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는 헌터님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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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1화



이철우는 각성자다.

게이트에 들어가 던전을 닫고 나오는 그 각성자, 흔히 말하는 헌터 말이다.

“철우야, 오늘 던전은 F급 치고는 너무 힘들지 않았냐?”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어느 날은 어렵기도 하고, 오늘은 쉽기도 하고. 뭐, 언제는 이런 날 없었나?”

“마지막에 그 도마뱀 괴물 녀석들만 없었어도 훨씬 쉬웠을 텐데 말이지. 씁.”

2020년 게이트 오픈 사태 이후, 초등학생들이 선망하는 유망 직업 1위는 더 이상 유튜버나 연예인이 아니다.

바로 철우와 같은 헌터들이었다.

철우는 D급 헌터였지만 나름대로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던전을 닫은 날에는 더 기분이 좋다.

각자 전리품을 등에 짊어지고서 게이트를 나왔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푸른 비늘 늑대를 가죽에 손상 없이 세 마리나 잡았으니 그 값만 해도 꽤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길드 마스터 김주용이 뿌듯하게 말했다.

“야, 회식 가자. 오늘 내가 쏜다.”

“역시 길마님! 김치 솥뚜껑 삼겹살집 갑니까?”

“아니지. 당연히 욕쟁이 할매 감자탕으로 가야지.”

다른 길드원들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부길드 마스터인 이철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는 발걸음을 느리게 하며 앞서가던 길드원들과 점차 거리를 두었다.

김주용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김치 솥뚜껑집 가자.”

“부길드 마스터님도 같이 가죠!”

“저희가 술 따라드릴게요!”

길드원들이 활기차게 외치자 길드 마스터가 덧붙였다.

“넌 두부조림 시켜줄게.”

이철우가 성질을 냈다.

“아, 형! 진짜 이러기야?”

그렇다.

헌터는 보통 건강하고 튼튼하다. 하지만 내장까지 튼튼하지는 않았다.

두 달 전 각성자 최초로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이철우는 철저하게 식이를 조절해야 했다. 다른 길드원은 긴가민가하고 있지만 길드 마스터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철우가 화내며 외쳤다.

“남들 다 삼겹살 먹는데 옆에서 두부 먹으라고?!”

“길드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회식 좀 하는데. 널 빼놓으면 섭섭하잖아. 그냥 와서 앉아만 있어.”

“맞아. 먹지는 못해도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 고기 보면서 두부 먹으면 그게 고기 맛이지, 뭐.”

“됐어! 안 가!”

이철우는 화를 내며 등을 돌렸다.

“두부가 별로면 도토리묵이라도-”

“닥쳐!”

솥뚜껑 김치 삼겹살 가게로 가는 길드원들.

이철우는 등을 돌리고서 혼자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쁜 새끼들.”

철우는 노원구의 (구)주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13평에 주방과 거실이 딸린 구형 아파트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아 어디보다도 안전한 곳이다. S급 헌터이자 결계 술사인 황지호가 설치한 S급 결계가 노원구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파트의 가격은 무려 20억. D급 헌터 일을 하면서 3년 내내 번 돈을 전부 털어 넣어 독립한 집이다.

결계 마법이 걸린 자물쇠에 오른손을 갖다 대고 마나 파동을 보내자 덜컥 하니 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서면 바로 복도와 연결된 주방이 보인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커다란 은색 문이었다. 문이 세 개나 달린 거대한 업소용 냉장고는 무려 900L 상당의 음식물을 저장할 수 있는 기특한 녀석이다. 한때는 그의 자랑이었다.

“후.”

철우는 냉장고를 보고서 한숨을 푹 쉬었다. 한때 길드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철우를 ‘육식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고깃집에 가면 홀로 20인분을 먹어 치울 정도로 고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정작 그랬던 그가 ‘각성자 당뇨’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씁.”

그는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다. 집에 오면 으레 하는 행동이다.

-띠링.

「형, 난 지금 아버지한테 가려고 출발하는 중인데. 형은 안 올 거야?」

마나 네트워크를 통해 친동생 철민이 연락해 왔다.

오늘은 정육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친가 쪽 친척들이 전부 모이는 날이다.

철우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고 싶다. 너무너무 가고 싶다.

아버지가 직접 도축해 신선한 쇠고기로 만드는 육회! 철판에 직접 잘라 굽는 바비큐!

일 년에 한 번, 아버지는 일가친척들을 다 모아 쇠고기 잔치를 벌였다. 작년에는 가서 신나게 먹었다. 바쁘기 그지없는 S급 헌터인 철민도 가는데, 철우가 안 가면 정말 이상할 거다.

‘올해 갑자기 못 간다고 하면 진짜 이상하게 생각하실 텐데.’

각성자 당뇨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니 왜 안 가는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걱정하실까 봐 일부러 병에 대해서 알리지 않았단 말이지.’

「공식적으로 난 지금 갑자기 열린 던전에 있는 거다. 오케이?」

그는 피눈물을 삼키며 연락을 했다.

동생이 곧 답변을 보냈다.

「형, 아직도 부모님한테 각성자 당뇨 얘기 안 했어?」

각성자 당뇨. 각성자들 사이에서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본디 당뇨란 질환이라기보다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췌장이 문제를 일으켜 혈당 수치가 높아지며, 소변에 당이 섞여 나와 당뇨병이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에게 흔한 만성 질환으로 50대 이후에는 발병률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 일반 당뇨병의 경우 핏속에 돌아다니는 포도당이 신장에 쌓여 신장이 나빠지고, 망막에 쌓이면 눈이 나빠진다. 말초 혈관에 쌓여 말초 혈관 폐색증을 일으키면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

일반 당뇨는 사람마다 그 양상이 다르다. 하지만 잘 관리한다면 장기적인 경과는 나쁘지 않다. 만성 질환이기 때문에 당장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반면에 각성자 당뇨의 경우에는 식이를 조절하지 않으면 당장 문제가 생긴다.

철우를 비롯해 각성자 당뇨를 진단받은 사람은 대한민국에 총 세 명. 해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러나 철우의 경우 증상이 특히 심각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고기를 먹으면 각성자들만이 갖고 있는 힘, 마나가 싹 사라져 버린다.

야채나 채소, 과일이나 쌀은 괜찮다. 하지만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나 토끼 고기, 말고기, 곰 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이제는 비행하는 몬스터 때문에 국가 간 교역이 어려워져 구하기 어려운 캥거루 고기도 안 된다.

‘저번에는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씹고 뱉으려고 했지.’

최고급 안심살 스테이크를 구했다. 구웠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바로 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기를 씹었는데 어떻게 뱉을 수 있는가?!

씹으면서 터져 나오는 육즙.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 천국과도 같은 그 순간을 뱉으면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는 고기를 삼켰고 바로 마나 고갈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부길드 마스터가 쓰러지자 난리가 났다. 김주용은 인벤토리에 단 하나 갖고 있던 비상용 힐링 포션을 써서 간신히 철우를 살려냈다.

그리고 각성자 전문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동생에게는 들켰지만 다른 가족들에겐 숨겼다. 장기 던전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적당히 핑계를 댔다.

병원에서 보름 동안이나 치료를 받고, 절대 고기 금지령이 내려졌다. 의사에게 경고를 받았다.

이다음에 또 고기를 먹는다면 마나 중독성 쇼크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단다. 말 그대로 고기를 먹고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단 얘기다.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생명을 바치고 싶은 건 아니야. 살아 있어야 고기도 먹지.’

고기를 먹으면 죽는다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화가 나는 일이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냐고!”

길드 마스터인 김주용은 한 살 연상인 고등학교 동기였다. 동생인 철민과도 함께 자라서 셋이 친형제처럼 가깝다.

S급 각성자인 김주용은 준재벌급의 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재력의 일부를 투자해 철우를 위해서 사용했다. 동생이 고기를 먹지만 않으면 무사히 헌터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직접 돈을 투자해 고기 맛 두부 공장을 만든 것이다.

두부와 묵 공장이라고 해 봤자 F급 연금술사로 각성한 헌터 한 명을 불러다가 혼자 콩 불려서 갈고 간수 넣고 젓고 거르고 하면서 만들어 내는 가내 수공업 업체다.

F급 연금술사 녀석은 돼지고기 맛 묵이라던가 소고기 맛 두부를 만들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돈을 처바른 보람이 있어 한 달 전부터 시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김주용은 장난기가 있을 뿐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솥뚜껑 삼겹살집 얘길 꺼내다니. 쯧.”

이전에는 철우도 같이 갔던 단골집이다.

소고기도 맛있지만 돼지고기는 돼지고기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 통통한 비계가 듬뿍 든 삼겹살을 김치와 콩나물 무침과 함께 지글지글 익혀 내는 솥뚜껑 삼겹살집의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 와중에 자꾸 길드 회식이 잡혀서, 한 달째 회식을 피해 도망 다니는 중이다.

그러니 길드 마스터인 주용은 혹여 철우가 길드원들과 따로 논다고 생각할까 봐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말 그대로 ‘나름대로’다. 메뉴가 김치 솥뚜껑 삼겹살 하나밖에 없던 고깃집에 ‘두부 조림’이란 메뉴를 추가해 달라고 돈을 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회식을 같이 가 달라고 졸랐다.

‘아무리 주용이 형이라도 진짜. 아, 생각하니까 화가 난다. 잊자, 잊어 버리자.’

벌컥.

이철우는 냉장고를 활짝 열어젖혔다.

한때는 이 안에 선명한 붉은 속살을 자랑하는 고기들이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냉장고 안은 새하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흰색 두부와 하얀 묵 그리고 밀가루로 만든 싸구려 어묵들이다. 고급 어묵에는 생선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철우가 먹을 수 없다.

대부분 김주용의 두부공장에서 보낸 시제품이었다.

“하아아아아.”

철우는 비닐에 포장된 두부를 노려보았다.

소고기맛 두부. 이번에 출시한 시제품이다.

소 캐릭터가 엉성하게 그려진 포장지를 보면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번에 보내 준 돼지고기 맛 두부나 닭고기 맛 두부 역시 실패였다.

-꼬르르르륵.

하지만 뭔가 먹기는 먹어야 했다. 솔직히 배가 고프다.

철우와 같은 무투계 각성자는 움직이는 만큼 많이 먹었다. 그래서 각성자의 식사량은 사용하는 에너지 양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후에도 그는 아주 많이 먹어야 했다. 두부나 묵 따위로 배를 채우려니 더 그랬다.

“쪄 먹는 두부도 정말 질리는군!”

가능하면 버터나 기름으로 두부를 튀기고 싶었지만 튀김용 기름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찌거나 삶거나 할 수밖에 없다.

달걀이나 오리 알도 안 된다고 해서 무와 두부밖에 들어 있지 않은 두부 국 따위를 먹는다. 생선이나 문어, 낙지와 꼴뚜기, 조개 등도 안 된다.

강제 채식 생활! 하루하루 사는 낙이 없다.

두부를 찜기에 찌는 동안 뭔가 같이 먹을 만한 게 없을까 하여 냉장고를 연 철우는 간장 옆에서 버터를 발견했다.

두꺼운 유리병 속에 담긴 진갈색 간장 옆.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귀한 비닐을 사용해 아낌없이 이중 포장을 했고, 불투명한 유리 반찬통에 넣어 두었다.

개봉해서 냄새만 맡고 다시 봉해둔 새것이다.

그는 홀린 듯이 반찬통 뚜껑을 열고 말았다. 봄의 개나리꽃처럼 선명한 연노랑색이 아름다웠다.

“하, 한 입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고기 굽는 헌터님


지은이 : 미루하

제작일 : 2021.02.2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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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24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