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의 다섯 번째 제자 001화

천마의 다섯 번째 제자(650)

 





천마의 다섯 번째 제자

— 새벽검 —

1화. 인연은 운명처럼




쉬이이잉――!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오는 한겨울의 숲속.

모두가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두꺼운 털옷을 외투로 입을 만한 차가운 날씨.

한 겹이 될까 말까 한 가벼운 경장 차림의 사내가 사뿐한 발걸음으로 눈 덮인 산길을 고고하게 걸어 나갔다.

그가 입은 건 검은색의 흑의가 전부였다.

그것도 천마신교의 상징인 검은 연꽃이 수놓아진 검은 흑의.

눈길을 헤치며 나아가던 사내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피 냄새.”

사내는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에 실려 오는 피 냄새를 맡았다.

인간의 혈향(血香)과 짐승의 혈향이 함께 섞인 피 내음.

아마도 사냥꾼과 들짐승 간에 흘린 피 냄새이라.

평소라면 무시하고 지나갔을 만한 상황임에도 사내는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기 있었나.”

미소 지은 얼굴을 한 사내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악……!”

숨을 몰아쉬며 제자리에 주저앉은 10살의 소년은 희미한 눈길로 자신을 응시하는 늑대를 마주 봤다.

손도끼에 얻어맞은 늑대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흘러내려 눈 덮인 하얀 대지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네가 먼저 덤빈 탓이다. 대신 목숨은 빼앗지 않으마. 윽!”

제자리에서 일어선 소년은 등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인상을 찡그렸다.

“거 새끼… 발톱은 날카롭네.”

그래도 늑대라는 걸까.

빼빼 마른 몸뚱아리지만 발톱은 날카로웠다.

기습당하며 베인 등의 상처와 가까스로 피하며 스친 허벅다리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소년은 눈을 집어 들어 상처에 맺힌 피를 닦아내며 눈으로 상처 부위를 문질렀다.

차가운 한기가 스며들어 피부와 근육 등이 수축되며 흐르던 피가 조금씩 멎는다.

“네가 죽인 거냐?”

“으악!”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소년이 펄쩍 뛰며 손도끼를 움켜쥐었다.

늑대의 기습으로부터 시작된 긴장의 끈이 아직 덜 풀린 모양이다.

“네가 죽였냐 물었다.”

소년은 등 뒤에 나타난 거한의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사람을 위아래로 훑는 건 무림에선 금기시되는 예의 없는 행동이지만 소년은 무림의 예법은 알지 못했다.

나이는 마흔 정도 되었을까.

위아래로 살핀 남자의 키는 6척이 넘는 큰 키에 기골이 장대하며 얇은 경장 사이로 비치는 근육은 탄탄하게 느껴졌다.

짙은 눈썹과 그 아래로 깔린 깊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

우뚝 솟아난 콧대와 그 아래로 짙게 난 수염들은 남자의 강한 자존심과 야성미를 느끼게 했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저놈이 눈밭에 숨어 저를 기습했거든요.”

소년의 말대로 그의 등과 허벅다리엔 늑대의 발톱으로 만들어진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몇 살이냐.”

“저 말씀이십니까? 올해로 열 살입니다.”

열 살이라는 나이에 늑대를 잡았다?

남자의 시선이 늑대를 응시했다.

가쁜 숨을 내쉬는 늑대는 오랫동안 굶은 듯 뼈가 앙상했으며, 나이도 꽤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열 살짜리 애가 손도끼 하나로 이길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실제로 숙련된 사냥꾼들 중 상당수는 은밀하게 숨어 기회를 노리던 늑대의 기습에 목숨을 잃곤했다.

비록 오랫동안 굶고 늙은 늑대의 기습은 젊은 늑대의 기습만큼 예리하진 못했을 것이다.

“허나 평범한 아이가 이길 만한 상대는 아니지.”

남자는 늑대에게로 다가섰다.

“죽이진 않았습니다.”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말대로 늑대는 죽지 않았고, 여전히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척박한 계절에 늑대가 다리를 다쳤다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정말 이 늑대를 생각한다면.”

남자가 발을 들어 늑대의 목을 짓밟았다.

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고통 없이 보내주는 편이 이 늙은 늑대를 위한 일이다.”

죽은 늑대를 보며 소년은 말이 없었다. 그저 손도끼를 고쳐 쥐고 남자에게로 다가와 조심스레 자세를 낮췄다.


스윽―!

죽은 늑대의 가죽을 벗기는 소년을 보며 남자는 뒤로 물러서 주었다.

소년은 묵묵히 늑대의 가죽을 벗겨냈다.


‘열 살의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전투 감각.’

남자의 시선이 늑대가 기습한 것처럼 보이는 장소의 흔적들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늑대는 수풀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웬만큼 단련된 무인도 늑대의 기습을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무공을 배우지도 않은 열 살짜리 꼬마라면?

단숨에 목을 물려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살았고, 도리어 자신에게 덤벼든 늑대를 죽인 것도 아니고 제압했다.

“타고난 사냥꾼… 혹은 투사(鬪士)로군.”

사내는 단숨에 이 소년이 자신이 찾던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긴 헤매임 끝에서 드디어 찾아냈다.


한편 소년은 자신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남자의 시선을 다르게 해석했다.

‘왜 쳐다보는 거지? 늑대 가죽이 탐나는 건가? 이건 연이 거라 줄 수 없는데.’

소년은 혹시 뺏길세라 늑대에게서 벗겨낸 가죽을 잘 말아서 가져온 배낭에 빠르게 밀어 넣었다.

다행히 남자는 늑대 가죽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년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무를 쌓아둔 지게를 짊어지고 등을 돌렸다.

“엥?”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고개를 든 소년은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

방금 등 뒤에 있지 않았나?

언제 앞으로 온 거지?

소년은 자연스럽게 남자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림자가 다시 한번 드리워졌다.

이번에도 소년은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다.

“언제까지 나를 무시할 테냐.”

“이 늑대는 제가 잡은 겁니다. 보아하니 옷을 기워 입을 돈이 없으신 거 같은데… 제가 특별히 절반 정도는 나눠드리겠습니다.”

한겨울에 얇은 경장 하나 입고 있는 남자가 안쓰럽게 느껴진 소년이 배낭에서 늑대 가죽을 꺼내려 하자 남자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덥석―!

“엇!?”

소년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는 남자의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나, 나는 남색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구나.”

손목을 잡아챈 남자는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돈?”

“하하하! 돈? 그것도 좋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태생부터 타고난 재능이다.”

“재능이 뭐 밥 먹여준답니까?”

“밥은 먹여주지 않아도, 네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르지.”

“예? 무슨 말……!”

소년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소년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의 내공 일부를 네게 주입했다.”

두 무릎을 땅에 대고 쓰러진 소년은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마치 뜨거운 쇳물이 혈맥을 타고 온몸을 녹이는 듯한 고통이 소년을 괴롭게 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미래가 결정되지. 아무런 재능 없는 인간이 되어 겨우 밥이나 벌어먹고 살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 세상을 호령하거나.”

소년은 더 이상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죽음의 고통이 느껴졌으니 남자가 뭐라 떠들어대는지 들릴 리가 없었다.

“너의 그릇이 내 생각만큼 단단하고 넓다면 살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죽겠지.”

‘혹은 내가 찾던 아이가 네가 아니라면.’

세상에 이렇게 무책임한 경우가 다 있다니!

온몸이 붉게 달아오른 소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노려봤다.

현재 그들의 주변에 높이 쌓여 있던 눈은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에 의해 녹아내렸다.

소년은 처음 느껴보는 고통과 공포에 적응해야 했다.

마치 뜨겁게 달군 쇳물이 온몸의 혈도를 따라 흘러가며 팔과 다리, 내장과 뇌를 녹여가는 것 같았다.

‘끄흐윽!’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정신을 놓을 것 같을 때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소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흡사 억겁과도 같던 시간이 흘렀다.

중천에 떴던 태양이 저물고, 그 자리를 달이 대신하고 나서야 소년은 고통에 적응했다.

동시에 미쳐 날뛰던 뜨거운 기운도 잠잠해졌다.

“후우우…….”

소년이 폐부 깊숙이 호흡하며 숨을 헐떡이자 몇 걸음 밖에서 흥미롭게 이를 지켜보던 남자가 미소를 띤 얼굴로 소년에게 다가왔다.

“역시.”

재능.

잠깐 살펴본 소년의 재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천무지체(天武肢體).

중원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백년기재(百年奇才)라면 이 소년의 재능은 가히 천년기재(千年奇才)라 할 수 있었다.

약관도 지나지 않은 데다가 기본적인 토납법도 모르는 작은 소년이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하제일(天下第一)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라 불리는 천마 태상천의 공력을 견딘단 말인가?

“하하하!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구나. 그에 걸맞은 그릇까지.”

자신의 예상이 정확했음을 확인한 사내의 입에서 호탕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쿨럭…! 쿨럭!”

마른기침을 토해낸 소년은 표독스러운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다른 무인들이었다면 태상천의 강함에 고개조차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의 눈빛은 꽤나 날카로우며 노기(怒氣)가 담겼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작은 이리처럼 성을 내는 소년에게 태상천은 뒷짐을 진 채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지. 그건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특별은 개뿔… 볼일 끝났으면 난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이 미친 남자가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에 소년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소년에겐 홀로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을 어여쁜 동생이 있었다.

지게를 짊어진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자의 손이 이번엔 소년의 어깨에 닿았다.

“내 제자가 되어라. 널 본좌 다음으로 가는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주마.”

“싫습니다.”

싫습니다?

싫다고?

“하하하하! 네 이름이 뭐냐?”

“비경입니다.”

천마 태상천은 웃었다.

이 작은 촌구석에도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만한 배포를 가진 소년이 존재했다.

“나는 천마신교의 7대 교주이자 현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천마 태상천이다.”

“제가 무림에는 까막눈이라 대협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중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이젠 알겠군요.”

주섬주섬 짐을 챙긴 비경은 태상천을 향해 눈을 똑바로 뜬 채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무학에는 뜻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겐…….”

동생이 있다고 말하려던 비경은 입을 말을 삼켰다. 굳이 동생의 얘길 꺼냈다가 자신에게 튄 불똥이 동생인 비연에게도 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겐?”

“무, 무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고로 무인이란 어깨만 스쳐도 말 대신 칼부터 들이미는 작자들이라더군요.”

“그래서?”

“제 삶의 목표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것입니다. 어여쁜 색시와 떡두꺼비 같은 자식들을 낳아 살아가는 게 제 목표라 할 수 있죠.”

“거참 쓰레기 같은 목표로구나.”

“대협에겐 쓰레기 같아도 제겐 아닙니다. 이래 봬도 저는 평화주의자라서요. 아무튼 전 무인에는 뜻이 없습니다.”

무인?

강호의 협객들?

말이 좋아 협객이지 결국엔 칼이나 들고 설쳐대는 양아치들이다.

생산적인 일들은 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강하네, 네가 강하네 하면서 떠들어대는 무뢰배들.

비경은 무림이나 무공, 무인이 되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는 삶의 궤적이 평탄하길 바랐고, 자신의 손에서 피비린내가 아니라 풀 향기와 목내(木匂) 나는 삶을 원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무인이 되라고? 어림도 없지!’

비경의 꿈은 소박했다.

그는 재능 있는 목수가 되어 사람들이 원하는 가구나 집 등을 지어주고, 동생인 비연이 좋은 남편을 얻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자신의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저 남자 느낌이 안 좋아!’

비경은 이 자리에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벗어나려 발을 굴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힘차게 땅을 밀어내며 몸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라?”

비경은 자신의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다리를 휘적여봤지만, 여전히 그의 다리는 땅에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사이 비경이 경신술의 최고 경지인 허공답보(虛空踏步)의 경지에 오른 건 또 아니었다.

“저기… 놔주시겠습니까?”

자신을 짐짝처럼 들어 올린 남자를 향해 비경이 조심스레 부탁했지만, 태상천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정은 내가 한다. 나는 능히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존재이니.”

“전 무학엔 뜻이 없… 으아아악!!”

주변의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쳐 간다.


풍압이 얼굴을 짓누르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느새 등에 지고 있던 지게는 저 멀리 점으로 변한 지 오래였고, 그의 몸은 마치 새가 된 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으아아아!! 안 돼!!”

비경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은 불어오는 한 줄기의 겨울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태상천과 비경이 떠나간 자리에 한 소녀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나타났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