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남작가의 차남이 되었다 001화

0000

제1화



1. 하르드 남작가의 막내아들(1)



하렘 용사의 성공 기담.


2022년에 출시된 RPG 게임.

히로인 일러스트와 하렘물로 진행되는 스토리로, 여러 사람을 매료시킨 게임이다.

공시생으로 살아가던 나는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에 2D 게임이 웬 말이냐!’라는 투덜거림이 쏙 들어갈 정도로 꽤 재미있었다.

FPS 게임을 즐겨 하던 내게는 나름 생소했던 즐거움이었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게임 중후반까지 공략한 나는 고개를 들어 벽걸이 시계를 올려다봤다.

시곗바늘이 3시를 가리켰다. 오후 3시가 아니라 새벽 3시다.


“완전 폐인 인생이네.”


말이 공시생이지,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은 3~4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올해로 26살이다. 대학 친구는 어느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친구는 괜찮은 중견기업에 들어갔고.


“X발, 나만 왜 이 모양이냐.”


9급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 게 올해로 세 번째다.

이쯤 되니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누군가는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한다는데, 나는 그 시간에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까.

5평 다락방 월세, 생활비, 인터넷 강의 비용 등을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제…… 그만둬야 하나?”


침대 위에 드러누워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빈약한 의지로 공무원 시험은 무리였다는 의미겠지.

더 이상 부모님 등골을 빨아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간 죄책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도 몇 번째인지…….

나는 한숨을 쉬면서 몸을 축 늘어트렸다.


쿠궁! 쿠구구궁!


“으아악!”


갑작스러운 땅 울림에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켜 황급히 형광등을 켰다.

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 있다.


“빠, 빨리 나가!”


“지진이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노트북이고 지갑이고 모두 내버려 둔 채.

현관문을 열려는 순간.


쿠웅!


다시 한번 거대한 땅 울림과 함께 몸이 기울어졌다.

아니, 건물이 기울어진 거다.


“으……으아악!”


바닥에 넘어져 방 안으로 굴러가며 책상에 부딪혔다.

발밑으로 창문이 보인다.

분명, 창밖으로는 맞은편 상가건물이 보였었는데…… 왜 지금은 콘크리트 바닥이 보이는 거지?

바닥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콰앙-!



* * *



전문대를 졸업하고 3년간 공시생으로서 살아온 박건혁.

서울 OO구 OO동의 한 원룸에서 숨지다.


“X발…….”


도대체 진도가 몇이었던 거지? 5층 건물이 그렇게 무너진다고?

물론, 3~40년쯤 된 건물이라고 듣긴 했지만, 5층 다락방이 한순간에 바닥과 충돌한 것이다.

내진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걸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나…….”


빙의. 이걸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26살에 죽은 내 원통함을 누군가가 알아준 건가?

나는 죽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몸에서 눈을 떴다.

신장 147cm, 검은 머리카락, 주근깨 가득한 얼굴, 홀쭉한 볼살. 전생의 얼굴이 미남이라 생각될 정도의 추한 소년이다.

육체의 주인은 카인 B 하르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름은 카인, 성은 하르드, B는 남작가를 나타내는 스펠링을 의미한다.

그래, 내가 빙의한 인물은 귀족이다.

지구에도 귀족제도가 남아 있는 국가는 존재할 터. 하지만 이 세계는 지구가 아니다.

왜냐고? 그야…….


------------------------


*성명: 카인 B 하르드

*종족: 뱀파이어

*등급: 최하급

*칭호: 사령관

*출신 국가: 마대륙 하이젠

*LV: 1


*근력: 23

*민첩: 17

*체력: 31

*마력: 11


*AP: 0


*스킬: [사령부-LV.1]


------------------------


내 종족이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신 국가가 ‘마대륙 하이젠’이라고 하네?

누군가에겐 생소하겠지만, 내게는 익숙한 지명이다.


“하렘 용사의 성공 기담……. X발.”


하르드 남작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카인 B 하르드.

그의 기억은 이미 물려받은 상태다.

하르드 남작가는 비옥한 토지와 수많은 철광산을 보유한 부유한 가문이다.

남작의 슬하에는 장남, 장녀, 차남 총 세 명의 자식이 있다.

그중 장남과 장녀는 정실부인의 자식으로서 재능이 넘치고 외모도 준수하지만, 차남인 카인은 재능도 부족한 마당에 외모까지 추하여 가문의 수치가 되었다.

그리고 첩실 부인이 사망한 직후, 형제들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오늘만 해도…….


퍼억!


“쿠헥?!”


“X발, 형이 놀아 주는데 인상을 쓰면 안 되지.”


이게 놀아 주는 거냐?! 이 개X끼야!

나는 하르드 가문의 장남, 루인 B 하르드로부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샌드백이 되었다.

갈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준수한 외모와 다르게 성격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X끼한테도 약혼녀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퍼억! 퍽! 퍽! 퍽!


코뼈를 부수고 안면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강한 주먹질.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쪼르르르…….


내가 소변을 지린 다음에야 루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침실을 나갔다.

잠시 기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밖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암모니아의 지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시녀들조차 나를 무시한다. 식사조차 하루에 한 끼, 많으면 두 끼로, 먹다 남은 것 같은 음식들이 대령 됐다.

식당에조차 초대되지 않는 존재.


드르륵-


나는 바닥을 기어 침대 밑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최하급 포션이 담겨 있는 상자다.

하르드 가문의 가주, 모르센 B 하르드는 정기적으로 내게 최하급 포션을 보급해 주었다. 내가 루인에게 맞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루인을 제지하지 않고 내게 포션을 준 이유가 뭘까? 얼마 있지도 않은 상품 가치를 더 이상 떨어트릴 수 없다는 거겠지.


“진짜…… X같네.”


언젠가 나는 나이 많은 여귀족에게 장가를 가게 될 것이다. 정실도 아닌 첩실로 말이다.

남작가의 차남을 정실로 받아 주는 가문이 어디 있겠어? 하물며 외모가 출중한 것도, 재능이 훌륭한 것도 아닌데.

단지, 가문과 가문의 혈연관계를 맺기 위한 용도일 뿐이었다. 정말 내 부친이 맞기는 한 걸까?

나는 이를 악물면서 포션을 들이켰다.

잔 상처를 치료해 준다는 최하급 포션으로도 내 상처를 치료할 순 없었다.


“조금 이따가 일어나서…… 치워야지.”


지린내가 진동하는 침실. 나는 환기시킬 생각도 못 하고, 기절하듯 수마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침실을 청소하고 환기를 시켰다.


‘슬슬 다음 손님이 올 차례네.’


쾅!


침실 문을 걷어차고 성큼성큼 들어오는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

루인의 여동생인 레일라 B 하르드다. 내게는 누나가 되는 사람이고.


“이 X같은 X이……!”


나는 놈이다, 이 X발아.


짜악!


내 얼굴이 크게 돌아간다.

다짜고짜 침실로 들어와 뺨을 후려갈기는 여성.

분명, 제정신일 리가 없다.

올해로 14살이 되어 사교회를 돌아다니던 그녀는 매번 스트레스를 품고 와 내게 해소했다.

그래, 나는 루인과 레일라 남매의 샌드백이었다.

루인은 16살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다.

반면, 레일라는 14살의 가녀린 여인.


퍼억!


“쿠헥!”


가녀리긴 개뿔.

그녀 역시 재능 넘치는 마족이다.

마족 사회에는 마왕을 제외하고 최하급부터 시작해 최상급까지 다섯 등급이 존재한다.

나는 당연히 최하급 마족이지. 루인은 하급 마족이고. 레일라의 경우에는 3~4년 안에 하급 마족이 될 거라고 한다.

하여간, 같은 최하급 마족임에도 레일라의 근력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주먹 한 방에 장기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때, 때린 곳 또 때리지 말라고! 이 X발X아!’


퍼억! 퍼억!


“뭐야, 누나한테 불만이라도 있어? 네가 여기서 살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겨야지!”


그녀가 내 정강이를 짓밟았다.


“크악!”


“천한 핏줄을 타고 태어난 주제에……. 그 더러운 얼굴도 정말 끔찍하네.”


그럼 찾아오지 말든가!


“재능도 없고, 멍청하기까지 해. 그럼 이 누나라도 조금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그녀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붉은 안광을 반짝였다.

그녀의 폭행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더 이상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이, 이 집에서 나가야 돼.’


이곳은 지옥이다.

이렇게 살다간 정신병으로 죽고 말 것이다.

그래도 오늘만 버티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이다. 레일라가 루인과 함께 아카데미에 가기 때문이다.


“기절해 버렸네? 누나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렇게 편히 기절하면 되겠어?”


찬물이 끼얹어져 깬 나는 고통스러움에 구토와 함께 온몸을 떨었다.


‘그, 그냥 죽여라.’

게임 속 남작가의 차남이 되었다


지은이 : 러쉬러쉬

제작일 : 2023.06.1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조하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405-1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