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인간이 되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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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쥬튜브 첫 공개! 지구산 인간의 모습은?



퇴근길에, 화장실에서, 자기 전에.

다들 한 번쯤은 쥬튜브를 봤었을 것이다.

나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전에 쥬튜브 영상을 보는 게 취미고, 일과였다.

“아…… 고양이 키우고 싶다.”

한가로운 시골에서 고양이들을 어루만지는 V로그 영상.

나는 옛날부터 이런 꼬물꼬물한 동물들이 좋았다.

직접 동물을 키우기에는 영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대리 만족 하는 것이다.

냥냥거리는 고양이들의 영상으로 힐링을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뭔가 이상한 영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차원항 제작?”


[신규 무개입 차원항 제작! 이번 차원항의 주인은 바로 누구?]


무환수 민물항이나, 무환수 해수항이라는 단어는 들어 봤어도 무개입 차원항이라는 단어는 처음 본다.

아니, 그보다 저 영상을 올린 채널을 처음 본다.

차원항 장인 클라인?

구독자 1,602만?

저런 채널이 있었다고?

나는 의아해하며 영상을 재생했다.

도대체 저 무개입 차원항이라는 게 뭔지 좀 들어나 보자.

영상을 재생하자 화면에는 어딘가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무언가 근본적인 부분에서 혐오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아닌 듯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여자의 얼굴.

이상한 불쾌감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은 꾹 참고 영상을 시청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무개입 차원항 장인 클라인이에요!”

자신을 클라인이라 칭한 여자가 화면 속에서 방긋 웃으며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에게 인사한다.

“지난번 영상에서는 무개입 오크 차원항을 보여 드렸죠?”

무개입 오크 차원항?

그건 또 뭔 소리야?

오크가 내가 아는 그 오크인가?

아니면 오크 나무의 오크인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상에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 화면이 바뀐다.

난생처음 보는 대륙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눈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면이 대륙의 한 지점으로 축소되더니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초록 오크들이 서로 싸우며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오크들은 지금 네 부족으로 나뉘어서 영역 싸움을 펼치고 있어요! 오크 차원항의 소식은 다음 영상에서 더 자세하게 알려 드릴게요.”

도대체 이게 뭔 영상일까?

게임?

영화?

무슨 게임이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인 걸까?

워낙 퀄리티가 뛰어난 덕분에 나는 희미한 불쾌감을 참으며 영상을 계속해서 시청했다.

“그럼. 제가 오늘 준비한 콘텐츠는 무엇이냐! 쟈자잔~.”

화면이 바뀌고, 16배속은 되어 보이는 속도로 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산이 솟아오르고, 바다가 차오른다.

나무들이 자라나고, 동굴이 입을 벌린다.

“네. 보다시피 새로운 무개입 차원항의 준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들던 차원항은 좀 넓이가 컸죠? 이번 차원항은 대륙 사이즈는 부담되시는 분들을 위해서 크기를 많이 줄였어요.”

와, 진짜 콘셉트 하나는 제대로네.

이 영상이 끝나면 구독해야겠다.

“이번 차원항의 콘셉트는 바로 생존! 낯선 환경에 떨어진 생물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게 목표예요. 물론 생물 학대는 아닙니다. 멸종하지 않을 정도로 개입해 줄 거예요.”

이제 슬슬 이 영상의 콘셉트가 이해 간다.

만약 신이 어항을 만든다면?

그런 상상을 실제로 영상으로 옮긴 것 같다.

캬, 진짜 요즘 CG 기술 하나는 끝장나게 발전했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번에 조금 특별한 생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보지 못하셨을걸요?”

특별한 생물?

뭐, 외계인이라도 나오려나?

“그건 바로~ 두구두구두구~ 인간입니다!”

인간?

아하, 이제 이 영상의 내용을 알겠다.

신들의 어항에 붙잡힌 인간의 생존극을 다룬 내용이려나?

“아, 여러분들. 인간은 너무 흔한 게 아니냐는 생각 들었죠? 걱정 마세요. 제가 이번에 준비한 인간은 리우테스 행성 출신이 아니거든요.”

아, 이젠 SF까지 섞었어?

너무 장르가 섞이면 별로던데.

“제가 이번에 준비한 인간은 바로, 지구 출신입니다! 지구 출신 인간은요. 리우테스나 다른 행성 출신과는 달리 신체가 무척이나 연약해요. 심지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도 죽어 버리는걸요? 마법도 쓰지 못하니, 인간 중에선 최약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이 마법을 쓰는 게 당연한 거였어?

저 세계관은 참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게 나오네.

“하지만 그만큼 탈출 가능성은 적어서 인간 사육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종류이기도 해요. 하지만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에요. 사실은 저도 지구산 인간 사육은 처음입니다!”

이제 슬슬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됐는데.

슬슬 저 신에게 납치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나?

“제가 지금 당장 인간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 지구산 인간이 배송되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래도 이 영상이 업로드될 즈음에는 검역 차원에 도착했을 겁니다!”

검역 차원?

아, 검역항을 말하는 건가?

끝까지 콘셉트에 충실하네.

“그럼 여러분. 앞으로 시작될 지구산 인간의 생존 서바이벌. 기대해 주세요! 이만 저 클라인의…….”

내가 피식 웃으며 영상을 지켜보던 도중, 갑자기 영상이 끊긴다.

뭐야, 와이파이가 고장 났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와이파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한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졌다.

윽, 뭐야?

이거.

심상치 않은데.

지끈거리는 통증이 점점 내 머리를 침식해 갔고, 결국 나는 정신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뭐야. X발.”

나는 사방이 희뿌연 안개로 휩싸인 정체불명의 공간에 와 있었다.

1화 지구산 인간이 왔어요! 검역 차원에서의 첫 모습!



온갖 차원항들이 잔뜩 모여 있는 한 방 안.

“안녕하세요, 클라인입니다!”

클라인은 새롭게 구매한 카메라 앞에 서서 방긋 웃음을 지으며 오늘의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 제가 보여 드릴 건, 자쟈잔~ 지난번에 이야기한 지구산 인간입니다!”

클라인이 자신의 발성기관으로 소리 내며 카메라 앞에 차원항 하나를 들어 올려 보인다.

클라인이 들어 올린 차원항 안에는 인간형의 생명체 하나가 들어 있었다.

클라인은 차원항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고생을 알아 달라는 듯 카메라를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야,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지구가 워낙 변두리여서 텔레포트 배달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큼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어요!”

짝.

한바탕 투정한 클라인은 박수를 쳐 주의를 돌리고, 마치 강의를 하듯 지구산 인간의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지구산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몸 안에 마력을 축적하는 기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초보자들은 사육할 때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게 좋아요.”

그리고 클라인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차원항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차원항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며 클라인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설명은 충분히 들으셨으니 이제 실물을 보고 싶으시죠? 쥬튜브 최초로 소개합니다! 지구산 인간입니다~! 자쟈잔~!”

클라인이 차원항의 뚜껑을 열자, 흠칫 몸을 굳히는 한 인간 남성의 모습이 엿보였다.

만약 클라인이 인간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면 인간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이 공포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인은 인간 따위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공포에 휩싸인 인간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라인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새된 감탄사를 터트렸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엄청 신기하죠? 이렇게 지구산 인간은 마력이 존재하지 않아서 무속성 마력을 지닌 생물들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생먹이 급여나 메이팅에 쓰는 방식으로요. 거기에 한 가지 더! 마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도 쉽게 키우실 수 있어요. 거기에 순한 편에 속하는 성격 때문에 핸들링하기도 쉽고요.”

계속해서 지구산 인간을 설명하던 클라인은, 숨을 몰아쉬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는 듯 외쳤다.

“우와, 방금 보셨어요? 저한테 반응한 것 같은데요? 민감하다, 민감하다 하더니. 이건 거의 드래곤급인데요? 마력이 아예 없어서 그런가?”

본래 차원항의 뚜껑을 여는 것만으로는 차원항 안의 생물들은 사육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드래곤이나 몇몇 감각이 특출 나게 발달한 생명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감각이 발달한 것도 아닌, 단순한 인간형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일까?

클라인은 계속해서 인간의 모습을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흘려 댔다.

“입고 있는 의복과 체모의 색으로 봐서는 아마 20살에서 30살 사이의 인간인 것 같네요. 지구산 인간 기준으로는 성숙한 개체예요. 성별은 아마 수컷? 으로 보이는데 이건 조금 있다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외모와 성별이 가끔씩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반드시 생식기를 확인해 봐야 하거든요.”

클라인은 겁에 질린 인간의 반응을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으아, 저 꼬물거리는 거 보세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클라인은 당장이라도 만지고 싶다는 듯 손을 차원항 안으로 더 넣으려 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손을 거뒀다.

“쩝, 지금 당장 핸들링하는 건 무리일 것 같네요. 더 이상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끔 잠시 놔두겠습니다.”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차원항의 뚜껑을 닫은 클라인은 곧장 카메라를 들고 다른 차원항의 뚜껑을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지구산 인간은 검역 차원에서 3일간 머무를 건데요. 그동안 인간이 머무를 차원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쟈자쟌~.”



* * *



뭔데?

뭔데 이거?

나는 희뿌연 안개 속을 헤매며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이런 공간에 떨어졌다는 것보단 꿈이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와 생생히 느껴지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해 온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고 있던 나를 안개 속에서 끄집어낸 것은 거대한 압박감이었다.

“우욱?”

심장이 두근거리고.

공기가 굳어진 것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한다.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무언가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려는 듯 더욱 압박을 가해 오고.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압박감에 짓눌려 숨을 몰아쉬던 그때.

“허억, 허억……!”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압박감의 근원지를 뚜껑으로 덮은 듯한 변화.

그제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고.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꿈도 환각도 아니라는 것이다.

꿈도 환각도 아니라면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어째서 내가 이런 장소에 떨어지게 된 거지?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하염없이 계속해서 안개 속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안개 속을 정처 없이 헤맸을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무척이나 이 장소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내가 이 정체불명의 안개 속에서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건 많았다.

내가 널 납치했다면서 자신의 목적을 주절주절 설명해 주는 친절한 납치범.

아니면 무표정한 표정의 연구원.

그것도 아니라면 기괴한 생명체.

이것 말고도 꽤 많은 후보들이 안개 속을 걷는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안개 속에서 푹신한 침대와 어째서인지 잘 작동되는 냉장고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뭔데?

침대하고 냉장고?

도대체 뭐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안개 속을 노려보지만, 저 침대와 냉장고 외의 다른 물체나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너무 대놓고 이질적이어서, 엄청나게 수상하다.

주위의 수상한 안개들 사이에 무척 평범한 물건이 있다는 게 이렇게 수상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진짜 뭐냐고?

문득 슬쩍 침대에 누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어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저런 수상한 침대에 누워?

문득 어제 자기 전에 쥬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에 잡혀 와서 온갖 실험을 당하는 남자를 다룬 영화.

그 영화의 과학자처럼 나를 납치한 누군가도 나를 지켜보며 깔깔거리고 있을까?

어찌 됐든, 저 침대와 냉장고는 너무 수상하다.

왜, 원래 공포 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놈들은 그런 놈들이잖아?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는 녀석들.

나는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슬쩍 침대와 냉장고를 지나쳐 안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안개 속을 다시 헤매고 다녔을까?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아, 미쳐 버리겠네.”

아까 봤었던 침대와 냉장고였다.

거기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더해져서 말이다.

내가 아까 왔었던 장소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내 앞에 새롭게 나타난 걸까?

이번에도 나는 침대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고.

자그마한 칵테일 잔.

변기와 욕조.

마지막으로 작은 곰 인형까지.

제발 자기들을 좀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젠장, 아무리 걸어도 벽이나 뭐 다른 사람들은 나오질 않고.

하도 걷다 보니 발이 아파 죽겠고.

내가 왜 이딴 곳에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괜찮겠는데, 그것도 없고.

그냥 침대에서 쉬고 싶고.

저게 함정이든 뭐든 알 게 뭐야?

지금 함정에 걸려 뒈지나 여기서 굶어 죽나 똑같이 죽는 건데.

차라리 그럴 거면 저게 함정인지 아닌지는 알고 죽자.

그런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나는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난 침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고.

“X발…….”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무색하게끔 푹신한 침대는 편안하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있던 걸까?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냉장고를 열어 보자, 정체불명의 팩이 들어 있었다.

슬쩍 팩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 보자 일종의 젤리들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나보고 먹으라고 가져다 놓은 건가?

침대가 그냥 침대인 걸 봐선, 아마도 이 냉장고나 변기 같은 것들도 내 편의를 위한 물건들일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각오를 다지고, 팩 안에 든 젤리를 입안으로 넣었다.

우물우물.

어디선가 많이 먹어 본 단맛이 입안에 퍼지고.

나는 금세 젤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마X구미?”

어째서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많이도 먹었던 간식의 맛이 젤리에서 느껴졌다.

색상은 보라색도 아니고, 투명한 젤리인데.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일부러일까?

어찌 됐든 지금까지 품고 있던 경계심이 너무나 어이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팩 안에 든 젤리를 우물우물 삼켰다.

식사 아닌 식사를 끝마치자 잔뜩 걸어 다닌 피로가 몰려오는 걸까?

아니면 낯선 장소에 떨어진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침대 때문일까?

갑자기 밀려오기 시작한 수마에 나는 기꺼이 몸을 맡기고 곰 인형을 꼭 껴안은 채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땐, 주위의 안개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런 해가 없어 보이는 회색빛 안개는, 이제 불길해 보이는 붉은빛을 띠며 표독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뭘까?

독성 물질?

아니면 일종의 신호?

뭐가 어찌 됐건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다시 냉장고에 보충된 젤리를 한 움큼 베어 물고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안개 속을 헤매었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그저 어제처럼 다시 침대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은 불안과 혼돈으로 가득했고.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공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대로 계속 여기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곳에 왔을 때처럼 갑자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안개 속을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았다.

내가 가능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쓸모없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며 침대에 눕고.

다시 눈을 뜨자.

“뭐야, X발?”

나는 뭔 사바나 초원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여긴 또 어딘데?

애완인간이 되었다


지은이 : 제스키위

제작일 : 2020.10.1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이치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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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051-84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