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자들의 차원마켓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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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프롤로그



영웅들의 차원 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초월자들이 내놓은 것들을 서로 거래할 수 있는 곳이에요!

다양한 굿즈, 상품, 브로마이드, 유물 등등! 무엇이든 거래할 수 있는 범 차원적인 어플이랍니다.

어때요, 정말 굉장하지 않나요?

상품에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마법사의 마력부터, 영웅들의 왕이라고 불렸던 자의 힘까지!

어머!

그들의 멋진 모습을 담은 PV까지 있네요!

구매 욕구가 솟는다고요?

당연한 말씀을!

어떻게 구매하냐고요?

그건 당신의 운명이 알려 줄 겁니다.

덕중의 덕은 양덕도, 일덕도 아닌 ‘영덕!’

영덕대게 아니고요, 영웅 덕후입니다!

잊지 마세요.

#1. 차원 마켓에 어서 오세요!



“으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벽이 부서지고, 성빈이 살던 건물의 외벽이 날아갔다.

요즘 시대에는 정말 흔한 일이었다.

아니, 흔하면 안 되나?

어쨌든, 지금 성빈이 거주하던 집의 절반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그 광경을 본 장본인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내…….”

[크아아아아!]

거대한 리자드맨 하나가 길길이 날뛰는 중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개 같은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

신종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생명을 갉아먹고, 이계에서 넘어온 생명은 이따금 이렇게 날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성빈은 그딴 건 다 상관없었다.

“내, 내 소중한 아가들이…….”

20대 초반에 각성해, 영웅을 육성하는 아카데미에 들어간 성빈.

아카데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보이는 건, 처참하게 망가진 자신의 집이었다.

살 곳도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거기! 물러나십시오!”

“여긴 통제 구역입니다! 그러다 다쳐요!”

“이거 놔라!”

성빈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갔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파편 사이에, 그가 아끼던 굿즈가 반쯤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내가, 내가 얼마를 모아서 산 건데.

없는 형편에 저 한정판 굿즈들을 모으느라 얼마나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는데!

“저건! 저 아이는! 저 아이는 내가 석 달이나 돈을 모아서 산 ‘광휘검’의 친필 사인이라고!”

“지금 그런 게 문제에요!? 당장 나와요! 이봐! 이 사람 좀 끌고 가!”

“놔라아아아아아아아------!”

베테랑 영웅들이 성빈을 붙잡고 끌고 갔다.

눈물까지 흘리며 절규하는 남자의 이름은 민성빈.

그는, 신화와 영웅에 관해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덕후였다.

성빈의 절규가 골목을 타고 메아리쳤다.



* * *



신화.

그리고 영웅들.

그들이 실존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돌 때쯤.

세상이 뒤집혔다.

중국에서 터진 바이러스.

그리고 전 세계 각국에서 터진 게이트 사건.

“흑…… 내 아가들.”

“아직도 저러고 있어요?”

“네, 빨리 끌어내야 하는데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래요?”

“아카데미 학생이래요. 얼마 전에 각성했다고.”

“으휴…… 요즘은 미친놈도 각성을 다 하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빈은 비척비척 일어섰다.

영웅들.

그리고 신화 속 인물들.

그들이 실존했다는 건, 갑자기 등장한 히어로들에 의해 밝혀졌다.

일상 속에 녹아들어, 은밀히 살고 있었던 영웅의 후손들.

몰래 게이트를 처리해 왔던 그들이 힘을 드러낸 것이다.

“아…….”

성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버린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허망한 미소를 지었다.

영웅들이 실존했다는 걸 증명하자, 세상은 그들을 스타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굿즈들을 팔았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들이라니!

만화 캐릭터도 굿즈가 쏟아져 나오는데, 실제 히어로들은 오죽할까.

“이봐요, 여기 이 주소로 가서 머물고 계세요. 협회에서 복구해 줄 테니까. 굿즈는 뭐…… 안됐지만 어쩌겠어요.”

“……그래야죠. 다시, 다시 모아야겠죠.”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크흡…….”

성빈은 눈물을 훔치며 주섬주섬, 멀쩡한 것들이라도 가방에 넣었다.

툭툭, 먼지를 터는 장면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히어로가 푹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래, 국내 랭킹 100위의 광휘검 친필 사인이라면 아쉬울 만하지.

“고생하십시오.”

꾸벅.

성빈은 인사를 하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밤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낙이었던 소중한 굿즈들.

그것들이 없으니 마음 한쪽이 텅 빈 것 같았다.

현금으로 바꿔도 몇천만 원은 기본일 텐데.

‘굿즈는 보험이 없지.’

집은 보험이 있어도, 굿즈는 없다.

그 암담한 사실이 정말 슬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지.

성빈은 임시 숙소로 도착해, 그나마 있는 아이들이라도 잘 전시해 두었다.

“후우…… 다시 처음부터 하면 되겠지.”

일단 아르바이트는 미뤄 뒀다.

집이 저 꼴이 났는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다행히 사장님도 안타까워하며 넘어가 주었다.

작은 단칸방을 배정받은 성빈은 비좁은 공간에서 스마트폰을 켰다.

“음-?”

그곳엔, 웬 이상한 어플이 하나 있었다.

당근마켓도 아니고, 무려…….


[영웅 차원 마켓]


“풉!”

뭐야 이 구린 네이밍 센스는?

영웅 차원 마켓이라니.

당근마켓도 아니고 말이야.

성빈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런 어플은 깐 적이 없었는데?

“뭐야 이건? 바이러스인가? 신종 해킹 수법?”

이상한 어플이 깔려 있으면 의심부터 해야 하는 법.

게다가 어플을 까는 곳에 들어가 검색해도 ‘영웅 차원 마켓’이란 어플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궁금증이라는 녀석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궁금한데…….’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도 슬슬 바꿀 때가 되긴 했다.

개인 정보?

그런 거야 이미 공공재로 변해 버린 지가 언젠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시대에서, 개인 정보에 연연하진 않았다.

“망가지면 바꾸지 뭐.”

아르바이트만 해도 핸드폰 비용은 낼 수 있는 시대.

참 좋지 않은가.

결국, 성빈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차원 마켓 어플을 시작하니, 그의 눈이 돌아갈 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삼뢰신공 무료 나눔합니다.]

[필요 없는 검 가지실 분, 대신 이쪽으로 오셔야 합니다.]

[오래 쓴 지팡이 나눔 해요.]

[아레스 선생님이 쓰시던 가죽 갑옷 싸게 팝니다.]


“미친…….”

그곳은 천국이었다.

왜 이런 어플이 그에게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엄청난 숫자의 굿즈들이 그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성빈은 신화와 영웅을 좋아했다.

옛날에 팔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화책으로 모두 읽었고, 북유럽 신화, 인도, 심지어는 수메르와 아즈텍, 중국 신화까지 모조리 섭렵했다.

그에 따른 서브컬처 게임도 자연스럽게 접했고.

‘음…… 진짜 맞을까?’

하나같이 신기한 것들이 즐비했다.

정말 진짜라면, 모조리 사들이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날 정도의 물건들.

하나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굿즈!

그건 성빈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다.

“아무렴 어때, 굿즈만 진짜면 된다. 이런 콘셉트인가 보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물건을 찾아봤다.

천천히 읽어 보던 그가 깨달은 건, 하나같이 장소가 이상하다는 것.


[장소 : 올림포스산]

[장소 : 지하 세계]

[장소 : 화산]

[장소 : 아르카딘 용궁]


“……뭐야 이건?”

올림포스?

지하 세계?

아니 이런 곳이 실제로 있긴 한 건가?

어이가 없네…….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성빈은 피식 웃었다.

그러던 와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장소 : 경복궁]

[물건 : 무휼의 검]

[무사 무휼이오. 한때 주군을 모셨던 검. 한데 이젠 다른 주군을 모시니, 이 검을 떠나보내려 하오. 부디 내 뜻을 이어받아 써 줄 용맹한 무사를 구하오. 전하께서 기거하시는 곳으로 온다면, 내 친히 친우를 넘겨주겠소.]


“무휼? 그 조선제일검?”

확실히, 제우스나 손오공 같은 닉네임도 보였다.

이런 콘셉트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 옛날, 조선 시대 건국을 함께한 최강의 무사 중 한 명의 이름이라니.

임금님을 호위하는 무사인 내금위장 자리를 맡았다고 했지.

드라마로 유명해진 그는 조선 최고의 검술을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진짜 콘셉트 제대로인데.’

일반인이면 절대 홀로 십수 명의 무사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런 기록이 있는 건, 이들이 진짜 초능력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긴 진짜 덕후들만 모이는 곳이구나.

성빈은 피식 웃었다.

그런 거라면 또 동참해 줘야지.

“뭐가 됐든, 나는 적당히 맞장구 쳐 주고 물건만 가져오면 되니까.”

사진을 둘러보니, 진짜 조선 시대 썼던 환도와 똑같이 생겼다.

경복궁이라…….

가까운 거리니까 한 번 가 볼까?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검은 나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파는 사람이 중요한 건 아니지.

“성격까지 이상한 건 아니겠지?”

일단 간이나 보자고 생각하면서,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봤다.


[성빈 : 안녕하세요. 검 나눔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답장은 곧바로 도착했다.


[무휼 : 오, 안녕하시오. 어디 사는 누구요?]

[성빈 : 저도 서울 살고 있습니다. 경복궁으로 가면 되나요?]

[무휼 : 서울? 그곳은 어디요?]

[성빈: 대한민국 수도잖아욬ㅋㅋㅋ]

[무휼 : 대한민국? 그런 나라도 있었소?]


“이야, 진짜 디테일 쩌는구만?”

마치 그 시대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

덕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덕후라면, 이 정도 뻔뻔함은 가지고 있어야지!

성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옛날 사람은 아니겠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임머신은커녕,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었다.

당장 어디에 게이트가 튀어나오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옛날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에헤이 말도 안 되는…….

“에이, 약속이나 잡자.”


[성빈 :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무휼 : 궁의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미시(未時)가 끝나는 시간에 보도록 하지.]

[성빈 : 알겠습니다.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무휼 : 괜찮소.]

[성빈 : 그러지 마시고, 받는 처지인데 뭐라도 드실 거 챙겨 가겠습니다.]

[무휼 : 그러면 주전부리 정도면 괜찮겠지.]


약속 장소와 시간이 잡혔다.

미시라니. 정말 옛날 사람이랑 얘기하는 것 같았다.

성빈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척 힘든 시기였으니까.

“이쯤 되면 얼굴이 궁금해지긴 하네.”

이렇게까지 콘셉트를 잘 지킨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호기심이 더욱 일었다.

마침 내일은 시간이 텅텅 비기도 했고.

‘내일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만나러 가자.’

주말이었다.

아르바이트도 쉬는 날이고, 아카데미도 쉬는 날이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멋있는 검을 받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짜 무휼의 검인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잃어버린 아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

‘크흡, 못난 아빠를 이해해 다오. 새로운 아가들과 잘 먹고 잘살게.’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결정.

약속을 잡고 나니 몬스터의 습격으로 전부 없어져 버린 굿즈들이 생각났다.

능력만 됐다면 자신이 직접 사지를 찢어 버렸을 텐데.

이젠 지나가 버린 일, 새롭고 멋진 아이들로 입양하는 수밖에.

그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성빈 : 내일 뵙겠습니다.]

[무휼 : 음. 임금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늦으면 곤란하네. 꼭 약속 시각을 맞춰 주시오.]

[성빈 :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음식 하나에 검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어찌 남는 거래가 아닐 수 있는가.

새로운 굿즈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오늘 있었던 일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지옥 같은 하루가 끝나갈 때, 새로운 빛이 찾아왔다.

이 어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가 잠들었다.

초월자들의 차원마켓


지은이 : 우림

제작일 : 2021.05.2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시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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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56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