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해피 고문재단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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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프롤로그



“후우, 올해도 목격자가 늘었군…….”

“괜히 도시 전설이나 괴담 덩어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슬렌더 맨’은 2025년에 대한민국의 수도 전체를 안개로 뒤덮으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와 벌인 합작이었지. 당시 콘스탄틴인지 뭔지 하는 집단이 놈들을 일시적으로 격퇴시켰었다고 하던데……. 젠장, 기록을 확실히 남겨 뒀어야지! 기껏해야 목격 증언밖에 남아 있지 않아.”

“25년 전의 사건인 만큼 기록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이 ‘침식 현상’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못 하던 시절 아닙니까?”

“그래서 더 문제라는 거야! 후대가 제대로 침식 현상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정확한 기록을 남겨 둬야 하는 법인데…… 그 당시에 세계의 ‘진실’을 관리하고 있던 조직들이 하나같이 기록을 폐기해 버렸어. 이제 와선 구전으로 전해진 것들을 반신반의하면서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책상에 앉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던 노년의 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는 24년 전의 일이다. 2026년에 세계를 강타한 거대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사건은 분명히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 인류는 그 사건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2026년에 벌어진 대사건이 있었을 텐데, 누구도 그 사건의 여파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그 날의 일을 기억하여, 이 세계와 인류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연구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그것은 일종의 침식 현상이라고 판명되었고, 세계 전체가 뒤틀릴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수복된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즉 그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대부분 그 날 사망했던 이들이다.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 악마, 혹은 다른 무언가가 이 세계를 휩쓸었지. 최후에 한 콘스탄틴이 희생해 사건을 해결했다고 하지만…… 이 세계는 결국 자체적으로 수복되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던 거야. 그 말은 곧 똑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해. 세계가 망가지고, 수복되고, 전 인류가 모든 기억을 잊고 새로운 시작점에서 태어나지. 전 세계가 끝없는 굴레(루프)에 빠지는 거라고! 그런데 그 망할 놈들이 기록을 안 남겨 둬서……!”

“진정하세요, 박사님. 그래도 우리 TF에서 어떻게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 나아가서 세계의 종속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을 보라고. 매년 목격자들의 수가 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린 기껏해야 목격자들을 잡아들이는 것 말곤 하는 일이 없어! 지금 이 시간에도 과거의 ‘그것’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침식 현상을 흩뿌리고 있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우선 올해 새로 채용할 예정인 경비 직원들부터 확인해 보십시오. 제1 처리 시설에서 근무하게 될 인원의 명단입니다.”

부하 연구원이 내민 서류 뭉치를 마지못해 받아든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명단을 살폈다.

매년마다 늘어나는 목격자를 처리하고, 침식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문재단(TF)에서 채용하는 연구직과 기동타격대, 그리고 시설 경비원의 후보들이었다.

침식 현상의 목격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TF 산하의 글로벌 대기업에서 가상 현실 시스템까지 야심차게 출시한 지 어언 15년째건만, 그것만으로도 인류의 호기심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현재 전 인류의 20%가 가상 현실 시스템인 ‘쉘터’에 동시 접속 중이다. 하루 누적 접속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60%!

그들이 가상 현실에 푹 빠져서 현실 따윈 신경쓰지도 못하게끔 일부 국가와 기업에선 자동화 설비 및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대체 노동을 실시했다.

전 인류를 날백수 잉여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매달마다 생활비 이상의 돈을 기본적으로 지급해 주고, 굶어 죽지 않도록 의료용 안드로이드 방문 시스템으로 영양제 주사 및 배변 처리까지 해 주고 있었다.

제발 가상 현실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라. 쓸데없이 바깥을 돌아다니지 마라. 동네 바둑이처럼 돌아다니다가 침식 현상을 목격하지 마라!!

그것이 고문재단이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자 모토였다.

“이렇게 평생 먹고 싸고 놀다가 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줬는데도 꾸역꾸역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해서 취직하려는 놈들이 있군.”

“향상심이 있는 인간이야말로 TF에 필요한 인재들입니다. 또한 철저한 정신감정과 세뇌교육, 비밀엄수 조약까지 새기면서 이중 안전장치를 준비해 뒀으니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하긴. 우리가 늙어 죽으면 우리의 뒤를 대신할 인재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오, 이 청년은 하버드 대학 출신 생명 공학 분야 지망자로군. 이번에 제3 연구 시설의 연구원들이 죄다 죽어 버려서 충당 인원이 필요하던 참인데 잘됐어.”

“그쪽의 연안경비대 출신 전직 군인도 어떻습니까? 기동타격대도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고 난리입니다.”

“그럼 그쪽에도 차출해 주지. 다들 이런 세상임에도 스펙들이 빵빵하구만……. 하지만 너무 똑똑하고 재능 있으면 반대로 불안한데.”

“이런 분야는 원래 엘리트가 제격 아닙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부하에게 박사는 혀를 끌끌 찼다.

“뭘 모르는구만. 단순하고, 시킨 대로 일만 하고, 쓸데없이 나대지 않는 놈이야말로 이상적인 부하라는 걸 모르나? 2010년대의 기업들은 그런 인간들을 대거 채용해서 노예처럼 효율적으로 부려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통계로도 증명된 사실이지.”

“그렇습니까. 그럼 이 청년은 어떻습니까?”

부하는 본래 폐기 처리되어야 할 서류 속에서 한 장의 프로필을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이름 김호국, 국적 대한민국, 나이 23세, 최종 학력 고등학교 졸업, 현직 백수, IQ…… 84?”

주제도 모르고 TF의 채용 공고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린 듯했는데, 프로필 사진 속의 순박해 보이는 청년은 활짝 웃고 있었다.

이보다 더 순수한 미소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해맑은 표정이었다.

“이런 인물이 대체 어떻게……?”

“대한민국에선 2050년인 지금도 대한민국 20대 남성들을 강제 소집해 의무 복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특이 사항에 따르면 그가 복무했던 모 부대의 행보관인 XXX 상사가 추천장을 써 주었다고 합니다. 알아보니 그는 전직 TF 기동타격대 출신이었습니다. 명예 퇴직자에게 부여되는 인재 추천권을 이 청년에게 사용한 것 같습니다.”

“추천한 이유를 알고 싶군.”

“TF에서 찾는 최고의 인재라고 했답니다. 우선 사람이 너무 순진해서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며, 한 번 가르친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성격도 좋아서 주변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군대라는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상적이군. 실로 이상적인 인재야. IQ가 84라는 것만 빼면 전부 좋아!”

똑똑한 인간은 보통 IQ가 높다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로 이건 꽤 그럴싸한 이론인데, 인류 최고의 지성을 자랑했던 아인슈타인의 IQ가 굉장히 높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엘리트들 역시 IQ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IQ가 낮다고 해서 무조건 바보 멍청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보다 IQ가 낮은 돌고래나 범고래들은 무지렁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인데, 그들은 독자적인 문화와 생활 양식, 사회를 구축하고 있을 만큼 똑똑하다.’

박사는 특이 사항에 기재된 김호국의 정보 중 하나인 ‘기억력이 좋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한 번 가르쳐 준 것은 절대로 잊어 먹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아 절대기억력의 소유자임이 틀림없었다. 그걸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잡한 사고능력이 조금 떨어질 뿐, 오히려 일반인보다 훨씬 더 우월한 편이었다.

“시설 경비에 제격이군. 이보다 더한 인재도 없어.”

시설 경비는 외워야 할 것도, 관리해야 할 것도, 감시(감독)해야 할 것도 많다.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업무량을 자랑하기에 각 시설마다 최소 수십에서 수백 명의 시설 경비들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절대기억력과 절대복종,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그라면 어떨까?

밥 잘 주고, 대우 잘해 주고, 일만 잘 가르치면 일당백을 능가하는 최고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시설 경비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합격! 무조건 합격이야! 당장 이 청년을 채용하도록!!”

“대한민국 국적이니 동아시아 지부 산하의 시설에 발령하는 게 맞습니다. 어디가 좋으시겠습니까?”

“대한민국이라면 북한 폐쇄 지역에 자리 잡은 제5 처리 시설과 자주…… 지주……?”

“제주도입니다.”

“그래! 제주도에 자리 잡은 제6 처리 시설이 있었지. 북한 폐쇄 지역에는 중국 측에서 인원을 차출하고 있으니…… 제주도로 보내면 딱 맞겠어.”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폐기될 예정이었던 서류에는 2급 연구관리자의 ‘승인’ 인장이 찍혔다.

2050년 3월 15일, 대한민국에선 아직 겨울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날에 결정된 신의 한 수였다.

1의 서



-mission failed we’ll get next time!!

“으아아아아아! 안 돼! 비누 소위!!”

한 자동화 공장의 설비 관리자의 직책을 달고 있는 청년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구형 스마트북. 대단한 부품들이 탑재된 것치곤 가상 현실 체험 기계가 나오자마자 퇴물로 전락해 버린 비운의 제품이었다.

“다시…… 다시 하자. 그 구간에선 떠돌이 개를 쏘면 안 되는 거였어. 기억했어.”

-mission failed we’ll get next time!!

“안 쐈잖아! 안 쐈다고!!”

떠돌이 개에게 발각되는 순간 떠돌이 개가 사납게 짖고, 그러면 주변의 떠돌이 개들도 몰려든다는 사실을 청년은 알지 못했다.

“버그인가? 아니면 저 개가 날 싫어하는 건가?”

일반인이었다면 개가 자신을 보자마자 짖었으니, 발각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이 발각되었고, 그로 인해 개가 짖어서 주변의 개들이 몰려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개가 자신을 싫어해서, 혹은 오래된 게임이 버그를 일으킨 것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했다.

“한 번만 더 해 보자. 비누 소위는 반드시 살려야 해. 행보관님께서 군인은 절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어……!”

해피해피 고문재단


지은이 : 작가G

제작일 : 2019.09.19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가영

표지 : Hye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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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23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