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빨로 아카데미 천재가 되었다 001화

0000

제1화



Episode 1. 시간을 잇는 전화기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Steve Jobs-



* * *


#37살.


끼이익.

허름한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은 반쯤 열리다 더는 열리지 않았다.

침대 모서리에 걸린 탓이다.

나는 그 좁은 틈으로 익숙하게 몸을 구겨 넣었다.

방의 내부가 복도의 은은한 빛에 드러나 있었다.

직사각형의 작은 방.

침대 하나와 책상,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낡은 옷가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이곳은 보증금 없이 월 10만 원만 내면 살 수 있는 고시원이다.

태양이 중천에 걸렸을 시각.

하지만 방에는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커튼을 쳐서? 아니다.

내 방엔 창문이 없다.

문을 닫고 불을 켜자, 방의 초라함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중 책상 위에 놓인 컵라면 용기를 보니 나의 처지가 생각나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지금 내 모습이 저 빈 용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

허기를 채워 준 고마운 컵라면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라면을 먹은 것도 나고.

이런 삶을 선택한 것도 나니까.

나는 좁은 방을 보며 그래도 잠잘 곳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라도 합리화하지 않으면 당장 옥상으로 달려갈지 모르니까.

“으으, 추워.”

벽에 걸려있던 낡은 옷가지들을 재빨리 몸에 걸쳤다.

겨울은 끝물이었지만, 지금 시각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 냉수로 샤워를 한 탓에,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방바닥은 그보다 더 차가웠다.

패딩까지 모두 입은 나는 재빨리 이불 속에 몸을 넣고 스마트폰부터 켰다.

지금의 내겐 난방도 사치다.

“그나저나 벌써 이맘때인가.”

금이 간 낡은 액정 위로 씰[SEAL] 아카데미 졸업 생도들에 대한 기사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어떤 가문의 누가 몇 등으로 졸업했다, 수석은 누구고, 누가 어떤 길드와 계약했다. 라는 맥락의 기사들.

그중 가장 뜨거운 기사는 세계 랭킹 1위인 이무진이 씰[SEAL] 아카데미에서 졸업 연설을 했다는 기사다.

“에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20년 전만 해도 같은 입학생도였는데…….

지금 나와 그의 차이는 오히려 그때보다도 멀었다.

씰[SEAL] 아카데미.

세계 최강국인 대한민국의 명문 중의 명문.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곳에 입학만 하면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근데…… 그 예외가 왜 하필 나일까?

“빌어먹을.”

인생만 생각하면 욕밖에 안 나온다.

쿵쿵!

그때, 갑작스레 벽이 울렸다.

“조용히 좀 삽시다! 혼자 살아?!”

“아, 죄송합니다…….”

옆방이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니 억울하지만, 이해는 한다.

방음이 워낙 안 되다 보니 뒤척이는 소리부터 야동 보는 소리까지 다 들리기 때문이다.

하…… 나는 어쩌다 혼잣말도 맘대로 못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방탕하게라도 살아왔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하다못해 평범하게만 살았어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 이런 것을.

미래가 창창했던 생도 시절부터, 인생의 밑바닥을 사는 지금까지.

이 과정의 이야기를 하자면 몇 날 며칠을 보내도 모자랄 것이다.

나는 그 긴 인과관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하나의 염원만을 간절히 바랐다.

아! 격하게 돌아가고 싶다!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생도 시절로 돌아간다면. 20년 전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더 잘해 낼 자신이 있는데…….

어렸을 때는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꿨다면, 지금은 과거를 바라보며 망상을 펼치고 있으니 이래저래 답답한 인생이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정말 아무런 전조 없이.

엄청난 행운이 떨어졌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스킬, 시간을 잇는 전화기를 얻었습니다.】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헛것을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 시스템 메시지였고, 내 시야에는 푸른 창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건 스킬 설명에 비하면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잇는 전화기>

등급 : SSS

설명: 20년 전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개입으로 변화된 미래가 당신의 삶에 적용됩니다.

*사용 가능 시간 360분/하루. 첫날은 무료

*유효기간: 3년

*스킬 발동 시, 사용자의 시간은 멈추게 되며, 유효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같은 날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설명을 읽는 동시에 헉 소리부터 튀어나왔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SSS급 스킬을 얻은 데다가, 20년 전 나와 연결이 된다니…….

“몰래카메라인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괜히 고개를 홱홱 돌려 보았다.

그럴 필요도 없이 한눈에 보이는 방에는 수상한 점 하나 없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물론,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릴 수 없었다.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그럴듯한 의혹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걸.

나는 스킬의 상세 설명을 보며 그것의 사용법을 숙지했고, 3년이란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순간에 스킬을 발동했다.

그날은,

과거의 내가 씰[SEAL] 아카데미 기숙사에 입주하던 날이었다.


【시간을 잇는 전화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어둠에 물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눈에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캠퍼스가 담겨 있었다.

너무도 정겨운 풍경.

나는 긴 시간을 넘어 20년 전의 세계를 눈에 담은 것이다.

스킬명만 시간을 잇는 전화기지, 나는 20년 전의 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카데미를 보니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차올라 눈가에 맺혔다.

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지금 나는 고개를 돌릴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지금 몸의 주인은 20년 전의 나니까.

나는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보았다.

[……아, 아. 내 목소리 들려?]



* * *



#17살.


드높은 빌딩이 숲처럼 늘어선 도시.

나는 TV에서나 보던 생소한 도시를 눈에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변방의 헌터 중등학교 기숙사에서 살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제 중등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헌터 양성 기관 중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아카데미, 씰 [SEAL].

나는 이 엄청난 곳에 500명 중 500번째로,

그러니까 전교 꼴찌로 입학했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의탁할 일가친척 하나 없던 내가, 오로지 노력만으로 일군 성과였고.

씰[SEAL] 아카데미는 모든 헌터 지망생의 1지망 아카데미였다.

나는 누구나 꿈에 그리는 곳을 입학한 것이다.


유지훈

생년월일 20XX년 3.1

씰[SEAL] 아카데미 48기 생도


생도증에 적힌 간단한 정보가 그것을 증명했다.

나는 지금껏 이것을 얻기 위해 달려왔고 마침내 도달했다.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차례였다.

저 멀리, 폭이 10m 정도 되는 아치형 게이트가 보였다.

석촌호수 중앙에 넘실거리는 포털.

씰[SEAL] 아카데미는 저 너머에 있었다.

“게이트는 생도들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가족분들은 여기서 마무리 인사를 해주세요.”

이리저리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입구였다.

주변은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도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오늘은 신입생도들이 입주하는 날이었기에 모두 나랑 동기일 거다.

내 표정도 보나 마나 저렇겠지.

겉으로 봤을 때 딱히 강해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제일 약하다.

신입생도에게는 입학 성적이 강함의 척도였으니까.

작별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는 홀로 게이트를 넘었다.

순간, 물에 잠기는 듯한 청량감과 함께 신체가 작은 입자로 해체되었다가 조립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고, 나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세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캠퍼스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도시.

아카데미의 압도적인 위용에 게이트를 넘은 이들은 너도나도 감탄을 터트렸다.

보자마자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관이었다. 나는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잡았다.

반드시 세계 최강의 헌터가 되고 말 것이라고.

아마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막연한 미래였지만,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과 뜨거운 열정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쳤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정말 아무런 전조 없이.

엄청난 행운이 떨어졌다.



【미래가 연결됐습니다.】

【‘시간을 잇는 전화기’ 스킬을 얻었습니다.】


“…….”

뜬금없는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직관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시간을 잇는 전화기>

등급 : SSS

설명 : 20년 후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의 행동으로 달라진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단, 특정 시점의 변화만 감지 가능합니다.

*사용 가능 시간 360분/하루. 첫날은 무료

*유효기간 : 3년


그런데, 스킬 설명을 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 등급이 SSS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등급인 데다가 20년 후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아, 아. 내 목소리 들려?]

환청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선명한 목소리.

나는 우습게도 머릿속에서 들려온 이 목소리를 내 목소리라고 인식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20년 후 자신과 마주했습니다.】

【미래가 대폭 변동됩니다.】

【직업이 고달픈 영업사원으로 변경됩니다.】

【거주지가 반지하 원룸으로 격상됩니다.】


나도 모르던 내 미래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스킬빨로 아카데미 천재가 되었다


지은이 : 쏭범

제작일 : 2020.12.18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시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659-00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