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무공창조 in게임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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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1. 무신(武神)



2013년 도쿄 게임쇼.

아나운서인 다카하시 미나미와 마츠이 히로시는 로드 오브 파이터즈 VX2 게임대회 결승전을 중계하는 중이다.

“한국의 진강호 선수,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결승까지 왔습니다!”

“예. 중학교 1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입니다.”

미나미 아나운서는 히로시 아나운서를 보며 말했다.

“혹시 히로시 아나운서는 진강호 선수의 별명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예. 격투 게임 팬들에게 그는 무신(武神) 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격투 게임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번 결승전, 어떤 경기가 펼쳐지리라 보세요?”

들뜬 히로시 아나운서는 원래 있던 대본을 무시한 솔직한 심정을 내뱉었다.

“히카리 신조 선수가 우리 일본을 대표하는 실력파 게이머이긴 하지만, 진강호 선수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히로시 아나운서의 돌발 행동에 미나미 아나운서가 당황했다.

“호호. 히로시 아나운서는 진강호 선수의 편이신가 보내요? 그래도 같은 일본인인 신조 선수를 응원하시는 게…….”

“아뇨. 국적을 떠나 신조 선수가 한 판이라도 따면 장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무신(武神)을 이긴 최초의 선수가 될 테니까요.”

약속한 대본과는 다른 대답이 연이어 들리자, 미나미 아나운서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 그런가요? 그러면 저라도 신조 선수를 응원해야겠네요. 자! 일본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히카리 신조. 선택한 캐릭터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닌자! 신조입니다.”

“무신(武神) 진강호. 캐릭터 선택은…….”

대회에 출전한 모험가 중 유일한 한국인인 진강호는 부스 안에서 눈을 감은 채 편안한 표정으로 자신과 늘 함께했던 격투가 진(Jin)을 선택했다.

화려한 태권도 발차기를 사용하는 ‘화강’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으나, 결승전에서 쓰기엔 아쉬운 감이 있었다.

진강호가 캐릭터를 선택하자, 게임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진 4 vs 신조 0]


진강호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자비 없이 4판을 내리 이겨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5번째 게임에서는 너무 서둘러 버렸다.

초반에 무리한 연속기 공격을 넣다가 신조의 옷깃 잡기에 이은 월광연격에 당해 남은 피는 겨우 1%.

위협을 예감한 진강호는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가느다란 목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두 선수가 서로 잡기와 연속기 타이밍을 노리자, 장내에는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무신(武神) 최초의 패배를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일본인으로 가득 찬 1만 명의 관중석도 조용히 숨을 죽이며 긴박감 넘치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진강호의 기록은 비공식 집계를 제외하고,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한 공식 대회에서만 합계 299승.

한국에서 227연승.

일본 내의 전적은 72연승.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결승전에서 공식전 300승을 달성하냐 마냐의 싸움이 결판나는 순간.

히카리 신조가 먼저 타이밍 싸움을 걸었다.


[구오오오-. 차캉!]


월광연격 10단의 기술이 펼쳐지는 효과음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며 신조의 캐릭터가 분신을 남기며 움직였다.

하늘 위로 올라간 뒤 신조의 캐릭터는 하강하며 칼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파-칭!]


진의 남은 HP는 고작 1%.

상대의 공격을 가드 한다고 해도 매번 1%의 관통 데미지가 들어온다.

그렇기에 월광연격 중 한 발만 맞는다면 진강호의 HP는 0이 될 터였다.

“네! 신조 선수의 월광연격이 발동했습니다! 10번의 공격을 전부 막아낸다 해도, 관통 데미지에 의해 패배가 확정적인 순간입니다! 아! 진강호 선수. 드디어 최초의 패배를 경험하게 되는 건가요?”

벌떡 일어선 미나미 아나운서의 해설에 신조의 승리를 확신한 일본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진강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 나타나는 진강호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으니까.

부스 안에 있는 진강호의 눈에는, 찰나(刹那)의 시간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능력이야말로 진강호가 연승을 해온 비결이나 다름없었다.

신조의 움직임을 노려보던 진강호의 손가락이 미친 듯 움직이는 순간.

역사에 남을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텅-! (퍼펙트 가드, 데미지 0)

텅-! (퍼펙트 가드, 데미지 0)

……


“우오오오!”

대회 중계 LCD 화면에 뜬 퍼펙트 가드(블로킹) 판정의 메시지가 하나, 둘 연속해서 뜰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흔히 절대 방어라 불리는 퍼펙트 가드는, 상대가 공격했을 때 0.03초 이내로 맞받아쳐야지 떨어지는 판정으로, 일반 가드와 달리 관통 데미지가 0이다.

완벽한 타이밍과 신들린 반응 속도가 필요한 초고난도의 기술이다 보니, 일반인이면 천 번에 한 번, 프로라면 10번에 한 번 성공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하는 퍼펙트 가드.

그런 극상의 기술을 진강호는 연속으로 펼쳐내기 시작했다.

누나를 제외한 어떤 누구도 자신을 응원하지 않는 이 도쿄 한복판에서 말이다.

무신(武神)의 이름값에 걸맞게 신기에 가까운 명령어 입력을 보이자, 신조를 향하던 환호가 삽시간에 진강호에게로 향했다.

마이크를 잡은 히로시 아나운서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저, 저것 보세요! 진강호 선수처럼 공격만큼 수비도 완벽하게 하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반사신경! 저건,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무신(武神) 진강호! 역시나 이름에 걸맞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된 대본 따윈 깡그리 무시한 히로시 아나운서의 열띤 해설이 이어졌다.

하지만 미나미 아나운서는 그 해설을 말릴 순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믿기지 않았으니까.

신조의 공격이 10회나 연속으로 모조리 퍼펙트 가드로 막힌 순간.

진강호를 대표하는 필살의 10단 콤보, ‘파이널 스트라이크’가 펼쳐졌다.


[그오오오. 쿠쿵!]


당황한 히카리 신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안돼!”

자신도 퍼펙트 가드로 진강호의 기술을 방어해보려 했지만, 이 중압감 속에서 그 초고난도의 스킬을 따라 하는 건 무리였다.

쾅-!

진강호의 파이널 스트라이크의 첫 번째 어퍼컷에 의해 신조의 캐릭터가 하늘로 떠올랐다.

퍽-! 퍽-! 퍽-!

연속해서 터져 나오는 진강호의 공격에 당한 신조의 캐릭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파이널 스트라이크란 이런 것이다!’란 걸 온몸으로 보이고 있었다.

타격이 다섯 번째를 넘었을 때.

화면에 K.O. 메시지가 떠올랐다.


[K.O. !!! - 진(Jin) Win!]


“아! 신조 선수, 무신(武神)의 300번째 제물이 되고야 마는군요!”

이미 승부가 난 상황이지만, 진강호는 팬들을 위해 끝까지 파이널 스트라이크를 마무리했다.

진강호의 연속기에 속절없이 당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히카리 신조는 얼굴을 감쌌다.

국제 대회의 결승전에서 달성한 프로 300번째의 연승이라는 대기록.

팬들의 환호에 고무된 진강호가 마지막 기술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승리 포즈를 취한 그의 모습을 본 관객들은 한껏 환호를 보냈다.

“우아아아아!!”

“스게~!!”

“사이코!!”

“진강호~!!”

도쿄 경기장은, 진강호가 한국인인 것도 잊고 열광에 휩싸였다.

진강호는 그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 관객들마저 경외의 감정을 끌어냈다.

압도적인 1위 무신(武神) 진강호.

한일 통합챔피언.

아니, 전 세계 챔피언.

적수가 없었던 중학생 진강호는 그렇게 격투 게이머들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합을 끝으로 더는 일본에서 진강호에게 초청이 오는 일은 없었다.

일본 측 대회 스폰서들이 집단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격투 게임의 일본 기업 스폰서들은 진강호가 출전한다면 앞으로는 대회 후원을 거부하겠다고 나서며 진강호를 배척했다.

심지어 다른 격투 게임들마저도.

진강호는 너무도 압도적인 기량 탓에 모든 격투 게임대회에서 출전 금지당해 버렸다.

그리곤 한국에서 작은 대회를 전전하다가 결국은 격투 게임에서 손을 떼 버렸다.

대전 격투 게임 따위를 잘해봐야 미래가 없었기에.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세상 사람들은 무신(武神)이라 불리던 소년 진강호를 잊었다.

심지어는 진강호 자신조차도, 찬란했던 과거를 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 * *



2028년 6월 25일.

노량진의 고시원 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에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탁. 탁.

키보드 치는 소리에 화면이 바뀐다.


[ 2028년 서울특별시 지방공무원 합격자 발표명단 ]

-죄송합니다. 수험번호 xxxx번 진강호 님은 합격자명단에 없습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자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이번이 몇 번째야. 아버지하고 엄마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누나랑 소연이한테도 할 말이 없네. 아, 진짜.”

불합격 메시지를 보며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올해로 29살.

이렇게 20대가 다 가는가 하는 생각에 피로와 허탈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합격한 사람들은 지금쯤 환호성을 지르고 있겠지.’

공무원 시험은 경쟁률이 보통이 아니니 어렵다며 말리는 지인들이 많았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그들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힘든 고시원 생활 끝에 남은 것은 끝없는 피로와 패배감뿐이었다.

“앞으론 어떻게 한다…….”

한때는 격투 게임을 휩쓸고 다녔던 재능을 살려 게임 회사에 잠깐 취업도 했었다.

하지만 게임 기획이란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니, 기껏 주어진 일이라고는 게임 출시 전 버그를 잡는 베타 테스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30세가 되기 전 모두 해고되는 불안정한 직장이었기에 계속 머무를 순 없었다.

결국, 다시 한 번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도전했었다.

하지만 전략 게임(RTS)는 나와 맞지 않았다.

대신 LOL-K라는 AOS 장르의 게임을 선택해 신생 프로게임단에 입단했지만, 데뷔 직전 단장 겸 감독인 김춘삼이 사기를 친 탓에 팀 전체가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말았다.

희망을 잃은 난, 게이머로의 삶을 포기한 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내가 노량진으로 들어오던 그해의 경쟁률은 무려 582 대 1로 치솟았다.

지지리 복도 없는 내 인생.

반짝했던 과거는 중학교 시절이 끝인 듯했고, 난 지금 이곳 창문 없는 고시원 방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올해는 공시 경쟁률이 사상 최고로 낮아져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는데.

아무래도 공부는 내 갈 길이 아닌 것 같았다.

“하하하. 호박엿 같은 세상.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단골 포장마차로 향하기 위해 때가 탄 슬리퍼를 신고선 고시원 문을 나섰다.



* * *



늦은 오후.

노량진의 길거리엔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과 어깨가 축 늘어뜨리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대비적인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험에 합격해 인생이 바뀐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고된 수험생활이 끝나고 합격을 확인한 사람들의 해방감이 가득한 표정을 보자 절로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좋겠다! 자식들아!”

복잡한 감정에 터벅거리며 포장마차로 향하는 도중 골목길에 있는 대형 LCD에서 세계 최고의 게임인 가이아 온라인의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전 세계 1억 명의 모험가들이 선택한 가상세계.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 당장 로그인하세요!]

[가이아 온라인의 VR캡슐, <티탄 Ver. 3.0> 출시!]


“1억? 그동안 모험가 수가 이만큼 늘었냐?”

올해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급속도로 떨어진 큰 원인은 바로 저 게임 때문.

가이아 온라인.

3년 전, 대한민국의 천재 개발자 최칠현이 이제까지 없었던 체감형 가상현실게임을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라 이름 붙인 인공지능 AI에 의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세계.

그곳엔 용이 날아오르고, 인간, 오크, 엘프, 다크 엘프, 드워프의 대군의 충돌하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다만, 이 놀라운 게임조차도 전용 VR 캡슐인 <티탄 Ver. 1.0>의 오류로 인해 초창기에는 회사가 망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감각 혼란, 멀미, 인지력 저하 등의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언론과 각 커뮤니티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티탄 Ver. 2.0>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감각 이상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 덕에, 모험가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개발자인 최칠현이 홀연히 사라졌다.

동시에 사업가로 유명한 부사장 박창렬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고, 그는 가이아 온라인의 월계정비를 단번에 30만 원으로 올려버렸다.

개발사 세븐와이즈로 어마어마한 항의가 몰려들었지만, 이 문제를 대처하는 박창렬의 태도는 단호했다.

“하기 싫은 사람은 떠나라! 지난 계정비? 원한다면 얼마든지 돌려주겠다!”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탈퇴하는 사람들.

계정을 삭제하는 사람들.

하지만 박창렬은 인터넷은행인 SWB를 설립하고 골드 환전센터를 개설해 일거에 상황을 반전시켰다.

게임 내 1골드는 현금 1만 원으로 전환해 준다면서 말이다.

게다가 환전의 기준은 오직 한국의 원화(KRW)만을 사용했다.

골드 전환 거래 수수료는 5%를 내면 게임 내 골드를 무한정 현금으로 전환했고.

그 발표에 개발사인 세븐와이즈의 주식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폭등했고, 게임 내 골드 사냥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고의 인기직종은 어느새 공무원에서 가이아 온라인의 게이머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고작 3년 만에 세상이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 난리 통에서도 난 소외되어 있었다.

게임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던 나였지만, 가상현실 게임에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니까.

게임이 출시된 첫날 죽마고우 삼식이와 함께 VR 센터로 달려가 캡슐형 접속기 티탄 Ver. 1.0에 누웠지만, 접속하자마자 느낀 것은 머리가 터질듯한 고통이었다.

긴급 로그아웃 버튼을 눌러 기계에서 나오자 오장 육부가 뒤틀리는 울렁거림에 병원으로 가야 했었고.

그리고 그날.

무리해서 가상현실 게임을 시도할 경우 뇌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았다.

‘게임 부적합 판정’이 왜 ‘인생 부적합 판정’으로 들린 건지.

그 이후로 게임은 완전히 접고선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그것도 만만치는 않았다.

“아~! 이 갱엿 같은 세상.”

한여름인데, 슬리퍼 사이로 툭 튀어나온 발가락이 왜 이리 시린지 모르겠다.

양말을 신고 나왔어야 했는데, 실수한 것 같다.



* * *



자주 가던 단골 포장마차, 순이네.

주황색 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 포차는 언제나처럼 시끌벅적거렸다.

“순이 아줌마, 소주 한 병 주세요.”

“어? 강호 학생, 왔어?”

푸근한 인상의 포차의 사장님이 날 친근하게 반겼다.

“안주는?”

“계란말이나 하나 주세요.”

제일 싼 안주를 시켰더니 소주와 함께 어묵탕을 스윽 내밀어 준다.

아마 내가 오늘도 시험에 낙방했다는 걸 아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뭘~. 서비스야, 서비스. 강호 학생, 힘내!”

“예.”

그녀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고선 소주병을 열었다.

낮은 소리로 김이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알싸한 소주의 향이 코를 찔렀다.

‘후우. 오늘은 엄청 쓰겠네.’

어릴 땐 술이 달콤하다, 술이 쓰다는 느낌을 몰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모든 것은 술을 마시는 기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술잔에 혼자 술을 따른 다음 한 모금을 들이켜자 목이 타는 듯한 쓰림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군.’

서둘러 아줌마가 내어준 어묵 국물을 들이켜자 그제야 따뜻한 기운이 뱃속을 데웠다.

‘아뜨뜨. 빈속에 먹으니까 이것도 쓰리냐.’

뱃속은 데웠지만, 목구멍은 타는 듯했다.

데였다.

젠장.

지지리도 재수 없는 날이다.

다음 잔은 계란말이라도 먹고 마셔야 할 것 같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데, 여기서도 가이아 온라인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종석아, 너 오늘 아침에 올라온 김도겸 인터뷰 봤냐? 투기장 전사 클래스 1위라는 놈.”

“어. 코코아 TV에서 인터뷰 정말 재수 없게 하던데. 25살이 수익 50억이라니. 완전 로또네.”

“올 초만 하더라도 게이머들 수익이 1억이네, 2억이네 했는데 미쳤네, 미쳤어.”

“아, 맞다! 그런데 영식이 소식 들었냐? 걔는 가이아 온라인 시작하고 석 달 만에 팔백만 원 정도 벌었다더라.”

나와 같은 처지인 공시생들인 것 같은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쓴웃음만 나왔다.

‘좋겠다, 자식들아. 너희들은 게임이라도 시도해 볼 수가 있어서.’

부러웠다.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영식이 그 녀석, 게임은 어떻게 시작한 거야? 걔 예전에 가이아 온라인 한번 해 보려다가 119에 실려 갔잖아. 캡슐에다 토하고 난리 피우고서…….”

응? 잠깐만.

조금 전에 영식이라는 사람은 가이아 온라인으로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벌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아. 그거? 석 달 전에 티탄 Ver. 3.0이라는 새 캡슐이 나왔잖아. 그때부터는 전혀 부작용이 없다고 하더라고.”

“뭐? 왜?”

“야. 넌, 만물상도 안 봐?”

“어. 공시 준비하는데 무슨 커뮤니티를 하냐?”

“이 자식. 좀 쉬어가면서 해라! 하여간, 티탄 Ver. 1.0이랑 2.0 나왔을 때 게임 부적합 판정받은 사람들 있지?”

“어. 영식이도 그랬었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실은 걔들이 감각 동조율이 높아서 그런 증상을 겪은 거라고 하더라고. 그걸 하이 싱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고 하던가?”

“큭. 이름이 뭐 그래? 하이 싱크? 높은 동조율? 야, 그러면 그 증상 겪은 애들을 하이 싱커라고 하냐?”

“어? 어떻게 알았냐?.”

“실화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데,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듯했다.

이건 내 이야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오른손에 소주잔을 든 채, 멍하니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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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공창조 in 게임


지은이 : 현신

제작일 : 2019.02.2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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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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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96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