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깨어나도 아이돌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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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 죽었다가 깨어나다



“이번 영화도 극장가에서 대박이 나고 있는데요! 두 번째 천만 영화를 앞둔 심정이 어떠세요?”

리포터의 칭찬에 신제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늘 감사할 뿐입니다.”

“연기자 전향 후 5년 만에 대한민국 탑 배우가 되셨죠. 내년에는 할리우드에서 데뷔를 앞두고 계시고요.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신제준 님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나요?”

영화의 주제가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던 만큼, 리포터는 신제준에게 이루고 싶은 꿈을 물어 왔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소속사에서도 무난한 대답을 몇 개나 골라 주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음속에 담아만 두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과거로 한번 돌아가 보는 거요.”

“과거로요?”

“그래서 비상구 멤버들을 다시 봤으면 좋겠네요.”

“아…….”

신제준의 말에 리포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연기자 신제준은 알아도 비상구 신제준은 모를 테니까.

비상구는 그만큼 망한 아이돌이었다.

신제준이 이름을 알린 건, 아이돌을 벗어나 연기로 완전히 틀었을 때부터다. 비상구 때의 신제준은, 그야말로 망한 아이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제가 아이돌 그룹이라는 걸 모르실 정도로 인지도가 없는 그룹이었죠. 하지만 그래도 그때 참 열심히 했어요. 정말 모두가 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망돌로 끝이 났다.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이 민익이 기일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자꾸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아…….”

4년 전, 전 비상구의 멤버였던 최민익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짧은 유서 한 장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스물다섯. 죽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였다.

유서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곡을 빼앗기고 제대로 된 금액조차 받지 못했다.’

‘유명 아이돌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주면 재데뷔를 시켜 준다고 약속했으나, 지킨 기획사는 없었다.’

‘소송을 걸어 보려 하였으나 생활비조차 빠듯해 어려웠다.’

하지만 그 내용은 높으신 분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묻혀 버렸다.

하지만 신제준은 그 일을 잊지 못했다.

오늘이 오기까지 신제준은 최민익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지금도 저 멀리에서 매니저의 날카로운 눈이 신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면 죽는다.’

신제준은 마이크를 꽉 붙잡았다.

천만 배우가 된 지금도 말할 수 없단 말인가.

힘이 없으면 짓밟힌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최민익 씨에게 할 말이 있다면요?”

리포터의 말에 신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매니저가 당장에라도 난입하고 싶다는 듯 신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해 줄 말이 없네요. ……그저 그곳에서는 편안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신제준은 모두에게 고개를 깍듯하게 숙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신제준 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리포터는 짠한 눈길로 신제준을 바라보다 사라졌다.

화난 표정의 매니저가 신제준에게 다가왔다.

“제준아! 너 진짜 입조심 안 할래?”

“미안해, 형.”

“너 그때 망돌 얘기하지 말라니까! 기껏 배우로 잘 세탁해 놓은 이미지에 왜 자꾸 망돌을 묻혀, 묻히길.”

지금의 기획사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질색했다.

그들에게 신제준의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대중에게 보일 신제준이라는 상품의 이미지만이 중요했을 뿐.

“부끄럽지가 않아? 너 그때 얼마나 이미지 구렸는지 알아? 망돌도 그런 망돌이 없었잖아.”

그 말에 신제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망한 건 맞았으니까.

철저하게,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그 일, 다시 들추지 마. 상대는 YM이야. 아무리 네가 잘나간다고 해도 그쪽한테 찍히면 우리도 어려워.”

YM 엔터테인먼트. 그들을 적으로 돌리면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YJ라는 대형 재벌 그룹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소속사에서도 절대 만류하는 거겠지.

“나도 알아.”

“에휴, 기일이니까 마음 쓰는 건 알겠는데 이 일은 조용히 묻자. 솔직히 걔랑 너랑은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 말에 신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집으로 가?”

“아니, 민익이한테 가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매니저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조용한 봉안당 안, 신제준은 그곳에 준비했던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최민익 1992~2016』


“거긴 행복하냐?”

신제준은 분명 성공했다.

첫 번째로 주연을 맡은 영화가 관객 천만을 돌파했고 두 번째 영화도 개봉 이 주일 만에 칠백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최민익의 앞에서는 그 성공도 빛을 잃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으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아니, 누구한테라도…….”

입 안이 썼다.

매니저의 말대로 신제준과 최민익은 이제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4년 전 최민익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 그날에도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만약 그때 무슨 사이였다면.

내가 아직도 네 리더였다면, 넌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최민익이 그렇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제준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리더였으니까.’

겨우 스무 살에 단 리더라는 호칭.

신제준은 아무것도 몰랐다.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하라는 대로, 끌려 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신제준은 훌륭한 리더가 돼 주지 못했다.

이리저리 삐걱거리는 아이들을 챙기기는커녕 잘되지 않는 상황을 비관하며 소속사를 원망하기 급급했다.

다른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한 아이돌들은 턱턱 잘만 프로그램에 꽂히는데. 쟤는 벌써 단막극 주연을 하는데. 쟤는 주말 예능 고정으로 들어가는데. 쟤는 벌써 광고를 찍었는데.

그런 원망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자신의 실력이나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입만 내밀었다.

7년 전, 계약 기간을 채우지도 못한 채 그룹이 해체되고 나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기는커녕 소속사를 탓했을 뿐이다.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잡는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원망만 해 댔으니, 활동을 잘할 수 있을 리가 만무.

활동뿐만 아니라 멤버들 사이의 사이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랬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이런 일을 홀로 겪었겠지.

“하긴 내가 너한테 아쉽다고 뭐라고 말할 자격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너를 신경 못 써 준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비상구가 그렇게 해체되고 나서 한동안 신제준은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홀로 살아남을 생각으로만 머리를 굴렸다.

단역이든 뭐든 기를 쓰고 머리를 들이밀고 누군가를 짓밟으며 이 자리에 올랐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이 챙기지 못했던 멤버들 생각이 났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설익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동료들이.

“미안하다. 몰라서 미안했고 신경 안 써서 미안하고. 그냥 전부 다 미안해.”

이미 죽은 사람 앞에서 내뱉는 사과만큼 의미 없는 일이 또 있을까.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지금 혼자가 아니라 다섯 명이서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중얼거린 신제준에게 매니저가 다가왔다.

“이제 그만 가자. 내일 오전에도 스케줄 있어, 너.”

매니저는 차에 탄 신제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친구 생각은 그만해. 이제 네 인생 생각해야지. 저런 애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대표님이 그래? 이제 그만 말하라고?”

“너도 알잖아. 걔네들 자꾸 언급하는 거 좋을 거 하나도 없다는 거. 그리고 여기에 오는 것도 그만해.”

입 안이 썼다. 그래, 맞는 말이지. 망돌이었던 시절은 이제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

하지만 그게 왜 이렇게 쉽지 않을까.

“형, 앞에!”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고개를 돌린 매니저, 그리고 앞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트럭.

헤드라이트가 눈앞을 물들이는 순간은 짧았고, 곧이어 몸이 공중을 날았다.

다음 날, 세상은 신제준의 사망 소식으로 떠들썩해졌다.



* * *



“허억, 허억, 헉…….”

신제준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자신의 몸을 덮치던 거대한 차체 조각과 몸을 꿰뚫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먼저 문이 벌컥 열렸다.

“제준이 형! 우리 드디어 데뷔한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둥그런 얼굴.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과 빛나는 눈동자.

“보, 봉팔이?”

“아니, 진짜! 봉팔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누가 뭐래도 내 예명 에이트로 한다고 했잖아.”

김봉팔. 아니, 에이트. 비상구의 재간둥이를 맡았던 그 녀석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상하다, 난 내가 죽으면 민익이가 마중 나올 줄 알았는데 왜 너냐. 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죽은 거냐?”

“도대체가 무슨 소리야? 형, 머리 아파? 어디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는 김봉팔의 말에 신제준은 눈을 깜빡였다.

“봉팔아, 오늘이 며칠이냐.”

“봉팔이가 아니라 에이트라니까! 형, 진짜 오늘 이상하네.”

잔뜩 삐친 김봉팔의 말에 신제준은 방을 살폈다.

반지하. 꽃무늬가 가득한 벽지가 신제준을 반기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이층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트렁크 팬티.

“여긴 우리 숙소잖아.”

“정말 이상하네.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 거야?”

“김봉팔. 이거 꿈 아니지?”

“……됐다, 형이랑 말 안 해.”

끝까지 자신을 에이트라고 불러 주지 않는 신제준에게 잔뜩 골이 난 듯, 김봉팔은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뒷모습에 대고 신제준이 물었다.

“에이트야! 오늘이 며칠?”

“오늘은 2010년 1월 27일입니다!”

“고맙다, 봉팔아.”

“아, 형!”

김봉팔을 놀리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그것도 데뷔 사 개월 전으로.

“하…….”

마지막으로 자신이 빌었던 소원, 그리고 마치 영화처럼 돌아온 지금.

신제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형, 진짜 나 김봉팔인 거 누구한테도 비밀이라니깐? 완전 국가기밀 다루듯이 델리케이트하게 다뤄 달라고 내가 몇 번을, 어? 어디로 가는 거야?”

자신을 잡으려는 김봉팔을 뒤로한 신제준은 거실로 나가 입을 벌렸다.

그곳 낡은 소파에 순한 얼굴로 앉아 있는 최민익이 보였다.

“최민익. 민익아…….”

자신이 기억하는 그 최민익이 맞았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착했던 녀석.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가지고도 그 어떤 조명도 받지 못하고,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은 모두 다 빼앗긴 바보 같은 녀석.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녀석.

신제준은 최민익을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다시는 너를 혼자 죽게 놔두지 않을게.

“아니, 뭐야. 눈빛 왜 이래? 혹시 민익이 형 제준이 형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거야?”

철없는 김봉팔이 옆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 동안에도 여전히 신제준의 얼굴은 진지했다.

“너 절대 죽을 생각 하지도 마.”

“형,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죽긴 왜 죽어.”

말갛게 웃는 그 녀석의 얼굴을 보니 더욱더 굳은 결심이 섰다.

이번 생에는 최민익이 절대 그런 일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둘이 왜 그러고 보고 있는 거야?”

화장실에서 머리를 털며 나온 녀석. 강한 선에 불끈불끈한 근육.

아직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주제에 183cm가 넘는 키로 모델처럼 쫙 뻗은 몸을 가진 문강혁이었다.

뒤늦게 민망함을 느낀 신제준은 최민익을 놓아주었다. 최민익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아니, 그냥…….”

악몽이긴 악몽이었다. 특히 최민익에게.

“뭐예요, 이 분위기는?”

뒤늦게 방에서 나온 박현도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깐? 다들 못 들었어? 우리 데뷔일 결정됐다는 거!”

김봉팔의 말에 멤버들은 서로 저마다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환호성을 지른 건 문강혁이었다.

“와아악! 진짜?”

“강혁아, 다 좋은데 옷 좀 입어라. 보인다, 지금…….”

“뭐 어때요! 와아악!”

그렇게 문강혁이 팬티도 제대로 입지 않고 좁은 거실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현이 신제준에게 속삭였다.

“제준이 형, 나중에 방송 나가면 강혁이 형 좀 어떻게 해요. 저런 사람이라는 거 들키면 진짜 우리 팬 붙기도 전에 떨어져 나갈걸요?”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때 팀원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벌거벗은 채 뛰어다니는 문강혁의 모습은 심히 유인원스러웠으므로.

“……걱정하지 마. 형이 잘해 볼게.”

돌아왔다.

신제준은 눈앞의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잘해 볼게.

이번에는 정말로.

죽었다 깨어나도 아이돌


지은이 : 데이트랙

제작일 : 2021.03.1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규영

표지 : 나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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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28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