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만물상 001화

신의 만물상(650)

 





신의 만물상

— 까마귀 —

1화



오래된 기억




눈을 떴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였다.

언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시대.

그는 이후로 놀라면 소리를 질렀고, 배가 고프면 주위에 먹을 만한 것을 찾아 먹었다.

본능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에만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저 한쪽 방향으로 끝없이 걸었다. 그렇게 산이 나오면 넘었고 바다가 나오면 강인 줄 알고 건너보려 했지만, 무시무시한 것들이 헤엄치는 것을 보고 해안선을 따라 다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연히 자신과 생김새가 비슷한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 무리에 섞여들었다.

다른 이들을 번식이란 것을 하였고, 그것을 하면 할수록 그 수가 늘어났다.

그도 마음이 생기던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란 것조차 모르던 그때의 마음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큰 이유로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같이 있고 싶었던 이의 모습이 점점 변해갔다. 얼굴이 주름지고 해가 지는 것이 반복될수록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갔다. 아니, 자신만 변함없이 처음 그들과 마주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가 변함에도 마음은 그대로였기에 숨이 꺼지는 이후로도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들과 떨어져 멀찍이 살게 되었다. 물론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무서워하기 시작한 동료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숨이 꺼진 그녀가 일어나 입에 먹지 않을까 하며 사냥을 하러 나간 사이였다. 자리를 비운 틈에 동료들은 그녀를 강에 내다 버렸다.

그때가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였다.

그녀를 강에다가 버린 한 동료를 깔아뭉개고 커다란 돌멩이를 들고 머리를 향했다. 한순간이면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 행동 자체를 몸이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런지 몰랐다. 하지만 이대로 돌멩이를 휘두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들고 있던 돌멩이를 버리고는 그들이 있던 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로 다시 혼자가 되었고, 다시 끝없이 걷다 보니 처음 만난 동료들처럼 생긴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한 번 겪어보았기 때문일까. 머릿속으로는 이해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험했던 아픈 상처로 인해 한곳에서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숨이 꺼지는 동족들을 수십 번을 보고 나니 이렇게 오랫동안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죽을까 라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었다.

그는 절벽에 떨어져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짐승에게 물리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피만 잔뜩 흘리고 죽지는 않자 하는 수 없이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어서 다시 혼자가 되어 처음 눈을 떴을 때처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동물과 어울려 지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나 세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 이상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무와 땅, 동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연기 같은 것들이 보였다.

손을 휘저으니 연기도 같이 따라서 움직였다. 신기함에 그것을 반복하자 연기를 따라 땅과 나무들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것인지 몰랐었다.

다시 해가 수없이 뜨고 지면서 깊은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시라도 자신과 같은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다시 산을 내려와 무리들을 찾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예전처럼 자신과 같은 동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털이 수북하고 동물의 가죽만 걸치고 있던 이들이 지금은 신발이란 것을 신고 옷이란 것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괴성이 아닌 무언가로 생각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차림을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 주었다.

처음 그들에게 배운 것이 언어라는 것이었다.

그가 사람들을 보았을 때 생각을 전달하던 무엇. 그렇게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고는 말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한동안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그 생활은 오래갈 수 없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셈할 줄 알게 되니 20년 정도가 적당했다. 그 뒤로는 다음 마을로, 그리고 다시 다음 마을로 이동을 했다.

언어를 배우면서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대체 자신이 대체 몇 살인지는 몰랐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떠돌기 시작하면서 문명에 대해 점차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전의 그들도, 지금의 이들도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자신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그 안에 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갈등하면서도 그들 속에서 직업이란 것을 가졌다.

기사, 의사, 사업가, 변호사, 대장장이, 집사 등.

셀 수조차 없는 직업이 그를 지나쳐갔다. 그러다 어느 직업을 거치며 잔혹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이 부른 참혹한 현장을 말이다.


아주 조그맣던 욕심이 커다란 욕망을 불렀고, 그 욕망은 한없이 부풀어 전쟁이란 것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이란 것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군인으로 그들 속에서 직접 그때의 상황을 보았다.

칼과 방패로 사람이 찢어지고, 베어지는 전쟁터의 모습. 그리고 서로를 배신하며 웃음 짓고서 등에 칼을 꽂는 인간의 얼굴들은 참으로 잔혹했다.

마음이 지쳐갔다. 아니, 미쳐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음 마음에 또다시 깊은 산속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세월의 바퀴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갔다.

그의 기대였을까. 아니면 바람이었을까.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전쟁은 기대와 바람과 달리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전쟁터를 피해 길을 향하다 보니 사람들은 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곳이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은 그곳을 ‘무림외곽’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얼마간 생활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눈치챌 만한 시기가 되자 소문으로만 듣던 고구려란 동방의 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그곳 숲속에서는 중국에서처럼 순박한 마음 사람을 만나 무리 없이 같이 지낼 수 있었다.

다행히 온순한 성격 탓에 어렵지 않게 그를 받아들였고, 그는 감사의 표시로 그들에게 세월을 겪으며 배운 능력을 사용해 아픈 곳을 치료해주며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싫어하는 전쟁이 그곳에서도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나라끼리 치고받으며 싸우더니 조선이란 나라가 되면서 일본이란 나라에 침범을 당하고, 또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남과 북으로 단절되기까지 했다.

그는 다시 눈앞에 전쟁을 보며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많이 겪어본 탓인지 조금씩 익숙해져만 갔다.

얼마 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평화로워지자 그는 세상 구경도 할 겸 살던 곳에서 나왔다.

세상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너무 놀란 탓에 자신이 이상해 보일까 봐 최대한 지금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꾸며서 나갈 정도였다.

세상 구경 겸 나갔던 곳에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그동안 여러 나라를 떠돌며 모아온 금이란 물건이 덕분에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침술원’이란 간판을 걸고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살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TV란 물건이 나오며 시끄럽게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그는 신기했지만,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슬픔이 너무도 많았다.

남 때문에 아픈 이들, 자신이 아픈 이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아픈 이들 등등… 그는 그들을 보며 뭔가 도움이 될 것을 찾았다. 그래서 모아온 금을 몰래 가져다주기도 해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없는 이들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을 갖고 있으면 당연하게 빼앗았고 없어도 빼앗는 그런 곳이었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물건을 파는 일이었다. 예전에 중국에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했던 사람이 떠오르며 생각난 것이었다.

당시 청을 올렸던 사람이 하던 일은 보부상으로,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모아온 물건들을 파는 일이었다. 지금도 주변에는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는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딱히 얼굴을 가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능력이 이들에게는 좋지 못한 인식이 될 수 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물건을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힘든 이들에게 그냥 줄까도 했지만, 물건이 필요한 이는 가난한 사람들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힘든 이들에게는 무료로,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고 팔았다. 그래야 그나마 그들에게 공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물건들은 힘들어하는 이들이 물건을 받고서 기뻐하게 되면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에는 세월에 흐름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기쁨이 그에게 위안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고요한 전설이 돌기 시작했다.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를 찾아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그에게 있다.

신의 만물상.




없는 물건 없습니다




잘생긴 한 남자가 한숨을 깊게 내리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 있는, 훈훈하게 생긴 남자도 뭐가 그리 걱정되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같이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성듀엣 그룹인 가수로, 지금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둘은 지금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기 싫었다. 그리고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안색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말 오는 거야?”

그룹 리더인 연설이 물었다. 그런데 가수인 그의 목소리가 쇠를 긁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몰라.”

동료인 진소의 목소리도 연설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애타게 조금만 더 무대 올라가는 시간이 오지 않기만 바라였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자 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들의 목소리 상태를 누가 들을지 몰라 입을 열지 않고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야?”

뒤에 서 있던 진소가 묻자 연설은 다시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응?”

그때, 자신들이 앉아 있던 의자 앞 테이블에 방금 전까지 없었던 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혹시!?”

둘은 급히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알약 두 개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시원 상큼한 목캔디입니다.

복용하시면 바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차후, 재복용은 권장해드리지 않으니 목 관리에 대해서 유의하도록 하세요.

― 만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