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백만 소환수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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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으윽, 아파 죽겠네.”

바야흐로 대초인의 시대.

각성자들은 다가올 전쟁에 대비……는 개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은 이미 뒷전이고 던전과 몬스터를 사냥해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다.

철저하게 계급 사회가 된 이곳에서 나는 하층민이었다.

아무 능력도 없었으니까.

던전의 영향으로 집안은 날아갔고, 나는 하루하루 짐꾼으로 먹고살았다.

“크르륵.”

“재수도 없지. 세상에 길 가다가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진짜 재수가 없었다.

짐꾼으로 일하고 퇴근하던 도중, 발밑에 던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겼다.

그대로 떨어져서 발을 접질렸고, 뒹굴었다.

일반인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으윽.”

저 멀리서 괴물들의 소리가 들렸다.

차원 선봉대라고 불리는 녀석들.

실상은 판타지에 나오는 고블린과 오크 따위였다.

“이렇게 죽냐. 인생 진짜.”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격통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 멀리서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죽는구나-.

진짜 너무 억울한데.

“하, 화도 안 난다. 진짜 운이 없어도 이딴 식으로 없냐.”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감이 나질 않아 발악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불행한 인생, 이렇게 죽는 게 나은가 싶기도 하고.’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꾸깃꾸깃한 종이가 잡혔다.

희미한 빛에 의지해 그것을 꺼내 보았다.

종이에는 내가 그린 낙서가 있었다.

평소 로봇과 환상의 동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크르르륵.”

철벅철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루엣이 보였다.

리저드맨이구나.

죽기 전에 뭘 그렸는지나 보자.


[각성: 드로잉 서머너의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해당 로봇을 소환 가능합니다.]

[이름: 낙서 로봇]

[능력: 격투, 레이저 빔, 치유 광선]

[해당 소환 능력은 일회용입니다.]

[소환하시겠습니까?]


그건 나에게 내려온 기적이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능력이었다.


1화 - 내가 그린 그림은



[소환하시겠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각성……이라고?

내가?

게다가 내가 그린 그림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크르르륵.

눈앞에 리저드맨이 다가왔다.

“소, 소환한다.”


[소환: 낙서 로봇]

[해당 소환수는 등록할 수 없습니다.]


빛이 났다.

구깃구깃 구겨진 낙서에서.

나는 간단한 그림을 그렸었다.

그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지켜 줄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이, 진짜 수호신이 된다고?

“가서…….”

[마스터. 명령을.]

“가서 다 쓸어버려.”

눈앞에 있는 것은 인간형의 로봇이었다.

유명한 만화사의 슈트를 본떠 그린 로봇.

그 로봇이, 나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명령, 이행합니다.]

콰아아앙-!

리저드맨이 벽에 처박혔다.

엄청난 굉음.

저 신체 능력을 등급으로 환산하면 어떻게 될까?

사이퍼의 등급은 가장 낮은 F등급부터 S를 넘어 EX등급까지 있었다.

“B등급, 아니 A는 되겠는데.”

던전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리저드맨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낙서 로봇의 안광이 번쩍였다.

[치유 프로토콜과 원거리 섬멸을 시작합니다.]

낙서 로봇의 한쪽 팔에서 초록색 광선이 나왔다.

내 몸에 닿자마자 접질렸던 부분이 말끔히 나았다.

격통이 완전히 없어졌다.

지이잉-!

반대편 손으로 리저드맨을 겨눠 영화에서 보았던 그 빔을 쏘아 냈다.

“……쩐다.”

소리도 못 지르고 녹아 버린 리저드맨.

하, 하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건 진짜 대단한 능력이었다.

“가자. 여길 클리어해야지.”

[알겠습니다, 마스터.]

든든했다.

상태 창 같은 건 없을까?


[이름: 이현]

[레벨: 1]

[마나: 100/100]

[능력 랭크: E - 해당 능력은 성장합니다.]

[스킬: 고출력 소환(E), 능력 부여(E), 소환물 등록(E)]


눈앞에 간단하게 상태 창이 떴다. 성장 가능 능력.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성장 가능 능력이라니.

이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능력이었다.

[전방 10미터 앞에 적 확인. 섬멸합니다.]

딱딱한 기계의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빛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지이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리저드맨이 녹아 없어지는 광경은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해 주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도 한꺼번에 올랐다.

그래.

이거라면 지긋지긋한 하층민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환 시간은 언제까지야?”

[앞으로 10분 남았습니다.]

“클리어는 무리겠네.”

[이곳 지형물의 길이는 약 2km 정도 됩니다. 탈출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날 지켜 줄 수호신.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던전이야 천천히 다시 오면 되니까.

[습득물입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이 내게 작은 마정석을 내밀었다.

마정석.

나 같은 짐꾼은 절대 만져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고, 고마워.”

[마스터의 기쁨이 곧 저의 기쁨입니다.]

이름도 없고 이제 곧 사라질 아이언…… 아니 로봇이었지만 든든함이 느껴졌다.

내가 그린 그림을 소환하는 능력.

좋았다.

그림을 취미로 그린 보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탈출합니다.]

낙서 로봇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던전을 빠져나왔다.

재수가 없어?

아니 재수가 너무 좋은 날이었다.

격양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세상에서 제일 강한 초인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될 거다!

백만 대군의 주인이 되어서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게 할 거다!

이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낙서 로봇이 소멸하였습니다.]

[다음 소환 가능 시간은 7일 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고출력 소환을 하면 위기의 순간에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가벼운 날은 처음이었다.

휴대폰 앱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며칠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당장 이것부터 팔아야겠다.’

마정석.

리저드맨은 C급 몬스터였다.

마정석의 가격은 500만 원에서 1천만 원 정도.

이거라면 당분간 홀로 준비할 수 있는 자금이 될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학생, 이번 달 월세 언제 낼 거야? 이번 달에도 못 내면 나가야 혀.”

“할아버지, 오늘 돈 들어왔어요. 밀린 월세 한꺼번에 낼 수 있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날 맞이해 준 것은 작은 옥탑방을 내어 준 주인집 할아버지였다.

딱한 내 사정을 봐줘서 벌써 3개월째 월세를 안 내도 참아 주고 계신 분이었다.

나 말고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많겠지.

염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마정석을 팔면 밀린 월세부터 내야겠다.

“그랴. 몸조심하고.”

“네. 월세 꼭 드릴게요.”

인사를 하고 옥탑방으로 올라가자 서늘한 방에 작은 난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원래는 없던 것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챙겨 주셨나 보다.

“집주인을 잘 만나서 다행이야.”

집 안은 휑했다.

몇 가지 짐 가방과 옷장, 책장.

화장실과 작은 싱크대.

낡고 오래된 컴퓨터가 전부였다.

“잠잘 시간은 없겠다.”

별것 없는 짐들뿐이었지만 옥탑방이 비좁아 보였다.

책장에 있는 노트들을 모조리 꺼냈다.

새로 생긴 능력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

“소환물 등록?”


[소환물을 등록합니다. 그림을 선택해 주세요. 소환할 수 있는 그림이 빛납니다.]

[현재 등록 가능한 소환물: 2]


노트가 빛나기 시작했다.

빛나는 그림들을 살펴봤다.

그림을 본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야.”

그곳에 그려져 있는 로봇은 네모난 몸체에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발, 몸체 뒤에 태엽이 그려져 있는 아주아주 귀여운 로봇이었다.

두 번째 로봇은 동그란 구체에 대나무 헬리콥터, 아니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동그란 몸체의 아래에 있는 작은 총구가 인상적인 녀석이었다.

전부 그런 식의, 간단한 로봇들이었다.

“아직 스킬 등급이 E등급이라 그런가.”


[스킬을 성장시키면 더욱 세밀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소환수로 부릴 수 있습니다.]


설명이 가려운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 주었다.

그렇단 말이지?

크으, 이거 완전히 고전 게임 지하 성의 모험가들의 메카닉 아니야?

진짜 잘만 성장하면 길드 못지않은 화력을 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대박이다.”


[등록할 소환수를 선택해 주세요.]


재차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에 헬리콥터 같은 그림을 골랐다.

‘등록’이라고 말하자, 종이가 환하게 빛나며 그림이 없어졌다.


[기체의 이름을 설정해 주세요.]

[ ]


“음…… 헬리콥터처럼 생겼으니까 콥터로 할까?”


[음……헬리콥터처럼생겼으니까콥터로할까?]

[맞습니까?]


“맞겠냐, 아니야!”

시스템이라 그런지 엄청 융통성이 없었다.

좀 뭐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할 거 아니야.

다시 공란으로 변한 이름 창.

간단하게 콥터로 하자.

“콥터.”


[콥터]

[맞습니까?]


“그래.”


[소환수 등록 완료.]

[콥터]

[소환수 스테이터스가 갱신되었습니다.]

[키워드는 ‘소환, 콥터’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불러 봤다.

첫 소환수이자 앞으로 내 초석을 닦아 줄 녀석이니까 소중히 다뤄 줘야지.

“소환 콥터.”

[삐리릭.]

마치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펙트와 함께 콥터가 나왔다.

메탈릭한 몸체.

힘차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맞으면 베이겠지?

가장 완벽한 물체는 메탈이라는 명언이 있듯,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너는 말을 못하나 보네.”

[삐리릭! ㅠ.ㅠ]

몸체 중앙에 있는 검정색 디스플레이 창에서 귀여운 표정이 드러났다.

콥터는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조용히 움직였다.

나중에 업그레이드를 하면 서포터로 써먹을 수 있겠는데?

아직 한 마리의 등록이 남아 있었다.

그림은 총 세 장.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골랐다.

작은 미니카 모양의 로봇.


[기체의 이름을 설정해 주세요.]

[ ]


“……몬스터.”

모티브가 몬스터 트럭이었기 때문에 몬스터로 정했다.

등록되었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메시지가 떴다.


[부여된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 부여를 실행해 능력을 부여해 주세요.]


또 다른 스킬, 능력 부여에 대한 말이었다.

해당 스킬 설명을 요구하자 시스템 메시지는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차원 전쟁이 시작되기 전 게임을 곧잘 하곤 했기에 이해는 빨랐다.


[능력 부여는 소환수에게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능력 부여는 해당 기체의 부여 포인트에 따라 자유자재로 부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부여 가능한 능력을 보기 위해서는 ‘능력 열람’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능력 열람.”


[부여 가능한 능력을 열람합니다.]

[E급 자폭]

[E급 가속]

[E급 마탄]

[E급 고속 장전]

<이상입니다.>


다양한 능력을 수집하고 기체에 능력을 부여할 수 있구나.

이거 소환수를 키울 맛이 나겠는데?

상태 창에 새롭게 생긴 탭을 열어 봤다.

바로 기체 스테이터스였다.


[콥터 - E급 0%]

[내구: 70/70]

[능력: <E -> <E -> <마나 탄환(E)>]

<10mp>

[최대 소환 개수: 1]


[몬스터 - E급 0%]

[내구: 50/50]

[능력: <E -> <E ->]

<5mp>

[최대 소환 개수: 5]


이 공란에는 랭크에 맞는 능력을 넣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콥터에게 가속과 신속 장전을, 몬스터에게 가속과 자폭을 넣어 주었다.

원거리에서 보조해 주며 자폭을 해서 잡는다.

위력은 시험해 봐야겠다.

내일이 기대된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길.”

자리에 눕기 전,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꺼내 보았다.

이걸 가져다 팔면서 초인 등록을 할 것이다.

비록 처음엔 E급 능력자겠지만.

괜찮다.

“잘 부탁한다.”

[삐리릭! ^^!]

콥터가 신나게 날아다녔다.

든든했다.

친구도, 의지할 곳도 없던 나에겐 정말 큰 힘이었다.

내일부터 할 일이 많았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내가 그린 백만 소환수


지은이 : 우림

제작일 : 2019.04.0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고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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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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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00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