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귀환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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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휘이이잉.

십만대산(十萬大山)에 위치한 천마신교(天磨神敎) 총 본산에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이 모래를 날려 연병장에 서 있는 마교인들의 몸을 휘감고 날아갔다. 

팽팽한 긴장감이 몸서리쳐질 만큼이나 몸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지만 움직이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군사의 법도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명령으로 이곳에 서 있기는 하나 그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었다. 

공을 세우기 위한 마음이다.

정마대전(正魔大戰)의 깃발이 올라가고 금일(今日) 출정을 할 것이었다.

이제 곧 바람에 진득한 피 냄새가 섞여 중원에 퍼질 것이다. 

마교 5문, 8각, 150대대의 무인들은 병장기를 손에 들고 공을 세울 준비를 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칼과 창에 많은 피를 묻힐수록 높은 자리로 올라갈 것이었고, 무림에서는 그 이름이 높이 세워지고 널리 알려질 것이었다. 

무인으로서는 어찌 꿈 같은 일이지 않겠는가. 

비록 사특(私慝)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지라도 그들은 결코 피 튀기는 칼부림에서 등을 돌리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총 본산 십 층의 전각 제일 꼭대기에 있는 복도를 걷고 있는 흑뇌마왕 마염지는 문득 창밖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2만의 마교인들이 열을 맞춰 서 있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마교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막대한 힘을 자랑하는 육대 가문 중 하나인 흑뇌 가문의 문주. 

나이가 칠십을 바라보는 그조차도 2만의 마교도들이 연병장에 모여 출정 준비를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번 대의 천마가 탈마의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건만…… 좋은 일이군. 좋은 일이야.”

웃음을 짓고 있던 마염지의 얼굴 한 자락에서 주름이 꿈틀거린다. 

과거 무림맹의 정파와의 관계가 생각난 까닭이었다. 

울화가 터졌다. 

분노가 치솟았다. 

무림맹은 어찌 자신들이 정의라고 말하고 우리 마교인들은 악이라 칭하는가. 마염지는 평생 무림맹이 마교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에 한이 맺혀 있었다. 

강호라는 곳에 있다 보면 응당 나쁜 일이 생기고 때에 따라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도 손을 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데 무림맹은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도 정의라 하고 마교도들은 악이라 칭하며 손가락질을 해 댔다. 

어찌 이런 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허나 그런 서러운 세월도 이제 끝이었다. 

천마가 극마의 경지까지 이룬 것도 모자라 이내 탈마의 경지에까지 올랐다.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를 감히 무림맹에는 당해 낼 수 없을 것이었다. 

무림맹에는 극마의 경지와 같은 화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조차 없었으니까.

“무림맹의 악행도 이제 끝이구만.”

마염지의 발걸음이 천마의 방으로 향했다. 

천마가 연병장으로 나와 정마대전을 선포하기만 하면 무림맹은 바람 앞의 촛불도 못 되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천마님께서는 준비가 끝나셨더냐!”

“아직 방에서 기척이 없으십니다.”

“밤사이에 잠을 못 이루고 늦게 눈을 감으신 게지. 오늘은 중요한 날이 아니더냐. 그럴 만도 하다.”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어서 방으로 드시지요, 흑뇌마왕님.”

“그래, 수마(睡魔)에 빠지신 천마님을 깨워 드려야겠구나.”

흑뇌마왕 마염지가 천마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다시 한번 인상을 찡그렸다. 

천마신교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천마의 방답지 않은 모습 때문이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흔한 장식품이나 사치품, 아니 어느 집이든 벽에 걸려 있을 법한 그 흔한 족자 하나 없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을 상징하는 비단옷 하나 없이 검은색 무복 하나만을 입는 것도 못마땅한데, 방조차 이래서야 되겠는가. 

언제나 방에 들어설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마염지는 오늘처럼 좋은 날조차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이잉.

방 안 가득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구석 자리의 창문 하나가 열려 들어온 강한 바람이 마염지의 몸을 감싸고, 이내 방 안으로 다시 퍼지며 쌓여 있던 화선지를 흩트려 놓고는 잠잠해졌다. 

마염지는 그 광경에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천마의 방에 흩어진 화선지는 살풍경한 공간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마염지에게 이유 모를 이질감과 불안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게지. 이리 좋은 날에 불안한 마음이라니. 천마님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을 알면 뭐라 하시겠는가. 그저 바람이 변덕을 부린 것일 뿐이지.’

마염지는 자신의 마음을 탓하며 고개를 가로 젓다 문득 천마의 침실 방문으로 눈길이 향했다.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가 방 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 방 안을 어지럽히지 않았는가. 

아무런 기척이 없는 방 안이 이상하게 생각된 마염지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행동을 했다. 

감히 천마의 침소를 두드리는 짓이었다.

똑똑.

“천마님, 혹 기침하셨습니까?”

“…….”

“이미 연병장에 교도들이 사열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시지요.”

“…….”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무리 깊은 수마(睡魔)에 빠져 있다 한들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을 리가 없다. 

날아가는 작은 종잇조각 소리까지 듣는 천마가 아니던가. 

평소의 천마라면 이미 마염지가 방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알고 있을 터다. 

마염지의 머릿속에 불길한 마음이 퍼져 나갔다. 

문득 화선지를 날렸던 바람이 들어온 창문 생각이 났다. 

누군가가 천마의 방에 들어온 것인가? 밤사이에 무슨 변고(變故)가 생기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조용할 리 없었다.

“천마님! 실례를 무릅쓰고 침소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노부가 방문을 여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끼이이이익.

고치지 않아 균열하는 듯 소리가 나는 침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이내 마염지의 마음에서도 균열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는 듯했다. 

침소에 있어야 할 천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불은 어젯밤 시중을 드는 하녀가 펼쳐 놓은 그대로이다.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게 펼쳐진 이불에는 잠시 누웠던 흔적조차도 없었다.

“천마님이 침소에 계시지 않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셨다는 말인가?”

마염지는 급히 침소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탈마의 경지에 이른 천마를 누군가가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다급한 마음에 방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쓰러져 있을지도 모를 천마가 눈에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 안을 둘러 보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화선지를 날리며 방 안을 어지럽혔다.

“화선지…….”

천마의 유일한 취미인 글쓰기. 마음의 안정에 가장 좋고, 탈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말을 해 왔던 천마다. 

게다가 요즘은 그림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전대의 천마가 마음이 피폐해져 사람을 죽이고, 피를 손에 묻히는 것까지 취하는 바람에 수많은 고생을 했던 마염지인지라, 마교의 교주답지 않은 취미일지라도 천마가 그림을 배우는 것에 제법 유명한 화공까지 불러들여 한 수 거들기까지 했던 터였다.

“화선지가 저리도 많았단 말인가? 저만큼이나 그림을 많이 그리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바닥에 흩어져 있는 화선지가 불길해 보였던 마염지는 손수 흩어진 종이를 모두 거두어 탁자로 가져갔고, 이내 마치 읽기를 바라는 듯 쇠문진으로 곱게 고정시켜 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방 안에 있어야 할 천마가 없고 대신 종이가 있는 것에 마염지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천마를 납치라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마염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감히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를 누군가 납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더러운 수작이라면 세상 제일가는 무림맹에서 그 어떠한 짓을 할지 알 수 있겠는가.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를 해치기 위해서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벌일 터였다. 

때마침 오늘은 정마대전을 일으키는 날이니 모든 것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졌다. 

마염지는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종이를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식은땀과 함께 글을 읽기도 힘들 정도로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흑뇌마왕 및 오대마왕에게 전하노라. 천마가 된 이후 그칠지 모르는 살(煞)에 대한 육대 가문의 요구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한다. 천마의 자리를 버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데 어찌 내가 이 자리를 보존하겠느냐. 이후 나를 찾지 말거라. 찾아오는 자에게는 가문과 직위를 불문하고 오직 죽음으로 대할 것이다.]

“어…… 어째서 천마가 이런 생각을……. 천마가 스스로 천마신교를 나갔다는 말이냐. 우리를 버렸단 말이냐! 어찌 이럴 수가!”

마염지가 뒷목을 잡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화가 너무 지나쳤기 때문인지, 마염지의 머리로 급하게 몰린 피가 그의 단전을 비틀고 기도를 좁게 만들어 순간 피를 토할 뻔했다. 

칠십이 가까워지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마염지는 지금만큼이나 화가 난 적이 없었다. 

하마터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뻔한 마염지는 이내 천천히 화를 삭이기 시작했다.

“고작 평온한 마음 하나 가지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버린다고? 정녕 미친 게로구나. 탈마의 경지에 오르면서 살심이 없어진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생사를 같이한 사람들까지 버리는 게냐.”

마염지의 눈이 다시 한번 천마의 방을 둘러보았다. 

천마가 쓰러져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찾아보던 조금 전과는 달리 냉정하고 차분한 눈빛이었다. 

아무것도 장식하지 말고 아무것도 고치지 말며 처음 있던 그대로 두라던 천마의 방. 

분명 천마는 처음부터 이곳에 오래 있지 않을 생각이었을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방 안에 아무것도 두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단 말이냐. 애초에 천마 같은 건 하고 싶지도 않았단 말이냐!”

마염지의 기가 폭발하며 방 안을 부수고 창문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벽력탄이 터진 듯 방 안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소리에 다른 오대마왕 가문의 문주들이 방 안으로 뛰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마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자 그들도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마음에 천마의 방으로 올라오던 참이었다.

“이것이 무슨 일이오!”

“천마님의 거처에서 무엄한 짓을 하는 자가 누구냐!”

그러나 마왕들이 칼을 뽑아 들고 뛰쳐 들어온 방 안에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흑뇌마왕 마염지만이 눈에서 혈광을 터뜨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생소한 그 모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대 마왕에게 마염지는 말없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읽던 가문의 문주들의 눈에서도 혈광이 떠오르며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꿈은 어쩌란 말이오. 우리는 천마가 없으면 정마대전을 시작할 수도 없소.”

“당장 천마의 뒤를 쫓읍시다. 어떻게든 다시 모셔 와야 하오.”

“쫓기야 하겠지만 따라잡을 수 있겠소?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이오!”

“이미 모여 있는 2만의 병력은 어쩌란 말이오. 어떡해서든 설득을 해야 합니다. 중원 통일은 우리의 꿈이자 사명이오.”

남은 오대마왕 가문의 문주들이 서로 큰소리를 내는 동안 흑뇌마왕 마염지만이 온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십만대산의 한곳을 바라보았다. 

천마는 분명 중원으로 연결되는 산의 끝자락으로 갔을 것이었다. 

그곳이 마교와 가장 빨리 헤어질 수 있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마염지는 설득보다 이미 복수의 마음이 앞섰다.

“반드시 오늘의 일을 갚을 것이다. 천마! 아니, 천일영!”

마염지의 눈이 분노로 핏발이 터지며, 혈광보다 더욱 짙은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탈마의 경지에 올라 살심이 없어졌다고 한들 천마라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마염지는 이를 갈며 십만대산의 끝자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신귀환기


지은이 : 은하은

제작일 : 2021.11.29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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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1-46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