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님, 회개해주세요! 0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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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0. 프롤로그


 '아, 출근하기 싫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철문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택 앞에서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며 들어갈지 말지 서성거린 탓일까?
 문 앞을 지키던 병사가 경계하며 말을 걸어왔다.

 "오늘부터 공작님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시온 리벨론이라고 합니다."

 당장이라도 '수상한 자다!'라고 외칠 것 같은 미심쩍은 표정.
 나는 품속에서 며칠 전 우편으로 도착한 출입 증표와 임명장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며 얼른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올 것이란 얘기를 미리 전해 들었는지, 혼자 중얼거린 병사가 증표와 임명장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야, 경계가 풀린 표정으로 웃으며 그것들을 돌려주었다.

 "하하, 첫 출근이라 많이 불안하신가 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프라시더스 공작님께선 무척이나 친절하고 온화한 분이시니!"
 "아···하하. 그, 그렇죠. 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 떨떠름한 대답에도 병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좋은 얼굴로 등을 떠밀어주듯 말했다.
 결국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라도 된 심정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오늘부터 내가 근무해야 할 프라시더스 공작가는 신성 루멘 제국의 단 둘뿐인 공작가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프라시더스 공작가의 사람들은 특히나 강한 신성력을 타고난 이들이 많았다.

 '덕분에 수많은 추기경들을 배출해냈다나 뭐라나?'

 내가 모시게 될 사람은 그런 가문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강대한 신성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

 앞으로 내가 모셔야 할 사람의 이름이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 입에 담아봤는데, 반대로 기운이 더 빠졌다.

 세르펜스는 본인에겐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자애로울 줄 알았다.
 막대한 신성력 만큼이나, 그 신앙심 또한 깊어서 언제나 여신의 뜻을 따르는 독실한 신자로 알려져 있다.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도 좋았고 화를 낸다거나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일 또한 없었다.
 심지어 그 자신의 일 처리 능력 또한 매우 우수하여 업무 대부분을 본인이 처리하기 때문에 과중 업무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제국민들에게 상사로 모시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누구든 그의 이름을 댈 정도였다.

 나는 그런 사람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혹자는,

 ["돈 많이 주고, 일 적고, 선량한 상사라니!"]

 ···라고 외치며, 이 세상 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야말로 꿈의 직장.
 그런 곳에 합격해놓고도 출근하기 싫다고 첫날부터 뭉그적대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배가 불렀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나 같아도 욕했다!'

 하지만 내게도 이유는 있다. 사실 난 이계인이고 빙의자다.
 현실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이나 만화 같은 매체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지.

 이게 만약 소설이고 그것을 누군가 읽고 있다면 방금의 소개만 듣고도,

 ["아, 이 새끼 이거! 현대인이 판타지 소설 읽다가 그 등장인물에 빙의했구만? 그리고 보좌관 따위를 하는 거 보니 분명 주인공은 아닐 거야."]

 ···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아주 정확했다.

 '다시 돌아와서 내가 출근을 꺼리는 이유인데···.'

 내가 빙의한 소설, [성검의 주인]에 따르면 대충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세르펜스는 어린 시절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의 습격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그 누구보다 악을 증오한다는 설정이 있다.

 그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공작위에 올랐으나, 타고난 수완으로 그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세르펜스는 제국민 모두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명실상부 최고의 귀족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르펜스는 무척이나 청렴결백한 성격으로, 힘없는 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것을 친히 베푼다고 알려졌다.
 거기에,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갈고 닦아온 천재적인 검술 실력까지!

 누가 봐도 차기 '성검의 주인' 내정자로서, 한치의 흠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 알려졌다.

 이상의 표현을 보면,

 ["아~, 그 자식이 주인공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기 딱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틀렸다.
 내정자라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생각이 그랬다는 이야기.

 성검이 선택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런 설정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신도 제정신이라면 그런 놈을 성검의 주인으로 선택하진 않았겠지.
 그게 뭔 개소리냐 싶겠지만, 차분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이제까지의 이상한 문맥들을 보고도 눈치 못 챈 건가?'

 그러니까 그는 그런 설정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그런 설정이 있는' 설정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의 부모님을 살해한 자는 세르펜스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소설에 따르자면 세르펜스에겐 과거 두 명의 보좌관이 있었다.
 한 명은 세르펜스의 명에 따라 무언가를 조사하다가,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설정.

 잇따른 보좌관들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겼다고 알려진 세르펜스는 그 이후 더는 새로 보좌관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르펜스와 관련된 서술에는 주의사항이 두 가지 있었지.'

 첫째, '~로 죽었다는 설정이다.'라는 말은 '얘가 죽였어요.'로 치환해서 읽으면 된다.
 둘째, '~라 알려졌다'라는 말은 '그건 사실 개뻥이다.'라는 뜻이다.

 '과장 아니고 진짜로!'

 괜히 아까부터 '설정이 있다' 라던지, '알려졌다'라는 말을 남발한 게 아니다.
 이건 작가 공인 오피셜이다! 

 "이야~. 근데 그 두 번째 보좌관이 바로 나잖아?"

 아! 갑자기 세르펜스가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이 '서스펜스가 떴다!'라고 이름 장난치던 게 떠오른다.

 정말 서스펜스가 넘치네, 살려주세요.


[연재] 공작님, 회개해주세요!


출판등록 : 2019년 1월 28일

지은이 : 별볆볆별명

발행처 : 글고운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307번길 69, 704호

E-mail : geulgowoon12@gmail.com

ISBN : 979-11-8978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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