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익힌 영주님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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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챕터 1.



“오늘도 맛있게 먹자꾸나.”

“잘 먹겠습니다!”

일곱 남작과 다섯 자작을 거느린 오퍼른 백작가의 식사는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바깥에서 보이는 근엄한 모습과는 달리 가족만 함께하는 이 식사 시간만큼은 화기애애함이 가득했다.

바깥에서는 침묵의 기사라고 알려져 있는 아버지가 식탁에서는 함박웃음을 짓고 계신다.

“오늘도 좋구나! 새로 들인 셰프가 꽤 힘을 썼어!”

“괜찮죠? 역시 제가 추천할 만했다니까요.”

“암! 당신 안목은 내가 알지!”

저렇게 가정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를 밖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기사로 이름을 날리는 첫째 형도.

“안 먹을 거냐? 그러면 나 줘!”

“오빠! 안 된다니까!”

“살 뺀다며? 전에 휘안 후작가에 가서 당한 게 마음에 안 든다더니?”

“원래 빼는 건 내일부터야!”

“……그리고 또 무섭게 내일이 오겠지.”

“오빠!”

가냘파 보이는 몸으로 검을 든 레이디라 해서 기사 중의 꽃으로 이름을 날리는 둘째인 누나와 함께 식탐을 보일 거라 누가 상상했을까!

‘……상상도 못 할 거다.’

침묵. 근엄함. 묵직함.

이런 단어들로 바깥에서 불리는 게 내가 셋째이자 막내로 있는 우리 오퍼른 백작가였다.

소문으로는 집안에 말소리는커녕 숨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곳이라고 하는 게 전대부터 있던 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도는 소문과는 다르게 적어도 우리 백작가는 시끌벅적하며 화기애애하게 보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침묵의 가문이었다.

‘이미지 관리가 장난 아니라니까.’

가문 좋은 레이디의 내숭 정도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내숭이랄까!

겉으로 봐선 우리 오퍼른 가문은 근엄하며 묵직하게 기사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첫째인 형도, 둘째인 누나도 나이 15세에 이미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정도다.

그 가운데에서 가문의 걱정이라고 불리는 게 나 정도다.

현재 내 나이만 해도 13세.

기사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몸이 튼튼하기는커녕 허약함이 가득하게 태어났고, 아직까지도 허약함이 이어지고 있다.

빌빌대는 몸으로 기사 서임을 받기에는 무리였다.

천하의 오퍼른 가문에서도 기사가 되지 못하는 자가 나오는가 주변의 우려가 일었을 정도였다.

바깥에서는 우려를 보이지만 가문 안에서는 아버지의 한마디로 결정이 났다.

“그래도 타고난 게 있잖나. 게이른이 말하기로 마나에 재능이 있다던데?”

가문 마법사 게이른.

특이하게 5 서클의 고위 마법사이면서 마탑에 속하기보다는 아버지와 인연으로 우리 가문에 충성하고 있는 그다. 그가 내 재능을 보증해줬다.

허약한 육체 대신에 마나에 대한 재능을 얻었다고.

덕분에 마나에 대한 재능으로 마법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조차도 확실한 재능은 아니라는 거지.’

딱 최소의 재능. 기사로서도 힘들지만 마법사로서도 완전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이제 겨우 1 서클이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라이트가 고작.

‘어렵다니까.’

나는 머리가 나쁘진 않아도, 다른 마법사들처럼 뛰어나다고 할 정도는 못 됐다.

가문에서 지원이 있는데도, 평생 마법사의 길을 걸어도 4 서클에나 도달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수준이 나다.

그만큼 늦었다.

그나마 백작가 가문 차남이 아니었다면 4 서클도 바라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얕은 재능이었다.

‘정말 이도 저도 아니지.’

부모님이나 첫째 형은 이런 나를 안쓰럽게 보곤 했다.

둘째인 누나는 가끔 가문끼리의 친목 모임에 가면 들려오는 내 소문에 속을 앓고는 한다. 앓다 못해 나를 변호하겠다고 장갑을 척하니 뺨에 던져 대결까지 벌이고 온 일화는 유명했다.

‘착하다니까.’

완벽에 가까운 가문. 그 가운데 티끌같이 모난 존재가 나였다.

“막내도 어서 먹어라. 많이 먹어둬야 건강하지! 허허.”

“아, 예!”

그래도 챙겨주는 가족이 있기에 기가 죽지는 않았다.

못난 나를 두고 신파극을 찍기는커녕, 보듬어 주는 존재가 가족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오냐.”

철없을 나이의 나지만 가족이 나를 소중히 함은 안다.

‘어디…….’

따뜻함을 잔뜩 만끽하며 수저를 들어 입에 가득 스튜를 담았다.

새로 들인 셰프가 만들었다는 음식의 맛을 보려는 순간, 음식의 맛 대신에 다른 것들이 가득 차 들어왔다.

알 수 없는 울림들이었다!



* * *



-……만족하거라.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더냐.

-해서 찾으려 합니다. 무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무를 익히지 못하는 게 저이지 않습니까?

울림은 연이어서 이어졌다.

-무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모든 무를 이해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이 느껴진다. 가졌으나 제 것으로 하지 못하는 자의 한이었다.

울림은 연달아 이어졌다.

-결국 담지 못하는 절맥. 이래서야 삶의 어디가 소중하며, 무엇이 중요합니까?

-무가 아니더라도 너는 강하다. 현 세가의 부흥이 네 덕이다!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꼭 찾아내겠습니다.

울림은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기억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기억이었다.

중원. 그리고 무림!

희귀한 검은 머리를 가진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전혀 다른 세계의 기억이다. 순식간에 기억이 나를 자연스레 파고들었다.

나와 같은 또래였던 그는 약했다.

‘막막할 정도겠는데?’

태어나면서부터 가문의 어른들에게 받은 벌모세수도 무용지물이었다.

-제갈현이라 하자꾸나. 홍복이 되리니…….

제갈세가라는 명문 세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그를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구음절맥.

그의 육체가 감옥.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절맥을 이겨내고자 그는 무진 애를 썼다.

가문에 있는 모든 무공을 모아 익히고자 했다.

육체가 아닌 정신으로라도.

-아…….

천재적으로 타고난 머리로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었다.

머리는 드높은 경지에 이르나 육체가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가문 외의 무공에조차 손을 댔다. 또 다른 절망이었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현아…….

육체만이 절맥이었을 뿐, 정신은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냈다.

진법을 익혔다.

천하제일의 진법을 가진 제갈세가의 진법을!

의술을 배웠다.

의선을 불러 익힌 의술은 의학적으로도 방법이 없다는 것만 알려줬을 따름이었다.

-그렇다 해도 있을지니…….

도술이라고 하는 걸 익히기 시작했다.

‘마법이잖아!?’

그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기대였다.

연단술, 주술, 주법, 주역. 누군가는 허상이라고 말하는 걸 그는 끝없이 익히고 또 익혔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작했다.

하나 결론은.

-현생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던가.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애써 만들어낸 치료법도 실제로 실현이 불가능했다.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이라도 있을지니…….

연단연혼대법(煉丹聯魂大法)!

혼을 재료 삼아 담금질하고, 연결하여 생을 잇는 대법.

현생에서 삶에 절망을 느낀 그는 절망 속에서도 방법을 찾아 다음 생을 이으려 했다. 다른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할 허망한 일에 마지막 목숨을 걸었다.

그게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제갈현의 마지막!

짧은 생은 니튼 고기 한 점 한 점에 압축되어 들어왔다. 생과 사를 함께 머금고서!

“뭐지…….”

“왜 그러느냐? 입에 안 맞느냐?”

“아니에요. 그런 게…… 으음…….”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 가운데 이상한 기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단연혼대법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었다.



* * *



이어지는 기억은 제갈현의 기억이 아니었다.

다른 자의 기억이었다.

중원도 아닌 한국. 고대의 시대가 아니라 복식도 방식도 다른 21세기의 기억.

또 다른 자아가 이어진다.

-오늘도 공부냐?

-가기 싫다.

-그럼! 피시방 콜?!

-됐어 인마. 가자. 수능이 코앞이다.

평범한 삶이다.

‘아니 평범하지 않아.’

이생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1980년대 한국. 처음 태어나 우량아로 기억되었다.

이름은 김성건.

‘이름이 특이하게 짧은데?’

백작가의 이름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글자가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마법사의 마력도, 무인들의 기운도 없다.

그래도 그는 매사 치열하게 살았다.

물려줄 재산 없는 가난한 집. 학원조차 제대로 가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노력했다.

-우리 집 문제집 정도는 살 수 있잖아요? 흐흐. 아주 가난하진 않네.

-……미안하다.

-됐어요. 알바도 못하니 제가 다 미안하죠. 조금만 기다려요.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향해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부정 대신에 긍정을 무기 삼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였다.

-우리 집 일으키려면 알바 정도론 안 되지. 암.

짧지 않게, 멀리 길게 미래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가장 처음 겪는 수능을 해내고,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갔다.

경영학과로.

-너 정도 성적이면 이과로 해서 다른 데 가도 됐잖아? 수학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의대도 좋은데 길어요. 거기다 요즘은 병원 개원 못 하면 개털이라고요.

-어휴. 애가 철이 일찍 들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제가 선택한 거니까요.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지켜봐 주던 선생님에게 인사를 올리며 성인이 된 그는 대학교에서도 치열하게 달렸다.

군대에서조차 독종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버텨 공부를 했다.

학교를 졸업. 그대로 대기업에 입사했던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줄을 몰랐다.

-곧이야. 뭐 이다음은…… 조금 쉬는 것도 좋겠지. 여보야랑 여행도 가고 말야. 그치?

-당신, 그 소리만 몇 년 째라구…… 당신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 조금만 더 가면…… 그땐…….

-항상 건성이지!

-그게 내 별명이라구. 하핫.

은퇴를 하면 이런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해외여행이라도 자주 가면 어떨까 하며 상상을 하던 그 김성건.

넉살 좋게 웃으며 치열하게 움직이던 그.

부모께 효도하며 부인과 자식들도 챙겨가던 그는 끝끝내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아…….

중년. 이제 막 자리를 잡았다 했을 때의 갑작스러운 쓰러짐.

그게 김성건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제갈현. 김성건.

이 둘의 자아가 같이 스며들어 온다.

‘둘 다 너무 짧게 살았네…….’

처음 보는 기억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저들은 나의 전생이며, 나와 같은 자들이었다.

제갈현의 기억에 따르면 기억의 전승은 본래라면 고통스럽게, 내 자아를 잃을 만큼의 일이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혼을 담금질하고 이어가는 연단연혼대법의 공능이 현재의 나에게로 이어졌다!

고통은 없었다. 혼란스러움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다.

나를 포함하여 김성건과 제갈현 모두가 생각하는 하나의 소망이 이어졌다.

‘살자.’

잘 살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휘둘리기보다는 내 길을 가는 삶을 살자고.

무공 익힌 영주님


지은이 : 이휘황

제작일 : 2018.08.31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민혜

표지 : 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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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305-508-2(1)