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는 대배우가 되기로 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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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제1편 프롤로그



일요일 새벽 두 시.

선종일보 건물의 7층 한쪽에 자리 잡은 선종스포츠.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들어오던 내 바로 아래 기수이자 같은 부 소속의 오지용이 나를 희한한 놈 보듯이 바라봤다.

“어? 정 부장님?”

“오야, 경기 잘 뛰고 왔냐.”

“예. 연장전이 너무 길어져 야구장에서 아예 기사까지 쓰고 왔죠……. 근데 왜 사무실에 남아 계세요, 이 시간까지?”

하긴 부장직을 단 이후로는 언제나 칼퇴를 했었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놀란 표정을 지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애써 짜증을 눌러 참곤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대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로또 번호 좀 확인하고 경기 좀 봤다.”

“아.”

내 대답을 들은 오지용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다.

“참 나, 그런 건 핸드폰으로 확인하셔도 되잖아요?”

“전기료 1원이라도 회사가 내라고 그랬다. 네가 뭘 알아.”

“언제까지 그렇게 허공에 돈을 뿌릴 생각이세요? 그냥 로또를 사지 마세요. 토토도 끊고. 그 돈으로 핸드폰 충전이나 하면 되겠구먼.”

“오지용, 너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그 마인드로 무슨 직장인을 해 먹어? 회사에서 최대한 뺄 건 싹 다 빼먹어야 할 거 아냐.”

“주마다 로또랑 토토 꼬박꼬박 사면서요?”

“그렇지. 그 희망으로 토요일까지 버티는 게 바로 직장인이지.”

“차라리 주식을 하세요.”

“주식 했다가 고점에서 물려서 십 년째 우는 오지용처럼?”

순간 오지용의 입이 꾹 다물렸다. 바로 엊그제도 주식 괜히 했다면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댔던 자신의 모습이 기억난 모양이다.

카메라 가방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어깨가 유달리 축 처져 보인다. 말이 너무 심했나? 거참, 더럽게 소심하네.

“야, 그러니까 로또를 사. 로또가 얼마나 재밌는데.”

“로또가 재밌는 건 부장님뿐이죠……. 근데 부장님.”

갑자기 오지용의 눈이 빛났다. 왠지 불길하다.

“뭔데?”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뭔데? 딱 하나만 물어봐라.”

“아니, 부장님 역대 로또 당첨 금액 순위별 번호를 다 외운다면서요. 진짜예요? 뭐 숫자 분석이라도 하는 겁니까? 설마 로또에 그렇게 진심인 건 아니죠?”

“……이런, 씨.”

소문의 근원지야 뻔했다. 우리 부 바로 아래층을 쓰는 선종일보 정치부겠지. 스포츠 신문 기자들은 의외로 정치부와 경제부 기자들과 꽤 친한 편이다.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희박한 확률로 연예계의 찌라시가 정치부와 경제부의 소스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선종일보와 선종스포츠 기자들도 앞서 기술한 이유로 서로 꽤 친밀하게 지냈다. 아니, 그래도 이런 소문은 좀 억울했다. 같이 술 몇 번 마셨고, 그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로또 당첨 금액 순위 몇 개 좀 말한 걸 가지고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었을 것이다. 짜증 난다.

“야, 말해 줘?”

“뭘 말해 줘요?”

“내 비밀.”

나는 웃는 얼굴을 가장한 채 오지용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오지용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나는 고개만 빼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당연하지. 백억 넘는 당첨 번호는 문신으로도 새겼어.”

나를 놀릴 작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던 오지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정말이요?”

정말은 무슨. 나는 휘둥그레진 오지용의 이마를 그대로 손가락으로 밀어 버렸다.

“당연히 뻥이지. 지용아, 오지용아, 그게 정말이겠냐? 넌 그걸 믿냐? 넌 아직도 멀었다. 그러니까 아직도 조막만 한 여자 아이돌들이 거짓말하는 것도 크로스 체크로 딱딱 못 잡아내지.”

“아! 부장님!”

“나 간다. 컴퓨터 내 건 껐으니까 알아서 잘 끄고 가라~. 수고염~!”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휘적휘적 걸어가 문을 발로 걷어찼다.

헛소리를 끝없이 늘어놓은 것 같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이름은 정기율.

국내 굴지의 선종일보 소속…… 은 아니고, 선종일보랑 같은 식구인 선종스포츠 연예부 담당 부장 기자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동료 기자나 오지용 같은 후배 기자들의 기사들이 올라오면 데스크 자격으로 승인하고, 연예계 찌라시를 취재하도록 지시하며, 연예계 행사나 프로그램들을 밀착 취재하는 일이었다. 다른 부서 기자들보다는 훨씬 빡센 점도, 훨씬 쉬운 점도 공존하는 자리다.

“괜히 구라 쳤네. 그냥 오지용한테도 보여 줄 걸 그랬나.”

사실 내가 신문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이유는 오지용에게 말한 것처럼 로또 같은 시답잖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메일 정리를 하다가 며칠 전 스팸 메일함에 와 있던 이상한 메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 *



보내는 이: 인적자원관리부 <wjtmd486@nevaeh.corp>

제목: 정기율 님의 인생 2차 회귀 사업 신청의 건

숨은 참조: wjtmd03@nevaeh.corp

정기율 님, 안녕하세요.

정기율 님의 삶을 관장하는 주식회사 Nevaeh 인적자원관리부 계장 종리권입니다.

제가 실수로 정기율 님의 삶을 계산할 때 몇 가지 요소를 빠뜨렸습니다.

인과율을 재배치해서 아예 환생을 시켜 드릴까 하다가,

마침 이번에 기자님 같은 분들을 모아서 인생 2차 회귀 사업을 결정하였기에 이를 알려 드리고자 메일을 보냅니다. 거부하신다면 그냥 답장만 주십시오. 다음 생으로 모시겠습니다.

극락왕생.


종리권 드림



* * *



처음엔 개소리인 줄 알았다.

아니, 다시 읽어 봐도 개소리가 맞는 것 같다. 메일함도 개소리인 걸 아니까 당연히 이 메일을 스팸 메일함에다가 분류했겠지.

그런데 그 이후, 바로 오늘 같은 주소로 또 한 통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 * *



보내는 이: 인적자원관리부 <wjtmd486@nevaeh.corp>

제목: 축하드립니다! 인생 2차 회귀 사업의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정기율 님의 인생을 관장하는 주식회사 Nevaeh 인적자원관리부 계장 종리권입니다.

정기율 님의 잠재 적성과 올바른 공덕의 인과율을 재배치한 결과,

정기율 님의 가장 큰 재능은 대배우로 계산되었습니다.

담당 직원의 재량으로 2차 회귀 시작은 최대한 전생과 관련된 빈자리로 빠르게 잡았습니다. 사업과 관련한 주요 사항 및 유의 사항은 첨부 파일을 확인해 주세요.

뭇사람들에게 대배우의 재능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신다면 현생의 공덕도 많이 쌓이게 됩니다.

정기율 님의 새로운 인생을 주식회사 Nevaeh 인적자원관리부가 응원합니다.

극락왕생.


종리권 드림



* * *



“이게 뭔 개소리야?”

다시 말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두 번째 메일이 날아온 것은 바로 오늘이었다.

게다가 이번 메일엔 버젓하게 첨부 파일까지 딸려 있었다. 대충 ‘환생 안내서’라고 쓰여 있는 PDF 파일이었다.

첨부 파일은 당연히 다운받지 않았다. 딱 봐도 스캠을 조장하는 피싱 메일이 분명해 보였으니까. 심지어 이 메일이 온 계정은 내가 쓰는 회사 아웃룩 메일이다. 그러니 내가 열겠냐고.

선종일보는 자사 기자들에게 온라인 해킹과 피싱 사기, 스캠 메일 등에 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신문사 특성상, 이런 해킹 메일 때문에 시스템 전체가 악성 코드에 감염돼 버리면 답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메일의 내용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심란한 마음에 인터넷에다가 인생 2차 회귀 사업 따위를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바로 아까 내 후배 기자인 오지용이 올 때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짓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사업 이름이 검색 결과에 나올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개소리였던 것이다.

“……배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배우는 무슨.

사실 기자들에게 이런 개소리 같은 메일이 오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기사 뒤엔 으레 기자들의 이메일 주소가 게재되곤 하니까.

개소리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돈 꿔 달라는 메일부터, 제보 메일이나 업무 메일인 척 미팅 약속을 요구하는 사이비나 장사꾼들까지……. 이외에도 이메일 주소로 날아오는 메일들의 개소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메일들과 지금 도착한 메일은 뭔가 결이 달라 보였다.

물론 개소리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꽤 신박한 개소리라서 신경이 좀 쓰인다고 할까…….

사실상 처음 보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사이비 종교 포교도 이 정도 수준이면 추가 점수를 줄 만했다. 정말 사업에 선정된 양 버젓한 업무 후속 메일처럼 두 통의 이메일이 시차를 두고 날아온 것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무슨 피싱 메일에서 이렇게 거창한 개소리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보낸 사람 이름이 종리권이다.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도교 선인의 이름이 아닌가.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사이비겠지. 전생이니, 인과율이니, 환생이니, 사업이니. 당최 서로 안 맞는 키워드들이니 원.”

짐짓 큰 소리로 중얼대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이상하게 구렸다. 기삿거리를 골라내는 기자 특유의 직감이 뭔가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 주는 느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모든 걸 알고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진짜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이었다.

“씨X, 어떤 머저리 같은 새끼가 이딴 장난 메일을 보내서…….”

건물을 나와 도로를 걷던 나는 중얼거리면서 품속을 뒤졌다. 담배를 꺼내 물기 위한 의식적인 행위였지만…… 빈 담뱃갑만 만져졌다. 생각해 보니까 담배는 아까 초저녁쯤에 다 태웠다.

에이씨.

“……근처에서 하나 사 갈까.”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면서 잠시 고민했다. 됐다. 귀찮은데, 피우지 말까?

하지만 담배가 너무 당겼다.

게다가 오늘 사나, 내일 사나 어차피 사야 된다면 그냥 지금 사서 한 대 태우는 게 더 나을 듯싶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를 기다리며,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쩔 수 없다. 확실하지 않은 장난 메일에 고민하는 건 시간만 낭비하는 짓일 뿐이다. 이 뒤, 더 불쾌한 일이 생긴다면 이 메일을 들고 경찰에 신고하면 될 뿐이다. 경찰이 어디까지 나서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앙-!

날카로운 클랙슨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웬 외제차 한 대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이 새벽, 운전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하이빔을 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게 왔던 말도 안 되는 이메일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데, 잠깐만.

메일에서 이야기하는 환생이니 2차 회귀가 사실이면 결국 지금 생을 살고 있는 나는 죽는다는 소리 아닌가?

……지금처럼.

아! 씨X, 잠깐만.

끼이이이이이이이익!

퍼어어어억!

나는 내 몸이 세게 튕겨 나가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그게 내가 기억하는 나의 ‘끝’이었다.

기레기는 대배우가 되기로 했다


지은이 : 내용증명

제작일 : 2023.02.2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레아

표지 : 힝둥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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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