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은 제군들에게 실망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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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1.



“추…… 충성! 그…… 근무 중 이상 무!”

당황한 목소리의 끝이 떨렸다.

그 목소리의 떨림은 누가 보더라도 뭔가를 잘못한 불안감의 증거였다.

경례를 받는 한 남자.

주변 친구들로부터 고지식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상당수의 육사 출신 장교들처럼 원리 원칙에 따라 군복무를 하고 있는 육군 대위였다.

육군 대위.

대위는 계급이었고, 직책은 최전방 초소를 지휘하는 중대장인 그는 지금 매우 실망스러웠다.

중대장이 실망하게 된 이유는 당연하게도 자신이 지휘를 하는 중대원 때문이었다.

오직 군대에서만 실망하는 남자.

실망을 하는 것이 일인 남자.

중대장의 실망스러운 눈빛이 쏟아지고 있다.

“내가 지킬 것만 잘 지키면 아무 말 안 하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지?”

그 기본이라는 것이 뭔지 중대원들은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기분에 따라 그 기준이 널뛰기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중대장의 기분이 다소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피해 갈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예! 그렇습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래? 내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걸 싫어한다는 거 잘 알아? 몰라?”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져 버렸다.

영창이 될지, 아니면 군기교육대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군장 메고 연병장을 돌아야 할지…….

뭐가 됐건 눈앞에 앞으로의 험난함이 어른거렸다.

그나마 장기를 꿈꾸며 참모총장을 넘어 국방부 장관이 되겠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중대장이었다. 자신의 경력에 문제가 생길 영창을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FM이라는 단어처럼 그 이상의 고단함을 만끽할 수 있을 터였다.

“근무 복귀하면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30바퀴. 몇 바퀴?”

“30바퀴!”

“50바퀴 돈다!”

“알겠습니다!”

잘못을 한 것이 있었기에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매번 실망을 하기만 하는 중대장이었지만 정말로 자신의 말처럼 기본만 지키면 대부분은 넘어가는 중대장이었다.

그렇게 경계 초소에서 정신 줄 놓고 근무를 서고 있는 중대원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순찰을 돌던 중대장은 자신의 집무실인 중대장실로 돌아왔다.

“오늘 영철이 몸이 안 좋은 거 같던데, 내일까지도 아프면 의무대 갔다 오라고 해도 의무관 그놈의 자식들은 뭘 제대로 볼 줄을 알아야지! 맨날 똑같은 약만 타 가지고 오니. 에휴!”

일기 쓰듯이 근무 일지를 작성하던 중대장은 실망스러운지 인상을 구겼다.

군대에서 아프면 군대 병원이나 의무대 가지 말고 사제 병원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후송 보내 놓으면 갔다 온 병사들마다 똑같은 약을 받아 오고는 하는 것에 울화가 터졌다.

결국 중대 행보관에게 말해서 외출증 끊어 사제 병원에서 진찰을 받게 해야 했다.

자칫 감사라도 뜨면 자신이 깨질 일이었지만 몸이 아파서 부대 운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더 실망스러웠다.

굴릴 때 굴리더라도 안 아파야 제대로 굴릴 수 있었다.

사실 중대장은 그렇게 빡빡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중대원들을 꽤나 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느슨하게 부대 운영을 하면 꼭 사고가 터진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군대에서의 사고는 자칫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야기했다.

“흥! 그놈들 생각해서가 아니야. 다 부대 운영에 문제 생길 거 같아서 그런 거지. 안심을 하고 있다가 전쟁이라도 터져 봐. 나라는 누가 지킬 거야! 나라는! 하여간 안 다치고 집에 가야 할 거 아니야.”

중대장은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근무 일지를 작성하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내일은 또 어떤 실망스러운 일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군.”

중대장은 내일도 실망을 해야 했기에 일찍 취침을 하기로 했다.

자신이 실망을 하면 할수록 부대는 사건, 사고가 줄어들었다.

병사들도 고된 것이 군 생활이라지만 하급 장교들에게도 군 생활이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만에 하나 장기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군 경력만으로는 인생 심하게 꼬였다.

그나마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면 보통 대대장까지도 프리패스라고 하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었다.

병력 자원이 줄어들면서 지휘관급 간부들의 자리도 줄어들고 있었다.

경쟁은 치열해지지만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에 사관학교 출신도 안심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대다수의 동기들도 의무 복무 기간만을 끝내고서는 전역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장기가 되어 소령으로 진급을 하더라도 중령에서 대령으로 올라가는 것은 사관학교 출신도 험난한 일이었다.

중령으로 전역을 하면 나날이 애들은 크는데 나이와 경력으로 일반 사기업도 이직도 힘들었다.

결국 치킨집 루트를 타야 할지도 몰랐으니 경쟁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연금을 받으려고 해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군인이었다.

그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중대장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실망을 해야 할 운명이다.

그렇게 꿈속에서조차 실망하고 있는 중대장을 실망시킨 중대원 병사 하나가 경계 근무를 끝내고 복귀하고 있었다.

“어! 박 병장님! 별똥별이지 말입니다!”

사제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군내의 밤하늘은 별들도 참 밝았다.

“소원 비시지 말입니다! 박 병장님! 별똥별님! 휴가 보내 주시지 말입니다!”

후임의 소박한 소원을 들으며 박 병장은 길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똥별을 보며 중얼거렸다.

“귀신은 우리 중대장 안 잡아가나 몰라.”

반짝!

박 병장의 소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똥별은 그 날 따라 무척이나 아름답게 반짝였다.



“코렐 소위!”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고, 자신의 계급도 아니었기에 중대장은 깨지 않았다.

늦게 잠이 들어 무척이나 고단한 중대장이었다.

물론 기상나팔 소리에는 본능적으로 깰 것이었지만 기상나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잔뜩 화가 난 목소리의 남자에 결국 중대장은 깨야만 했다.

“코렐 소위! 지금 뭐 하는 건가!”

“아! 누구야? 뭔 일 났냐? 왜 이렇게 시끄러워!”

혹시나 대대장님이라도 방문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깨어난 중대장은 웬 처음 보는 털북숭이 아저씨가 도끼눈을 뜨고서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걸 보았다.

“누구세요?”

중대장이 있던 곳은 휴전선 인근의 최전방 철책 부대였다.

일반 민간인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장소였다.

군인이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무조건 민간인이었다.

중대장은 병사들이 민간인 들어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중대장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코렐 소위이!”

카일 왕국의 왕립 간부 학교의 교관인 벤젠은 멍청한 눈을 하고 있는 하급 귀족 출신의 하급 간부 후보생 코렐 소위를 노려보았다.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꾸욱 참았다.

“코렐 소위, 자네 인성에 문제 있나?”

“아니, 이 아저씨가 왜 남의 인성을 찾아. 당신 누구야?”

“뭐? 누구야? 코. 렐. 훈. 련. 병.”

“훈련병! 코렐! 응?”

중대장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 벤젠 교관의 외침에 중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졸업하고 임관했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 지금 감히 나한테 개기는 거냐는 말이다! 오늘 코렐 소위의 행동에 정말이지 실망스럽구만! 지금 나를 실망시키려는 건가, 코렐 소위?”

“아닙니다!”

“아니면 뭔데? 이 자식아! 어제는 감사합니다. 벤젠 교관님이라고 쳐 울더니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인성 보여 주는 거냐? 어? 똑바로 대답 안 해!”

“죄송합니다!”

중대장은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눈앞의 털북숭이 아저씨 앞에서 자연히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방위성의 놀렌 백작님께 가서 근무지와 명령서 수령하고 출발해! 이 망할 애송이야! 네놈만 지금 출발 안 하고 네놈 동기들은 다 출발했단 말이다! 수료 다음 날까지 속을 썩여!”

“알겠습니다!”

늦잠을 잤다.

이미 왕립 간부 학교의 동기들은 자신들의 근무지를 통보받고 출발을 한 뒤였다.

중대장, 아니 이제는 코렐 소위는 기억은 없었지만 몸이 이끄는 데로 방위성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놀렌 백작에게서 자신이 배치된 근무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근무지? 얼라? 내 몸은 왜 이래? 여긴 어디야?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휴전선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아니, 한국이 아닌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풍경이었다.

주변에는 통짜 갑옷을 입고 있는 창과 검을 든 병사들이 가득했다. 건물들도 콘크리트 건물들이 아니라 돌로 깎아 쌓은 성들과 통나무로 대충 지은 듯한 통나무집들이었다.

영화 세트장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변에 카메라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더욱이 전부 서양인들만 보였다.

“설마 이계 환생이냐? 아니 왜? 엔트로피하고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 리만 가설도 이 건 불가능하다고 증명하고 있다고.”

당황한 나머지 헛소리가 입 밖에서 나왔다.

코렐 소위는 오지에서 군 생활을 한다고 문화생활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이계 환생물에 대해서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사실 한국인 남자들치고 이계 환생물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라는 이계에 자연히 끌려간다.

눈을 떠 보면 낯선 군대라는 이계.

그런 곳에서 적응을 하다 보니 또 다른 이계에 크게 놀라지 않을지도 몰랐다.

코렐 소위는 자신이 이계에 와 있음을 큰 충격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렐 소위? 내가 코렐이라는 놈인가? 그런데 왜 환생했는데 또 군대야?”

병사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새파란 신입 소위라는 것에 코렐은 이번 환생은 망했음을 직감했다.

“아! 제길! 하필 쏘가리가 뭐야? 쏘가리가! 내가 몇 년을 고생해서 중대장까지 올라왔는데. 조금만 더 하면 장기인데!”

장기 복무를 해서 미래의 국방부 장관까지 노렸던 코렐은 오지 근무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 고생 끝에 소령이 되면 육본 근무를 노려보려던 꿈 많은 중대장이었다.

“테팔 지방은 또 어디야?”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런 거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뭔가 아주 큰 착오가 있었지만 이계 환생 고객 센터 같은 것이 있을 리는 없었다. 한숨 끝에 코렐 소위는 일단 이계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응의 민족 한국인의 적응 능력은 빨랐다.

그렇게 자신의 첫 부임지 명령서를 들여다보며 테팔이라는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테팔이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인지 알 리가 없었다.

코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병사로 추정되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병사!”

“말씀하십시오! 소위님!”

경례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관등성명도 하지 않았지만 제법 군기가 있어 보이는 병사였다.

“혹시 자네, 테팔 지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가?”

“테팔이요?”

코렐은 순간 병사의 눈에서 측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망했다.’

일단 아주 좋지 못한 근무지임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코렐은 병사가 아닌 간부였지만 하급 간부는 신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살이 삶임을 코렐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병사들 간의 갈굼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하급 간부들 사이의 군기는 강했다.

“테팔로 배치 받으신 겁니까?”

“그…… 그러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소위님.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고맙네.”

더는 차마 묻지를 못할 것 같은 코렐이었다.

그렇게 근무지 명령서를 받은 코렐은 기억은 없었지만 자신의 기숙사 방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중대장은 제군들에게 실망했다


지은이 : 현진현우

제작일 : 2021.01.19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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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06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