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 천재가 너무 강함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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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모든 것이 변했다



“죽여!!”

“히트맨, 너한테 돈 전부 몰빵했어. 실망시키지 마!”

“이봐, 스네이크, 목돈 만지고 싶으면 저놈은 최소 반병신으로 만들라고!”

수십여 명의 도박꾼들이 돈뭉치와 배팅 용지를 쥔 채 고함을 지른다.

케이지 안의 두 사내는 천박한 욕설 속에서 서로를 노려본다.

“What are you Looking at? Fucking Monkey!”

백인 파이터 스네이크가 검은 머리 사내를 도발한다.

하지만 검은 머리 사내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185의 키를 지닌 검은 머리 사내와 달리, 스네이크의 키는 무려 198에 달한다.

팽팽한 긴장감을 깬 것은 스네이크의 긴 잽.

검은 머리 사내는 사이드 스텝을 이용해 잽을 피했다.

그러자 스네이크는 예상했다는 듯 바디 킥을 휘두른다.

“그렇지! 저 새끼는 좀 하는 놈인데?! 사장이 잘 데려왔어!!”

“아, X발. 히트맨한테 걸었는데…….”

스네이크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반대로 히트맨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이 개X끼야, 처맞지 말고 빠지라고!”

“제기랄, 배팅 운 X라 없네. 그냥 스네이크에게 걸 걸 그랬어.”

히트맨에게 돈을 건 도박꾼들이 욕을 내뱉는다.

-투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

가드 속 히트맨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스네이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Let see your Fucking Face. You Fucked up!”

펀치를 퍼붓던 스네이크는 결정타를 날리고자 킥 동작을 취했다.

순간, 히트맨이 앞으로 치고 나오며 스네이크의 턱에 팔꿈치를 꽂는다.

“!!”

불의의 반격을 허용한 스네이크가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스네이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대미지를 떨쳐냈다.

“이야, 헤비급이라 그런가? 정타를 맞았는데도 저걸 버티네?!”

도박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세를 낮춘 스네이크가 히트맨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저 덩치에게 깔리면 답이 없어. 게임은 끝난 거야.”

“스네이크, 타격 잘 치지만 본래 그래플러거든. 깔리면 향냄새 맡는 거지.”

케이지 주변에 있던 도박꾼들이 웅성거렸다.

“X발, 다 필요 없어, 내 돈 넘어가기만 해봐. 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히트맨에게 돈을 건 이들은 초조함을 참지 못하며 욕을 퍼붓는다.

스네이크의 태클이 총알처럼 날아온다.

히트맨은 몸을 뒤로 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머리가 잡힌 스네이크의 속도가 주춤했다.

실로 찰나의 순간이다.

-퍼컥!

체중을 실은 히트맨의 무릎이 상대의 안면을 박살 낸다.

스네이크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바로 그거야,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저 황금 알을 낳는 새끼. 어우, X발!”

히트맨의 승리를 점친 도박꾼들이 환호한다.

얼굴이 박살 난 스네이크는 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케이지를 빠져나갔다.

히트맨도 케이지를 나왔다.

아드레날린이 가라앉자 잠들어있던 통증들이 무섭게 일어섰다.

‘젠장…… 늑골 아래, 그리고 왼쪽 손목은 완전히 박살 났어. 오른팔은 들어올리기도 힘들군.’

히트맨은 도박꾼들의 환호와 욕설을 뒤로한 채 대기실로 들어왔다.

냉동고에 있던 얼음 주머니를 꺼내 부상당한 손목과 어깨에 대었다.

의자에 앉은 히트맨은 테이블에 놓인 지갑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체격 좋은 사내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모두들 행복해 보인다.

사진의 한가운데에는 자신이 손바닥을 펼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꿈만 같네,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노력에 대한 종착역이 지하실 투견 신세라니…….’

그때 정장을 입은 세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보디가드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문 앞을 막는다.

뿔테안경을 쓴 날렵한 체구의 남자가 걸어왔다.

“올 때마다 기록을 세우는군, 언더그라운드 역사상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20차 방어전을 승리로 장식하다니. 당신은 정말 엄청난 인재라니깐.”

뿔테안경은 셔츠에서 다섯 개의 돈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히트맨 김우진, 75승 무패를 자랑하는 UFL 웰터급 전직 세계 챔피언. 당신이 언더그라운드 소속이 되면 이 1천만 원을 모두 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처럼 프리로 뛴다면.”

뿔테안경이 돈뭉치 세 개를 손등으로 밀어냈다.

“절반뿐이야. 자네가 아무리 뛰어난들 우리 소속이 아니면 챙겨줄 이유가 없으니깐.”

그러자 의자에 앉아있던 히트맨, 김우진이 조용히 일어선다.

“개소리 집어치워, 권동훈, 저건 내 몸 깎여가면서 번 내 돈이야.”

김우진이 일어서자 문을 지키던 보디가드 한 명이 권동훈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권동훈은 능글맞게 웃으며 보디가드를 뒤로 물렸다.

“우리에게 합류하라니깐, 그러면 나머지 금액 전부 지금 줄게, 그것도 모두 현금으로.”

“…….”

김우진은 매서운 눈길로 권동훈을 노려보았다.

“닥치고 5백 내놔.”

“쳇, 싸움은 귀신인데 비즈니스는 아주 젬병이군. 먹고 뒤져.”

권동훈은 보디가드와 함께 대기실을 나갔다.

“하아…… X발.”

김우진은 테이블에 놓인 5백만 원을 집어 가방에 넣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는 대기실을 나왔다.

걸을 때마다 무릎이 쑤신다.

무대에서는 또 다른 무규칙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출구로 향하자 쇠파이프와 나이프로 무장한 남자들이 나타났다.

“오늘도 한 건 제대로 했던데. 나도 당신한테 걸고 재미 좀 봤지. 또 보자고, 히트맨.”

하얀 민소매를 입은 남자가 이죽거렸다.

“닥치고 문 열어.”

김우진이 나직이 말했다.

“아직도 알량한 자존심이 남았나 보군, 당신처럼 세상에 뒤처진 인간이 있을 곳은 여기뿐이야.”

민소매 남자가 이죽거리며 문을 열었다.

-쾅!

두터운 철문이 닫혔다.

김우진은 어두운 계단을 밟으며 지상으로 나왔다.

주변은 온통 좁은 골목뿐이다.

새벽 지하철이 운행하는 시간.

김우진은 빈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국 격투계의 신성, 25살의 나이로 세계적인 격투 단체 UFL에 진출해 20전의 방어전을 치른 전설적인 격투가.

그러한 영광의 시간은 지나간 지 오래다.

현재 김우진은 생계를 위해 지하 격투를 벌이는 32살의 투견일 뿐.

하나둘씩 지하철에 사람들이 모이며 빈자리를 채웠다.

사람들은 손목에 찬 플렉시블 워치를 펼치며 무료함을 달랬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대신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플렉시블 워치를 손목에 차고 다닌다.

플렉시블 워치는 스마트폰처럼 넓게 펼 수 있고 시계처럼 구부려 손목에 착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휴대가 간편하다.

김우진은 잠을 청하려 했지만 부상당한 왼쪽 손목과 갈비뼈의 통증이 심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잠시나마 통증을 벗어날 방법이 필요했다.

플렉시블 워치를 펼쳤다.

루튜브 앱을 켜자 조회 수 1위를 기록한 영상이 메인 화면에 걸려 있다.

김우진은 영상을 고르기도 귀찮아 최상위권 조회 수를 찍은 영상을 눌렀다.

영상의 하단에는 ‘하르파 레이드’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또 콜로세움이군.”

김우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3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MMORPG인 콜로세움.

클라우드 컴퍼니에서 출시한 콜로세움은 세틀라이트라는 인공지능이 게임을 설계했다고 하여 출시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렀다.

콜로세움은 출시와 동시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유저들을 끌어모았다.

콜로세움에 접속한 유저는 현실에선 사용할 수 없는 이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전투 효과와 실제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현실감.

역대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의 등장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콜로세움의 인기가 커질수록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대폭 떨어졌다.

특히나 스포츠는 추락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걸 싫어한다.

또한 콜로세움에 투자한 결과가 현실에서 얻는 성과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득과 즐거움을 준다고 여긴다.

변화의 파도는 김우진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콜로세움이 출시되기 2년 전.

은퇴 후 MMA체육관을 차린 김우진은 ‘동양인 최초 UFL 웰터급 챔피언 달성’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다.

덕분에 수많은 관원들을 모았으며 실력 있는 프로 선수들도 키워냈다.

하지만 콜로세움의 등장 후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격투기 시장도 점차 축소되었다.

MMA에 열광하던 관중과 팬들도 콜로세움으로 돌아섰다.

분점까지 냈던 김우진의 라이온 MMA는 본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업한 상태다.

그리고 현재는 본관의 월세도 내기 어려워 김우진이 직접 지하 격투를 하는 상황.

격투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몸으로 하는 일자리도 줄었다.

처음엔 클럽 가드로 일했다.

그러던 중 사내 다섯 명이 클럽에서 난동을 부린 적이 있는데 김우진이 이들을 간단히 제압했었다.

이때 클럽에 있던 권동훈이 김우진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지하 격투장에선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이후 김우진은 무기를 제외한 모든 규칙이 허용되는 지하 격투장에서 7차례의 결투 끝에 최고 타이틀을 획득, 이후에는 20번의 방어전을 치렀다.

클럽 가드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몸이 상하는 것이 문제다.

“……어?”

영상을 보던 김우진이 화면을 멈췄다.



* * *



은으로 도금된 중장갑옷을 입은 기사가 거북 형태의 거대 괴수를 노려보고 있다.

기사의 등판에는 스폰서 회사의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다.

은빛의 기사가 괴수에게 돌진한다.

단단한 갑각 피부를 지닌 거대 괴수는 낫처럼 구부러진 발톱을 휘두르며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은빛 중장갑옷을 입은 기사가 장창을 소환하며 높이 도약했다.

기사의 전신이 노란빛으로 번뜩이더니 곧 번개 덩어리로 변했다.

그러고는 괴수의 머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번개 덩어리를 본 괴수는 피로 물든 손을 들어 올리며 방어를 시도했다.

하지만 빛으로 변한 기사에게 머리가 관통되며 사방에 녹색 피를 뿌렸다.

괴수를 처치한 기사는 주변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면갑을 벗었다.

낯익은 얼굴이다.

“이 녀석은…….”

영상이 종료되자 플렉시블 워치의 화면이 전환되며 익숙한 이름이 떴다.



* * *



서울의 한 호프집.

술과는 거리가 먼 김우진이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만나러 이곳에 왔다.

창가 쪽의 테이블 하나가 유난히도 북적였다.

‘이런 세상에…….’

김우진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키는 물론 덩치도 제법 큰 한 남자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인증샷을 찍고 있다.

알고 보니 자신의 오랜 체육관 동료이자 친구인 박병서다.

박병서의 주변에 남녀 팬들이 북적인다.

“창기사 오빠, 좀 더 가까이서 찍어주세요.”

“그럼요~ 그럼요~”

손가락 하트와 함께 박병서와 인증샷을 찍은 여자는 개인 SNS에 사진을 올리며 무척 좋아했다.

라이온 MMA의 서열 2위이자 후배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기존의 박병서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물론 박병서가 후배들을 괴롭혔던 것은 아니다. 체육관의 군기반장 노릇을 했을 뿐이다.

정신없이 팬서비스를 하던 박병서가 옛 친구를 발견했다.

박병서는 친구와 술을 마시기로 했다며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충분히 팬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이 테이블로 돌아갔다.

“누가 술집을 전세 냈나 했더니, 그게 너였구나.”

김우진이 웃으며 농담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지 뭐야, 여하튼 우진이 오랜만에 보네.”

두 사내는 서로가 내민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들만의 독특한 인사 방식이다.

박병서는 안주로 나온 팝콘을 먹으며 물었다.

“내가 글러브 내려놓은 지 2년 만이네, 너는 좀 어때?”

“어떻긴 뭘, 그냥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산다.”

김우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맥주잔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퇴한 지가 언젠데 술 안 마시는 건 여전하구나, 여유 좀 가져봐.”

박병서가 크게 맥주를 들이켰다.

“술은 입에 안 맞아서, 게다가 지금 난 현역 때보다도 신경 쓸 게 많아.”

김우진이 턱을 괴었다.

“설마 체육관 닫고 노가다 하는 거야?”

“노가다는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순간, 박병서는 팝콘으로 손을 뻗던 김우진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야, 너 손목이 왜 이렇게 부었어?”

김우진은 흠칫하며 즉시 손목을 빼냈다.

“……별거 아냐, 계단에서 굴렀어.”

“그 말을 믿으라고? 수플렉스를 꽂아도 좀비처럼 일어나는 게 너야.”

“자꾸 따지지 마, 안 그래도 피곤한 일 많으니깐. 네 얘기나 좀 해봐, 게임으로 유명해진 것 같던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너 콜로세움 해라.”

“……뭐?”

격투 천재가 너무 강함


지은이 : 문워킹

제작일 : 2022.03.2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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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1-94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