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요리비책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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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제1편



“이그니스, 수호의 불꽃!”

- 알겠다.

화르르륵!!

“쿠오오오!”

언 리얼 월드.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으로 나와, 아직까지도 1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희대의 명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1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공략되지 않았던 던전, 사룡의 안식처의 보스.

사룡 퀼스에르크가 한 무리의 유저들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브레스다!”

“모두 내 뒤로 이동해! 앱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콰과과광!

“역시, 리더!”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리더’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불의 정령왕이라 불리는 이그니스를 거느리고.

8서클의 절대 방어 마법이라 불리는 앱솔루트 실드를 사용하고.

두 손에는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한손 검이, 허리띠에는 정체 모를 물약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남자.

바로 언 리얼 월드 현 랭킹 1위, 이창이었다.

“젠장, 저주에 걸렸어!”

“방금 그 브레스, 순수 대미지뿐만 아니라 부가 효과도 있었나 봐!”

“안개가 퍼진다! 다들 조심해! 안개에 접촉하면 바로 상태 이상에 걸리는 것 같으니까!”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로 장엄하게 퍼져 나가는 검은 안개.

모두가 그것에 기겁하며 피하는 와중에.

이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하얀색과 은색의 플라스크 두 개를 꺼내 앞으로 던졌다.

“은의 연금술-정화의 안개.”

쨍그랑!

푸화악!!

두 개의 플라스크가 깨짐과 동시에.

플라스크에서 새어 나온 연기가 뭉쳐 은은한 빛을 내뿜는 새하얀 안개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곧 덩치를 불려 나가며 사룡의 안개를 정화해 나갔다.

“됐어! 딜 타이밍이다!”

“딜러진! 빨리 공격하고. 탱커진, 다시 자리 잡아!”

“버프, 빨리!”

유저들이 소란스럽게 재정비를 하고, 공격을 하는 와중에도.

이창의 활약은 그치질 않았다.

진한 오러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검과 정령술, 마법, 연금술.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사룡을 타격해 갔다.

그가 없었다면, 이번 레이드는 진즉에 실패로 돌아갔으리라.

사룡의 앞에 서 있는 유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2페이즈다! 준비해!”

“아자!”

이후에도 전투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룡은 체력이 떨어질수록 더욱 강력한 공격을 해 왔고, 이창을 주축으로 한 유저들은 용맹하게 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이창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3페이즈! 조금만 더 버티면 돼!”

3페이즈에 돌입하자 사룡의 모습이 더욱 괴기하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몸에서는 진득한 검은 안개가 끝없이 뿜어져 나오고.

그 울음소리는 천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이에 버티지 못한 유저들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절반.

또 그것의 절반.

어느새 유저의 수는 처음에 비해 1/4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그니스, 저놈을 5초만 묶어 둘 수 있겠어?”

- 노력해 보지.

“좋아. 금의 연금술-빛나는 육체.”

쨍그랑!

이창은 자신의 몸에 금빛 액체를 가득 뿌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연금술의 힘 덕분일까?

남자가 아무리 달려도, 사룡에게서 뻗어 나온 검은 안개는 남자의 몸에 닿지 못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며 남자를 흘려보낼 뿐이었다.

“리더!”

“아무리 리더라도 혼자는 무리야!”

- 바인드.

화르륵!

남자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

사룡의 몸에 붉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족쇄가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룡의 들썩임과 함께 당장이라도 깨질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젠장, 다들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공격해!”

“리더를 지원한다!”

“마지막 기회야!”

콰과과광!!

갖가지 공격들이 검은 안개를 뚫고 사룡을 공격한다.

무작위로 뿜어 대는 사룡의 브레스에 얼마 남지 않은 유저들 역시 목숨을 잃어 갔다.

“샤이닝 소드.”

차장!

“쿠오오오!!”

이그니스의 화염 족쇄가 희미해지려는 순간.

남자의 손에서 마력이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사룡의 위에서 빛의 검 수십 개가 쏟아져 내렸다.

사룡은 마지막 발악인 듯, 거센 폭풍을 연상시키듯이 강력하게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하지만 여전히 금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남자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죽음을 감지한 것인지, 입을 크게 벌린 채 외롭게 울부짖는 사룡.

이창은 그 바로 앞에 도착하여, 한손 검 손잡이를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들어 올렸다.

“크오오오!!”

“길로틴(guillotine).”

서걱!

아주 짧게, 이창의 검이 반짝였다.

누군가 갑자기 음 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이, 사룡의 괴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고는 이내.

비스듬하게 잘린 깔끔한 단면 위로, 사룡의 머리가 천천히 떨어졌다.

쿠웅!!

“잡았어!”

“으흑흑, 드디어…….”

“미친, 세상에! 오, 마이 갓! 우리가 사룡을 잡았다고! 만세!”

“리더! 걱정했잖아요!”

저마다 반응은 달랐지만, 기뻐하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았다.

레이드 장면은 이미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었기에,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열광하고 있었다.

언 리얼 월드의 역사가 새롭게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와중.

이창은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을 들어 올리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사룡을 잡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랭킹 1위의 소감치고는 꽤나 심플한 한마디였다.



* * *



뿌드득!

“으으, 뻐근해.”

사람 하나가 살기 딱 적당해 보이는 원룸.

그 안에 침대 대신 설치되어 있는 캡슐 안에서,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믿기 힘들 정도로 길게 내려와 있는 다크서클.

빼빼 마른 몸매.

얼마나 오랫동안 태양빛을 쐬지 않았는지 창백해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

언 리얼 월드의 현 랭킹 1위, 이창의 게임 밖 모습이었다.

덜컥.

“으음, 벌써 재료가 다 떨어졌나.”

이창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7시 21분.

길어진 사룡 레이드 때문에 평소에 비해 시간이 조금 어긋나 있었다.

“간만에 장이나 보고 올까.”

이창의 길드가 이번 해 세운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언 리얼 월드 최고의 던전이라 불리는 ‘사룡의 안식처’ 공략이었다.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그에게는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났다.

평소 같으면 배달을 시키거나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하겠지만.

이창은 오랜만에 콧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옷을 챙겨 입었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까칠했지만, 모자를 깊게 눌러쓰면 모든 게 해결된다.

“후- 하.”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한 밤공기가 불어온다.

몸이 약해져서 그런 것인지, 옷을 제대로 껴입었음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이창은 몸을 움츠려 겉옷을 꽉 붙잡은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부대찌개라도 해 먹을까? 아니다, 오랜만에 고기 좀 구워 먹어야지.”

랭킹 1위의 자리를 유지하는 만큼 이창의 수익은 엄청났다.

실제로, 그의 통장에는 이렇게 길을 걷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큰돈이 입금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쓸 시간이 없었다.

랭킹 1위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길드를 관리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갖가지 게임 방송사와 인터뷰를 잡고, 방송을 촬영하기 위해.

그런 이창이 현실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네 시간 정도가 전부였다.

언 리얼 월드의 가수면 모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스케줄이었다.

덕분에 그 고작 네 시간의 시간 동안.

매일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이 이창의 유일한 낙이었다.

“하암.”

아무리 가수면 모드라고 해도 실제 수면과 비교할 수는 없는 법.

추운 공기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잠이 몰려왔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잠깐 꾸벅거리는 순간.

주위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피, 피해!”

“미친!”

“……응?”

눈을 떠 보니 가장 먼저 초록색으로 깜빡이는 신호등이 보였다.

옆으로는 기겁한 채로 도망치고 있는 시민들이 보였다.

‘왜 그러는 거지?’

까강!

아직까지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해 헤롱거리는 사이.

거대한 굉음이 오른쪽 귓가를 강타했다.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굉음만큼이나 거대한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

“뭐 해요! 피해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모습.

트럭은 도로가 아닌 인도 위에서 돌진하며 가로등 하나를 산산조각 낸 채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잠이 완전히 깨고 정신이 확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

본능과 이성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잠이 덜 깬 나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빼빼 마른 종아리에 힘을 줄 즈음에는.

이미 코앞까지 트럭이 다가온 후였다.

콰아앙!!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포에 질린 운전사의 눈빛이었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핸들을 최대한 꺾고 있는 모습.

아무래도 핸들과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 난 모양이다.

‘하아…….’

두 번째로 보이는 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보도의 벽돌이었다.

아마 보도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트럭에 부딪힌 나의 몸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하고 싶은 거나 실컷 하면서 살걸.’

게임에서 순수하게 즐거움을 찾던 것은 극히 초반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랭킹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모든 시간을 언 리얼 월드에 투자했고, 그 안에서도 랭킹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였다.

이후에는 랭킹 1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길드를 육성하기 위해.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게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생각하며 버티고 있었을 뿐.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였지?’

생각해 보았다.

10년간 방에 처박혀서 폐인처럼 캡슐 속에만 박혀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처음 랭킹 1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길드가 1위에 올랐을 때?

언 리얼 월드 최강의 던전이라는 사룡의 안식처를 공략했을 때?

‘아니야.’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하루에 두세 번. 요리를 할 때.’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마저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요리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털썩-.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졌다.

몸에서는 이미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아래에서 푹신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보도의 딱딱한 벽돌에서 나는 느낌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감촉.

육체가 죽어, 영혼이 떠오르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꿈틀-.

‘응?’

게임에서 죽어 본 적은 꽤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이게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죽었을 텐데, 손바닥에 푹신한 무언가가 가득 쥐어졌기 때문이다.

혹시, 구름일까?

아니다.

이건.

“이불이잖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해 보이는 집.

하지만, 달랐다.

나의 집에서 가장 비싸고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언 리얼 월드 접속용 캡슐이 없던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 역시 이상했다.

황급히 찾아낸 휴대폰 역시 이상하다.

사방에서 위화감이 가득 느껴진다.

‘달력, 달력!’

휴대폰을 켜고, 황급하게 캘린더를 켜 보았다.

그곳에 적혀 있는 숫자는 분명.


[ 2020년 1월 11일 ]


사룡의 안식처 레이드 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의 날짜였다.

회귀자의 요리비책


지은이 : 수리부엉이

제작일 : 2020.05.08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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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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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70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