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검술천재였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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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그것을 어떻게 한 것이냐, 무린아.”

놀란 얼굴로 검제가 물었다.

“……아버님.”

“화를 내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한 것인지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다. 나는 너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나중에는 모두 너에게 알려 주겠지만 아직은 그런 적이 없는데 네가 어찌 그것을……. 그걸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혹시 내 연무실에 들어간 것이냐. 거기에 있던 책을 보았더냐.”

“아닙니다. 저는 그냥…… 아버님이 하시는 것을 계속 봤을 뿐입니다.”

“뭐라고…… 했느냐.”

그때에야말로 그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보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너를 야단치는 것이 아니다. 봤다고 너를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보면 안 되는 거였다면 네 앞에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보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헌데…….”

검술을 보았다고 그것을 따라 한다는 것은, 초식과 검로를 정확히 이해하고 휘두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이제 고작 아홉 살짜리 아이가 아닌가.

검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검제.

정마에 관계없이 무림에 발을 담근 자라면 모두 경의를 담아 그를 그리 칭했다.

오직 연의천에게만 그 칭호가 내려졌다.

정마대전이 일어났을 때 거대문파와 명문세가의 고수를 수도 없이 쓰러뜨린 교주를 홀로 상대해, 자신이 직접 창안한 검법으로 열두 초식 만에 수급을 베어 냈을 때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검제라 불렀다.

“다시 해 보아라, 무린아.”

그의 시선을 받은 아이는 주춤하다가 검제가 재촉하자 목검을 들었다.

아이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검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때까지 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방식으로 검이 제 길을 찾아 뻗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개의 초식을 합치려고 하면서 그가 부딪혔던 벽이 어린 무린에 의해 너무나 간단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했느냐.”

“빛을 보고 떠올렸습니다.”

“빛이라 했느냐.”

“예, 아버님. 끝을 향해 뻗어 나가는 광휘, 그것을 위해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지만 가로막히는 것이 있으면 그곳이 한계가 됩니다. 빛이 뻗어 나가는 길에 있는 걸 치워 주기만 하면 빛은 얼마든지 더 뻗어 나가지 않습니까.”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허허.”

검제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무린은 검을 내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연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허허허. 진작 너에게 물을 것을 그랬구나. 너는 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구나.


그의 웃음소리가 계속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아버님…….’

그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생의 기억이었다.

어떻게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한번 튀어나오기 시작한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생의 나는 검제의 아들이자 검술 천재라 불리던 연무린이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좋았고 어려서부터 그의 주변에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했기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습득하기 위해서 남들은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야 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몇 번 만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다.

본 것을 따라 하다 보면 그것은 내 몸에서 가장 편안한 길을 다시 잡았고 나는 나에게 맞는 초식으로 그것들을 변화시켜 나갔다.

내가 깨달은 것을 알려 드리면 아버지는 자랑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나를 들어 올리곤 했다.


-이제 이 가문을 이끌어 갈 사람은 너다, 무린아. 네가 이렇게 잘해 내니 걱정할 일이 없겠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우리 가문에는 영화로운 역사만이 이어질 거라고.

그러나 아련한 기억은 고통을 동반했다.

‘아버님…….’

가문은 하룻밤 묵기를 청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에 무너졌다.

마을 사람들을 끌어와 눈앞에서 목을 베고 식솔을 위협하자 아버지는 검을 내렸다.

그리고 당신의 수급을 가져가는 대가로 다른 이들은 살려 달라 말했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놈들은 내가 혼자서 도망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안 듯 마을 사람들을 벴고 나는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그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내가 조금 더 컸고 내공을 좀 더 가졌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는 않았을 테지만 혼자 남은 나에게는 벅찬 싸움이었다.

열세 살의 나는 그렇게 죽었다…….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던 기억이 봇물 터지듯 떠올랐다.

‘그게 내 전생이었던 거군.’

그리고 다시 태어난 곳이 현백의가.

아버지는 시의가 되어 황제를 보필했는데 낙마 사고를 당한 황제를 살리지 못한 책임으로 처형당했다.

‘나도 그때 죽었지. 겨우 열아홉 살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스물을 넘겨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운이 좋은 건가? 죽음을 당했다가 어릴 적으로 다시 돌아오고 게다가 이제는 전생의 기억까지 가졌으니.’

자그마치 검술 천재의 기억이었다.

그때는 내공이 부족해 아버지의 검법 중에 할 수 없던 게 있었지만 이제부터 부단히 수련을 한다면 그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어릴 때로 돌아온 게 그것 때문이려나? 심법으로 내공을 쌓으라고.’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다섯 살.

조그맣고 통통한 손.

고개를 내리면 금방 눈앞에 닿는 발.

‘다리가 이게 다야? 진짜 짧네.’

죽은 후에 다섯 살의 모습으로 다시 깨어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그게 그리 오래전의 기억도 아니었다.

불과 몇 달 전.

그러니까 나는 다섯 살로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 * *



처음에는 왜 이렇게 어릴 때로 돌아온 건지 답답했다.

돌아올 거면 뭐라도 할 수 있는 때로 돌아왔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엄청나게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보니 지금 내 몸은 새로운 심법을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상태였다.

‘흐음…….’

포동포동하고 통통한 이 손으로 권을 내지르고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아프겠다…… 내 손이.

현백의가에서 살 때 나는 의원이 되지 않겠다고 고집스럽게도 버텼다.

그러면서 좋지 않은 부류와 어울려 다니며 허송세월을 했다.

일찌감치 집을 나가 이리저리 떠돌면서 대단한 협객인 척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내가 배운 무공으로는 왈패 짓을 벗어나지 못했고 낭인 노릇도 할 수 없어 기루의 문지기 일이나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천재였던 전생의 기억은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는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죽기 전에 본가로 돌아온 것은 정말 이상한 기분 때문이었다.

황제가 승하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가 처형당했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막연히 본가에 화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돌아갔고 거기에서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들었다.

아버지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혼절한 후 깨어나지 못했고 나는 불효막심했던 내 삶을 후회하며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다음 날 관군이 들이닥쳤다.

죄인 석우청의 처와 자식의 목을 베라는 명이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죽어 가는 황제를 살리지 못한 죄는 용서받지 못했고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나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시 현백의가에서 눈을 떴고 그렇게 회귀한 나는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다.



* * *



“무진아. 무진이 어디 있니?”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절한 얼굴이 아니라, 젊음을 간직한 화사한 모습이었다.

“어미가 당과를 사 왔는데 우리 무진이가 안 보이네? 이 당과는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려나?”

석무진.

전생에 하무린이었던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어 살고 있었다.

“어머니이이.”

나는 냉큼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죽기 전에 어머니의 시신을 봤던 터라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에 겨웠다.

그것은 이곳에서 다시 깨어난 후 시간이 지나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때부터는 마음을 굳혔다.

이번에는 절대로 관군의 손에 부모님을 잃지 않겠다고.

“어머니!”

내가 후다닥 달려가자 자상하고 고운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는 당과가 들려 있었다.

“뭘 하고 있었니, 우리 무진이?”

“열심히 놀았어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려고요.”

“그랬어? 잘했구나. 시간이 있으면 책도 보면 좋을 텐데.”

“책도 읽었어요.”

“책을…… 읽었어?”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전생에 검술천재였다


지은이 : 지인

제작일 : 2021.07.1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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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82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