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여주인공의 아빠가 되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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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여주인공의 아빠가 되었다 (1)



“X발, 이건 또 무슨…….”

난데없는 화재로부터 죽음을 맞이했다.

침실에서 게임을 즐기던 도중 거실에서 일어난 불꽃.

원인은 나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전기장판을 꺼 두지 않았던가?

1.5룸에서 자취 생활을 보내던 나는 그렇게 갑작스러운 화재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뜬 순간, 난생처음 보는 허름한 집에 서 있었다.

정신을 번뜩인 채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아빠?”

“너…… 너는 누구…….”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

8~9살 정도쯤 되려나?

멍하니 소녀를 바라보던 때.

내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연상의 아내와 결혼하는 과정, 그리고 딸을 대신해 교통사고를 당한 아내가 병원에서 끝내 사망하는 장면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주입되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윽!”

갑작스러운 두통에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박건혁…….”

나는 한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내 이름은 신무영이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3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자.

그래, 눈앞의 남자가 바로 박건혁이라는 인물이다.

그보다도 33살이 왜 이렇게 폭삭 늙었어?

40대라 말해도 믿겠네!

“…….”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9살의 소녀.

그녀의 이름은 박수영으로, 박건혁의 딸인 모양이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딸의 탓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은 벌써 1~2년 전의 이야기다.

그녀의 죽음은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정리 해고를 당하고, 도박에 손을 뻗었다가 전 재산을 탕진.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와중에도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딸인 수영을 학대하기까지,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 되었다.

“……방에 들어가 있으렴.”

내 한마디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빙마궁주(氷魔弓主) 회귀하다.”

나는 연재가 중단되었던 한 웹 소설을 떠올렸다.

죽음을 맞이하기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정주행을 마친 소설.

작가에게 쪽지를 보내 재연재를 부탁했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100편도 채 되지 않는 적은 편수에 중단되어 얼마나 아쉬웠던지.

박수영이란, 해당 웹 소설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리고 박건혁은 그녀의 아버지.

“하하.”

나는 ‘설마’라는 생각에 TV 리모컨을 주웠다.

그러곤 20인치의 허접한 모니터를 향해 전원을 눌렀는데.

공중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

KKB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헌터의 일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채널을 멈췄다.

“X발.”

욕설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부분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왜 하필이면 박건혁으로 되살아난…… 아니, 이 경우에는 빙의했다고 말해야 하나?

인간 말종인 박건혁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지금부터라도 막을 수 있다.

수영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직후의 일이니까.

문제는 수영이 ‘2회차 인생을 살고 있다면.’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박건혁의 미래가 비틀어지게 되는 2회차 인생.

‘박수영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나? 본래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야 할 박건혁이 갑작스러운 레이드 발생으로 마수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수많은 마수들이 게이트를 넘어오는 현상, 레이드.

사람들은 게이트가 폭발했다는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회귀를 경험한 수영은 본인의 능력으로 위기를 피해 내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건혁은 해당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한다.

‘세계의 종말보다도 지금은 내 목숨부터 잘 간수해야겠어.’

1회차 박수영은 이계에서 넘어온 마족의 군세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군과 마계…… 아르덴군이 벌이는 세계 전쟁급 인마대전.

인마대전까진 앞으로 18~19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 봐도 괜찮겠지.

‘그보다…… 앞으로 어떡하냐?’

사회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게 박건혁의 지식은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으나, 그게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차라리 박수영에게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하고…….”

그런 생각은 무참히 짓밟혔다.

수영을 불러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전생의 이야기는 필터링되어 수영에게 전달되는 모양이다.

무언가에 통제되듯이 말이다.


[플레이어의 상습적 도배로부터 한 달간 발언이 제한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경고 창.

나는 한 달 동안 전생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문장과 단어들을 내뱉었다.

그러나 모든 발언은 필터링 처리되어 전달됐다.

물론, 글로도 남겨 보려 했지만, 볼펜에 잉크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트에는 아무런 내용도 기입되지 않았다.

“이런 쓸데없는 것들은 상관없는데 말이야.”

제한 범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었던 나는 골치가 아파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아, 일단은 막노동이라도 다녀와야 하나?”

30대 중반임을 믿을 수 없는 볼품없는 몸.

이게 올챙이배라는 건가?

나는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그나마 막노동을 일삼았기 때문일까?

팔에는 약간의 근육이 붙어 있었다.

“수영이는 회귀한 게 맞겠지.”

그녀는 모친이 죽은 이후에…… 정확히 초등학교 2학년생으로 회귀를 하게 된다.

나는 수영의 하교 시간에 맞춰 그녀의 등 뒤를 미행했다.

매번 늦어지는 그녀의 하교 시간.

그로 인해 수영의 회귀 가능성을 추측해 보았는데.

스윽.

‘역시.’

초등학교 뒷산으로 올라간 그녀는 허공에 손을 뻗어 얼음의 활과 화살을 만들어 냈다.

이어, 수십 미터 떨어진 나무를 향해 저격하는 광경까지.

그 모든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후, 내 행동은 분주해졌다.

헌터로 각성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자연적 각성과 인위적 각성.

인위적 각성이란, 민간 기업에서 제작한 각성제를 복용하여 힘을 얻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나마 소설 속의 박건혁과는 다르다는 건가?”

누군가가 내 행동을 통제하는 대신 그에 따른 능력이 주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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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건혁

*종족: 인간

*칭호: -

*출신 국가: 한국

*LV: 1


*근력: 7

*민첩: 5

*체력: 8

*마력: 0

*AP: 0


*스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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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이터스.

능력 자체는 너무나도 허접해 보였지만, 능력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세계는 아쉽게도 게임 판타지 요소 중 하나인 스테이터스가 존재하지 않았다.

능력의 강화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수치화하여 볼 순 없다는 의미다.

“무슨 게임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네. 그보다 마력은 0이야? 민첩은…… 뭐, 이 배로는 당연한 건가.”

나는 불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의 박건혁에게는 친구도 친척도 가족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연락 자체가 끊어졌다 해야겠지.

그나마 가족이라 부를 만한 인물이라곤 자녀인 박수영뿐이려나?

“가자.”

나는 후줄근한 티셔츠에 가벼운 점퍼를 걸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현재 내가 소지 중인 현금은 1,237,000원.

도박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 둔 것인지, 녀석이 사용하기 전에 내가 빙의한 모양이다.

서초구의 구석진 아파트에서 거주하게 된 나는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헌터 협회 서울 중앙 본부를 방문하였다.

“네,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반갑게 맞이해 주는 접수원.

“그…… 각성을 해서 등록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아, 그러시다면 이쪽의 신청서부터 작성을…….”

내 후줄근한 차림을 보고도 여직원은 친절하게 대응하며 신청서를 한 장 건네주었다.

이름과 연령, 연락처, 주소 등의 정보들을 기입한 다음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등록 신청비로 50,000원을 받아 간 직원.

나는 지갑에서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래도 헌터 등록하려고 온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기다린 뒤, 나는 살짝 지친 얼굴로 검사실로 들어갔다.

내가 제17 검사실로 입실한 순간.

남성 검사관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네, 반갑습니다. 지금 검사를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는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니, 나를 검사 부스로 들여보냈다.

부스 바깥에서 무언가를 체크하던 검사관은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더니,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흐음, 각성 점수는 7점이네요. 대신, 성장 점수가 21점으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각성 점수과 성장 점수는 10,000점 만점이다.

물론, 10,000점에 도달한 헌터는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초기 각성자 중 100점을 넘어가는 사례 역시 정말로 드물다고 한다.

검사관이 보여 준 초기 각성자의 평균 점수.

나는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평균 각성 점수가 4~50점대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그만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현재 대한민국 헌터 서열 28위이신 강민철 헌터님도 초기 각성 때에는 평균 점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요. 성장 점수가 낮게 나왔지만, 박건혁 님께서는 얼마든지 강해지실 수 있으니, 부디 대한민국을 위해 그 힘을 보태 주십시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고기방패가 되어 달라.

그 말인가?

나는 그의 발언이 형식적인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협회에서 받은 카드 형태의 헌터증은 간단한 내용만이 기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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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건혁

*출신 국가: 대한민국

*서열: 567,211위

*등록일: 201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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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397명 중 567,211위인가.”

참고로 서열을 매길 때는 각성 점수에서 소수점 다섯 번째 자리까지 반영된다고 한다.

서열이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그보다 내 뒤로 1,100명이나 있구나.

물론, 내 위로는 567,000명이 존재하지만.

아쉽게도 주인공이 될 순 없는 모양이다.

1회차의 박수영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3대 은행 중 하나인 DH은행에 취직한다.

그리고 23살에 각성, 25살에 빙마궁주라는 이명을 얻어 서열 100위에 진입.

물론, 100위에 진입하자마자 마계와의 전쟁이 시작되어 그녀는 27살부터 29살까지 전장에서 활동하다 전사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먼치킨이잖아.”

독자들 입장에서 주인공이 먼치킨이라는 요소는 매력적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매력적인 요소 때문에 소설에 빠져들었었지.

하지만…….

“정작 엑스트라 입장은 이렇게나 씁쓸한 거구나.”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곤 PC방에 들어가 헌터 협회의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진행했다.

헌터로 등록을 해 둔 덕분일까?

회원 가입의 절차는 간단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게이트 조사대의 모집 공고를 둘러봤다.

“흐음……. 역시 소설대로네.”

소설 속 여주인공의 아빠가 되었다


지은이 : 러쉬러쉬

제작일 : 2022.06.2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레아

표지 : 시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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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02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