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프로가 꿀 빠는 법 001화

0000

제 1화



1장. 내가 바로 전생의 프로다



눈을 떠 보니 그곳에는 낯선 가슴이 있었다!

한창 팔팔한 사춘기 남자애였으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지를 만한 바람직한 광경이겠지만.

지금의 내겐 별다른 감흥도 들지 않는다.

아~ 또냐? 라고.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젖을 빨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기 뭣하지만 나는 그 흔하디흔한 전생자다.

왜, 어쩌다가 뒈진 다음에 여차저차해서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서 깽판 치는 그 전생자 말이지.

다만 내가 다른 전생자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내 풍부한 전생 횟수를 꼽을 수 있다.

무렵 백…… 아니, 이번까지 포함하면 백한 번이군.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게 정확하다면 내 최초의 인생은 한국인이었다.

검은 머리에 여기저기 길에 치이는 돌멩이마냥 평범한 한국인이었지.

헬조선에서 태어나서 취업 걱정에 하루하루 몸서리치는 그런 평범한 청년이었다.

지금은 계속되는 전생 속에 기억이 파묻혔지만, 결코 행복한 인생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런 한 많은 최초의 인생을 끝마치게 되고.

나는 이후에도 몇 번이고 전생했다.

처음 전생했을 땐 엄청 놀랐다.

갑자기 눈떠 보니 아기가 되어 있지 않나, 낯선 언어를 지껄이는 외국인이 있지 않나.

심지어는 웬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지.

그때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도 같은 세계가 아닌 매번 다른 세계에서 질리지도 않고 전생을 반복했다.

온갖 최신 기술이 난무하는 SF적인 세계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칼과 주먹이 난무하는 무협적인 세상에서 날뛰어 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기타 등등.

그야말로 온갖 장르는 다 경험해 봤다고 자랑할 수 있다.

질려 버릴 만큼 온갖 세계에서 무려 백 번의 각각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 덕분에 이젠 다시 태어나는 것도 완전히 적응이 되어 버려서 이제 와선 ‘그래 또 전생했구나’ 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울지도 않고 그저 얌전히 젖이나 빨면서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되었지.

자아~ 그럼 여기서 한 가지 퀴즈!

지금 내가 백한 번째 전생한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요?

두근두근!

어느 정도 배가 차니까 슬슬 궁금증이 발동해 온다.

나는 젖에서 입을 떼고는 배가 부르다는 것을 어필했다.

무려 백한 번째!

아기 플레이다!

나보다 리얼리티 넘치는 아기 연기를 잘하는 놈은 어떤 세계든 없다고!

아직 말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으로만 외치면서 나는 이번 생의 내 엄마의 얼굴을 봤다.

잿빛의 머리카락의 미인.

정말 이 사람이 내 엄마가 맞을까?

순간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예쁜 여성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엄마는 정말로 미인이군.

엄마의 외모에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나는 주변을 봤다.

나 정도 되는 전생 전문가의 안목이라면 방 안을 슬쩍 보기만 해도 대충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알 수 있다.

가구의 양식이나 방 안의 광경을 보니 대충 중세 정도일까.

적어도 내가 알던 지구의 중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판타지인 건가.

제 백한 번째 인생의 장르는 판타지입니다.

음…… 조금 아쉽다.

아주 살짝이지만 아쉽군요.

사실 전생자가 가장 살기 편한 곳을 꼽자면 내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단연코 SF적 세계가 아닐까?

문명은 최첨단을 달리지.

거리도 깨끗하지.

냄새 안 나지.

화장실도 아주 쩔어 줘!

그에 비하면 판타지는…… 흐음…….

딱히 판타지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약간 불편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태어났으니 잘 적응하고 살아야지.

그나마 다행인 건 방 안을 봤을 때 적어도 이곳이 빈민가는 아니란 점이었다.

가구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어도 제법 관리는 괜찮게 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방 안에는 나를 안고 있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시녀가 있다.

적어도 시녀를 고용할 환경이라는 거군.

부유한 느낌은 아니라도 검소한 상류층 집안?

대충 그런 집안이 아닐까 짐작했다.

이 이상은 정보가 부족하니 속단하긴 이르겠군.

“----? ------?”

한창 생각에 잠겨 있자니 엄마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건다.

낯선 언어군.

알아들을 수가 없다.

통역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마법 같은 것도 있지만 지금의 내 몸으로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알아듣긴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론 알 것 같다.

배부르니? 하고 묻는 거 같은데.

일단 배불러요! 라고 대답해 주고 싶어서 일단은 힘내서 대답해 볼까 싶었지만.

“아!”

역시 옹알이도 제대로 안 된다.

아직은 무리군.

그래도 제 자식은 귀여운지 엄마는 싱긋 미소 짓는다.

아기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눈이 마주친 순간 내 감이 찌릿! 하고 내게 답을 알려 준다.

정말로 이 사람이 지금 생의 내 엄마가 맞구나.

당연한 소리지만 지금까지 숱하게 전생해 오면서 많은 엄마를 만났다.

씁쓸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생의 엄마를 본 순간, 아마 이 사람은 그런 여자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원하지 않는 자식 같은 건 아니었다는 게 되니까.

지금도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는다.

몇 번의 인생 동안 태어나자마자 보게 된…… ‘원하지 않던 자식’을 바라볼 때 그 차가운 눈동자.

몇 번이고 겪었다지만 그것만큼은 늘 마음이 아프거든.

그 점에선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지금 엄마의 시선은 분명히 그것과는 다르다.

애정은 있다.

그렇지만…….

왜 저렇게 슬퍼 보이는 거지?

지금의 나는 그 이유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 * *



3개월 뒤.

리파나는 품에 안은 아기…… 아직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내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렐…… 미안하구나…….”

중얼거리고는 아차 싶었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엄마가 이런 얼굴을 보이면 당연히 아이는 불안해 하지 않겠는가.

미소를 지어 주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아렐은 그저 멍하니 리파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직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진 못하겠지.

그래,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리파나 님…….”

입을 다물고 고뇌에 잠겨 있자,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시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피곤하실 테니. 왕자님은 제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이 아이는 왕자다.

아렐 에르네시아.

에르네시아 왕국의 국왕의 피를 잇는 엄연한 왕족이 틀림없다.

그러나.

“왕자라…….”

리파나는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아렐은 분명히 왕족의 피를 이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과연 다른 분들도 이 아이를 왕자라 인정해 줄까?”

시녀는 어깨를 흠칫 떨기만 하는 게 고작이었다.

차마 리파나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체나. 그렇지 않니?”

“그……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방 안에는 우리뿐이야. 평소처럼 편하게 불러 주지 않을래?”

“감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어때서 그러니? 어차피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와 같은 일을 하던 시녀였잖니.”

리파나의 출신은 그저 천한 시녀일 뿐이다.

그저 어여쁜 외모 덕에 국왕에 눈에 들었고 총애를 받게 되었다.

딱 한 번뿐인 총애.

그러나 그것만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왕의 아이를 품었다는 것만으로 후궁이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아렐의 피 절반은 자신의…… 미천한 신분의 자의 것이다.

그저 명분상, 왕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왕자라 불리는 아이.

그렇기에 국왕조차도 더 이상 리파나에겐 흥미를 잃고 그저 이 낡은 후궁에 가둬 놓았을 뿐, 아렐이 태어났음에도 보러 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장래 아렐이 어떤 취급을 받으며 성장하게 될지, 비록 시녀 출신에 불과하지만 그녀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파나는 자신의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속에 회한이 사무쳤다.

“이 아이는…… 언젠가 나를 원망하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시녀가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그저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

리파나가 다른 후궁들…… 그리고 귀족들 사이에서 어떤 소릴 듣는지 일개 시녀조차도 잘 알고 있다.

“왕가의 피를 이었다지만…… 내 탓에 아렐은…… 계승권도…… 세력도…… 무엇하나 줄 수 없어.”

그것이 리파나의 마음속에 죄책감으로 남았다.

그녀는 정작 권력이나 재산에 관한 욕심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왕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그저 이름뿐인 왕족.

왕족의 피가 아무렇게나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낡은 궁에 가둬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인생.

그저 왕의 혈통을 이은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아직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아이가 이해한 것일까.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렐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리파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아! 으응아!”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리파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나친 상상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제 막 눈도 뜰까 말까 한 아기다.

알아들을 리가 없지.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아이가 전생자.

지금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 알아들으리라고 꿈에서라도 상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 * *



죄송하지만 전부 알아듣고 있습니다.

언어?

전생의 프로인 제 뇌에 걸리면 3개월이면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죠.

그동안 전생하면서 깨달은 요령이다.

대부분의 언어는 세계는 달라도 인간이 하는 말인 이상 문화권이나 인종에 따라 근본적인 구조에는 통하는 요령이 있다.

발음만 잘 새겨들으면 3개월이면 뚝딱!

완벽하게 귀가 열립니다.

그나저나 지금 들은 이야기는 나도 좀 놀랄 만한 일인데?

……내가 왕자라고?

헐? 진짜? 트루?

엄마와 시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내 귀에 고스란히 쏙쏙 들려왔다.

물론 전부 이해한 건 아니다.

대충 엄마가 시녀 출신이고, 내 아빠가 국왕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미천한 신분의 피가 반 섞인 탓에 내가 그저 허울뿐인 왕자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

대충 그 정도가 전부.

그 정도면 대략적인 사정은 알 수 있다.

그렇구나.

왜 엄마가 그토록 슬픈 눈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아무래도 이곳은 내가 예상한 대로 전형적인 중세적 판타지 세계인 모양이다.

신분제가 있고, 그것은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엄격하게 혈통을 따지고 든다.

비록 왕자라고 해도 일개 시녀의 아이에 지나지 않는 내게 매겨진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귀족가의 아이로 전생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상류층의 사고는 나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기에 엄마는 그렇게나 슬퍼한 것이다.

아마 내겐 계승권도 없다.

나를 따를 세력도 없겠지?

유력 귀족들은 나 따윈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같은 왕족조차도 나에 대한 건 아웃 오브 안중!

흑흑! 나는 외톨이야!

……과연, 납득했다.

내가 이해한 사이에도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 역시 방금 전 들은 내 백한 번째 인생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는…….

그거 최고잖아!

진심으로 환호했다!

아싸! 개꿀!

전생의 프로가 꿀 빠는 법


지은이 : 송수하

제작일 : 2019.02.1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보나

표지 : 앙쥬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6013-33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