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정령사의 힐링상점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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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나는 정줍 당했다



“현우야. 정령 없는 정령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면담 중이던 교수님이 물었다. 나는 담담히 답했다.

“찐빵 없는 앙꼬죠.”

“그래. 삽겹살 없는 쌈장이고 라면 없는 김치지.”

앞뒤가 바뀐 게 아니었다. 정령사는 정령이 본체나 다름없으니까.

교수님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는 F급 정령사잖아. 라면 없는 김치인데 심지어 묵은지도 아니야. 그렇다고 겉절이도 아니지. 너는 그냥 배추야. 김치 소는커녕 소금 절임도 안 된 배추.”

신랄한 내용이었지만 교수님의 목소리에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계약한 정령이 없는 F급 정령사. 내게 그 현실을 보여주고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거였다.

나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작게 웃었다. 교수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이제 익숙할 정도였다.

“그나마 국내산 배추라는 게 위안이네요.”

내 농담에 교수님은 잠시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것도 대관령 고랭지에서 자란 최고급 배추지.”

교수님은 보고 있던 모니터를 돌렸다. 내 성적표가 떠 있었다.


- 정령에 대한 심층 이해 A+

- 정령과 도교 사상 A+

- 정령계에 대한 이해 A+

- 정령과 아동 심리학 A+

- 현대 사회에서의 정령 A+

- 능력범죄와 방범학 개론 A+

- 게이트구조학 A+

- 길드의 경영과 관리 A+

- …….


A 이외의 알파벳은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성적표였다.

그걸 보는 교수님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최고급 인재지. 머리 좋아, 싹수 있어, 교우 관계 좋아. 근데 이 F급 정령사한테 정령이 없네. 정말 완벽한 배추인데 김치는 절대 못 돼.”

나는 말없이 내 성적표를 봤다. 아무 의미 없는 완벽한 성적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 정식 명칭은 각성자 교육 대학.

나는 이 학교를 3년 반을 다니며 한 번도 과 수석의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헌터 사회에서 성적은 큰 쓸모가 없어.’

헌터들의 취업은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가진 ‘스킬’과 ‘등급’에 따라 결정 된다. 아카데미에서 아무리 공부를 해 봐야 등급이 낮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니지. 그래도 한 가지 쓸모는 있었다.

“장학금은 잘 나오니까요.”

“장학금. 그래, 장학금 좋지.”

교수님은 내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다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현우야. 나는 네가 좋다. 이런 유머러스함도, 느긋함도. 하지만 이제 졸업 이후도 생각해 봐야지 않겠어?”

“6학년 졸업까지는 아직 2년 반이나 남았잖아요.”

“인턴십을 제외하면 1년 반이지. 그리고 그 1년 반 안에 결판이 난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고.”

나는 식은 커피 잔을 내려다봤다. 이제 교수님이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현우야. 대학원 가자. 김치가 안 되면 쌈 채소라도 돼야지. 힘이 모든 걸 지배하는 이 야만적인 각성자 사회에서 우리 같은 배추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건 그 길뿐이야.”

교수님은 내 예상대로의 말을 꺼냈다.

교수님들끼리 뭔가 이야기라도 있었던 걸까.

아무리 기말고사가 끝난 주라고 해도 이번 주에만 일곱 번째 대학원 제의였다.

나는 몇 번이나 해서 입에 붙어 버린 대답을 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방학 동안에는 고향에 내려가거든요.”

“그래. 이제 기말고사 끝나고 종강했는데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봐라. 다음 학기에도 내 수업 들을 거지?”

“그럼요. 개강하면 뵙겠습니다.”

나는 미소 지으며 교수실을 나왔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슈웅-!

무언가가 창문 가까이를 스치고 날아갔다.

덜컹덜컹-!

그 충격에 창문이 흔들렸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곳 헌터 아카데미에서 이런 건 일상이었으니까.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여름의 햇빛이 쏟아지는 밝은 하늘 아래, 수많은 학생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비행 하교.’

모 TV 프로그램에서 그런 이름을 붙여줬을 정도로 아카데미 학생들의 하교 장면은 장관이었다.

천사의 날개를 가진 학생이 부드러이 하늘 위를 날았다.

발에서 공기를 분사하며 하늘을 나는 학생이 빠르게 창문 가까이를 스쳤다.

정령의 힘으로 공중에 떠 있는 정령사는 스스로가 통제가 안 되는지 벌써 머리에 나뭇가지를 잔뜩 달고 또 다른 나무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물론 아카데미에는 비행 각성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간다, 모여!”

순간이동 각성자는 친구들을 자신의 중심으로 모으고 있었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열 몇명의 학생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옆에서는 신체 강화 계열의 각성자들이 오토바이에 비견될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밝은 햇살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 * *



교수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곧바로 짐을 싼 나는 해가 지기 전에 고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부모님은 삼척 해수욕장에서 작은 민박집을 하고 계셨다.

“아들!”

“현우 왔니?”

부모님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들어가자. 네가 좋아하는 꽁치 찌개 해 뒀다.”

나는 짐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식탁에 앉았다.

내가 밥을 몇 술 뜨자 부모님이 기대하는 눈으로 물으셨다.

“아들. 시험은 잘 봤니?”

나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직 성적이 공식적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교수님들 말로는 수석이라 그러더라고요.”

부모님의 입가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걸렸다.

“장하다, 아들! 7학기 내내 수석이라니!”

“허허허. 정말 가끔 보면 네가 정말로 내 아들이 맞는지 모르겠구나. 그 좋은 대학에 가서 수석이라니!”

부모님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다. 평생을 삼척에서 살아오신 부모님은 순박한 분들이셨다.

자식이 성적을 잘 받고 장학금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해하시고 만족하시는 분이었다.

“부모님이 잘 낳아 주신 덕분이죠.”

“누굴 닮아서 말하는 것도 이리 예쁠까.”

“현우야. 네가 정말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자랑!”

나는 미소와 함께 숟가락을 마저 떴다. 입맛이 조금 썼다.



* * *



새벽이 깊은 시각이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던 나는 맥주 캔을 들고 집을 나왔다.

쏴아아-.

집 대문을 나서자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까지 걸어서 3분, 우리 집은 이 접근성을 살려 민박집을 하고 있었다.

쉰에 가까워지는 나이까지 자식 뒷바라지를 하시다가 간신히 구한 부모님의 노후 대책이었다.

나는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홀린 듯 바다를 향해 걸었다.

쏴아아-.

달도 별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다.

바다가 어디에서 끝나고 하늘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나는 모래사장에 올라 적당한 곳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옷 아래로 모래가 뭉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쏴아아-.

흐릿하게 보이는 파도가 나를 반기며 하얀 손을 흔들었다.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고향 바다, 어머니 바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반겨 주는 오랜 친구와도 같은 바다.

그 파도 소리가 내 마음을 천천히 적셨다. 한참을 그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맥주 캔을 집으니, 맥주는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대학원생인가.”

한숨처럼 상념이 토해졌다.

교수님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다시피 했지만, 사실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각성자들의 미래는 그들이 가진 스킬과 특성에 따라 갈린다.

내가 가진 건 F급의 <정령 친화력>뿐.

정령과 계약조차 할 수 없는 낮은 친화력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내가 공부 머리라고?’

아니다. 고등학교 때의 내 성적은 중위권이었다.

‘학교 수업을 잘 따라 온다고?’

아니다. 나는 죽기 살기로 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이론 공부만이 내가 모두와 평등해질 수 있는 싸움터였고 성적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으니까.

[아하하하!]

부근에서 정령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물의 정령인 운디네와 그 정령사가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정령사의 품에 꼭 안긴 운디네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정령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F급 정령사에게도 정령은 보인다. 그것이 내게 허락된 정령과의 유일한 접점이었다.

“나도 정령이랑 계약하고 싶다.”

오랜 소망을 입 밖으로 툭 뱉어 봤다.

각성하고 지난 6년간 내 꿈은 언제나 그것이었다. 내 정령을 만나는 것. 나는 언제나 정령과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꿨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가 정령사니까.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다.

“E급만 되어도 계약을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나는 지난 6년간 F급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꾸깃, 어느새 다 비워진 맥주 캔이 내 손 안에서 찌그러졌다.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었다. 누구나 하는 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정말로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루어냈다.

‘초등학생 때의 태권도 대회 우승도, 중학생 때의 학생회장 선거 당선도, 수험생 때의 각성자 교육 대학으로의 진학도, 아카데미에서의 3년 반 수석까지 전부 해 냈어.’

이때까지 살면서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노력했던 것 중 이루지 못한 것은 없었다. 정령과의 계약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 첫 실패가 무척이나 아프고 쓰라렸다.

‘이제 슬슬 현실을 봐야지’, 교수님들이 말했다.

‘언제까지 꿈만 쫓으면서 살겠어’, 비슷한 처지였던 선배 F급 정령사들이 조언했다.

‘부모님한테 얼마나 더 뒷바라지를 시키려고?’, 이십대 중반에 든 내 나이가 물었다.

알고 있다. 전부 다 알고 있었다. 한심한 짓이고 미련한 놈이고 불효자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좀처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내 꿈을, 정령을.

찌그러진 맥주 캔을 발치에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딱 이번 방학까지만 더 해 보자.’

방학은 성장의 계절이 아닌가.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뭔가 발전이 있을지도 몰랐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사이로 스며드는, 모든 고통을 잊게 해 주는 희미한 행복함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나는 역시 정령이 좋으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은 바다만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나아졌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면 바다로 나오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바다는 너무나 넓어서, 내 고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는 했으니까.

바다는 단 한 번도 내게 대답을 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내 가장 많은 것을 들은 청자였다.

그때였다.

[그런 것이냐?]

바다가 내게 대답했다.

어두운 밤바다에 한 쌍의 별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홀린 듯 멍하니 바라봤다.

별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정령?”

별의 정체는 정령의 눈이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하늘빛 물의 정령을 멍하니 바라봤다.

정령은 파도가 끝나는 위치에 멈춰 서서는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다.

[음!]

물의 정령은 무언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손을 허리에 척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키워라, 인간!]

“……응?”

[키우라고!]

나는 그렇게 정줍 당했다.

1 

천재 정령사의 힐링상점


지은이 : 소별왕

제작일 : 2021.05.1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팜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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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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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