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외과의사 박현우는 동생을 구하고 싶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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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2011년 3월 4일



“형, 뭐 해?”


동생 현겸이 말을 걸었다. 박현우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그는 부엌에 서 있었다.

아직 어렸던 시절에 살던 단독주택. 그곳의 구식 부엌이었다.

말이 좋아 단독주택이지, 한 층짜리 엉성하게 지어놓은 벽돌집에 불과하다.

주방 문에는 그가 동생과 함께 직접 붙인 시트지가 비뚤게 붙어 있고 외풍이 있어 알루미늄 창틀 사이로는 바람이 샌다.

몇 번이고 이사를 가자고 했었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이라며 고집을 부리셨다. 부모님은 남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

나는 서울에서 오래 살다가 이후 동생을 잃고 나서는 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예 방문하지도 않고 팔아 버렸다.


현우는 눈을 비볐다.


‘말도 안 돼. 현겸이는 죽었는데.’


동생의 장례식에서는 그가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다. 반면에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동생 녀석은 말짱했다. 뺨이 발갛게 상기된 채 시장에서 사 온 민트색 캐릭터 후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부엌의 오래된 가스레인지에는 양은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뚜껑 열린 냄비 위에 낯익은 라면이 보였다. 매콤하니 저절로 침이 솟게 하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식욕을 돋우는 주황색 국물에 선명하니 새까만 다시마 조각이 두 개.

통통하고 굵은 면발.

곁에 뜯겨 뒤집혀 있는 봉지라면의 이름을 보지 않아도 뭔지 알 수 있었다.

너구리.

익숙한 라면이다.

면의 상태를 보아하니 거의 익어간 듯싶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라면 냄새가 너무나도 진했다. 수증기 때문에 안경이 부옇게 흐려졌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그동안 현겸이가 그리웠다.

동생 녀석이 너무 보고 싶었다.

현겸이 재촉했다.


“형, 빨리 달걀 넣어. 형이 가위바위보 졌잖아.”

“어?”


눈앞에 갈색 껍질의 달걀 두 개가 불쑥 디밀어졌다. 현겸이 생글생글 웃으며 달걀을 내민 것이다.


“두 개.”


현우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라면은 하나뿐인데 달걀을 두 개나 넣으라고? 이 굵은 우동면에?”


그럼 국물 맛이 변해 버린다.

라면의 상식.

달걀을 넣으면 국물이 탁해진다. 현우는 다른 라면이라면 모를까 너구리에는 절대로 달걀을 넣지 않았다. 하물며 두 개는 더 안 된다.

현겸이와 매번 옥신각신하던 주제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잠깐만, 너 라면 먹으면 안 되잖아.”


현겸이는 신장이 나빴다. 장기 이식 수술을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현겸이는 이런 걸 먹으면 안 됐다. 패스트푸드나 나트륨을 먹지 못해서 라면은 아예 손도 못 대게 했다.

현겸이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현겸이 항의했다.


“가위바위보에~졌으면서~! 난 너구리 국물에 달걀이 들어간 게 좋단 말이야.”


그랬다. 라면을 끓일 때마다 현겸이가 이겨서 달걀을 넣었었다.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동생이 건강해서 그런 것 같았다.


‘지금 울면 안 돼.’


현우는 결사적으로 눈을 비볐다.

현겸의 얼굴이 어렸다. 앳되고 피부가 좋았다. 아직 건강하다. 키만 컸지 아직 열네 살이다. 변성기도 오지 않은 목소리에 앳된 얼굴.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죽은 동생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현우는 지금 울고 싶지 않았다.


“달걀 왜 안 넣어!”


현겸이 다시 보챘다.


두 형제는 라면을 끓일 때마다 투닥거렸다.

박현우는 종류를 막론하고 라면에 달걀을 넣지 않고 끓여 먹는 것을 선호했고 현겸이는 넣고 싶어 했다. 현우는 웬만하면 져 줬지만, 너구리에 달걀만은 도저히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평하게 매번 가위바위보를 했다.

옛날 일이다. 아직 현겸이가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기 전의 일. 부모님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고, 현겸이도 불치병 진단을 받아서 식이를 제한해야 하기 전에 있었던 일…….

이렇게 살아서 보채고 화내고 칭얼거리는 동생이 그리웠다.


평범한 일상이 고팠다.

천재 외과 의사라고 불리며 환상 같은 이식수술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지만 이미 죽은 동생만은 살릴 수가 없었다.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꿈에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 꽁꽁 뭉쳐있던 서러움과 그리움, 그것들이 모두 녹아내리는 듯싶었다. 현우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


현겸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금 전까지 장난치며 놀던 형이 이상했다.


“뭐야, 형 왜 그래?”

“달걀 두 개 넣어줄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줄 테니까 라면 먹지 마. 네 건강에 안 좋아.”

“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먹지도 못하는데 달걀을 넣어서 뭐해!”


동생이 빽 하니 소리를 질렀다.


“울어? 형 왜 울어?! 울 정도로 라면이 먹고 싶었어?!”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현겸이는 죽고 나서 꿈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소리를 지를 일도, 화낼 일도 없었다.


“미친 거 아니야!?”

현겸이가 발을 쿵 구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현우는 순간 머뭇거렸다. 깨뜨린 달걀이 빈 밥공기에 풀어져 있었다. 자신의 상식대로라면 절대로 이 라면에 달걀은 넣을 수 없다. 하지만 말짱해 보이는 현겸이의 얼굴을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어라, 라면의 상식.’


현겸이가 기뻐한다면 라면에 달걀을 백 개라도 풀어주겠다. 그는 라면 냄비에 달걀을 풀었다. 투명한 흰자가 치즈처럼 늘어지며 새빨간 국물에 몸을 담갔다. 순식간에 흰자가 새하얗게 변화했다. 하얗게 익은 달걀흰자를 보며 박현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단백질의 비가역성.

한 번 열을 받아 변화한 단백질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얼린 물은 온도가 낮아지면 녹아서 물이 되지만 익은 달걀은 식었다고 다시 날달걀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한 번 망가진 신장도 마찬가지다. 사구체라고 하는 신장의 조직이 있다. 모세혈관이 노폐물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현겸이의 신장은 사구체에 문제가 생겨 신장 이식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은 언제야?’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이 간 인조대리석 싱크대에는 오래된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그는 시간과 날짜를 확인했다.


“……2011년 3월 4일?”


전화기에는 어제까지 왔던 콜이 잔뜩 남아있었다. 지금은 서운 대학 병원의 일반외과 전공의 1년차로 일하기 시작한 때였다. 개교기념일이 되어, 악명 높은 100일 당직을 시작하기 전에 귀한 하루 오프를 받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고 동생과 점심 식사를 한 날이었다. 이 날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20년은 된 구형 575L 냉장고에 메모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엄마랑 아빠가 선물 사 올게~!

3월 12일에 귀국할 거야!

센다이 호텔 123-456-1234」

포스트잇은 오늘 아침에 붙여 새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 쪽지는 아주 낡고 바래어 글자도 지워졌어야 했다. 자신의 수첩 속에 코팅한 채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포스트잇은 새것 그대로 냉장고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


그는 손을 뻗어 거칠거칠한 포스트잇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이것은 어머니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즈음 부모님은 일본의 동부 지방에 머무는 고모와 고모부를 방문하셨다. 불행하게도 귀국하기 하루 전에 동일본지진이 일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 고모와 고모부가 모두 실종되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로 연락이 끊겼다.

살아남은 것은 마침 한국에 여행을 와 있던 고종사촌 동생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왔어.’


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부모님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


‘뭐라고 해야 하지.’


생각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통화 중이었다. 아버지도 통화 중이었다. 그는 부모님에게 보는 대로 전화해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전화기를 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있었지?’


그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정리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에 현우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전공의로 일하면서 동생의 학부모 노릇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동생이 식욕이 없는지, 잠을 못 자는지 챙기지 못했다. 현겸이는 바쁜 형한테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매일 보던 소변이 완전히 새빨간 색깔이 됐을 때 학교 수업 도중 쓰러져서 119를 타고 병원에 왔다.


현겸이 열여덟 살에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았을 때 신장은 이미 25%만 기능하는 상태였다.

신장이 80%에서 50%만 기능할 때에는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겉으로 알 수 없다. 50%에서 25% 이하가 되어야만 증상이 드러난다.

기능하는 신장은 오직 25%.


즉 현겸은 말기 신부전 상태였다.

체육계 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했던 건강한 동생은 이제 없었다. 현겸이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투석을 병행하면서 치료를 했다. 주 3회 투석을 병행하면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은 무리다. 이미 병원비에 허덕이는 집안 형편으로는 대학 학비를 부담할 수도 없었다.

현겸이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장기 이식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외과에서 일하던 박현우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동생이 건강한 몸으로 살아남길 바랐다. 그는 현겸이에게 신장을 이식해 주고 싶었다. 신장을 하나 제공해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무기 삼아 현겸이를 설득했다.

하지만 현겸이는 끝까지 그 수술을 거절했다.


“형 신장 같은 거 줘도 안 받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동생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현겸이를 살리기 위해, 펠로우를 하다가 연구직으로 아예 빠졌다.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장기 이식을 연구했다. 콜린 박사와 함께 연구한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이종 간 신장 이식은 결과가 좋았다.

아주 성공적이었다. 여명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말기 신장 환자들을 대상으로 돼지의 신장을 이식했고, 열 명 중 두 명이 반년을 버텼다.

두 명은 죽었고 여섯 명은 두 달을 더 살았다.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했다.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돼지의 유전자를 더 조작해야 했다. 실험 허가를 받아 새로운 돼지를 더 키워내야 했다. 동생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료법상 이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겸이는 건강이 나빠져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수술하면 살 수 있는데, 정작 동생을 살리지 못했다. 귀국을 서둘렀으나 동생은 이미 죽은 후였다.


현겸이를 살리려고 미국에 왔는데,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죄책감과 후회,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억울함.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내내 후회했던 것들.


‘일본 여행을 가지 않도록 말렸다면 부모님이 살아 계셨겠지.’

‘설령 부모님이 돌아가셨더라도 동생의 상태를 계속해서 면밀히 살폈더라면 좋았을 거야.’


그리고 지금, 과거로 돌아왔다.

후회하던 모든 것들을 다 바꿀 수 있다!

현우가 힘차게 주먹을 쥐며 허공에 휘두르려는 순간 기계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익

타이머가 울었다.

라면이 완성되었다.


“현겸아.”


현우는 동생을 불러 보았다. 현겸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현우는 냉장고에서 스테인리스 반찬 통에 담긴 김치를 꺼냈다. 한쪽 다리가 찌그러진 앉은뱅이 탁자를 꺼내서 펼쳤다. 반상 한쪽 귀퉁이에 전공의 지침서를 받치고, 식탁 위에는 얄팍한 과월호 잡지를 받쳤다. 양은 냄비째 라면을 올려놓고 이가 빠진 하얀 냉면 그릇에 라면을 덜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 들었다.


통통하고 굵은 면발을 후루룩 마시자 알싸한 맛이 목에 탁하고 걸렸다.


“으흐으으으으.”


라면은 뜨거웠고 국물은 자극적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전부 바꿀 수 있다.

통쾌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아하하하하!”


그때 현겸이는 방에서 어머니와 통화 중이었다.


“응, 엄마. 형이 미쳤나 봐. 나한테 달걀 넣어 준다고 하면서 라면 먹지 말래.”

“그래? 레지던트 1년차라서 그런가 봐. 엄마도 옛날에 그때가 너무 힘들었어. 우리 현겸이는 어른이니까 형을 조금만 응원해 주자.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거든. 외과라서 그런가 봐.”


현겸이 문밖을 흘끔흘끔 보면서 말했다.


“지금은 라면 먹으면서 울어. 미친 것 같아.”

“그래, 형한테 이번에는 양보해 주고. 나중에 네 라면은 엄마가 또 끓여줄게. 우리 현겸이 이제 어른이잖아.”

천재 외과의사 박현우는 동생을 구하고 싶다


지은이 : 미루하

제작일 : 2022.08.26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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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042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