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과 학생은 게임 중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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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제1편



“이렇듯 대부분의 관절에서 나타나는 볼록-오목의 관계는 관절의 일치성을 향상시키고, 접촉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둥근 반원 형태의 세련돼 보이는 강의실.

제법 나이 있어 보이는 교수 한 명이 갈색의 정장을 입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상으로 이번 학기의 해부학 개론을 마칩니다.”

‘하아…….’

해부학(Anatomy).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구조물(세포, 장기, 조직, 계통)의 생김새나 크기, 위치, 상대적 위치 관계 등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로봇 산업, 생명 공학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했다.

그에 따른 인간과 여러 동물들의 해부학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다.

전까지는 이런 것들을 그저 ‘해부학’을 배운 다른 학과들에게 의지하며 나아갔지만.

새로 생긴 ‘해부학과’는 그런 사회에 새로운 인재를 제공하려 하였다.

오로지 해부학과 생리학 등 신체와 생명에 대한 학문만을 완벽하게 습득한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통해 언제나 인력에 허덕이고 있는 로봇, 인체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이 이 ‘해부학과’의 목표였다.

그러한 해부학과의 1기 대학생 중 하나가 바로 나 ‘이환’이었다.

“휴.”

“드디어 끝났네. 방학이다!”

“넌 어디로 갈 거야?”

“난 이번에 알바 한 걸로 일본 다녀올려구! 같이 갈래?”

나의 나지막한 한숨 소리와는 다르게 주변은 곧 다가올 ‘방학’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긴.

3개월에 다다르는 대학생의 긴 방학.

중고등학생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다양한 자유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야야, 언리얼 월드(Unreal world) 안 할 거냐? 장난 아니래!”

“맞아, 그거 현실성 미쳐 날뛴다며? 형이 3개월 만에 랭커 찍는다.”

“키킥, 랭커는 무슨! 실력도 안 되는 놈이.”

뒷자리에서는 최근 오픈한 게임 ‘언리얼 월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학교에 입학하기 전 들뜬 마음으로 오픈 베타 기념 이벤트를 신청한 전적이 있던지라 잠시 귀가 펄럭였지만.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렇게 기쁜 마지막 수강 일에 내가 한숨을 쉬고 있는 이유를.

“아아, 그리고…….”

이미 방학이 시작한 듯 소란스러워지는 강의실을 바라보며 갈색 정장의 교수님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드디어 교수님의 폭탄 발언이 울리리란 것을.

“진도가 빠듯하니 방학 간에 골학(骨學, Osteology)은 다 외우고 오세요. 2학기에는 바로 근육학이 시작될 테니까.”

“네에?”

웅성웅성-

강의실이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아.”

그리고 얼마 전 교수님에게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이 사실을 미리 알게 되었던 나.

충격적인 사실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 놨지만, 역시 교수님의 말에 앞날이 까마득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우리 학과는 신설이라 선배도 없으니까, 제가 좋은 프로그램을 하나 찾아왔어요. 허허.”

교수님은 마치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한다!’라고 어필하듯이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크린에 글자를 띄우기 시작했다.


[ 강 교수의 해부학 강의 ]


“제가 몇 년의 노하우를 담아 만든 프로그램인데, 이걸 사용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쉽게 공부할 수 있을 거예요! 허허!”

“오!”

“하아…….”

대학생이, 그것도 1학년이 방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그렇지만 학생을 위해 손수 제작한 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교수님이라니!

“그래도 교수님은 교수님이네.”

“맨땅에 헤딩은 아니네.”

학생들 대부분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꽉 막힌 답답이 교수라고 유명했던 분이셨기에 녀석들 역시 제법 감탄한 모양이다.

그사이에 내가 다시 한숨을 내쉰 이유.

교수님이 이어서 하실 대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이니까 할인된 가격으로 1인당 198만 원만 내면 되니까 과대는 조사해서 나한테 명단 가져오고. 자세한 건 과대한테 알려줄게요. 허허! 다들 방학 잘 보내세요!”

“네?”

“아니, 미친.”

속사포처럼 뒷말을 쏟아 낸 교수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의실 문을 닫고 걸어 나갔다.

반 정도는 아직 교수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멍 때리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빠른 녀석들은 교수님이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욕을 내뱉고 있었다.

“하, 빌어먹을. 과대표 따위를 맡는 게 아니었어…….”

서서히 상황을 이해하며 소란스러워지는 강의실 분위기를 뚫고 옆자리의 과대표가 머리를 쥐어짜며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가 과대표가 된 이유 때문이었다.

입학식 날 적극적인 여학생 한 명이 ‘제가 과대표가 되어 여러분을 이끌겠습니다!’라며 외쳤었다.

그 와중에 그는 남들보다 세 살이 많다는 이유로 지원도 하지 않고 투표를 받았다.

결과는 과대표 당선.

그래도 과대표가 되었을 때는 책임감을 느끼며 ‘제가 해부학과를 최고로 만들겠습니다!’라며 소리쳤던 그였는데…….

머리를 싸매며 한탄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러다 탈모라도 생기면 어쩌지.

“과대! 이거 어떻게 된 거야?”

“1인당 2백만 원이 말이 돼? 미친 거 아냐?”

“그냥 책으로 독학해도 되지? 어?”

그런 과대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다가온 동기들에 둘러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난 알고 있었다.

방금 강의실을 나간 강 교수님은 독하게도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오럴 테스트(Oral test)라 불리는 구두시험을 칠 예정이었고.

그것의 시험 방식은…….

“얘들아, 나도 교수님께 방금 연락받았는데…… 오럴 테스트를 본다고 하셨어.”

“뭐? 그게 뭔데?”

“그게, 프로그램으로 직접 뼈를 배치하고 명칭을 확인하는 테스트래…….”

“뭐어?”

“아니, 무슨. 이게 말이 돼?”

“내 일본 여행은 어쩔 거냐고!”

역시나 과대표 형이 교수님에게 들은 소식을 전하자 동기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물론,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며 공부를 해도 잘만 하면 F학점은 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들 책만 보고 실제로 뼈를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것은 마치 게임의 가이드북을 읽자마자 배치 테스트를 통과해 플래티넘 티어를 받는 것과 같았다.

“과대 오빠!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나 일본 가야 한다고!”

“차라리 학기가 낫지 이건 무슨 방학 동안 매일 알바와 공부를 동시에 해야 하잖아!”

“얘들아, 난 아무런 힘도 없어…….”

강의실에선 동기들의 불평과 과대표 형의 신음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과대표 형에게 따져 봤자 상황이 해결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쩌지?”

핸드폰을 켜고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애초에 아직 이러한 프로그램 자체가 보급이 안 된 상황.

나에게 필요한 쓸 만한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휴대폰 어플 정도인데…….

어플 설명을 보니 큰 뼈에 대한 명칭이나 설명은 확인되었지만.

교수님이 원하는 디테일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위팔뼈(Humerus)의 결절사이고랑(Intertubercular groove) 같은 자세한 명칭 말이다.

“하아.”

어플을 검색해 봤자 한 페이지 만에 ‘더 이상 원하시는 어플리케이션이 없습니다’라는 글자가 보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이메일에 들어간 나는 새로운 메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언리얼 월드?”

내게 쓴 메일함.

그곳에는 고작 1학기 만에 두 페이지를 넘어가는 과제 관련 자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것을 무시하고 받은 메일함을 확인하니 언리얼 월드에서 도착한 메일이 보였다.

“무료 이용권? 캡슐에 3개월 이용권이라니!”

언리얼 월드.

대학 생활로 피폐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내 최대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고글형 가상 현실 게임과는 다르게 캡슐형으로 나온 게임!

인간의 오감을 모두 구현해 냄은 물론이고 세계관마저 완벽하다고 했다.

게임 안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나 NPC들의 인공지능, 진짜와 같아 보이는 환경 사물들.

평생 먹고살 돈만 있었다면, 아무 고민 없이 이 게임만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게임이다.

물론 지금은 그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과제의 노예일 뿐이지만.

“기본형이긴 하지만 캡슐도 준다고? 우와!”

그런 지금, 이벤트에 당첨되어 공짜로 받게 생긴 무료 캡슐과 이용권!

반년 전의 내 꿈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우와! 우와, 우와…… 하.”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현실과 과제.

나의 꿈을 누르기에 충분을 넘어 과분했다.

또다시 현실에 좌절하며 고개를 숙인 나.

“잠시만, 여기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 가장 큰 현안은 캡슐을 중고로 팔아 교수님의 프로그램을 사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한 전용 고글은 현시대인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장비.

나 역시 가지고 있다.

캡슐을 중고로 팔아도 200만 원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반년 전의 꿈과 무료 이용권이 나의 선택을 억눌렀다.

“어차피 언리얼 월드는 현실주의잖아?”

게임이긴 하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시체의 모습도 모자이크 처리가 아닌 현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언리얼 월드였다.

“그렇다면 시도라도…….”

방학 동안 공부를 하고 개강을 하자마자 시험을 쳐야 하는 상황.

그래도 그렇게나 원하던 게임에 접속한다는 기대 때문일까?

절망이 가득하던 나의 얼굴에 조금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 * *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역시 기본형조차 300만 원에 이르는 비싼 가격!

그럼에도 엄청난 인기 때문인지 캡슐을 주문하고 설치하는 것만 일주일이 걸렸다.

이미 게임이 오픈한 지는 시간이 좀 지난 상태지만, 애초에 랭커를 노리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부를 위한 목적.

그러나 나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을 숨기며 캡슐을 향해 다가갔다.

“우와…….”

점잖아지려 했지만, 나 혼자 있는 자취방에서 그렇게 바라던 캡슐을 바라보고 있으니 행복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가운 캡슐에 얼굴을 얼마나 비볐을까?

나는 이성을 되찾고 「사용 설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뭐, 늘 그렇듯이 「사용 설명서」에는 내가 원하는 지식보다는 기계에 대한 난잡한 정보만이 가득했다.

나는 게임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용법만 외운 후 책을 덮었다.

“자, 접속!”

해부학과 학생은 게임 중


지은이 : 수리부엉이

제작일 : 2019.07.0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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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29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