확인한 누군가가 웅변을 토하기 시작합니다.

…….


뭐야, 이건?

죽기 직전이라 환영이라도 보는 건가?

내가 어이없다는 듯 텍스트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번에는 또 새로운 녀석이 등장했다.


― 성좌 후보 도우미 ‘베리’가 등장합니다.


[ 이대로 아무 세력도 선택하지 않고 죽는다면, 영혼의 소멸이 진행될 거담. ]


성좌 후보 도우미 베리의 말은 텍스트의 형태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 반대로 성좌 후보가 되면 영혼의 소멸은 자동적으로 미뤄진담. 세력을 선택하고 성좌 후보가 되면, 새로운 삶을 통해 업을 쌓아서 성좌가 될 수 있짐. ]


나는 베리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성좌니 성단이니 하는 말들은 예전에 심심할 때 읽었던 소설에나 나오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용어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으나,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삶과 업이라.


[ 10분 남았담. ]


다시금 들리는 베리의 말에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여긴 부분을 물었다.


“그렇게 해서 성좌가 되면…… 뭐가 좋지?”


솔직히 영혼의 소멸이란 말이 무섭게 느껴지기는 해도 딱히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느냐.

비현실 속에서 현실을 찾고 있다니 퍽 우습기는 하지만, 이것이 한낱 죽기 직전의 환영이라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성좌가 되었을 때의 혜택은 없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 당연히 있담. 성좌가 되면 쌓은 업에 비례하는 ‘소원’을 빌 수 있짐. 물론 성좌 자체로서 가지는 힘도 있담. ]


성좌가 되었을 때의 힘은 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소원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소원이면 원하는 건 어떤 것이든 가능해?”

[ 쌓은 업이 얼마인지에 따라 다르짐. 뭘 원하냠? 가능성의 여부 정도는 내가 판단해 줄 수 있짐. ]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가장 처음 시야에 들어왔던 텍스트. 별이 되어 특정 성단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것.


“보통의 인간들은 별이 돼서 성단에 소속되는 건가?”

[ 그렇담. 쌓아 온 업의 양에 따라 소속되는 곳이 다르짐. 죽은 영혼의 상태, 그렇게 생각하면 된담. ]


죽은 영혼의 상태……. 적어도 성좌와 같은 상태는 아니다. 나는 베리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성좌가 되었을 때, 내 부모님을 성좌로 만들 수도 있나?”

[ 성좌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성단 소속의 주민으로서 살아가게 할 수는 있담. 원래 주민이 되기 위해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특별한 업을 쌓아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을 네가 소원으로 빈다면…… 가능은 하담. ]


그 말인즉슨, 부모님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이야기.

성단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두 분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주먹을 꾹 쥐고 있으니 베리의 말이 이어졌다.


[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하나밖에 없담. 다른 성단에 소속된 별은 소원이라고 해도 옮겨 갈 수는 없으니깜. ]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베리의 말은 계속되었다. 남아 있는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마침 두 분의 카르마 수치가 비슷해 속해 있는 성단이 같담. ‘예술가들의 정원’이라는 성단이담. 다행히 이현수 그대가 업을 쌓을 수 있는 재능과도 부합하는 곳이담. ]


잠깐 호흡을 끊은 베리가 최종적으로 물었다.


[ 그곳을 선택하겠냠? ]


― ‘예술가들의 정원’ 성단에서 고요히 지켜봅니다.

― ‘4번째 계단’ 성단에서 주먹을 불끈 쥡니다.

― ‘거짓말이 가득한 골목’ 성단에서 이럴 줄 알았으면 세력을 넓힐 걸 그랬다고 후회합니다.

…….


그 뒤로도 주르륵 나오는 텍스트.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천재 배우는 전직 사기꾼


지은이 : 라므이

제작일 : 2023.02.2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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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107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