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S급 용병의 회귀생활 001화

은퇴한 S급 용병의 회귀생활(650)

 





은퇴한 S급 용병의 회귀생활

— 꾼밤 —

1화. 불청객



깊고 깊은 숲 속.

가장 가까운 도로부터 도보로 산길을 2시간이나 올라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위치였다.

MBS 최윤호 PD는 그런 구석진 곳에 있던 낡은 집 앞마당 평상에서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켰다.


“카아아아! 좋다!”


그의 반응에 한쪽에서 말린 멧돼지 가죽을 정리 중이던 사내가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내는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으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삭. 사사삭― 사삭.

그런 사내의 손에 쥐어진 부엌칼이 물 흐르듯 빠르게 움직이자 가죽과 고기 틈이 쫙, 쫙 갈라진다.

가죽 전문가나 정육의 달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솜씨를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

최윤호는 그런 모습을 보다 사발부터 급히 내려놓고서 능글맞게 웃어 보인다.


“헤헤헤, 강수야. 아니 한강수 선생님. 정말 출연 안 되겠습니까? 너 정도면 우리 ‘자연에 살아’에 나왔던 자연살이 중에서 역대급이지 말입니다.”

“윤호 형님, 저는 분명히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는 거 어떠십니까? 출연료도 넉넉히 챙겨드릴게요. 그리고 망가뜨리는 거나 방해하는 것도 전혀 없을 겁니다.”


그런 최윤호의 설득에 한강수라고 불린 사내는 미간이 찌푸려진다.


“징그럽습니다. 그리고 싫습니다.”

“쳇! 야! 벌써 7년이다. 가끔 휴식 삼아 오긴 한 거지만, 이 정도면 들어줘도 되는 거 아니냐?”

“7년 전에 산길을 헤매던 형님을 받아 주는 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제 인생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입니다.”

“쳇― 그럼 내가 조난당해서 죽었어야 네 성미가 풀렸겠냐?”


버럭 화내는 최윤호의 반응에 강수는 열심히 움직이던 칼질을 멈추고서 덤덤하게 쳐다봤다.


“조금 아깝긴 하네요.”

“너 말 다 했냐!”

“조금이라도 편히 쉬다가 내려가고 싶으면 여기까지만 하시죠.”

“진짜로 이럴 거야?”

“진심입니다.”

“에잇! 7년 동안 봄, 여름, 가을마다 힘들게 올라와서 수다 떨어주면 뭐 하나!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그 와중에 겨울은 없다.

잔뜩 생색내는 듯한 그의 말투에 강수는 더 황당해졌다.


“라디오처럼 혼자서 떠들었잖습니까.”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 그런 정보야! 특급 정보!”

“산에서 사는데 바깥세상 이야기가 왜 필요합니까.”

“그러다 질리는 날이 분명 온다! 진짜! 아니면 다른 일로 나갈 수도 있는 거지. 그때가 되면 나한테 고마워할 날이 올 거다!”


최윤호는 호언장담하면서 떵떵거렸다.

물론 강수는 그런 모습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계실 겁니까? 일은 안 합니까?”

“지금 하는 중이잖아! 그러니 한강수 선생님! 어떻게 출연, 안 됩니까? 딱 한 번만!”

“다시는 여기 오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


아까보다 진지해진 강수의 표정에 최윤호는 한숨을 흘렸다.


“에휴― 내 PD 인생 16년 만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인간을 만날 줄이야.”


끝내 최윤호는 터덜터덜 평상으로 걸어가 들고 왔던 가방을 챙긴다.


“간혹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는 겁니다. 조심해서 내려가시죠.”

“잘 지내라! 나중에 또 오마!”


최윤호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후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숲길로 들어갔다.

수풀이 워낙 빼곡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최윤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좀 살겠네.”


강수는 정리하던 멧돼지 가죽을 한쪽으로 치워놓고서 어제 캐놓고 그늘에 말려둔 나물들을 걷으러 뒤뜰로 향했다.

강수가 산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9년. 매일매일 조용하고 소소한 일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는 걸 너무 싫어했다.

언제나 지금처럼 살고 싶었다.


“···음?”


갑자기 앞쪽 마당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수는 한숨이 푹 흘러나오면서 앞마당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이보세요. 윤호 형님. 이번에도 뭐 놓고 갔다고 핑계 대려는 거면······.”


정색하며 말을 이어가던 강수는 입이 멈추었다.

앞마당에 들어선 사람은 최윤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낀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

그는 겉으로는 등산복에다가 목 부분에 하얀 셔츠에 붉은색 넥타이까지 한 것이 보였다.


“누구···십니까?”


강수의 물음에 중년인은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어 내민다.


“저는 법무법인 ‘해송’의 변호사 송태준이라고 합니다.”

“변호사···요? 그런 분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혹시 조난입니까?”


산길도 없는 이곳 산을 타던 등산객이 가끔 조난해서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조난이라고 하기에 그의 복장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셔츠와 넥타이도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조난 아닙니다. 그보다 한진혜 씨의 아드님인 한강수 씨, 맞으십니까?”


다른 사람의 입으로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 석 자를 듣는 것이 얼마 만인지··· 순간 강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저는 한강수 씨의 친부 되는 분의 의뢰로 찾아왔습니다.”


강수는 아까보다 표정이 더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를 어떻게 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일이라면 알고 싶지도 관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유언장입니다!”

“···유···언장이요?”

“한강수 씨의 친부 되는 진수혁 씨께서 금일 새벽 6시 30분경 양평지역 외곽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사망 사실과 동시에 유언장을 전달하라는 의뢰를 받아서 찾아왔습니다.”


강수는 아버지를 태어나고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어떤 것에 대해 듣지 않았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를 믿기에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첫 소식으로 부고(訃告)를 듣게 된 것이다.


“···관심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수혁 씨는, 아니. 수혁이는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입니까.”

“수혁이는 언제나 한진혜 씨와 그쪽을 그리워했습니다. 너무 늦게 당신에 대해 알았지만, 자신의 위치나 상황 때문에 만나거나 연락조차 할 수가 않았죠.”

“딱히 설명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유언장으로 남겨진 물건만 전달해주러 온 겁니다. 열어보든 태워버리든 마음대로 하시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송태준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어 평상 위로 올려놓았다.

가로 30cm, 세로 10cm, 높이 5cm의 나무 상자.


“저는 의뢰받은 대로 놓고 돌아갑니다.”

“······.”


송태준은 자신이 들어왔던 숲길로 들어갔다.

그사이 강수의 시선은 나무 상자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 진수혁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애초에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의 성을 따라 한(韓) 씨로 이름이 지어지다 보니 아버지의 성조차 모르고 살았다.

궁금증을 조금 가졌을 때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고등학교 2학년 때. 조촐한 장례식 사이에서 어머니 지인들 사이로 들려오던 아버지란 존재의 의문이 난발했을 당시만이었다.


“흠···. 굳이 인제 와서 필요는 없겠지.”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강수는 그런 어머니의 유지를 지키고 싶었다. 이내 나무상자를 들고서 앞마당 한쪽에 마련된 가마솥으로 향했다.


‘···살기?’


한순간 심장을 옥죄는 듯한 냉랭한 느낌에 강수는 등골이 오싹해지자 놀라면서 몸을 비틀려 했다.

슈아아아악―! 팍!

동시에 뭔가가 강수의 가슴팍을 꿰뚫고 지나갔다. 탄환이었다.

강수는 손에 쥐고 있던 나무상자를 떨어뜨렸다.


‘저격?’


곧장 상자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 강수는 일어나려 했음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풀이 가득한 바닥으로 강수의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크, 크흡!”


옆으로 고꾸라진 채로 있던 강수의 시선이 점점 흐릿해졌다.


‘탄환이 심장 근처의 큰 혈관과 신경을 관통한 건가······?’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나고서 수풀이 움직이더니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피를 계속 흘려대는 강수의 양발을 붙잡더니 강수의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옆으로 아까 떨어뜨렸던 나무상자도 던져졌다.


‘뭐, 뭘 하려는 거지?’


점점 기력이 떨어져 가던 강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뿌옇게 변한 시야로 붉은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그때 화염 사이로 사내의 왼쪽 팔뚝에 그려진 문신이 보였다.

사자머리 뒤로 검과 창이 교차한 그림.


‘사브나크······?’


강수는 그걸 알아보았지만, 자신에게 죽음만 남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때 복면을 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였다.


“표적을 처리했다. 의뢰인에게 완료를 요청한다.”


그런데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의, 의뢰? 그보다 사브나크에서 나를··· 어떻게.’


화염의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강수의 의식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러다 불길이 강수의 집과 함께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

.

.


한순간에 강수의 시선이 바뀌었다. 주변으로 난잡한 소리가 들려왔다.

투두두두두―!

총성이 빗발치듯 들려오는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그곳에서 강수는 폭음으로 울리는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분명히 에디트레아 바렌투 지역의 반군 전투인데. 저건 분명히 나고······.’


전장 속에서 강수는 하늘에 뜬 채로 상황을 지켜봤다.

특수전사령부 휘하 비밀특작 부대인 UBT가 창설되고서 처음 참가하였던 전투였다.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UBT 대원으로 펼치던 수많은 임무가 바람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강수는 군인이 아닌 용병이 되어있었다.

타다다다다! 타탕! 타탕!


‘이번은 나이트 윙에 있었을 때인 건가? 이게 대체 뭐지? 주마등인 거야? 이미 죽었는데?’


그러던 중에 콩고민주공화국 남서부지역인 트시카파 시가지 전투가 나왔다.

강수는 거기서 건물 위와 틈을 달리며 적들을 빠르게 해치워갔다.

그곳에서 적들은 ‘사브나크’였다.

최악의 용병.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용병 시장에도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거기서도 취급하지 못할 정도로 악질인 용병들만 모아둔 곳이 ‘사브나크’였다.

트시카파 시가지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브나크는 반군의 용병으로 소속되어 민간인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다.

여자, 노인, 어린아이 가리지 않았다. 그중에 여자들은 겁탈당하지 않으면 기적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나이트 리버부터 찾아! 찾아서 반드시 죽여라!”


용병이었을 적 강수의 이름이었다.

강수는 빠르게 사브나크의 용병들을 해치워갔다.


‘맞아. 저랬지··· 저 때 전부 죽였어.’


마지막 사브나크의 용병까지 모조리 쓰러뜨렸다. 이후 용병 시장에서 사브나크 용병에 대해서는 모조리 지워졌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 강수는 전투복이 아닌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Soo, 이번에도 고마웠네.”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한 중년의 사내가 강수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유럽에서 VVIP들만 전담하는 ‘에지스토’란 이탈리아계 특수경호기업에 소속되어 있을 때였다.

방금 불린 ‘Soo(수)’라는 이름도 에지스토에 있으면서 썼던 코드네임이었다.


‘진짜 시끄럽게도 살았네.’


에지스토에 있었을 때의 기억도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6년 만에 밀항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속도가 느려졌다.

용병 캠프 나이트 윙과 경호기업 에지스토에 있었을 때 전부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

진짜 신분은 약점이 될 수 있으니, 양쪽에서 마련해준 가짜 신분으로 사는 것이 규정이었다.

게다가 밀항으로 한국을 나갔었기에 추적을 당할 염려도 적었다.

강수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뒤에 어머니의 유골함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

누구보다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이제야 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뭘 어떻게 하라고!’


죽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자신을 죽인 사브나크와 마주한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속 소리를 질러대던 강수는 어느새 비디오가 꺼진 듯한 어둠 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때 어둠 한쪽에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 강수의 몸이 그 빛과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냐고!”


갑자기 섬광처럼 뿜어지기 시작한 빛은 강수를 삼켜버렸다. 눈앞으로 섬광탄 수십 개가 던져진 듯한 정도였다.

캄캄했던 곳이 눈을 뜰 수조차 없을 정도로 환해졌다.


“아아아아악!”


빛과 함께 뜨거운 열기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워하던 강수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듯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한순간 숨이 멎어버리는 듯하면서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컥! 컥! 컥! 커어어어어억!”


심해까지 빨려 들어갔다가 끌어 올려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